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 조두섭의 일본 기업 재발견 - 日 기업의 카이젠(Kaizen, 개선), 韓 기업의 이노베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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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일본적 경영(Japanese management system)’이나 ‘일본적 생산시스템(Japanese Production System)’이 세계적으로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일본 제품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기 시작한 1970년대 말부터 버블 경제의 붕괴로 긴 불황의 터널에 들어가기 시작한 1990년대 초까지 일본 기업의 경쟁력의 원천을 개념화한 단어이다. 특히 카이젠은 일본어 가이젠(改善)이 유명해지면서 옥스포드 영어 사전에 일반 명사(kaizen)로 쓰인다.
일본 기업의 시대가 도래한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준 작품이 하버드대 에즈라 보겔 교수가 지은 『Japan as Number One』(1979)이 아닌가 싶다. 보겔 교수는 이 저서에서 기업 경영방식을 포함한 일본 사회의 전후 성취를 높이 평가하면서 일본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서도 일본 배우기가 시작된 것이다. 일본 기업의 활약상과 그 비밀을 캐기 위한 연구가 해외에서 시작되면서 일본 내에서도 자국 기업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됐다.
이들이 다룬 주제는 구체적인 기업 경영방식이나 현장관리에 한정되지 않았다. 일본 사회의 기본 틀이나 문화구조에 관한 연구로 확대됐다. 이들 연구에서 흥미로운 점은 거의 모든 시각이 미국 기업이나 미국 사회와 비교차원에서 논의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결론은 일본과 미국은 근본적으로 다르며 일본식이 미국식보다는 경쟁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독주에 대한 경쟁심리도 작용했다고 보여지지만 너무 일본의 독자성을 강조하다 보니 일본 이질론으로 변질돼 ‘일본 때리기’의 사상적 기반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일본 기업 도약의 원동력은 카이젠요즘 삼성·현대차의 활약에 힘입어 한국식 경영에 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면서 체계적인 이해를 위한 여러 종류의 개념화 시도가 진행된다. 아직도 오너 경영자의 신비적 경영수법이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강조하는 주장이 많지만 한국 사회의 특징 속에서 경영효율을 논의하는 움직임도 꽤 많다. 필자가 보기에는 아직 한국식 경영방식으로 개념화하는 데는 시기상조라는 느낌이 든다.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결정타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할지도 모른다.
일본 기업의 경쟁력이 저하됐기 때문에 일본적 경영은 의미가 없다는 의견도 많다. 특히 전자산업의 경우에는 일본식은 실패한 모델의 대명사다. 용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본내 분위기도 대체로 부정적이다. 일본식 경영 때문에 일본이 망했다는 극단론도 들린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일본식을 전부 버려선 곤란하다. 옥석을 구분해 아직도 유효한 개념은 적극적으로 재활용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일본 기업의 흥망사는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먼저 서양의 기술과 방식을 받아들여 그들의 토양에 맞춰 일본화한 일본인의 저력이나 창의성은 인정해야 한다. 경영전략의 태두인 피터 드러커는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의 성공은 사회전체의 혁신에 힘입었다고 본다. 일본의 성공 체험이 새로운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것이다. 고령화 사회가 도래하면 일본식 종신고용이나 임금체계는 역기능이 커질 텐데 이를 바꾸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간파했다.
주의 깊은 독자라면 눈치챘겠지만 필자는 아직까지 일본적 경영을 정의하지 않았다. 필자가 1980년대 말 일본에 유학을 갔을때 일본적 경영의 본질로 세 가지를 배웠다. 종신고용, 연공임금(근속 연수에 따른 임금), 기업 내 노동조합이 그것이다. 당연히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일본인이 외계인이 아니라면 종신고용에 따라 해고 위험이 없으면 동기부여가 줄어들 것이다. 근속 연수에 따라서 급료가 정해진다면 젊은층의 불만이 커져 효율에 문제가 발생하는 게 상식이다.
협조적인 노사관계는 기업경영에는 유리하나 자칫하면 어용노조화 하면서 장기적으로 기업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가장 큰 의문은 중국이나 스리랑카 같은 국유기업은 위 세 가지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지만 경영효율은 극단적으로 나쁘다. 세 가지 조건에 뭔가 다른 요소가 가미돼야만 일본 기업의 높은 생산성과 품질수준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연구자들이 새로운 요소를 앞다퉈 내놓으면서 ‘일본적 경영론’은 백가쟁명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TQC(전사적 품질관리), JIT(칸반 시스템), TPM(전사적 예방보전), QC서클(분임조활동), 5S운동, 하도급관리, 제안제도, 네트워크 조직 등 학자들 숫자만큼이나 복잡하고 다양한 개념이 등장하고 논리도 보다 다듬어졌다.
미국인 연구자들이 독자적으로 종합해 개념화한 것이 ‘린 생산방식(Lean Production System)’이다. 이 책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일본식 경영을 도입하려는 붐이 세계 각국에서 일어났다. 한국 기업도 일본인 컨설턴트를 통해 앞다퉈 도입했다. 고난도의 JIT 같은 방식은 도입에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필자가 생각할 때 일본적 경영의 최고의 논리는 1988년 이마이 마사아끼(今井正明) 컨설턴트가 제시한 ‘카이젠’이 아닌가 한다. 그는 『카이젠-일본 기업이 국제경쟁에서 성공한 경영 노하우』란 책을 펴냈고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됐다. 1989년 한국어로도 번역됐다. 30년 이상이 지났지만 이 책의 생명력은 여전히 살아있고 시사점도 꽤 있다. 이마이는 일본적 경영의 진수를 ‘카이젠’이란 한 단어로 요약해서 제시한다. 추상적인 개념이나 제도가 아니라 기업현장에서 본 일본 기업의 경쟁력을 논의했다.
카이젠은 작업방식 개선, 이노베이션은 기술혁신무엇보다 용어정리가 색다르다. 기업은 두 단계를 통해서 혁신을 수행한다. 제1단계가 카이젠, 제2단계가 이노베이션이라고 정의한다. 카이젠은 기존의 기계설비를 전제로 한 작업방식이나 기계설비의 개선을 의미한다. 이노베이션은 우리말로 바꾸면 기술혁신쯤 된다. 신기계·로봇·자동화 도입을 의미한다.
이마이의 관점에는 카이젠은 돈이 들지 않는 혁신, 이노베이션은 돈이 드는 혁신으로 구분한다. 그가 내린 결론은 미국 기업은 제2단계에만 열중하고 제1단계의 카이젠을 등한시해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돈 대신 머리와 땀을 중시하는 카이젠을 열심히 하면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기업의 생산현장은 끊임 없는 변화의 연속이다. 정해진 작업표준을 지키면서 생산성과 품질수준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끊임 없는 개선과 새로운 작업표준의 도입이 필요하다. 이때 머리와 땀보다는 새로운 기계설비에 대한 유혹이 커진다. 돈을 들이면 생산성이 두 배쯤 뛸 것처럼 보인다. 기계설비 업자들도 새로운 설비의 효율성을 역설하며 장단을 맞춘다.
문제는 새로운 기계를 도입하면 초기에는 생산성이 올라가는 것 같은데 시간이 경과하면서 그 효과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카이젠 활동을 동시에 수행하면 이를 방지 할 수 있다. 이 논리는 미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열광했다. 우선 돈이 들지 않고 논리가 알기 쉬웠다. 일본 기업의 경이적인 성과의 비결은 마법이 아니고 평범한 진리에 의한 것이라 쉽게 모방할 수 있다는 메시지에 환호한 것이다.
여기에는 일본 기업과의 합작을 통해서 일본적 경영을 직접 체험한 기업가들의 감상도 한 몫 했다. 예를 들어 지금은 없어졌지만 도요타와 GM의 합작 공장이었던 누미(NUMMI)에서 GM의 엔지니어들은 비명을 질렀다. 도요타의 경쟁력은 첨단설비를 포함한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에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눈 앞에 펼쳐진 공장모습은 GM의 여느 공장과 차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생산성은 미국 공장 가운데 돋보이는 일등이었다.
당시 GM 사장은 “여기는 어디를 둘러봐도 매직이 없다. 상식뿐이다”라고 놀랐다. GM의 경우 MIT를 졸업한 공학박사나 공장장급에서나 했던 카이젠을 말단 종업원까지 참여하게 한 것이 높은 생산성으로 연결됐다는 진단을 내렸다. 일본적 경영이 세계적인 시민권을 얻는 순간이었다. 품질은 종업원의 헌신에서(Quality with Commitment) 나왔고 일본 기업은 이 철학을 지금도 신봉한다. 도요타도 카이젠에 의한 원가절감 효과를 선전했다. 많을 때는 연간 2500억엔(약 2조6000억원)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
새로운 설비투자 없이 종업원의 헌신(commitment)에 의한 일상적인 카이젠 활동만으로 경이적인 비용절감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사실 필자가 조사해 본 결과 90% 이상이 카이젠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조직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일반 종업원의 참여가 없는 카이젠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눈에 보이는 플러스 성과도 크지만 생산성 저하를 가져오는 마이너스를 줄이는 효과가 컸다. 카이젠 활동은 나태하기 쉬운 인간의 본성을 긴장시키는 훌륭한 방파제 역할을 했다.
이마이의 이론을 적용해 한·일 간 비교를 해 보자. 필자는 일본은 카이젠파, 한국은 이노베이션파로 분류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해외 투자의 경우 양자의 차이가 명확하게 대비되는 게 흥미롭다. 예를 들어 중국 투자를 비교해보면 현대·기아자동차의 조립공장은 도요타나 혼다 공장과 경영철학이 다르다고 할 정도로 공장 모습이 다르다. 우선 현대·기아차는 자동화율이 대단히 높다. 국내 공장보다도 첨단 기계설비를 도입했다. 동일 규모의 일본 공장과 비교해도 2000∼3000명 종업원 숫자가 적다.
첨단설비가 많다 보니 일반 종업원보다는 엔지니어 확보와 훈련에 중점을 둔 인재육성 플랜을 갖고 있다. 일종의 엘리트주의다. 카이젠 중시의 일본 기업들이 우수한 엔지니어 채용에 곤란을 겪는 반면 현대·기아는 이 점에서 고민이 덜하다. 현대·기아차는 이직률이 높아서 일본식 인재교육이 가능하지 않은 측면도 있다.
의사결정도 IT기술을 활용하다 보니 톱 다운이 기본이라 스피드가 빠르다. 이에 반해 일본 기업은 아래서부터(Bottom up) 올라온 합의 중심이다. 현대·기아차가 최근에 설립한 해외 공장일수록 한국의 공장보다 첨단기술을 투입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하니 이런 대비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노베이션의 효율성과 카이젠 정신 융합한다면…중국과 같은 고도성장 경제에는 이노베이션파가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기술 수준이 높고 투자 규모가 크다 보니 중국 정부로부터 환대받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안정기에 들어갔을 때 이노베이션파가 유리할까. 아닐지도 모른다. 저성장기에는 일본식의 카이젠이 위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일본 기업의 문제는 카이젠 단계에서 이노베이션 단계로 제대로 도약하지 못한 데 있다. 한국은 카이젠을 건너 뛰고 이노베이션에 ‘올인’한 것이 일본을 따라잡는 원동력이 됐다.
이런 점에서 양국 기업의 숙제는 서로 상반된다. 서로 약점을 보완하는 노력이 계속되면 양국의 생산시스템이 상호 수렴하는 모습을 보이게 않을까 한다. 중국에서 만난 도요타 경영자는 현대·기아차의 이노베이션 효율성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일본식 카이젠 사상이 좀 더 가미된다면 더 큰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세계 경제의 성장속도가 둔화되면서 한국도 마찬가지 길을 걷고 있다. 이에 대한 대비로 카이젠에 대한 대대적인 논의가 올해 일어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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