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택조합 열풍의 민낯] 무자격 단체 난립하고 투자금 떼이고
[지역주택조합 열풍의 민낯] 무자격 단체 난립하고 투자금 떼이고
#1. 서울 성북구 돈암동의 A지역주택조합. 2008년 저렴한 아파트 값을 내세워 조합원 240여명을 모집했다. 조합원들은 당시 꽤 알려져 있던 중견 건설사가 시공을 맡은 만큼 안심하고 계약금을 송금했다. 하지만 몇 년 뒤 사업이 무산됐다. 업무대행사가 조합 땅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뒤 이자를 갚지 못해 해당 토지가 경매 처분됐기 때문이다. 업무대행사는 결국 부도가 났고 조합비가 입금된 통장에는 잔고가 남아 있지 않았다. 이에 따른 조합원 피해액은 총 220억원 수준이다.
#2. 경북 구미에 사는 이모씨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그는 ‘주변 시세보다 20% 싸다’는 업무대행사의 말을 믿고 2013년 인근의 B지역주택조합에 가입했다. 계약금은 4000만원. 당시 업체 측은 계약하고 한두 달 후면 착공한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그간 업무대행사 측이 세워놓은 조합장은 조합비를 물쓰듯 쓰는 등 각종 비리를 일삼았다. 조합원들은 계약 해지를 요청했지만 조합계약서상 규약에 묶여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이씨는 “싸게 해준다는 말에 혹해서 확인 없이 계약한 게 화근이었다”고 말했다. ‘아파트 공동구매’로 불리는 지역주택조합 사업에 따른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시세보다 싼 값에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주택 수요자와 투자자가 몰렸지만 현실은 재산 피해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국민권익위원회에만 2012년부터 지난 8월까지 210여건의 피해 사례가 접수됐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분양시장 호황을 타고 지역주택조합 아파트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데 반해 수요자의 재산을 보호해줄 안전장치는 미흡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최근 주택시장을 뜨겁게 달구던 지역주택조합 사업의 어두운 민낯이 드러난 셈이다.
이 사업은 주택 수요자가 조합을 만들어 직접 땅을 사들인 다음 집을 짓는 방식이다. 조합이 토지 확보와 사업 진행을 맡는 시행사 업무를 하기 때문에 토지 매입에 대한 대출 이자 등 금융비용이 적게 든다. 이 때문에 일반분양 아파트보다 분양가가 10~20% 싸다. 요즘 같이 새 아파트 분양가가 치솟을 때 가격 경쟁력은 더 커진다. 청약통장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고 전용면적 85㎡ 이하의 주택을 한 채 갖고 있어도 조합원이 될 수 있다. 이런 매력이 부각되면서 수요가 대거 몰렸다. 지난 6월 경기도 평택시의 한 지역주택조합 조합원 모집 첫 날 KB국민은행 홈페이지에 청약자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은행 전산망이 두 시간 동안 마비되기도 했다. 조합 관계자는 “청약 신청금을 먼저 입금하는 사람에게 계약 자격을 주는 방식을 도입한 탓에 과부하가 걸린 것”이라며 “전체 가구 수(5000여 가구)의 70% 수준인 3500여 건이 몰렸다”고 귀띔했다.
주택 수요자로부터 인기를 끌자 공급도 크게 늘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국에서 조합을 설립한 지역주택조합은 33곳(2만1431가구)이다. 하반기 실적을 포함하지 않고도 2005년 이후 연간 기준 최대치다. 지난 9월 말 기준 조합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곳도 126개 조합, 9만6084가구에 이른다. 특히 서울·수도권보다 지방에서 더 활발하다. 2005~2010년에는 서울·수도권이 전체(조합설립 인가 기준) 가구의 95%에 달했으나 2010년 이후 지방이 83%를 차지한다.
문제는 안전장치가 많지 않아 폐해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조합원 모집 과정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실제 일부 신문과 인터넷에는 무자격 업무대행사나 실체를 알 수 없는 임의단체의 광고가 판을 친다. 이들은 대개 ▶토지 확보 완료 ▶값싼 분양가 ▶시공사 확정 등 내용을 허위로 명시하거나 과장해 수요자를 유혹한다. 일반분양되는 아파트인 것처럼 속여 조합에 가입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최모(43)씨는 “업무대행사 측이 주의사항에 대한 설명 없이 대형 건설사의 브랜드 아파트를 시세보다 20% 싸게 살 수 있다는 점만 강조하길래 찜찜해서 계약을 접었다”며 “나중에 확인해 보니 시공사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고 했다.
조합장과 업무대행사가 결탁해 조합비를 횡령하는 일도 자주 벌어진다. 조합 간부가 친척 등 측근이 있는 부동산컨설팅회사를 업무대행사로 선정하고, 조합 땅을 담보로 불법 대출을 받는 일이 심심치 않다. 이들은 조합원이 계약을 해지하려 하면 납부금액을 돌려주기를 극구 거부한다. 더 큰 문제는 사업이 장기간 지연되거나 무산될 경우에 있다. 조합원 입장에선 꼼짝 없이 돈도 집도 날릴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업 지연에 따른 추가분담금이 발생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현재 무자격 업무대행사 등에 대한 처벌 규정은 딱히 없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관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선 조합원 모집 때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방자치단체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적으로 진행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조합원 모집 승인제를 도입하는 등 관리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조합설립 이전 업무에 대해 회계감사를 실시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업무대행 제도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계옥 국민권익위원회 권익개선정책국장은 “조합 운영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업무대행사의 기능과 업무 범위 등을 구체화해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공사의 역할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견해도 잇따랐다. 현재로선 시공사는 사업에 문제가 생겨도 공사 이 외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정태상 법무법인 가헌 대표변호사는 “공동 사업 주체인 시공사도 공사도급 계약을 한 이후에는 조합원이 납부한 분담금을 부정 사용하는 것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예 제도 폐지론을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김형찬 부산시 건축주택과장은 “어렵게 자금을 모아 사업을 추진한 많은 서민들이 피해를 입는 사례가 너무 많다”며 “지역주택조합 제도는 없어져야 하고 폐지 전까지 지차제가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권혁진 국토교통부 주택정책과장은 “지역주택조합이 정상적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책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다”며 “다만 지나친 규제는 주택시장 전반에 장애가 될 수 있어 신중히 접근할 것”이라고 했다.
지역주택조합에 관심이 있는 수요자의 경우 조합원 가입에 앞서 따져봐야 할 점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조합원이 얼마나 모집됐고, 토지 매입은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땅을 사지 않은 상태에서 조합원이 확보되지 않으면 사업 추진이 지연되거나 아예 무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합의 비리 여부나 시공사의 재정 건전성, 자금 관리의 안전성 등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같은 사업지 안에서 여러 조합이 동시에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사업은 일반적으로 ‘추진위 구성→조합원 모집→부지 매입·조합 설립→추가 조합원 모집→사업 승인→착공·분양→입주’ 순서로 진행된다. 조합원 가입 신청에 앞서 진행 상황을 살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 황의영 중앙일보조인스랜드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 경북 구미에 사는 이모씨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그는 ‘주변 시세보다 20% 싸다’는 업무대행사의 말을 믿고 2013년 인근의 B지역주택조합에 가입했다. 계약금은 4000만원. 당시 업체 측은 계약하고 한두 달 후면 착공한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그간 업무대행사 측이 세워놓은 조합장은 조합비를 물쓰듯 쓰는 등 각종 비리를 일삼았다. 조합원들은 계약 해지를 요청했지만 조합계약서상 규약에 묶여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이씨는 “싸게 해준다는 말에 혹해서 확인 없이 계약한 게 화근이었다”고 말했다.
분양시장 호황에 우후죽순 들어서
이 사업은 주택 수요자가 조합을 만들어 직접 땅을 사들인 다음 집을 짓는 방식이다. 조합이 토지 확보와 사업 진행을 맡는 시행사 업무를 하기 때문에 토지 매입에 대한 대출 이자 등 금융비용이 적게 든다. 이 때문에 일반분양 아파트보다 분양가가 10~20% 싸다. 요즘 같이 새 아파트 분양가가 치솟을 때 가격 경쟁력은 더 커진다. 청약통장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고 전용면적 85㎡ 이하의 주택을 한 채 갖고 있어도 조합원이 될 수 있다. 이런 매력이 부각되면서 수요가 대거 몰렸다. 지난 6월 경기도 평택시의 한 지역주택조합 조합원 모집 첫 날 KB국민은행 홈페이지에 청약자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은행 전산망이 두 시간 동안 마비되기도 했다. 조합 관계자는 “청약 신청금을 먼저 입금하는 사람에게 계약 자격을 주는 방식을 도입한 탓에 과부하가 걸린 것”이라며 “전체 가구 수(5000여 가구)의 70% 수준인 3500여 건이 몰렸다”고 귀띔했다.
주택 수요자로부터 인기를 끌자 공급도 크게 늘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국에서 조합을 설립한 지역주택조합은 33곳(2만1431가구)이다. 하반기 실적을 포함하지 않고도 2005년 이후 연간 기준 최대치다. 지난 9월 말 기준 조합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곳도 126개 조합, 9만6084가구에 이른다. 특히 서울·수도권보다 지방에서 더 활발하다. 2005~2010년에는 서울·수도권이 전체(조합설립 인가 기준) 가구의 95%에 달했으나 2010년 이후 지방이 83%를 차지한다.
문제는 안전장치가 많지 않아 폐해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조합원 모집 과정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실제 일부 신문과 인터넷에는 무자격 업무대행사나 실체를 알 수 없는 임의단체의 광고가 판을 친다. 이들은 대개 ▶토지 확보 완료 ▶값싼 분양가 ▶시공사 확정 등 내용을 허위로 명시하거나 과장해 수요자를 유혹한다. 일반분양되는 아파트인 것처럼 속여 조합에 가입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최모(43)씨는 “업무대행사 측이 주의사항에 대한 설명 없이 대형 건설사의 브랜드 아파트를 시세보다 20% 싸게 살 수 있다는 점만 강조하길래 찜찜해서 계약을 접었다”며 “나중에 확인해 보니 시공사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고 했다.
조합장과 업무대행사가 결탁해 조합비를 횡령하는 일도 자주 벌어진다. 조합 간부가 친척 등 측근이 있는 부동산컨설팅회사를 업무대행사로 선정하고, 조합 땅을 담보로 불법 대출을 받는 일이 심심치 않다. 이들은 조합원이 계약을 해지하려 하면 납부금액을 돌려주기를 극구 거부한다. 더 큰 문제는 사업이 장기간 지연되거나 무산될 경우에 있다. 조합원 입장에선 꼼짝 없이 돈도 집도 날릴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업 지연에 따른 추가분담금이 발생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현재 무자격 업무대행사 등에 대한 처벌 규정은 딱히 없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관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선 조합원 모집 때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방자치단체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적으로 진행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조합원 모집 승인제를 도입하는 등 관리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조합설립 이전 업무에 대해 회계감사를 실시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업무대행 제도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계옥 국민권익위원회 권익개선정책국장은 “조합 운영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업무대행사의 기능과 업무 범위 등을 구체화해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공사의 역할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견해도 잇따랐다. 현재로선 시공사는 사업에 문제가 생겨도 공사 이 외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정태상 법무법인 가헌 대표변호사는 “공동 사업 주체인 시공사도 공사도급 계약을 한 이후에는 조합원이 납부한 분담금을 부정 사용하는 것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예 제도 폐지론을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김형찬 부산시 건축주택과장은 “어렵게 자금을 모아 사업을 추진한 많은 서민들이 피해를 입는 사례가 너무 많다”며 “지역주택조합 제도는 없어져야 하고 폐지 전까지 지차제가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권혁진 국토교통부 주택정책과장은 “지역주택조합이 정상적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책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다”며 “다만 지나친 규제는 주택시장 전반에 장애가 될 수 있어 신중히 접근할 것”이라고 했다.
지역주택조합에 관심이 있는 수요자의 경우 조합원 가입에 앞서 따져봐야 할 점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조합원이 얼마나 모집됐고, 토지 매입은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땅을 사지 않은 상태에서 조합원이 확보되지 않으면 사업 추진이 지연되거나 아예 무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합의 비리 여부나 시공사의 재정 건전성, 자금 관리의 안전성 등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같은 사업지 안에서 여러 조합이 동시에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사업은 일반적으로 ‘추진위 구성→조합원 모집→부지 매입·조합 설립→추가 조합원 모집→사업 승인→착공·분양→입주’ 순서로 진행된다. 조합원 가입 신청에 앞서 진행 상황을 살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 황의영 중앙일보조인스랜드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탈 서울 기업들 몰리는 청라 국제도시…新랜드마크 ‘청라파이낸스센터’ 주목
2 코스피 2400선 내줘…8월 '블랙먼데이' 이후 처음
3대한전선, 역대 최대 수주 잔고…실적 상승세 가속
4도미노피자, ‘K-쌈장 채끝 스테이크 피자’ 출시 프로모션 진행
511번가, 3분기 영업손실 55% 개선…오픈마켓은 8개월 연속 흑자
6“최대 80% 할인”…LF몰, ‘블랙프라이데이’ 시작
729CM ‘이굿위크’ 누적 거래액 1100억 돌파
8뉴욕증시, 파월도 인정한 인플레 불안…나스닥 '휘청'
9노티드, 2024 크리스마스 케이크 출시 및 사전예약 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