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EDICINE - 암과 싸우는 ‘아웃사이더’ 전사들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의 모핏 암센터(Moffitt Cancer Center). 4층 연구실에서 로버트 A 개튼비가 창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 본다. 주차도우미들이 차 빼내 오기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화학요법, 조직 검사, 방사선 치료를 막 마친 환자들이다. 창백한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지만 표정은 엄연하다. 그들 중 일부는 살아남고 일부는 죽을 것이다.
짧은 머리의 한 젊은 여성은 남자 파트너의 손을 꼭 잡고 있다. 나이가 많은 한 남자는 혼자 기다린다. 주차도우미는 인근 사우스플로리다대에 다니는 학생들이다. 활기차고 청색 조끼를 입은 그들은 마치 열대 지방의 특급호텔에서 일하는 듯이 쾌활하다. 그러나 이곳에서 휴가를 보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개튼비는 62세의 방사선 전문의다. 그는 화학요법을 받은 후 헛구역질하는 환자들을 자주 본다. 그런 환자를 보면 자신이 이끄는 팀이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개튼비는 말했다. 그는 통합 수학 종양학부(Integrated Mathematical Oncology Department, 미국에서 그 목적의 독립적인 조직으로 유일하다) 책임자다. 수학이라고? 수학은 결코 급박한 게 아니지 않은가? 예컨대 ‘쌍둥이 소수 추측(twin prime conjecture)’을 증명하는 데 사람 목숨이 걸려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튼비가 탬파의 통합 수학 종양학부에 모아놓은 수학자들과 종양학자들은 혼돈 그 자체인 암을 길들이려고 한다. 수세대에 걸쳐 수학 전공 학생들을 고문해온 바로 그 미분방정식을 통해서다. 그들은 수학적 모델을 통해 암의 수수께끼를 풀려고 한다. 허리케인의 진로를 예보하듯이 암의 움직임을 예측하려는 것이다. 방금 치료를 마친 그 아래의 환자들은 허리케인을 피할 대피소가 필요하다.
암과의 전쟁모핏 암센터의 한쪽 귀퉁이를 차지한 개튼비의 연구실은 전혀 병원 같지 않다. 환자의 목숨을 구하려고 황급히 달려가거나 밤늦게까지 기적의 치료제 개발에 몰두하는 흰색 가운의 의사들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조용한 교수실 같은 분위기다. 대학 운동장의 축구공처럼 추상적인 아이디어가 굴러다니는 곳이다. 폄하하려는 게 아니라 실제로 개튼비의 연구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그렇다.
개튼비를 위해 일하는 수학자들은 우리가 암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확신한다. 우리가 암을 제대로 이해하기 전에는 그 어떤 최선의 노력도 깜깜한 어둠 속에서 칼을 휘두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그들의 시각엔 일반적인 암 전문의는 공기역학도 모르면서 제트 여객기를 만들려는 사람처럼 보인다.
미국은 1971년 ‘암과의 전쟁’을 개시했다. 당시 리처드 M 닉슨 대통령은 이렇게 선언했다. “원자를 분리하고 인류를 달에 보낸 것 같은 우리의 집중된 노력이 이제 이 무서운 질병을 정복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할 시간이 됐다.” 그러나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지금, 미국 암학회(ACS)에 따르면 매년 미국인 166만5540명이 그 섬뜩한 진단을 받으며, 약 58만5720명이 수많은 종류의 암으로 사망한다.
천연두와 소아마비는 완전히 또는 거의 대부분 퇴치됐지만 암은 고대나 지금이나 여전히 대재앙으로 남아 있다. 4500년 전 고대 이집트 의사 임호텝은 “유방에 생긴 불룩한 덩어리”를 어떻게 치료할지 고민했다. 인류 문명 최초의 종양학이었다. 그로부터 수천 년이 지났지만 현대 종양학의 진전 속도는 너무도 더디다. 생존기간을 3개월 연장해주는 흑색종 치료제를 두고 획기적이라고 말할 정도다. 어느 누구의 잘못은 아니지만 인류 전체의 문제다.
개튼비는 우리가 계속 지고 있는 이 싸움에 완전히 지쳐 버렸다. 30년 동안 암과의 싸움 끝에 그는 아주 불편한 진실을 깨달았다. 암은 우리보다 더 똑똑하며, 우리의 가장 뛰어난 의학 무기도 능히 피해갈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는 결론이다. 이제 이 지친 전사는 암의 저항세포들과 화해를 원한다. 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많은 환자를 살려줘야 한다는 조건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의학계 내부의 일부 인사들은 터무니없다고 생각하겠지만 개튼비는 ‘아웃사이더’의 역할을 즐긴다.
개튼비는 펜실베이니아주 이리에서 성장했다. 대표적인 러스트벨트(Rust Belt, 사양화된 공업지대) 도시다. 그곳에서 가톨릭 학교를 12년 동안 다니면서 “종교 교리 같은 독단적인 신조”를 증오하게 됐다. 그후 프린스턴대에서 그는 20세기의 뛰어난 과학자들과 함께 물리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유명한 물리학자가 될 운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의학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펜실베이니아대 의과대학원의 공부는 어린 시절 세인트 루크 스쿨에서 신물이 났던 “교리문답 외우기”와 너무도 비슷했다. “나 자신이 퇴보하는 것 같았다”고 그는 돌이켰다.
서양 의학은 매우 신중한 실험을 바탕으로 한다. 실험실에서든 교실에서든 병원에서든 마찬가지다. 획기적인 치료책을 찾으려는 열의가 높지만 ‘해를 끼치지 말라’는 히포크라테스의 엄명으로 그 열기가 쉽게 식어버린다. 결국 찔끔찔끔 진전할 수밖에 없다는 좌절감이 생겨난다. 사실 그런 현상 자체가 더 해롭다. 미국의 유명한 종약학자인 데이비드 B 에이거스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위험을 감수하는 데 주어지는 보상이 전혀 없다. 완전히 새로운 무엇을 하기가 너무도 겁난다.”
암의 기본 원칙을 찾아라개튼비는 방사선학을 전공했다. 1977년 학위를 따고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뒤 1981년 필라델피아의 폭스체이스 암센터에 자리를 잡았다. 폭스체이스는 암연구의 메카로 유명하다. 그곳에서 데이비드 A 헝 포드는 동료와 함께 ‘필라델피아 염색체(Philadelphia Chromosome)’를 발견했다. 일종의 발암 유전자로 인간 유전체 내부에서 가장 먼저 발견된 발암의 주요 단서다.
폭스체이스의 현재 숨은 실력자는 앨프리드 G 너드슨이다. 그의 ‘투힛(twohit)’ 가설에 따르면 암은 잘못된 유전자가 우연히 쌓이거나 유해한 외부 요인(햇볕을 너무 많이 쬔다거나 붉은 육류를 과다섭취하는 등)이 작용하거나, 또는 그 두 가지가 혼합되면서 발생한다. 개튼비는 유전자 연구에 관심이 없었다. 유전학을 모르면 의학자가 아니라고 할 정도로 의학의 대부분이 유전학에 얽매어있는 시대이지만 개튼비는 그보다는 암의 ‘기본 원칙(first principles)’을 찾는 데 몰두했다.
자신에게 영양을 공급해주는 바로 그 숙주를 죽이고 싶어하는 암세포가 왜 갑작스럽게 증식되는지 그 이유를 밝히고 싶어했다. 요즘은 여성이라면 유방암 발생률을 높이는 유전자 BRCA1을 자신의 어머니보다 더 잘 아는 시대다. 그러나 그 유전자가 너무나 지독한 유방암을 일으키는이유를 모른다면 나무 한 그루의 껍질만 조사함으로써 숲을 벗어나는 길을 찾으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개튼비는 뉴턴이 중력을 이해했듯이 암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려 했다.
뉴턴의 유명한 운동 법칙처럼 암의 총체적인 이해에도 수학이 열쇠를 쥐고 있다고 판단했다. 한참 전부터 수학은 날씨와 금융시장의 모델을 만드는 데 사용됐다. 날씨와 금융시장은 외부 영향에 매우 민감하다. 예를 들면 허리케인의 습격이나 그리스은행 예금인출 사태를 보라. 마찬가지로 인체도 외부 영향에 그만큼 민감하다.
따라서 개튼비는 암에도 수학이 적용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1년 동안 수학공부에 매달렸다. 동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한번은 가족과 함께 뉴욕 맨해튼 북쪽에 있는 클로 스터 박물관에 갔을 때 영감이 떠올랐다. 그는 메모지를 꺼내 방정식을 적었다. 암의 실체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 공식이었다.
무시무시한 녹색 구름“그들은 그런 공식을 끔찍이 싫어했다”고 개튼비는 폭스체이스의 동료들 반응을 돌이켰다. 한 종양학자는 그에게 “수학적 모델링은 게을러 빠져 실험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나 필요한 것”이며 “암은 너무도 복잡해 모델링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사실 그 복잡성은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도 통합 수학 종양학부에서 개튼비와 그의 직원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의 직원 중에는 의학을 정식으로 공부한 적이 없는 수학자 5명이 있다.
샌디 앤더슨도 그중 한 명이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젊은이로 마치 록밴드 공연에 가는 듯이 요란한 옷차림을 즐긴다. 그의 책상 위에는 위스키 한 병이 놓여 있다. “물론 암은 아주 복잡하다”고 앤더슨이 내게 말했다. 스코틀랜드 영어 말투가 강했다. “하지만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하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복잡성은 우리가 씨름해서 밝혀내야 할 도전이다. 복잡하다고 해서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규칙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모두가 자신의 암에 대한 허리케인 모델을 갖도록 하는 게 우리의 목표다.”
암의 허리케인 모델이라니? 지나친 비유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옳은 이야기다. 앤더슨은 유방암 성장의 컴퓨터 모델을 내게 보여줬다. 암세포가 무시무시한 녹색 구름처럼 화면 전체로 퍼져나갔다. 서로 다른 치료법이 적용됐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모델도 있었다. 그 모델에 따르면 때로는 암의 성장이 느려지고 때로는 암세포가 급속히 증가했다.
직감적으로 암에 접근하는 합리적인 방법인 듯했다. 다양한 치료에 암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코 흔히 사용되는 방법은 아니다. 미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유방암 치료제는 약 12가지다. 진단된 암의 형태와 발견된 당시 암의 발전단계에 따라 도움이 될 수 있는 약의 혼합방식은 수없이 많다.
최선의 혼합방식이 존재하지만 일화적일 뿐 입증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의사들은 자신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처방을 내린다. ‘암과의 전쟁’에서는 각각 고유한 무기를 가진 무리들이 누가 더 잘 싸우는지 경쟁한다. 그런 혼란 때문에 암의 혼돈 상태는 더 심해진다. 앤더슨은 암과 싸우는 의사들에게 전투지역 상황도를 제공하려고 한다.

잘못됐지만 유용하다내가 탬파에 머무는 동안 날씨 이야기가 자주 나왔다. 플로리다주 하늘에 머문 눅눅하고 침울한 구름 때문만은 아니었다. 1961년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에드워드 N 로렌츠는 날씨의 컴퓨터 모델을 만들려고 하다가 우연히 혼돈이론(chaos theory) 분야로 들어갔다. 그는 날씨가 전적으로 초기 조건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입력 조건을 1%의 몇 분의 1만 바꿔도 날씨 모델은 예상치 못한 방향과 수준으로 변했다. 하지만 일정한 패턴이 드러났다.
‘결정론적 혼돈(deterministic chaos)’을 말한다. 날씨, 세계경제, 어쩌면 암 같은 복잡한 적응 시스템은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기도 하고 곧잘 거스르기도 한다는 뜻이다. 때로는 봄이란 계절이 우리가 아는 나른한 봄 그대로이지만 로렌츠의 유명한 공식에 따르면 가끔씩은 나비 한마리가 허리케인을 일으킨다.

예를 들면 이것도(오른쪽) 하나의 모델이다. 이 방정식을 보고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이해하라는 이야기냐고? 걱정하지 마시라. 대다수 의사들도 모른다. 개튼비의 팀이 그들을 위해 대신 수학을 풀어준다. 그들은 바로 이 암 모델이 특이성과 보편성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찾아준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왜 암과의 전쟁에서 지고 있나암을 해결하는 다른 방법은 이상 유전자를 찾아 제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헛된 노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물 새는 댐을 솜뭉치로 막으려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다. 개튼비에 따르면 종양 무게가 10g이라고 해도 세계 인구수보다 더 많은 세포가 들어 있다. 그 세포가 똑 같은 종류도 아니다. 종양이 자라면서 서로 다른 변이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사공격에서 보병과 포병이 서로 다른 시각에 동원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 환자의 단일 암에서도 세포들이 서로 다르다. 같은 암이라고 해도 환자마다 세포가 다르다.
텍사스주 휴스턴 MD 앤더슨 암센터의 생물통계부 책임자 도널드 A 베리는 “암은 지능을 갖춘 적군과 같다”고 말했다. “암세포가 취할 수 있는 경로가 수없이 많다. 생물학이 벽에 부닥칠 때는 수학이 정답을 제공할 수 있다.”
그 벽 중 하나가 정보량이다. 인체를 유린할 수 있는 약 200종의 암에서 가능한 모든 유전자 변이를 알아내려면 필요한 정보가 엄청나다는 뜻이다. 연구자들은 암유전체지도(TCGA)를 만드는 데 3억7500만 달러를 썼다. 1만 개 암 샘플에서 유관 유전자를 찾아 만든 지도다. 1만 개 샘플을 전부 조사하지 않으면 암유전자 일람표는 거의 쓸모가 없다.
그러나 정보는 그 나름대로의 오해를 낳을 수 있다. 개튼비는 일부 동료들의 편협한 시각에 실망한다. 그의 사무실 서가엔 일반적인 의학 서적이 없다. 대신 아인슈타인, 헤르츠, 플랑크의 선구적인 업적을 담은 독일의 ‘물리학 연보(Annalen der Physik)’ 등 20세기 초에 나온 희귀한 물리학 서적들이 즐비하다. 그중엔 어린이 그림책 ‘누구나 눈다(Everybody Poops)’도 있다. 개튼비가 최근 할아버지가 됐기 때문이다.
개튼비의 서가에 꽂힌 책 중에서 가장 궁금증을 자아내는 동시에 많은 점을 시사하는 책은 ‘우리는 왜 암과의 전쟁에서 지고 있으며 어떻게 이길 수 있나(The Truth in Small Doses: Why We’re Losing the War on Cancer—and How to Win It)’다. 저자 클리프턴 리프는 젊은 시절 호지킨 림프종을 극복한 뒤 암의학이 거의 진전하지 못한 이유를 파헤쳐 보기로 결심했다. 2004년 포춘지에 실렸고 지난해 책으로 나온 그 결과는 암울한 그림을 보여준다. 의학계 문화가 신중하다 못해 완전히 무기력해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표적 항암제리프는 내가 개튼비의 연구에 관해 질문하자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개튼비는 통설에 얽매이지 않는 친구다.” 리프가 책에서 지적했듯이 이상 유전자를 찾아서 제거하는 접근법이 가장 성공한 경우가 표적치료제 글리벡(Gleevec)이다. 약 10년 전 스위스 제약사 노바르티스가 개발한 이 약은 만성 골수성 백혈병을 치료하는 데 아주 효과적으로 판명났다. 암치료의 유전자 접근법 지지자들이 기대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었다. 치명적인 백혈병 암의 성장을 촉진하는 티로신 인산화효소를 찾아내 억제하기 때문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2001년 표지기사로 글리벡을 다루면서 이렇게 물었다. “이 작은 알약은 기묘한 정확성으로 암세포를 표적 삼아 공격한다. 이게 우리가 고대하던 획기적인 치료법일까?” 글리벡으로 치료되는 백혈병의 종류는 대다수 고형종양 암과 달리 단일 ‘드라이버(driver)’ 변이에 의해 활성화된다. 글리벡이 그 변이를 무력화하면 암은 대부분 극복된다.
그러나 백혈병의 다른 종류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그 다음으로 성공한 표적치료제가 HER2 양성 유전자 변이를 가진 유방암 종양을 겨냥하는 허셉틴(Herceptin)이다. 그 외의 다른 표적치료제는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체내에서 이상 유전자를 추적하는 것은 참치떼를 비닐봉지로 잡으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튼비의 팀은 정반대 전술을 택했다. 유전자 한두 개가 아니라 담대하게 암의 전부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다. 개튼비는 얼마 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암 학술대회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거기선 모든 참석자가 동아리 회원처럼 성없이 이름만으로, 또 자신이 연구하는 분자 이름으로 소개됐다. 개튼비는 거대한 질병인 암에 거시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그런 근시안적인 접근법을 혐오한다.
보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는 외계인개튼비는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자신의 모든 방정식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궁극적으로 그는 회의적인 의사들에게 자신의 추상적인 개념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확신시켜야 한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허리케인 상륙을 정확히 예보하는 동시에 그 이동경로에 놓인 도시들도 구해야 한다.
2000년 개튼비는 애리조나대로 자리를 옮겼고, 2005년 그 대학 의과대학원의 방사선과장이 됐다. 그는 바로 그 투손의 사막 한가운데서 지적 회심(intellectual conversion)을 경험했다. 그 이전 20년 동안 그는 폭스체이스에서 암의 수학적 모델을 만들려고 애썼지만 이제는 암의 발생에서 진화(evolution)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가 찾으려던 암의 기본 원칙이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라는 다윈의 개념에 놓여 있다고 판단했다.
개튼비의 통찰력은 기발하게도 반직관적이었다. 암은 진짜 진화에 뛰어나다는 사실을 말한다. 너무도 진화를 잘해 암이 혈관과 영양소를 빼앗아가도 우리 몸은 그 약탈자에게 영양을 공급해준다. 암은 면역 체계도 속이며 정상 조직 깊숙이 자리잡기때문에 쉽게 제거되지 않는다. 더구나 자신이 뿌리를 내린 바로 그 몸을 죽게 만든다. 어떻게 보면 자살인 셈이다. 작가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곧 자신을 죽일 식도암을 두고 “보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는 외계인”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바로 그 ‘외계인’이 사실은 우리 몸의 토박이다.
수학은 암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지도를 제공할 수 있다. 개튼비는 드디어 그 움직임을 파악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이유를 다윈만이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암의 진화를 도왔던 것이다. 그러면서 수많은 암을 거대한 허리케인으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점은 우리가 인명을 구한다는 미명 아래 암이라는 적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개튼비는 무엇보다 병해충 관리를 연구하면서 그런 사실을 깨달았다. 1970년대 초 농산업은 합성살충제의 한계를 깨달았다. 환경운동의 어머니로 평가받는 생태학자 레이철 카슨이 1962년 펴낸 책 ‘침묵의 봄(Silent Spring)’에서 살충제의 폐해를 섬뜩하게 경고했다. 살충제는 인간에게 해로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작물을 보호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살충제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물론 해충을 많이 없앨 수 있다. 그러나 살아남는 해충들은 그 독성 물질에 내성을 갖게 된다. 그래서 살충제가 소용 없어지면서 해충은 마음대로 번식한다. 독성 물질로 인해 죽지않으면 더 강해지는 것이다. 해충을 없애려는 노력이 그들의 진화를 강요했다.

죽지 않으면 더 강해진다닉슨 대통령은 국가암퇴치법(National Cancer Act)에 서명한 지 약 한 달 뒤인 1971년 12월 23일 의회에서 환경적 도전에 관해 연설했다.
거기서 제안된 것이 ‘통합 병충해 관리(Integrated Pest Management)’였다. “선별적인 화학 살충제를 신중하게 사용하면서 천적 같은 비화학적인 물질과 방법을 함께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통합 병충해 관리는 모든 해충을 없애기보다 그 개체수를 억제하려 했다. 박멸보다 신중한 억제에 중점을 둔 것이다. 해충은 늘 우리 곁에 있기 때문에 살충제 사용을 줄이면서 그 해충이 널리 퍼지는 것을 막는게 목표였다.
‘암과의 전쟁’ 선포로 미국 대중과 의학계 대부분은 암이 완전히 퇴치돼야 하며 답보 상태는 용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 결과 요즘 환자는 끝없이 화학요법을 받으며 나쁜 세포와 함께 좋은 세포까지 죽인다. 개튼비는 통합 병충해 관리가 그런 이분법 사고방식의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암 전문가들이 모르는 것을 해충전문가들이 알아낸 것이었다. 적국의 도시전체를 파괴하면 거기서 살아남은 자들은 살기등등하고 잘 단련된 게릴라가 된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나 적군을 전략적으로 조금씩 제거하면 나머지는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다시 말해 쉽게 죽일 수 있는 세포들을 없애고 단련된 발암 전사들만 남겨두는 치료는 오히려 암의 성장을 부추길 수 있다.
개튼비는 “진화가 이 게임의 최후 승자”라고 말했다. 악성 세포는 궁극적으로 아무리 좋은 약도 뛰어넘어 진화하게 된다. 기적의 약으로 불리는 글리벡을 처방 받는 환자에게서도 나중에 만성 골수성 백혈병이 재발할 수 있다. 문제는 암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수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내성을 가진 세포의 확산을 덜 자극하는 치료로 이어질 수 있는지 여부다.
개튼비는 2008년 모핏 암센터로 자리를 옮겨 방사선학과를 개혁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도 1주에 하루는 환자들을 보지만 그의 지적 에너지는 통합 수학 종약학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조직에는 정식 직원 6명과 박사후 과정생과 대학원생 열 두어 명이 있다.
그들도 잘 안다. 주변의 많은 사람이 자신들을 돈키호테처럼 비현실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부류라고 생각한다는 사실, 신약을 개발해야 돈이 된다는 사실 말이다. 그들이 너무도 많은 사람이 암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그래도 그들은 유쾌하게 흑판에 방정식을 갈겨 쓰며 암의 수학적 모델을 만드는 일에 몰두한다.
람보의 광란그렇다면 끊임없이 진화하며 우리의 의학적 무기에 내성을 발달시키는 암을 어떻게 격파할 것인가?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드는 게 그 비결일지 모른다. 2009년 개튼비는 학술지 캔서리서치에 ‘적응요법(Adaptive Therapy)’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본질적으로 암은 신속히 확산되는 ‘민감 세포’와 성장이 더딘 ‘내성 세포’로 구성된다는 가설이 그 바탕이다.
견딜 수 있는 정도로 항암제를 최대한 투여하는 기본 화학요법은 민감 세포들을 궤멸시키고 영향을 잘 받지 않는 내성 세포만 남겨두게 된다. 그러면 그동안 휴면하던 그 세포들이 참호에서 쏟아져 나와 성장할 수 있는 공간과 영양을 찾아 나선다. 그 세포들은 민감 세포의 장벽 없이 자유롭게 증식하게 된다. 한마디로 기존의 암 치료는 ‘좋은‘ 암세포를 죽이고 ‘나쁜’ 암세포만 남겨놓는다.
개튼비는 수학적 모델과 생체 실험 둘 다를 동원해 ‘경범죄’를 저지르는 세포들을 일부 남겨두는 적응요법이 가장 위험한 세포들의 성장을 더디게 만든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의 2009년 논문을 공동 집필한 아리오스토 S 실바는 브라질 출신의 수학자다. 그는 영화 ‘람보’를 통해 암을 설명한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은 베트남에서 겪은 고통때문에 사악한 킬러가 됐다. 실바는 지금까지 화학요법이 암세포를 람보로 만들어 놓았다고 말했다.
최근의 새로운 접근법은 ‘가짜 약(ersatzdroges)’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 약은 내성 세포를 표적으로 하지만 그 세포들을 죽이지는 않는다. 개튼비와 동료들은 ‘노력하지만 얻는 게 없다(Sweat but No Gain)’라고 제목 붙인 논문 초안에서 여러가지 항암제에 내성을 가진 세포가 “가짜 약을 세포독성 물질(실제 항암제)인 줄 알고 세포막 펌프를 가동해 그 약을 계속 몰아내는” 과정을 설명했다. 가짜 약이지만 암세포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맹렬하게 자신을 방어한다.
“그 결과 확산과 침투에 필요한 자원을 고갈시켜 허약해진다.” 관련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개튼비의 논문은 내성 세포를 죽이지 않고 지치게 만들면 종양 성장이 늦춰진다는 점을 시사한다. 암세포들이 내성을 발달시키며 진화하지 않고 살아남기위해 가진 에너지를 소진하기 때문이다.
언터처블일부 학자들은 개튼비의 접근법에 회의를 품는다. MIT의 암 연구자로 발암 유전자를 처음 발견한 로버트 웨인버그는 수학적 모델을 사용하는 종양학이 유익한 접근법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는 내게 보낸 이메일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향후 행동의 직관적이고 단순한 평가를 바탕으로 하는 예측을 뛰어넘을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효과적이지 않다.” 다른 전문가들은 개튼비의 진화론적 접근법이 기발한 비유이긴 하지만 암치료에 유익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베스 이스라엘 디코네스 병원과 하버드 의과대학원의 비뇨기암 전문의 마크 B 가닉은 개튼비의 아이디어가 “수십 년 전부터 거론됐던” ‘메트로놈 요법(metronomic therapy)’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메트로놈 요법이란 낮은 용량의 항암제를 1주일에 1회씩 정기적, 지속적으로 투여해 신생혈관 생성을 억제시키고 종양만 선택적으로 괴사시키는 저용량 항암치료법이다. 개튼비는 자신의 적응요법이 메트로놈 요법과 비슷하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그러나 적어도 개튼비는 암과의 전쟁에서 현재의 진전 속도에 낙담한 의사들에게 수천 년 동안 인류의 수수께끼였던 암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탬파에서 개튼비, 앤더슨, 실바와 저녁을 함께 했다. 앤더슨은 첫 잔을 비우면서 요즘 종양학에서 일어나는 일에 불만을 표했다. “아무 것도 건지지 못하면서 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모두가 웃었다. 개튼비는 난생 처음 멋진 차를 뽑았는데 손자 때문에 유아용 좌석을 달아 멋이 없어졌다고 불평했다.
모두가 다시 웃었다. 영화 ‘언터처블’에서 금주령 위반자를 단속하는 특수수사본부 대장 엘리엇 네스(케빈 코스트너)가 많은 양의 밀주를 적발해 폐기처분한 뒤 부하들을 데리고 나가 축하파티를 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취기가 오르자 그들은 의기양양하면서도 약간 불안한 기색도 비쳤다. 네스가 쫓는 몸통 알 카포네가 아직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튼비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최대 표적인 암을 아직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리 같은 독단적인 믿음이라면 난 질색”이라고 개튼비가 말했다. 펜실베이니아주의 가톨릭 학교에서 그랬다. 지금 암환자가 기다리고 있는 플로리다주의 병원에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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