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ing | 한국도 음원 저작권 경쟁 체제 도입
investing | 한국도 음원 저작권 경쟁 체제 도입
“저작권은 음악 산업의 근간입니다. 좋은 저작권 플랫폼을 만들어야 후배들이 부르는 K팝도, 한류도 쑥쑥 커 나갈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한 협회가 50년 동안 저작권 신탁을 독점하다 보니 그동안 현장에서는 음악인의 권익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많았습니다. 함께하는 음악저작인협회(이하 함저협)가 출범하자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이하 음저협)가 직원들의 임금을 줄이고, 회원에 대한 수수료율을 낮추기로 했습니다. 이게 바로 경쟁의 힘입니다. 미국이나 일본 등이 복수의 신탁협회를 두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징수 시스템 없어 새는 저작권료 1000억원 이상백순진 함저협 이사장은 음악 저작권 신탁 시장에 경쟁 체제가 도입된 의미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지난해 말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신규 허가 대상자로 선정된 함저협은 9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음원사이트나 방송·노래방 등에서 사용된 음악의 저작권료를 걷어 작사·작곡·편곡자 등 저작권자에게 분배하는 저작권 신탁업은 그동안 음저협이 독점했다. 하지만 독점에 따른 부작용과 폐쇄적 운영 시스템 등 다양한 문제점이 지적돼왔다. 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 회장을 맡았던 백 이사장은 2년 전부터 함저협출범을 주도하면서 경쟁체제 도입을 이끌어냈다.
실제로 음저협은 창립 50년 만에 처음으로 회계 내역을 밝히고, 협회장의 저작권료도 공개했다. 과거 분쟁이 있었던 가수 서태지에게도 사과했다. 2002년 서태지의 히트곡 ‘컴백홈’ 패러디곡에 대해 음저협이 사용을 허락하면서 시작된 분쟁이다. 이후 서태지는 신탁계약 해지를 통보했으나 음저협은 법원의 가처분 금지 판결을 받고도 3년이 지나서야 해지 의사를 밝혀 비난을 받았다. 함저협 출범에 따라 상당수 회원이 이탈할 움직임을 보이자 바짝 몸을 낮추는 분위기다. 백 이사장은 경쟁을 하되 수수료율을 낮추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수수료율을 경쟁적으로 낮추는 건 저작권자를 위해서도 협회를 위해서도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대신 저작권 징수를 제대로 해 전체 파이를 키워야 합니다. 우선 해외에서 안정적으로 저작권료를 징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겁니다. 한류 열풍이 불면서 우리 가수들의 노래가 해외 방송에도 많이 나오는데 아직도 주먹구구식입니다. 이런 게 바로 국부 유출이죠.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했는데 저작권 수입은 형편없었습니다. 그 잃어버린 돈을 찾아 저작권자에게 돌려주는 것 이게 함저협의 가장 중요한 역할일 겁니다.”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간 저작권료 규모는 약 1200억원이다. 하지만 백 이사장은 “새고 있는 돈을 포함해 실제 징수할 수 있는 저작권료는 2500억원 정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대로 받아서, 제대로 주는 대신 협회가 정당한 수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백 이사장은 이를 통해 만들어진 수익금은 장기적인 인디밴드 육성 등에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가요계가 아이돌 댄스 음악에만 편중돼 있는데 장르별 다양성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며 “함저협은 회원의 권익증진과 함께 한국 대중음악의 저변 확대를 위해서도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 투명해질수록 소비자에게 혜택신탁범위선택제의 추진도 시급한 과제다. 현행 제도는 저작권자의 모든 권리를 통째로 신탁하는 인별포괄신탁제다. 정부가 신탁범위선택제 도입을 추진 중인데 제도가 바뀌면 저작권자는 자신이 만든 곡의 일부 권리만 따로 떼어신탁할 수 있게 된다. 자연히 권리 행사의 폭이 넓어진다.
“방송 노출에 따른 저작권은 A협회에, 음원 판매에 따른 저작권은 B협회에 맡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저작권자의 수입이 늘어나고 회원에 대한 협회의 서비스 질도 달라질 겁니다. 현재 저작권 수익을 얻고 있는 작가는 국내에 약 1만6000명 정도다. 백 이사장은 함저협 출범 소식이 전해진 뒤 주변에서 문의가 많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무리하게 회원 영입에 나서진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출범 초기인 만큼 내실을 키우면서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면 신뢰가 쌓일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레 회원은 늘겠죠. 먼저 ‘개인비서제’를 도입할 계획입니다. 저작권에 관해 문의가 있을 때 담당 직원이 달라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는 작가들의 지적이 많았습니다. 업무에 따라 이 사람, 저 사람 전화를 돌려받으니 원스톱 처리가 안 되는 거죠. 업무 영역에 따라 직원을 나눌 게 아니라 작가 한 명, 한 명에게 직원이 전담 비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 겁니다.”
저작권은 소중한 권리다. 책, 영화와 달리 음악 저작권은 불법 다운로드, 음원의 편법 사용이 많아 음악인을 힘들게 하고 있다. 열심히 한 보람을 느껴야 작가들도 더 좋은 음악을 만들겠지만 제값을 못 받는 경우가 많다. 백 이사장은 “사적 복제 보상금 제도가 꼭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실적으로 복제 음원이나 무단 다운로드 등을 막기 어려운 상황이니 음악을 다운로드 받는 비용에 미리 복제 피해 금액을 반영하자는 것이다. 그는 “소비자가 부담하는 것이니 단돈 10원이라도 죄송한 마음이 크다”면서도 “그 돈을 모아서 음악의 다양성을 키우거나, 원로 음악인 지원이나 시민을 위한 무료 공연 등에 쓰면 결국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당신에게선 꽃내음이 나네요. 잠자는 나를 깨우고 가네요. 싱그런 잎사귀 돋아난 가시처럼 어쩌면 당신은 장미를 닮았네요.’ 1970년대 큰 인기를 누렸던 남성 듀오 ‘사월과 오월’이 부른 ‘장미’라는 곡이다. 사월과오월을 잘 모르는 요즘 세대에게도 이 노래는 익숙하다. 많은 후배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돼서다. 백 이사장은 이 사월과오월의 리더였다. 국내 싱어송라이터 1세대인 그는 팝송이나 번안곡이 주류던 한국 음악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백 이사장이 저작권의 중요성을 오래 전부터 인지한 것도 스스로 곡을 만들어 봤기 때문이다.
백 이사장은 지금까지 150곡 정도를 작곡했다. 요즘도 악기를 놓지 않는 음악인이다. 최근엔 ‘꽃보라 되어’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일본의 유명 기타리스트인 하타슈지와 협업했는데 만연한 극단적 이기주의와 메마름의 대안으로 진실한 사랑이 필요함을 노래에 담았다.
“여전히 좋은 곡을 쓰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요즘 어려운 환경 속에도 좋은 음악을 만들고, 해외에서도 듣는 가요를 만들어 준 후배들에게 고마움을 많이 느낍니다. 저도 이제 원로 중의 원로가 됐으니 제 마지막 소임이라 생각하고 후배들을 위해 열심히 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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