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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ISCOPE PUBLIC POLICY - 형평성 잃은 과태료 정책

PERISCOPE PUBLIC POLICY - 형평성 잃은 과태료 정책

서울시 자치구 별로 제각각… 지방보다 최대 5배나 높아
서울 시내 금연구역에서 흡연 시민을 단속하는 모습(왼쪽). 길거리 흡연이 금지되면서 흡연 공간이 곳곳에 생겨났다.



서울 강남대로는 강남을 상징하는 주요 도로다. 강남대로를 중심으로 강남 지역은 강남구와 서초구로 양분된다. 도로 양쪽으로는 많은 상가들이 밀집해 있어 항상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이 도로를 사이에 둔 양 길가 사이에는 차이점이 하나 있다. 한쪽 길가에서는 담배를 피우다 적발되면 과태료 10만 원을 내야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5만원만 내면 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흡연하다 걸리면 5만 원, 맞은편 11번 출구 앞에서 흡연하면 10만 원이다.

왜 그럴까? 서울시의 각 자치구가 흡연 과태료를 개별적으로 부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내흡연의 경우 보건복지부에 의해 과태료가 10만 원으로 통일됐지만 실외 흡연 과태료는 10만 원 이내에서 자치구 조례로 정하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강남대로 서쪽은 서초구, 동쪽은 강남구인데 서초구의 흡연 과태료는 5만 원, 강남구는 10만 원으로 책정됐다.

서울시가 두 지역 과태료 조정을 위해 중재에 나선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못했다. 서초구와 강남구는 들쭉날쭉한 서울시 흡연 과태료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이 두 지역뿐 아니라 서울시 25개 자치구에서 부과되는 흡연 과태료는 제각각이다. 서초구, 관악구, 구로구 등 8곳은 5만 원이고 나머지 구는 10만 원이다.

이 문제에 대해 서울시에서는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서울시 관계자는 “조례를 제정하고 관리하는 것은 자치구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에 시에서 통일시키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흡연 과태료뿐만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 수수료도 자치구에 따라 20원에서 80원까지 최대 4배나 차이가 나는 바람에 시민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지방에 비해 과도하게 책정된 흡연 과태료도 문제다. 지방 도시에서 부과하는 흡연 과태료는 대구, 울산, 여수시가 2만 원이고 대전, 포항시 등은 3만 원이다. 서울 시민들은 지방 시민들보다 흡연 과태료를 적게는 2배, 많게는 5배가량 더 내는 셈이다.

서울 시민들은 가뜩이나 지방에 비해 물가와 집세가 월등히 높아 사는 것도 버거운 상황에서, 과태료마저도 지방시들과 최대 5배까지 차이가 나는 현 정책에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서울의 물가는 지방은 물론 세계 유수의 도시들과 비교해서도 높은 편이다. 영국 경제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의 ‘세계 물가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의 물가는 전 세계 17위로 뉴욕(26위)보다 높다. 서울 강남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이승규 씨는 “행위는 같은데 구역이 달라서 과태료가 다른 것은 문제라고 본다”며 “가뜩이나 팍팍한 서울 생활에 지방보다 과태료까지 더 내야 한다니 형펑성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청와대 규제개혁회의’나 ‘규제개혁장관회의’ 등 청와대와 정부가 불필요한 규제에 대한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러한 정부의 정책에 역주행하고 있는 지자체의 제각각인 규정에 대해 손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에는 과태료 급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징수된 과태료 총액은 약 2조 3천억 원으로 2010년의 5천 378억 원에 비해 4배 이상 급증하였으며, 일부 시민단체나 정치권에서 세수 메우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민주당 윤호중 의원은 2013년 국정감사에서 “세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각종 단속을 강화해 과태료 징수를 늘리는 것은 ‘신(新)가렴주구’나 다름 없다”며 “정부는 과태료 수납률을 점검하고 관련 민원을 참작해 각 부처별ㆍ유형별 과태료에 가혹한 처사는 없는지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3년 말에는 과태료를 걷는 부처와 공공기관 3곳 중 1곳 이상에 대해 내년 과태료 수입을 자체 목표치보다 더 올리라고 요구한 것이 드러나 논란이 일기도 했다. 기획재정부가 무려 10곳에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까지 목표수입 확대를 요구했다. 이와 함께 기재부는 법무부의 몰수금 및 추징금과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도 대폭 확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경태 민주당 최고위원은 2월 21일 “사회적 반발이 큰데도 (서민을 대상으로) 과태료 등 적발성 세수증가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 최고위원은 “박근혜정부 출범 후 과태료 등 각종 단속성 세입이 급증해 올해 (예산에 반영된) 벌금 관련 세입만 20조8000억 원”이라며 “무리한 단속이 있던 2013년보다 3조여 원 증액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벌금이나 과태료 등 서민의 지갑을 강탈하는 정책이 되지 않아야 한다. 부자 감세 철회 등을 통한 세수 구조 개선이 시급하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과태료는 앞으로는 이렇게 하지 말라는 계도의 의미를 지니는 게 정상적 사회인데 지금은 더 잡으라고 압박하는 것”이라면서 “결국은 복지재원 마련이라는 목표가 있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광운대 법과대학 정영철 교수는 “조례와 규칙제정권은 지방자치단체의 고유한 권한이고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가 없는 한 당연히 존중되어야 하지만, 일관되지 않은 과태료 부과는 시민들에게 혼란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며 “지역마다 제각각이고 때로는 과다해 보이는 과태료에 대해 형평성 등을 고려하여 통일화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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