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질라에 짓밟히는 인간의 오만

괴물 영화 ‘고질라’의 할리우드판이 16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가렛 에드워즈 감독이 제작한 리메이크작 ‘고질라’에는 지난 15년 동안 실제로 일어난 대형 재난의 장면들이 등장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9·11 테러, 2004년의 동남아 쓰나미 등. 세계인의 뇌리 속에 영원히 각인된 이 이미지들이 다시 나타난 고질라로 인한 대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섞여 있다.
더 인상적인 것은 에드워즈가 이 파괴적인 장면을 매우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위기에 처한 캐릭터들조차 때때로 겁에 질리기 보다는 그 경이로움에 압도당한 듯 보인다. 그들에게선 두려움뿐 아니라 간절한 기대감이 느껴진다. 기대감에 대해 말하자면 이 영화에서 고질라는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꽤 뜸을 들인다.
영화의 전반 1시간은 또 다른 괴물 무토(MUTO, 미확인 거대 육상생명체)에 초점이 맞춰진다. 최근까지 폐허가 된 일본의 한 핵발전소에서 살았던 무토는 핵폭탄을 먹이로 삼는 것으로 추정되는 날개 달린 괴물이다. 이 괴물은 짝을 만나 힘을 합치고 더 많은 무토들을 지구상에 풀어놓는다.
영화의 줄거리는 우리를 1999년으로 데려간다. 조 브로디(브라이언 크랜스턴)는 앞서 말한 핵발전소의 감독이다. 그의 부인 샌드라(줄리에트 비노슈)도 그곳에서 일한다. 조의 생일 날 지진이 발생해 핵발전소에서 방사능 유출이 일어난다. 조는 오염지역에 갇힌 샌드라를 구하려고 필사의 노력을 펼치지만 결국 어쩔 수 없이 그곳을 봉쇄하게 된다. 그들의 어린 아들 포드는 TV로 핵발전소가 붕괴하는 광경을 지켜보며 겁에 질린다.
이 일이 있기 얼마 전 과학자 세리자와 이치로(켄 와타나베)와 비비언 그레이엄(샐리 호킨스)은 필리핀에서 발견된 거대한 동물 뼈의 조사를 위해 현장에 파견됐다. 그 뼈 옆에는 알들이 있었는데 과학자들은 얼마 뒤 그 중 하나가 부화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이제 성인이 된 포드(아론 테일러-존슨)는 폭탄 해체 전문가로 해군에 근무하며 샌프란시스코에서 아내와 어린 자녀와 함께 산다. 아버지의 음모론 주장에 지친 포드는 모두가 옛날 일을 잊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조가 일본에서 무단침입 혐의로 체포됐을 때 포드는 마지못해 그곳에 간다. 하지만 거기서 그는 아버지의 말이 옳았음을 극적으로 믿게 된다.
이때부터 태평양과 그 연안의 대도시들은 인간 대 괴물, 괴물 대 괴물의 전쟁터가 된다. 이 영화의 강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름 모를 사람들이 수없이 죽어가지만 그 소멸의 과정이 장엄하게 그려진다. 기막힌 특수효과가 인간(그리고 교량과 고층건물들)의 나약함을 장려하게 상기시킨다. 세리자와는 한 대목에서 이렇게 말한다. “오만한 인간은 자연을 지배한다고 생각할 뿐 그 반대로는 생각이 미치지못한다.”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맥스 보렌스타인과 데이브 캘러햄의 각본은 캐릭터 발전이나 상황 설명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듯하다. 관객 스스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영화 속에서 샌프란시스코와 호놀룰루, 라스베이거스 같은 대도시들이 혼란에 빠져들 때 그곳 주민들이 그러듯이 말이다.
샐리 호킨스는 언제 봐도 좋지만 이 영화에선 시종일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동료 과학자 세리자와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는 모습이 실망스럽다. 또 크랜스턴과 포드의 부인 역을 연기한 엘리자베스 올슨은 이전 작품들에서 만큼 재능이 발휘되지 못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온몸이 비늘로 뒤덮인 거대한 괴물 고질라가 꼬리를 한번만 휘둘러도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뭉개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주의해서 지켜보라! 영화 속 극적인 파괴 사건 대다수가 고질라의 거대한 크기에 기인한다. 고질라는 큰 몸집 때문에 걸어 다닐 때마다 몸에 닿는 모든 것을 부숴버릴 수밖에 없다. 고질라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가 일으키는 파괴가 의도적인 것인지 아닌지 파악하기 어렵다. 불을 내뿜지 않을 때는 분간하기 힘들다.
고질라 영화(또는 일반적인 괴물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때때로 방향 감각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언제부터 헬리콥터를 타고 일본에서 하와이까지 날아갈 수 있게 됐지? 저 동굴 안에 남근 모양의 디스코볼이 있는 이유는 뭘까? 대체 어떤 쪽이 나쁜 편이지?
하지만 곧 고질라 역시 무토의 돌연변이를 막으려 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인간과 고질라가 힘을 합해 공동의 적에 대항해 싸운다. 그리고 우리가 좋아하는 살아남은 캐릭터들에게 해피 엔딩이 찾아온다. 이번 ‘고질라’는 괴물영화에 혁명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또 괴물영화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스펙타클의 가치로만 따지면 단연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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