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파워피플 50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 - 열도 넘어 글로벌 IT 대부로 우뚝
- 글로벌 파워피플 50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 - 열도 넘어 글로벌 IT 대부로 우뚝

한국계 일본인 기업가 손 마사요시(孫正義·55)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올해 들어 연일 화제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손 회장은 올해 들어 일본을 넘어선 글로벌 IT 기업인으로서 입지를 더욱 굳히고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IT기업으로 초고속인터넷, 전자상거래, 통신, 파이낸스, 기술 기업인 소프트뱅크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 모바일 업체인 소프트뱅크 모바일의 CEO인 그는 지난해부터 미국의 모바일 업체인 스프린트코퍼레이션의 회장을 겸하고 있다.
그런 손 회장이 올해 들어 더욱 각광 받고 있다. 우선 그는 4월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가 발표한 ‘2013년 일본 부자 순위’에서 190억 달러의 재산으로 1위에 복귀했다. 전년도 91억 달러로 일본 2위의 부자였던 그는 잇단 기업 인수로 자산을 두 배 이상으로 늘리면서 일본 최고의 부자 자리를 탈환했다. 지난해 손 회장의 소프트뱅크는 주가가 90%나 급등해 그의 재산을 늘린 견인차가 됐다.
지난해 그가 220억 달러(약22조5700억원)을 들여 버라이즌·AT&T에 이어 미국 3위의 통신사인 스프린트 넥스텔의 지분 76%를 매입한 것도 재산을 늘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아울러 핀란드 게임제작업체 수퍼셀과 미국 휴대폰 유통업체인 브라이트스타 등 알짜배기 기업의 지분을 매입한 것도 한 몫 했다.
그는 올해 안에 미국 4위의 이동통신사 티모바일도 인수할 계획이다. 통신당국의 심사를 거쳐 티모바일 인수와 스프린트와의 통합이 이뤄지면 글로벌 통신업계에서 손 회장의 입지는 더욱 굳어진다. 그야말로 일본과 아시아를 넘어서는 글로벌 기업인으로 우뚝 서게 되는 것이다.
손 회장은 지난해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인물’ 명단에서 45위를 차지했다. 재산도 영향력도 세계 최정상급임을 재확인한 셈이다. 세계적 부자들의 공통 덕목인 기부도 열심이다.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자 복구와 피해자 지원에 100억엔을 기부했다. 자신의 평생 급여를 피해자 지원을 위해 내놓기도 했다.
손 회장은 대구에 살다 일본으로 이주한 안동 손씨 집안의 재일동포 3세다. 이 집안은 다른 재일동포 집안이 그러하듯이 차별을 피하기 위해 야스모토(安本)라는 일본 성을 썼다. 하지만 손 회장은 어려서 손씨 성을 사용했으며 1990년 일본에 귀화한 뒤에도 일본 성이 아닌 이 성을 쓰고 있다. 그의 출생지인 규슈(九州)의 사가(佐賀)현 도스(鳥栖)시는 후쿠오카와 멀지 않다.
손 회장은 어린 시절 후지타 덴(藤田 田, 1926~2004) 일본 맥도널드 회장을 롤 모델로 삼았으며 영어와 컴퓨터를 배우라는 그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손 회장은 규슈의 구루메 대학 부설 고교를 다니다 2학년 때 중퇴하고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 현지에서 살레몬테 고교를 마치고 버클리대에 진학해 경제학과 컴퓨터공학을 공부했다.
잡지에서 본 마이크로칩에 매료된 그는 19세에 컴퓨터 기술이 차기 상업 혁명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때 그는 ‘인생 50년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들어갔다. ‘20대에 회사를 창업해 30대까지 1000억∼2000억 엔의 재산을 모으고 40대에 결정적인 승부수를 던져 50대에 사업을 완성한 다음 60대엔 다음 세대에게 사업을 물려준다’는 계획이다. 그는 지금까지 이 계획대로 살고 있다.
세계 통신업계 평정 눈 앞에그는 그때부터 하루에 1가지 이상 컴퓨터와 관련한 사업 아이디어를 고안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마이크로칩을 활용한 자동번역기였다. 그는 이를 샤프전자에 1억엔을 받고 팔았다. 이 돈은 그가 사업을 시작하는 밑천이 됐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컴퓨터 업체 유니슨 월드를 창업했다.
하지만 공부를 마치면 귀국하겠다는 부모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1981년 9월 종합 소프트웨어유통업체인 소프트뱅크를 창업했다. 전 세계의 소프트웨어를 필요한 기업에 공급해주는 소프트웨어 은행이나 시장의 역할을 하는 비즈니스였다. 당시에도 그는 공격적인 경영으로 유명했다.
업계의 방해로 잡지에 광고를 싣지 못하게 되자 아예 새로운 IT잡지를 창업했다. 1996년 미국 야후와 함께 야후 재팬을 설립해 일본의 IT혁명을 이끌었다. 2000년대엔 통신사업으로 진출해 일본텔레콤과 보다폰재팬을 인수했다. 혁신적인 소프트웨어 판매업체였던 소프트뱅크는 성공적인 이동통신업체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통신업계에서 소프트뱅크는 부동의 1위 NTT도코모에 계속 밀렸다. 하지만 손 회장에게 넘지 못한 벽은 없는 듯했다. 그는 애플의 아이폰을 일본에 최초로 도입해 큰 성공을 거뒀다. 이는 통신업계에서 소프트뱅크의 입지를 확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손 회장의 안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통신업계 1위에 오르는 꿈을 이루기 위해 절치부심하던 손 회장에게 5월7일은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이날 도쿄에서 열린 소프트뱅크의 2013 회계연도 결산발표에서 손 회장은 자신이 CEO인 소프트뱅크가 일본 최대 통신업체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날 발표된 전년도 매출·이익이 역대 최고치 기록을 경신하며 그간 부동의 업계 1위였던 NTT도코모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이익이 전년 대비 41.5% 늘어난 5270억엔을 기록했다. 4647억엔에 그친 NTT도코모를 제쳤다. 매출도 108% 증가한 6조6666억엔(약 67조원)으로 NTT도코모를 넘어섰다.
이날 사람들은 손 회장이 ‘도전의 아이콘’임을 새삼 재확인했다. 그는 이날 감격 어린 목소리로 “통신업계에 진출한 첫 날부터 언젠가는 반드시 NTT도코모를 누른다는 결의를 강하게 다졌다”며 “이를 이룰 수 있어 기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감상은 여기서 끝이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새로운 목표를 공개했다. “다음 목표는 도요타입니다. 우리는 결코 (일본) 2위, 3위에 만족하는 회사가 아닙니다.”
통신업계 1위에 오른 데 만족하지 않고 일본 최대 기업이자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인 도요타자동차를 따라잡겠다는 꿈을 공개한 것이다. 소프트뱅크를 일본 최대 기업의 자리에 올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힌 셈이다. 그야말로 공격적·공세적 경영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목표를 달성하는 도전의 아이콘이 아닐 수 없다.

NTT도코모 제치고 도요타도 넘는다이렇듯 손 회장에게 2014년은 그야말로 기염을 토하는 한 해다. 일본 최대 부자 재등극, 통신업계 1위 달성, 도요타를 넘어서는 일본 1위 기업에 오른다는 목표 공개로만으로도 벅찰 정도다. 하지만 대운이라도 터진 것일까? 손 회장에게는 그보다 더 큰 뉴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날인 5월 8일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가 주식 상장에 성공할 경우 이 회사에 거액을 투자해 34.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손 회장이 578억 달러를 확보하게 된다고 보도했다.
그 배경을 잠시 살펴보자. 1999년 5월 중국 벤처기업인 마윈(馬雲·50)은 알리바바를 창업했다. 두 차례 창업에 실패했던 마윈이 세 번째로 창업한 기업이 알리바바다. 알리바바는 패자부활전에 나선 선수와도 같았다. 마윈은 고향인 저장성 항저우의 20평 남짓한 작은 아파트에 18명을 모아 창업에 나섰다. 끼니만 근근이 때우며 사이트를 개설했다.
하지만 마윈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e-커머스 모델을 손쉽게 베끼지 않았다. 대신 그는 중국의 수요와 실정에 맞춰 새롭게 창안한 맞춤형 e-커머스를 내놨다. 통상적인 e-커머스가 생산자의 상품을 소비자에게 연결하는 B2C(기업-소비자 간 거래) 방식인데 비해 알리바바는 중국의 중소업자를 위한 B2B(기업 간 거래)에 주력했다.
그 배경의 하나로 짐작되는 게 그의 고향인 저장성 내륙에 자리 잡은 이우라는 유통 도시다. ‘소상품(잡화) 왕국’으로 불리는 이 도시의 도심에는 여의도 면적(840만㎡)의 두 배쯤 되는 1500만㎡ 면적의 초대형 도매시장이 있다. 도매 점포가 7만개에 육박한다. 1982년 개발이 시작된 이우 시장은 중국에서는 물론 전세계에서 가장 큰 도매시장이다.
41만종의 상품을 다룬다. 패션액세서리, 양말, 반창고, 문구, 화장품, 공예품, 속옷, 지퍼의 경우 중국 전체 거래의 30%가 이곳에서 이뤄진다. 이들 품목의 중국 내 최대 생산기지로도 꼽힌다. ‘상품의 바다, 구매자의 천국’으로 불리는 이곳에선 구매자가 상품과 샘플을 직접 체크해볼 수 있고 진열관 없는 제품도 사양을 제시해 주문이 가능하다.
알리바바 상장하면 578억 달러 확보알리바바는 이런 구매방식을 인터넷으로 옮겨왔다. 납품업자나 도소매업자가 소재와 디자인, 색상 등을 결정한 뒤 알라바바 사이트에 접속하면 이를 만드는 공장들과 접촉해 e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다. 이 과정을 거쳐 시제품을 받아본 뒤 마음에 들면 이를 대량 주문하는 방식이다.
중소업체인 주문자와 생산자가 서로 인터넷에서 만나 거래를 할 수 있게 해준 것이 알리바바의 특징이다. 요즘은 영어와 중국어 간 실시간 번역도 할 수 있다. 중국뿐 아니라 세계 240여개국 수출입 업체가 이 사이트를 이용한다. 굳이 무역박람회를 찾거나 제조사를 직접 방문할 필요 없이 마음에 맞는 상품의 생산 의뢰를 가능하게 해준 것이다.
알리바바는 시운을 타고 났다. 창업 당시 내놓은 중국형 인터넷 B2B 비즈니스는 때마침 일기 시작한 중국의 인터넷 붐과 맞물려 업계와 언론의 관심을 모았다. 그 해 9월 골드먼삭스로부터 500만 달러를 투자 받은 마 회장은 한 달 뒤 손 회장을 만났다. 마윈을 만난 손 회장은 마 회장이 사업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기도 전에 2000만 달러 투자를 결정했다. 당시로선 해외 바이어와 중국 제조업체들을 연결해주던 작은 온라인 거래 사이트 알리바바에 이런 거액을 투자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손 회장은 이후 인터넷 비즈니스에서 마윈의 멘토 역할을 톡톡히 했다.
마윈이 오픈마켓 사이트인 타오바오를 개설한 것도 손 회장의 조언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손 회장 입장에서는 마윈을 통해 일본 인터넷 기업이 진출하기 쉽지 않은 중국 시장에 진출한 셈이기도 하다. 중국 인터넷 시장에는 실리콘밸리의 어떤 기업도 손 회장 같은 선도적인 투자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손 회장은 이듬해에 8200만 달러를 추가로 투자해 알리바바닷컴 지분 34.4%를 확보했다. 손 회장은 현재까지도 알리바바닷컴의 최대주주다. 야후 창업자 제리 양은 2006년 알리바바에 17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지분은 손 회장보다 적다.
알리바바는 현재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로 성장했다. B2B에서 시작해 B2C를 거쳐 이제는 C2C(소비자 간 거래)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는 알리바바의 미국 주식시장 상장은 사상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월가에서는 알리바바의 회사 가치가 상장 뒤 168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이를 바탕으로 알리바바 지분 34.4%를 보유한 손 회장이 578억 달러(약 60조원)를 확보한다는 계산이 나온 것이다. 14년 만에 500배가 넘는 투자 수익을 얻은 셈이다.
손 회장의 벤처 투자는 알리바바에 그치지 않는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1300여개의 기술 벤처 업체에 투자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 잭팟이 터질지 모른다. 그야말로 창조적 투자의 원조가 아닐 수 없다. 블룸버그통신은 그런 손 회장을 ‘벤처 투자계의 골리앗’으로 비유했다. 월가에서는 그를 ‘아시아의 워런 버핏’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글로벌 벤처 투자 시장의 큰 손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손 회장의 다음 행보가 무엇이 될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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