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파워피플[55] 팀 쿡 애플 CEO - 애플의 체질 바꾼 ‘제2의 잡스’
글로벌 파워피플[55] 팀 쿡 애플 CEO - 애플의 체질 바꾼 ‘제2의 잡스’
팀 쿡(54) 애플 CEO는 오랫동안 스티브 잡스라는 거물에 가려왔다. 2011년 1월 잡스가 암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자 그를 대신해 회사를 맡아왔으며 2011년 8월24일 애플 최고경영자가 됐다. 하지만 잡스 없는 애플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애플을 큰 문제 없이 잘 이끌어왔다. 잡스의 힘이 그의 사후에도 계속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쿡은 그리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다. 사실 그는 애플의 대대적인 변화를 주도해온 혁신적인 전문 경영인이다.
쿡은 앨러배마주에서 조선소 노동자인 아버지와 약국 직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오번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 1982년 졸업했으며 1988년 듀크대의 파쿠아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받았다. 그 뒤 IBM에 들어가 12년 동안 PC분야를 담당했으며 북미 지역 총괄을 지냈다. 그런 뒤 인텔리전트 전자의 컴퓨터 판매 부분 최고 영업이사도 지냈다.
쿡이 애플에 들어간 것은 운명이었다. 그의 영업능력을 눈 여겨 봤던 잡스는 1998년 그를 영입했다. 쿡은 모교인 오번대의 입학식 연설에서 “나는 잡스를 딱 한 번 만나고 애플에서 일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컴팩에서 부회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성적으로 비용 대비 이득을 고려하면 당연히 컴팩에 머무는 게 나았다. 나를 잘 아는 분도 컴팩에서 계속 일하는 게 낫다고 했다. 하지만 딱 5분 간 잡스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은 뒤 나는 내 두뇌나 나를 잘 아는 분의 충고보다 내 직관을 더 믿게 됐다. 내 직관에 따르면 애플에 입사하는 것은 창조적인 재능을 발휘하며 일할 수 있는 일생에 한 번 있는 기회였다. 나는 경영팀에 합류해 이 위대한 미국 회사를 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
영업능력 높이 평가한 잡스가 영입그가 애플에서 처음 맡은 직책은 해외 영업 담당 수석 부회장이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제품 주기가 빠른 애플을 낙농회사처럼 생각하기로 했다. 유통기한이 조금만 지나면 즉각 문제가 생기는 비즈니스 말이다. ” 하지만 낙농기업이 되려면 이전까지의 체질로는 어림없었다.
체질을 바꿔야만 했다. 땅에 정착해서 사는 농부 같은 전자 기업 스타일로는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 새 풀을 찾아 즉각 천막을 뜯어 목초지를 옮길 수 있는, 기동성 있는 유목민이 돼야 했다. 익숙한 곡물을 버리고 입에 맞지 않는 고기와 우유, 요구르트로 배를 채울 각오가 돼야 했다.
이에 따라 그는 실적이 나쁘고 부담이 큰 직영 공장의 문을 닫고 대신 계약 생산을 시작했다. 이는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땅과 ‘신토불이’로 밀착한 농부처럼 몸이 무겁고 정착 기업이던 애플을 몸이 가볍고 항상 움직일 수 있는 이동성 유목민 기업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그의 결심으로 애플은 수개월에 이르던 재고보관 기간을 며칠 수준으로 낮출 수 있게 됐다. 쿡의 이런 경영수완은 애플에 재기의 발판을 제공했다.
정보기술(IT) 산업과 같은 기술 산업에서 수요를 정확히 예측하고 제품을 제시간에 공급하는 것은 경영의 핵과도 같은 것이다. 잠시만 머뭇거리면 경쟁업체가 즉각 신제품을 출시해 시장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철저한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장이다. 이 시장에서는 빠른 자가 강하고 느린 자는 약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의 입맛이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이 시장에서 이는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애플은 놀랄 만한 제품을 주기적으로 내놓고 있다. 게다가 깜짝 마케팅으로 항상 화제의 중심에 서왔다. 제품을 내기 전까지 철저한 보안을 유지해 궁금증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제품을 출시할 때 고객들을 깜작 놀라게 하고 순식간에 전 세계 매장을 혁명적인 제품으로 쫙 깔아버리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해왔다.
쿡은 비용을 성공적으로 관리했으며 디자인과 마케팅 정보를 성공적으로 결합시켰다. 그는 고객의 수요를 경영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혁신적인 디자인을 개발하는 것을 마케팅의 중심에 뒀다. 그 결과 애플은 엄청난 이익을 내기 시작했다. 2012년 4월 타임은 그런 쿡을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에 포함시켰다.
애플을 이끌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그 순위에 오른 것은 지금의 애플을 창조한 공로 때문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2012년 초 그는 애플 이사회로부터 2016년과 2021년 사이에 현금화할 수 있는 주식 100만주를 포상으로 받았다. 쿡은 2012년 합계 3억7800만 달러의 급여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급여를 받는 경영인으로 꼽혔다.
쿡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전자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애플을 이끄는 인물이다. 그를 잘 아는 것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쿡은 최근 공격적인 경영으로 주목받고 있다. 제품 개발, 마케팅 등 삼성에 줄줄이 밀려오던 쿡이 과감해지고 있는 것이다. 애플을 살리기 위한 결단이다.
5월 28일 쿡은 애플 사상 최대의 베팅을 했다. 음원 스트리밍 비츠뮤직과 고급 헤드폰 제작사인 비츠일렉트로닉스를 매입하기로 한 것이다. 대가는 30억 달러(약 3조원). 애플의 인수·합병 중 가장 큰 금액이다. 1590억 달러의 현금을 보유한 애플로서는 그리 큰 돈이 아니겠지만 관련 업계에선 전례가 없다.
이 발표를 하면서 쿡은 “음악은 너무나 소중하다”며 “우리의 심장은 음악으로 채워져 있다”고 말했다. 이 두 회사는 2008년 힙합 가수 출신의 닥터 드레와 지미 어바인이 공동 창업한 기업이다. 비츠뮤직은 11만1000명의 가입자(2014년 3월 기준)를 보유하고 있으며 비츠일렉트로닉스는 2013년 기준으로 130억 달러에 이르는 전 세계 고급 헤드폰 시장의 27%를 점유하고 있다. 이 합병으로 창업자들은 힙합 가수 최초의 억만 장자가 됐다.
음원사업에 공격적으로 투자비츠의 고성능 이어폰은 수영선수 박태환이 경기 직전 끼고 나오며 주목 받은 바로 그 제품이다. 사실 비츠의 창업자들은 음악인 출신으로 고객의 마음을 잘 읽었다. 지미 어바인은 “컴퓨터와 질 낮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며 “그런 걸로는 우리가 만든 음악을 팬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다”고 고성능 이어폰 개발 배경을 설명했다.
비츠의 고성능 헤드폰은 가격이 300~400달러나 되는데도 인기가 높다. 애플은 이런 고성능 이어폰과 비츠의 스트리밍 사업을 결합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얻을 것으로 전망한다. 과거 전자산업에 성공한 소니가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업체를 사들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지금 음악 시장은 스트리밍 업체가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 매출 11억 달러의 기업을 30억 달러에 사기로 한 쿡의 결정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쿡은 이 업체의 현재 가치가 아니라 미래 가치에 투자한 것이다. 사실 과거 흔들리던 애플은 음악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2001년 휴대용 음악 재생 기기 ‘아이팟’과 연계 프로그램 ‘아이튠스’를 출시하며 회사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폭발적인 잠재 수요를 지닌 음악시장이 IT업체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애플이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사이에서 음원 다운로드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스트리밍 시장의 잠재력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2013년 전 세계 스트리밍 산업 매출은 2010년보다 세 배증가했다. 현재 전체 음원시장에서 다운로드가 67%, 스트리밍이 27%를 차지하고 있지만 스트리밍은 고성장세이고 다운로드는 정체 상태라 조만간 역전될 것이라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애플이 뒤늦게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이튠스 라디오’를 출시했지만 비츠를 합병하지 않으면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시장 상황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한국은 이미 스트리밍 시장의 점유율이 70%에 이른다. 애플이 과감하게 이 시장에 진출한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애플의 경쟁자인 삼성은 3월에 미국 스트리밍 라디오인 밀크뮤직을 출시했다. 스트리밍 시장에서 한판 대결이 불가피해졌다.
뿐만 아니라 쿡은 올 가을쯤 스마트 시계 ‘아이워치(iWatch)’를 내놓고 스마트시계 시장에서도 삼성과 한판 대결을 벌일 예정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애플은 단일 모델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크기·디자인의 아이워치를 출시해 이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예정이다. 아이워치는 8월부터 대만에서 시험 생산될 예정이며 앞으로 2∼3개월 안에 대량 생산이 시작돼 9월 말~10월 초쯤에 판매에 들어갈 예정으로 관측된다. 애플의 전통대로 아이워치 출시는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되고 있다.
대량 생산을 통해 전 세계 시장에 동시 출시하는 전략도 여전하다. 아직은 경영전략상 새로운 게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이미 삼성이 스마트 시계를 내놓은 상황에서 쿡이 어떤 놀랄 만한 제품을 내놓을지도 미지수다. 애플의 아이워치는 이미 세계 최초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만큼 쿡의 마음이 급할 수도 있다.
“우리는 세계 1위에 집착하지 않는다. 쓰레기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말로 자신을 위안하는 듯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자신감을 유지할지도 알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디자인과 마케팅에 능한 쿡이 주도하고 있기에 경쟁업체들이 방심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디자인·마케팅 주도아이워치는 IT기기와 의료기기의 융·복합형 기기다. 총 10개가 넘는 센서가 부착되는데 이 중에는 건강과 체력 상태를 점검하는 센서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애플은 아이워치 사용자들의 땀을 분석해 그 결과를 의료진에게 직접 전달할 수 있는 센서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도 조만간 LG의 첫 스마트 손목시계 ‘G워치’를 공개할 전망이다. 발표장소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릴 ‘구글 개발자대회(IO)’로 보인다. 웨어러블(입는) 기기용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 웨어’를 적용했다. 모토롤라도 같은 행사에서 스마트 시계 ‘모토360’를 처음 공개할 예정이다.
삼성도 조만간 안드로이드 웨어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스마트 손목시계를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전 세계 IT업체들은 스마트시계 시장이라는 ‘용감한 신세계’를 놓고 한바탕 대결이 불가피하다. 이미 업체 간에는 전운이 감도는 분위기다. 애플과 삼성은 스마트폰이 처음 출시됐던 2007년과는 반대다.
당시 세상에 없었던 스마트폰을 내놓은 애플은 시장을 선도했고 삼성전자는 추격에 바빴다. 그 뒤 특허권 침해를 들어 2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소송도 벌이며 삼성전자를 압박해왔다. 하지만 스마트워치 시장에선 삼성전자가 일찌감치 웨어러블 제품을 먼저 내놓고 애플이 따라오는 상황이다.
쿡의 애플이 스마트워치로 과거의 입지를 되찾을지, 삼성이 수성에 성공할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이 시장 판도에 따라 기업의 명운이 뒤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쿡의 입지도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잡스에 이어 세계 IT 시장을 주도해온 애플의 쿡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에 관심이 모이는 이유다. 일찍이 그가 간파한 대로 IT시장은 유목민 사회이기 때문이다. 잠시 긴장을 풀면 가축을 먹일 풀이 완전히 말라버리는 세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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