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손 간소화 1년, 과제는] ①
5일에서 2.8일로…빨라진 보험금 청구 속도
이용률·참여율 불균형, UX 개선이 관건

[이코노미스트 송현주 기자] 병원 진료 후 영수증을 챙기고 팩스를 보내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스마트폰 앱 몇 번의 클릭으로 보험금이 입금되는 ‘디지털 청구 시대’가 열렸다. ‘종이 영수증 없는 보험금 청구’를 목표로 도입된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이하 실손 간소화) 제도가 시행 1년을 맞으며, 보험산업 전반의 업무 흐름과 소비자 행태를 동시에 바꿔놓고 있다.
청구 절차 간소화, 지급 속도 단축 등 가시적 성과를 거뒀지만, 의료기관 참여율과 민간 서비스 간 역할 조정 등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병·의원이 진료 데이터를 보험사로 직접 전송한 실손보험 청구 건수는 2500만건을 넘어섰다. 이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전송망을 통해 보험사로 직접 청구 데이터를 보낸 전체 규모로, 종이서류 중심 구조가 본격적으로 전자 전송 방식으로 전환됐음을 보여준다.
정부가 운영하는 소비자 전용 플랫폼 ‘실손24’의 이용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25년 5월 15일 기준 실손24의 누적 청구 건수는 28만2809건, 누적 가입자 수는 133만 명에 달한다. 앱 누적 가입자는 최근 172만명으로, 전체 실손보험 가입자(약 4000만명)의 5% 수준이다. 아직 절대적인 비중은 낮지만 시행 초기 대비 확산 속도는 빠르다는 평가다.

보험금 지급까지 걸리는 평균 기간도 종전 5일에서 2.8일로 단축됐다. 예전에는 진료비 영수증을 챙기고 팩스를 전송한 뒤 일주일 가까이 기다려야 했지만, 이제는 진료 후 이틀이면 보험금이 입금되는 수준으로 빨라졌다. 보험개발원 관계자는 “단순 청구건의 경우 병원 전송 후 당일 심사·지급이 이뤄지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손 간소화 제도 시행 1년간의 변화는 수치로도 뚜렷하다. 도입 초기 월평균 청구 건수는 약 150만건 수준이었지만, 올해 들어 200만건을 넘어섰다.
청구 편의성이 개선되면서 ‘소액 진료비 청구 문화’도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과거에는 1만~2만원대의 병원비를 ‘귀찮아서’ 청구하지 않던 소비자들이 이제는 “앱만 열면 끝난다”는 인식 아래 적극적으로 보험금을 청구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로 인해 매년 수천억 원 규모로 추정되던 ‘잠자는 보험금’이 시장으로 회수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실손24 앱을 통한 청구 절차는 간단하다. 이용자는 진료받은 병원과 보험사를 선택한 뒤 본인인증만 하면 병원 전산망에서 생성된 진료비 정보가 자동으로 보험사에 전송된다.
별도의 영수증 업로드도 필요 없다. 다만 청구 금액에 제한은 없지만, 고액 진료비나 장기 입원 등 규모가 큰 보험금 청구 시 보험사가 진단서나 소견서 등 보완 서류를 요구할 수 있다. 이는 부정 청구를 방지하고 손해사정 절차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일부 건은 여전히 수기 심사가 병행된다.
금융위 조사 결과, 이용자 10명 중 9명이 “기존보다 청구 절차가 훨씬 간편해졌다”고 답했다. 제도 시행 1년 만에 미청구 보험금 감소와 지급 효율성 제고 등 디지털 전환의 실질적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다.
“청구는 편해졌지만… 현장 격차는 여전”
제도 정착 속도는 의료기관 참여율에 달려 있다. 전국 병·의원과 약국은 약 9만 곳에 이르지만, 실손24 시스템을 통해 직접 전송이 가능한 기관은 아직 일부에 그친다. 이 때문에 약 2만여곳은 여전히 ‘지앤넷’, ‘청구의신’ 등 민간 청구대행업체를 통해 보험 청구를 지원하고 있다.
이들 서비스는 소비자가 영수증을 촬영해 전송해야 하는 방식으로, 개인정보 유출과 영수증 위·변조 위험이 존재한다. 의료기관이 직접 청구를 대행하지 않기 때문에 환자 입장에서는 “손으로 하는 디지털화” 수준에 머물렀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편 정부가 실손24 중심의 국가 통합망을 확장하면서 ‘정부 독점 구조’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민간 핀테크 기업들은 “공공망이 독점적 지위를 갖게 되면 의료기관의 선택권이 줄고, 서비스 혁신 여지가 사라진다”고 주장한다. 한 간소화 서비스 대표는 “EMR(전자의무기록) 표준 API를 개방해 다양한 연동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소비자 이용률’과 ‘의료기관 참여율’의 균형이 제도 정착의 관건이라고 말한다. 현재 실손보험 가입자는 약 4000만명이지만 실손24 앱 가입자는 200만명이 되지않는다. 일부 중소 병·의원은 전산 연동 시스템 구축 비용 부담으로 참여를 미루고 있고, 약국의 경우 EMR 호환성 문제로 전송 기능이 제한된 곳도 많다.
소비자들 또한 “앱 설치와 본인인증이 번거롭다”, “병원이 직접 해주지 않으면 불안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금융당국은 연말까지 의료기관 참여 확대를 위한 인센티브 제도와 함께,
이용자 편의성을 높이는 UX(사용자 경험) 개선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앱 내 진료비 조회, 청구 이력 관리, 보험금 지급 현황 확인 기능을 단계적으로 고도화하고, 병·의원·약국 대상 연계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참여 문턱을 낮춘다는 구상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금 지급 속도는 빨라졌지만 의원급 의료기관과 약국의 참여율이 낮아 체감도는 아직 제한적”이라며 “의료계 참여를 끌어낼 인센티브와 보안 강화, 시스템 표준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간소화 제도는 보험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전환점”이라며 “제도적 안정성과 기술적 신뢰성을 확보해야 진정한 의미의 보험 혁신이 완성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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