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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film - 우리 마음 속의 영원한 ‘아라비아의 로렌스’

culture film - 우리 마음 속의 영원한 ‘아라비아의 로렌스’

피터 오툴(1932.8.2~2013.12.14)을 기리며



아일랜드 태생의 배우 피터 오툴이 12월 14일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데이비드 린 감독의 걸작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에서 토머스 에드워드(T E) 로렌스를 연기한 배우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오툴은 놀랍게도 자신의 초기작에 속하는 이 작품 한 편으로 불후의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평생 로렌스의 커다란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사상 최고의 명화로 꼽힐 만한 자격이 있지만 문제점도 많다. 사실과 역사적 정확성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자유로운 입장을 취했다는 점이 그 중 하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영화의 높은 명성과 인기에 가려져 진짜 T E 로렌스의 인생 이야기는 완전히 묻혀버리다시피 했다는 점이다. 로렌스는 길이 기억되고 사랑받을 만한 복잡하고 매혹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대중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진짜 T E 로렌스가 아니라 그 역할을 맡은 배우 피터 오툴이다. 로렌스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중동 지역에서 오스만제국에 대항하던 아랍 부족을 도와 싸운 용감한 영국 장교였지만 오툴은 자신이 연기한 그 인물과는 공통점이 거의 없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오스만제국에 대항한 아랍인들의 투쟁에 관한 부정확한 묘사는 너무 복잡하고 많아 여기서 논하기 어렵다. 그래서 오툴이 묘사한 로렌스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만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우선 오툴은 진짜 로렌스보다 키가 25㎝나 더 컸다.

어쨌든 그는 실제 주인공과 비슷하게 보이려고 짙은 갈색의 곱슬머리를 곧게 펴고 금발로 물들였다. 오툴은 또 평범하게 생겼던 로렌스보다 훨씬 더 핸섬했다. 유명 극작가이자 재담가인 노엘 카워드는 이를 빗대 이 영화의 제목을 ‘아라비아의 플로렌스’로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차이는 외적인 측면에 국한되지 않았다. 빅토리아 시대에 태어난 로렌스는 사람들 앞에서 행동할 때 지켜야 할 예의를 철저하게 지켰다. 또 자제력이 뛰어났으며 영국인들의 오랜 전통에 따라 어려움에 부딪쳐도 굴하지 않았다. 로렌스는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을 꺼렸으며 전쟁이 끝난 후, 그리고 ‘지혜의 일곱 기둥(The Seven Pillars of Wisdom)’을 출판한 뒤 자신에게 찾아온 엄청난 명성을 매우 부담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영화에서 로렌스는 언론의 주목과 명성에 굶주린 이기적인 괴짜로 묘사됐다. 진짜 로렌스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또 로렌스의 성적 성향에 관한 문제도 있다. 로렌스 자신은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논한 적이 없었지만(그가 살았던 시대 상황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많은 학자들과 역사가들이 로렌스가 동성애자였다고 결론내렸다. 하지만 영화에서 로렌스의 소곤대는 목소리와 여자들의 빈정거림을 연상시키는 말투는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듯하다.

한 장면에서 그는 알리 족장에게 “내가 보통사람처럼 보이느냐?”고 묻는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텅빈 사막에서 몸에 휘감기는 긴 아랍 옷을 입은 로렌스가 마치 패션 모델들이 무대에서 워킹하듯 사뿐사뿐한 걸음걸이를 뽐낸다. 영화는 또 그가 채찍질에 흥분을 느끼는 피학증의 성도착자인 듯한 암시를 강하게 준다.

로렌스는 정말로 동성애자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그런 행동으로 그 사실을 과시하려 했을지는 의문이다. 그것도 매우 보수적인 아랍 사람들 앞에서 말이다. 로렌스가 데라에서 터키 사령관(호세 페러)에게 채찍을 맞고 성폭행을 당한 듯 묘사된 장면은 특히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성폭행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아마도 영원히 확인이 불가능할 듯하다.

아랍 민족주의에 대한 로렌스의 견해 또한 잘못 전달됐다. 오툴은 로렌스가 유럽 세력으로부터 아랍인들의 독립을 바라는 듯 묘사했다. 하지만 실제 로렌스는 영국이 중동을 지배하기를 바란 열렬한 제국주의자였다. 그는 프랑스가 아랍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를 원치 않았다.

눈앞에서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영화의 거대한 힘이 책 속에 숨어 있는 미묘한 의미들을 눌러버렸다. ‘지혜의 일곱 기둥’이나 로렌스의 전기를 읽은 사람보다는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본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또 로렌스의 전기보다 오툴의 전기를 읽은 사람이 더 많을 듯하다.

이 시점에서 진짜 T E 로렌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비록 진실이 왜곡됐을지언정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사람들이 그를 영원히 기억하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진짜 로렌스(1935년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했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유산을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기절초풍하지 않을까?





실수마저 매혹적이었던 남자 - “오툴이 나오는 영화나 연극은 아무리 엉망이어도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었다”피터 오툴 12월 14일 런던에서 별세. 향년 81세. 아일랜드 출판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62년 장편 서사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출연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으며 당대 최고의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배우로 성공했다. ─ 뉴욕 타임스

30년 전쯤 어느날 피터 오툴이 내게 전화해 런던 북부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했다. 그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얼굴 색이 이상하리만치 노랗고 나이(당시 50세)보다 훨씬 더 늙어 보였다. 노망난 할아버지처럼 목둘레가 아주 헐렁한 셔츠를 입고 그 위에 개릭 클럽 타이를 맸다. 그 타이는 그가 영국의 성공한 영화배우 겸 연극배우로서 상류사회의 일원이라는 상징이었다.

“내 전기를 쓰지 마세요.” 그가 말했다. “내 전기를 쓰는 걸 허락하지 않겠단 말입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로부터 2년 전 오툴의 친한 친구인 배우 케네스 그리피스가 뉴욕 소호에 있는 한 개인 영화관에서 나를 오툴에게 소개했다. 그리피스는 그에게 내가 믿을 만하고 정직한 저널리스트이며 내게 그의 전기를 맡기면 자랑스러운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오툴은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그렇다면 좋다”고 말했다.

이미 작업을 중단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기였다. “미안합니다.” 내가 말했다. “책이 이미 끝났습니다. 원고가 출판사에 넘어갔습니다.” 그는 이글이글 타는 듯한 푸른 눈으로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여자들을 황홀하게 만들고 평론가들에게 심오한 생각을 지닌 배우라는 인상을 심어준 바로 그 눈빛이었다.

난 전기 작가가 책을 낼 때 주인공의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책을 쓰는 도중에 미심쩍은 부분이 생겼을 때는 내 가까운 친구이자 이웃인 그리피스에게 꼬박꼬박 확인했다고 안심시켰다. 오툴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재미있는 일화를 많이 꾸며냈다. 어떤 게 사실이고 어떤 게 농담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일례로 그가 어떻게 동정을 잃었는지에 대해서 알려진 이야기만 해도 세가지나 된다. 어떤 것이 진실이었을까? 어쨌든 별로 문제 될 건 없었다. 각각의 이야기가 너무나 황당하면서도 그럴 듯하게 꾸며져서 책에 그 세 가지를 다 집어넣었다.

많은 배우들이 그렇듯이 오툴도 자신이 외운 연극이나 영화 대사의 멋진 표현과 말투를 일상적인 대화에서 그대로 사용했다. 게다가 그는 아일랜드 출신답게 허풍이 심했다. 신인배우 시절 맡았던 역할부터 데이비드 린 감독과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찍을 때의 일화들까지 그가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는 과장되고 재미있는 여담이 많이 따라 붙었다. 아무리 허풍이 심해도 저절로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난 그날 오툴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가 방탕한 술꾼으로 묘사되는 걸 꺼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그런 습성을 알 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새삼스럽게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를 원치 않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의 집으로 불려가기 얼마 전 런던 올드빅 극장에서 본 그의 ‘맥베스’ 공연이 기억났다. 공연은 엉망이었고 평도 끔찍했다. 관객들이 사상 최악의 공연으로 기록될지 모를 그의 연극을 보러 극장으로 몰려들 정도였다.

런던 헤이마켓 극장에서 오툴이 공연하는 연극을 보러 그리피스와 함께 갔던 일도 기억난다. 정말 형편없었다. 공연이 끝난 뒤 그리피스는 오툴을 보러 무대 뒤로 찾아가지 않으면 결례라고 말했다. 하지만 난 양쪽이 다 당황스럽지 않겠느냐고 그를 말렸다. 그리피스는 “내게 맡겨 두라”고 말했고 우리는 오툴의 분장실로 향했다.

거기서 나는 연극계의 예절에 관한 첫 교훈을 얻었다. 오툴이 우리를 올려다봤다. 그의 겸연쩍은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형편없었지?” 하지만 ‘아닌 척’의 대가 그리피스는 양손을 들어올리며 “이 똘똘한 친구야!”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자리에 맴돌던 어색함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툴은 내가 쓴 전기에서 술꾼으로 묘사되는 걸 걱정한 게 아니었다. 오툴과 리처드 버튼, 리처드 해리스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술꾼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오툴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영화 장면에서조차 술에 취해 있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로렌스가 아른거리며 반짝이는 지평선에서 낙타를 타고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 한 예다.

처음 대작의 주인공으로 출연하게 돼 떨리는 마음을 술기운으로 달래려 했던 듯하다. 하지만 그 장면에서 놀란 듯 두려움에 싸인 그의 모습을 보고 타임지의 평론가는 오툴이 “세계의 운명을 바꿀 구세주 같은 영국인의 신비한 눈길을 훌륭하게 묘사했다”고 썼다. 오툴은 내게 그 이야기를 하면서 몹시 즐거워했다.

오툴이 그날 걱정했던 부분은 내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그는 중년에 접어들면서 위장병에 걸려 장을 상당 부분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그래서 예전처럼 술을 마음껏 마시지 못하게 되자 코카인에 손을 댔다. 내가 세상에 떠벌릴까 봐 오툴이 두려워 했던 건 바로 이 부분이었다. 연극·영화 제작자, 미국 세관원들에게 말이다. 그는 배우 생활을 계속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를 수시로 오가야 했다. 그리고 당시 미국에 살던 어린 로칸(둘째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도 자주 보고 싶었다.

그는 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난 그의 마약 습성을 폭로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재미있고 다양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그가 사람들의 지탄을 받길 바라진 않았다. 내가 쓰고 싶었던 건 형편없었지만 그럼에도 매혹적이었던 그의 ‘맥베스’ 공연 같은 이야기들이다. 관객이 많이 몰리자 공연이 연장됐고 전국 순회 공연으로 이어졌다.

순회 공연에서도 표가 매진될 정도로 열렬한 호응을 얻었고 런던 올드빅 극장으로 돌아와 2차 공연까지 했다. 형편없는 것도 좋아 보이게 만드는 대단한 능력. 그것은 오툴이 인생에서 누린 기쁨 중 하나다. 오툴이 나오는 영화나 연극은 아무리 형편없어도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었다.

- NICHOLAS WAPSHOT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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