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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반퇴의 정석(2)] 노후 대비 하려면 ‘30년 가계부’ 미리 써라

[김동호의 반퇴의 정석(2)] 노후 대비 하려면 ‘30년 가계부’ 미리 써라

요즘 가계부를 적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많지 않을 것 같다. 소비가 많은 시대라 일일이 적는 자체가 일거리다. 그렇다고 가계부의 가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계부란 말 그대로 한 식구의 수입과 지출을 적는 장부다. 이를 통해 얼마나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지 파악할 수 있다. 즉 현금흐름을 파악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

현금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부자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아무리 소득이 높아도 늘 돈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의 정확한 수입과 지출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지출 규모를 기록하면 스스로 씀씀이를 되돌아보고 불필요하게 새나가는 지출을 자제하게 된다. 가계부를 적는 자체가 알게 모르게 경제적인 소비습관을 만들어낸다는 얘기다.

구멍가게를 운영하거나 기업을 경영해도 마찬가지다. 돈이 어디서 들어오고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면 아무리 부지런히 일을 해도 독에 밑이 빠져 있는 것처럼 재산이 불지 않는다. 그래서 기업에서는 전사적자원관리(ERP) 같은 전산시스템을 통해 철저한 재무관리에 나선다. 언제 어디서 돈이 들어오고 언제 어디로 나가는지 한눈에 알아야 효율적이고 빈틈없이 회사를 경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 두 가지는 계획대로 돈을 쓸 수 있고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현금흐름부터 파악해야
이런 이치를 알고 매일 가계부를 적으면 그렇지 않은 가계보다 훨씬 계획적이고 효율적으로 자산을 운용해 더 많은 경제적 여유를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이같이 매일 쓰는 ‘일일 가계부’보다 더 중요한 가계부가 ‘30년 가계부’다. 매일 쓰는 일일 가계부는 지나간 과거의 기록이라 미래의 현금흐름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다. 기대수명이 짧았던 베이비부머의 앞 세대(1940년대 이전 출생)는 미래의 현금흐름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환갑을 쇠고 10년만 대비하면 됐다. 쌈짓돈처럼 목돈만 있으면 노후를 보낼 수 있었다.

백세 가깝게 사는 지금은 달라졌다. 노후자금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길게 30년 늘려 쓸 수 있도록 준비해 놓아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30년 가계부는 아직 경험하지 않은 미래의 가계부다. 30년 가계부를 실제로 작성해보면 의외로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막상 퇴직해 60세부터 노후생활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확실하게 손에 쥐는 현금은 얼마 안 되는 예금과 연금 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봉급생활자나 자영업자는 일반적으로 은행·증권·보험사에서 판매하는 개인연금을 따로 가입해 놓지 않았다면 노후자금이 부족할 가능성이 크다. 30년 가계부를 만들어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면 이런 허점은 단번에 드러난다. 기본적으로 써야 하는 생활비 지출은 좀처럼 줄지 않고 월급이 끊기면서 소득 절벽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각각 공무원연금·사학연금·군인연금 등을 받는 공무원·교사·군인의 사정은 좀 나은 편이다. 이들 공공 분야 종사자의 1인당 평균 수령액은 일반적으로 200만원이 넘는 수준이다. 회사원·자영업자가 가입한 국민연금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여유가 있다.

봉급생활자나 자영업자는 쥐꼬리 만한 개인연금만으로는 풍족한 생활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금세 알게 된다. 그나마 개인연금을 한 개라도 보유하고 있으면 다행이지만, 1차 베이비부머 가운데 개인 연금을 가입한 비율은 15% 안팎에 그치는 게 현실이다. 이런 노후준비 부족이 결국 극심한 ‘노노(老老)격차’를 만들고,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서고도 한국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의 노인빈곤율을 기록하게 한 배경으로 꼽힌다. 예컨대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목표로 월 생활비 200만원에 맞춰 살겠다면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60세가 넘어서도 70세까지 한동안 지출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공부를 마치지 못한 자녀가 있기라도 한다면 교육비 지원은 물론이고, 결혼자금 지원으로 목돈이 들어가는 바람에 노후에 거액의 빚을 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월 200만원의 연금을 받아도 대출이자를 낸다면 순수한 생활비는 훨씬 줄어들 공산이 크다. 더구나 씀씀이가 크면 노후에도 월 생활비가 500만원에 달하거나 넘어서기도 한다. 봄가을로 국내 여행을 가거나 연 1회 해외 여행이라도 떠나려면 적지 않은 지출이 발생한다는 얘기다. 손주에게 과자값이라도 주려면 주머니 사정은 더 좋아야 한다.

이같이 은퇴 후에도 돈 쓸 일은 많고 지출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주택 관리비와 통신비를 비롯해 기본 생활비와 재산세·자동차세 같은 고정경비와 병원비가 심심찮게 나가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정적인 수입이 없이 연금만 받아쓰는 것으로는 풍족하지 못한 생활에 직면할 수 있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선진국 최고 수준인 것도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 신경을 쓰지 않은 탓에 노후에 쓸 자금이 많지 않은 결과다.

30년 가계부는 하루빨리 작성할수록 좋다. 노후준비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배우자와 함께 만들어보라. 현실을 직시하게 되면서 노후준비의 동기부여가 강화된다.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우선 A4 용지에 미래의 수입과 지출을 죄다 적어보자. 모든 사항이 나왔다면 컴퓨터에 깔린 엑셀(EXCEL)을 열고 항목을 입력하자. 왼쪽에는 60세를 기준으로 연령을 쭉 적어 넣는다. 기대수명은 90세로 잡는 게 좋겠다. 둘째 칸에는 수입을 적고 셋째 칸에는 지출을 적는다. 매년 예상 수입과 예상 지출을 60~90세까지 적는다는 얘기다.

 한국의 노인빈곤율, OECD 국가 중 최고
십중팔구 충격을 받게 된다. 수입절벽 상태에서 지출은 더 낮출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수입은 현역 시절 가입한 개인연금이 전부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개인연금이라고 하면 은행·보험·증권사에 가입한 연금저축을 의미한다. 은행은 연금신탁, 보험은 연금보험, 증권사에서는 연금펀드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런데 문제는 액수가 얼마 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점이다. 지출에 필요한 돈을 매달 200만원이라고 했을 때 그걸 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 가계가 매우 드물다.

평생 집 한 채 마련해놓았다면 주택연금으로 돌려서 노후를 꾸려나가면 되겠지만 생활이 윤택할 리 없다. 결국 30년 가계부를 하루 빨리 작성해보고 부족한 부분은 지금부터라도 대비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현재의 수입을 더 늘릴 수 있다면 가장 좋다. 부부 가운데 아내가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라면 적당한 소득원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물론 취업난이 극심해 아르바이트 하나라도 일자리 구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노후 생활자금 부족이 불 보듯 뻔하다면 행동에 나서는 게 좋다. 가계에 낭비 요소를 줄이는 것도 현금흐름을 플러스로 만드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지금 당장 30년 가계부를 만드는 것이 이런 노력의 첫걸음이다.

- 김동호 중앙일보 기자



필자는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경제연구소장이다(d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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