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손 간소화 1년, 과제는]③
의료계 관계자들 "'실손24'로만 서비스, 이해 안 돼" 한목소리
"환자데이터 악용 가능성 충분, 국민들에 충분한 설명 필요"

[이코노미스트 김정훈 기자]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실손 간소화)는 보험업계와 의료계 사이의 케케묵은 난제였다. 지난 수십 년간 보험업계는 실손 간소화 도입을 주장했고 국회에서도 관련법 발의가 꾸준히 이어졌지만 의료계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2023년 10월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서 실손 간소화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지난해 10월 본격적인 시행에 이르렀다.
하지만 여전히 의료계는 실손 간소화에 대해 불만이 많다. 보험사에 환자데이터가 쌓이면 결국 보험금 삭감, 보험가입 거절 등 길게보면 환자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제도라는 주장이다. 이에 의료계는 보험소비자들이 '실손24'(보험개발원이 만든 실손 간소화 청구 공식 앱)를 통한 보험금 청구 시 보험계약에 불리함이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을 안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손24로만 간소화? "이해하기 어렵다"
실손 간소화는 이미 지앤넷이나 레몬헬스케어(청구의 신) 등 민간업체(의료기관 약 2만2000여개 제휴)들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의료계는 이런 상황에서 왜 정부가 실손24 서비스 참여만 강요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실제로 최근 일부 보험사는 금융당국 눈치에 기존 민간업체와의 제휴를 끊고 실손24 서비스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식으로 기존 민간업체들의 서비스를 죽이면서까지 실손24에 올인해야 하냐는 얘기다.
의료계 관계자 A씨는 "이미 몇년 전부터 대형병원에 가면 키오스크에서 실손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게 돼 있고 실손 간소화가 가능한 민간업체들에도 의료기관들이 약 2만2000개 정도가 참여 중"이라며 "이런 현실을 뒤엎고 무조건 실손24로만 참여하라고 하니 의료계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의료계는 의료기관들의 실손 간소화 청구 전산화 시스템 구축이 더뎌지는 이유에 대해 EMR(Electronic Medical Record, 전자의무기록처리)업체들과의 인센티브 문제가 있다고 강조한다.
현재 대형병원들은 자체 구축한 전산망을 운영하고 있고 중소병원들은 돈을 내고 EMR업체들의 전산망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국내에 의료기관이 10만개 정도 되는데 자체 전산망을 구축한 대형의료기관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의료기관들은 이들 EMR업체와 계약된 상태다. 하지만 이들 의료기관들이 실손24에 새로 참여하려면 기존 EMR업체들과 계약을 중단해야 한다.
또한 의료기관들이 새로 실손24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해도 EMR업체들이 과도한 인센티브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의료기관들도 실손24 시스템 구축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의료계 관계자 B씨는 "실손24 전산망 서비스를 병원에 설치했을 때 EMR업체가 받는 인센티브가 매우 적다고 들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EMR업체들이 굳이 실손24 서비스 구축에 적극적일 이유가 없는 셈"이라며 "정부는 의료계에 실손24 참여 병원 확산에 신경을 써달라는 입장이지만 기존 EMR업체들의 비즈니스적인 문제를 우리가 어찌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언론에서는 '의료기관이 귀찮아서 실손 간소화 전산망 구축에 소극적이다'라고 하는데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길게보면 실손 간소화는 소비자에 독" 주장 왜?
의료계가 실손 간소화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보험사가 환자데이터를 악용할 여지가 있다는 부분이다. 금융위원회는 보험개발원이 보험청구에 필요한 정보만 보험사에 제공한다고 밝혔지만 의료계는 분명히 악용할 여지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의료계 관계자 C씨는 "보험사들은 그동안 실손보험금이 청구되면 진료비와 영수증 등은 전자적으로 관리를 해왔지만 세부 진료내역은 너무 양이 방대해 사실상 전산화가 어려워 관리를 하지 못해왔다"며 "하지만 10월 25일부터 보험업법이 개정되면 내 진료 정보가 신용정보원에서 운용 중인 ICIS(보험신용정보통합조회시스템)에 저장된다. 보험사는 ICIS에 저장된 환자 진료 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러면 고지혈증 약을 자주 처방받은 환자는 나중에 관련 보험상품 가입이 거절될 가능성이 높다"며 "당장 1만~2만원 소액 보험금을 편하게 받아도 길게보면 보험금이 삭감되거나 보험료가 오르고 보험가입이 안되는 불합리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C씨는 "이 부분에 대해서 보험사나 금융위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며 "오로지 의료계나 환자 단체만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또한 A씨는 "실손24를 사용하면 결국 모든 환자데이터가 보험개발원을 통해 보험사로 전송된다"며 "보험개발원은 보험사들이 자본을 내 만든 곳이다보니 의료계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전송대행업체에 대한 여러 선택권을 주면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의료계는 지금이라도 이런 부분들을 보험사와 금융위가 국민들에게 충분히 알려야 된다고 강조한다.
C씨는 "실손24 서비스를 통해 보험금 청구 시 '보험금 청구 때 활용된 환자 데이터가 향후 환자가 받을 보험금의 지급 거절이나 가입 거절, 계약 갱신 거절 등에 활용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공지하도록 건의한 적이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가입자들도 소액일 경우 무조건 실손보험금을 청구하기보다는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이를 한 번 더 고려해보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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