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노후 준비 5년 만에 끝내기(16) 주택다운사이징] 큰 집 깔고 있지 말고 구조조정하라
[서명수의 노후 준비 5년 만에 끝내기(16) 주택다운사이징] 큰 집 깔고 있지 말고 구조조정하라
큰 집을 갖고 있는 주택 소유자는 자식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집을 줄이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주택 다운사이징이다. 다운사이징이란 규모의 축소, 소형화를 뜻하는 용어로 넓은 주거 면적에서 소형으로 이동을 뜻한다. 다운사이징을 계획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녀 분가와 소득 감소로 주거 면적의 축소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즘 은퇴자들은 과거 세대와 달리 여가와 사교활동 등으로 노후에도 많은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해 노후자금 확충에 적극 나서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선 이런 이유로 은퇴를 앞둔 주택소유자들의 다운사이징이 적어도 10년간 유행할 것으로 본다. 베이비부머 세대 고객들의 87%가 작은 집을 찾고 있다는 부동산 회사의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10명 중 9명은 지금의 살림살이를 줄이기 위해 집 사이즈를 축소하려는 의사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운사이징이 말처럼 쉽지 않다. 무엇보다 살던 집을 정리한다는 자체가 스트레스다. 지금 시세가 매입가보다 떨어졌다면 손해보기 싫어서, 올랐다면 더 오른 가격에 처분하고 싶은 심리 때문에 선뜻 매매에 나서지 못한다.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다운사이징을 계획하고 있는 서울 송파구의 박모(58)씨 이야기다. 그는 12년 전쯤 은행빚까지 동원해 5억원을 주고 현재 거주 중인 아파트를 샀다. 아파트는 한 때 12억원으로 올랐다. 내 집 마련은 물론 재테크에도 성공했다며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집값이 9억원으로 떨어졌다. 노후준비를 위해 집을 팔려고 내놨지만 문의조차 없었다. 다행히 지난해부터 아파트의 호가가 조금씩 오르더니 최근엔 11억 5000만원에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집을 팔면 6억 5000만원을 벌지만 최고 시세보다는 5000만원을 덜 받게 된다. 박씨는 집을 팔아야 할까.
간단히 생각하면 아주 쉬운 문제다. 아파트 처분에 따른 손익만 따져보면 된다. 집을 팔면 전체 자산이 늘고 원하는 노후준비에도 나설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팔면 된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하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만은 아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12억원’이란 추억의 가격이 들어있다. 11억 5000만원에 팔면 5000만원 밑지는 것 같다. 결국 박씨는 아파트 가격이 좀 더 오를 때까지 지켜보기로 하고 매물을 거둬들였다. 만약 집을 구입한 가격 5억원이 그의 머릿속에 있다면 6억5000만원을 남기고 11억 5000만원에 팔아 발등의 불인 노후준비에 들어갔을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물건을 소유하게 되면 이를 본질 가치 이상으로 평가하며 애착을 갖는다. 이를 ‘소유효과’라고 한다. 시장에서 판매자가 요구하는 가격이 항상 구매자가 원하는 가격보다 높은 것은 소유효과 때문이다. 소유효과는 구체적인 실물일 때 강하게 나타난다. 상품권 같은 추상적인 물건을 소유할 땐 잘 나타나지 않는다. 집을 팔아야 하는데 ‘어느 정도 이상은 받아야지’ 하는 욕심 때문에 고민에 빠지는 일이 소유효과의 대표적인 예다. 이 경우 매도 타이밍을 놓치고 필요한 자금 마련에 실패해 불필요한 기회비용을 치르기 된다.
다시 박씨 이야기다. 집이 팔리지 않는 한 돈은 집에 묶여있다. 돈은 굴려야 자가증식을 하면서 불어나는데, 이런 기회를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만약 박씨가 11억 5000만원에 집을 팔아 규모가 작은 아파트로 옮기고, 나머지 돈을 금융상품에 투자한다면 적지 않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5억원을 연 3%짜리 채권펀드에 넣어두기만 해도 연간 1500만원의 이자수입이 기대된다. 노후엔 그저 현금흐름을 한 푼이라도 늘리는 것이 최고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소유효과 때문에 이런 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낮은 가격에 집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그동안 국내 부동산 시장은 서울의 재개발·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정부의 ‘6·19 부동산 대책’의 영향으로 상승 열기가 한풀 꺾인 듯하지만 일부 지역은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오래 가기는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많다. 먼저 올해 말 초과이득환수제가 부활하면 재건축이나 재개발 대상 아파트들이 직격탄을 맞게 된다. 내년부터 80만 가구의 아파트가 공급될 예정이어서 수급문제도 불리하게 돌아갈 전망이다. 주택담보대출 급증으로 위험수위에 오른 가계부채는 금리가 인상될 경우 부동산 시장에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제적 변수 말고 인구구조학적으로도 부동산은 애물단지가 될 수 있다. 인구가 자꾸 줄기 때문에 그만큼 주택수요도 감소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아직 노후준비를 못한 예비 은퇴자들은 부동산을 다운사이징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다운사이징은 집값이 한창 오를 때 하는 것이 좋다. 차익을 많이 남겨 노후자금을 확대할 수 있어서다. 부동산 시장에 온기가 살아 있는 지금이 매도 타이밍이다. 소유효과로 매매결정이 힘들다면? 과거의 시세 환상에서 벗어나 아파트 매각으로 전체 자산이 늘어날 경우 눈을 질끈 감고 결단하도록 하자. 원하는 매도가와 실제가 사이에서 방황하다간 죽도 밥도 안 된다. 그게 부동산 중심의 비정상적인 재무상태를 정상화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렇다고 내 집 없이 전세나 월세로 살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불요불급하게 큰 집을 깔고 앉아있는 게 나쁘지 살림형편에 맞춰 규모를 줄이는 구조조정은 꼭 필요하다. 노후엔 주거 안정성이 필수다. 계약만료 때마다 임대료 걱정, 이사 걱정을 해야 한다면 정신 건강에 해롭다.
다운사이징을 실행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집만 줄이면 생활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잘못이다. 대개 작은 집으로 갈아타려고 선택한 집은 원래 계획보다 작은 집이 아니라고 한다. 평생 모아 온 살림규모를 줄이 것이 쉽지 않고 너무 작은 집을 고르면 생활의 불편함 때문에 처음 계획했던 대로 작은 집을 고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작은 집을 찾는다면서 현재 소득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다운사이징이 힘들다고 분석한다. 지금의 경제력을 보지 말고 은퇴 후 소득 기준으로 작은 집을 골라야 한다는 이야기다. 거주 비용을 국민연금이나 다른 연금수입으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소형 주택의 인기가 급상승해 가격이 크게 오름에 따라 다운사이징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이 경우 지금 살고 있는 지역보다 더 작은 생활비로 살아갈 수 있는 지역으로 이주를 생각해 볼만 하다. 작은 집과 저비용 지역으로의 이주는 요즘 베이비부머 사이에 떠오르는 관심사다.
다운사이징으로 확보한 현금을 어떻게 활용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사실 저금리 기조로 돈 운용에 상당한 제약이 따르는 현실이다. 보통 목돈이 생기면 이상하게도 돈 쓸 데가 나와 흐지부지 없어지기도 한다. 한탕을 노리고 주식 등 위험자산에 손을 댔다가 후회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다운사이징의 목표가 노후자금 확보이니 만치 현금흐름이 나오는 즉시연금이나 월지급식 상품을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필자는 중앙일보 재산리모델링센터 기획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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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운사이징이 말처럼 쉽지 않다. 무엇보다 살던 집을 정리한다는 자체가 스트레스다. 지금 시세가 매입가보다 떨어졌다면 손해보기 싫어서, 올랐다면 더 오른 가격에 처분하고 싶은 심리 때문에 선뜻 매매에 나서지 못한다.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다운사이징을 계획하고 있는 서울 송파구의 박모(58)씨 이야기다. 그는 12년 전쯤 은행빚까지 동원해 5억원을 주고 현재 거주 중인 아파트를 샀다. 아파트는 한 때 12억원으로 올랐다. 내 집 마련은 물론 재테크에도 성공했다며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집값이 9억원으로 떨어졌다. 노후준비를 위해 집을 팔려고 내놨지만 문의조차 없었다. 다행히 지난해부터 아파트의 호가가 조금씩 오르더니 최근엔 11억 5000만원에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집을 팔면 6억 5000만원을 벌지만 최고 시세보다는 5000만원을 덜 받게 된다. 박씨는 집을 팔아야 할까.
간단히 생각하면 아주 쉬운 문제다. 아파트 처분에 따른 손익만 따져보면 된다. 집을 팔면 전체 자산이 늘고 원하는 노후준비에도 나설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팔면 된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하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만은 아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12억원’이란 추억의 가격이 들어있다. 11억 5000만원에 팔면 5000만원 밑지는 것 같다. 결국 박씨는 아파트 가격이 좀 더 오를 때까지 지켜보기로 하고 매물을 거둬들였다. 만약 집을 구입한 가격 5억원이 그의 머릿속에 있다면 6억5000만원을 남기고 11억 5000만원에 팔아 발등의 불인 노후준비에 들어갔을 것이다.
살던 집 처분 방해하는 ‘소유효과’
다시 박씨 이야기다. 집이 팔리지 않는 한 돈은 집에 묶여있다. 돈은 굴려야 자가증식을 하면서 불어나는데, 이런 기회를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만약 박씨가 11억 5000만원에 집을 팔아 규모가 작은 아파트로 옮기고, 나머지 돈을 금융상품에 투자한다면 적지 않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5억원을 연 3%짜리 채권펀드에 넣어두기만 해도 연간 1500만원의 이자수입이 기대된다. 노후엔 그저 현금흐름을 한 푼이라도 늘리는 것이 최고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소유효과 때문에 이런 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낮은 가격에 집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그동안 국내 부동산 시장은 서울의 재개발·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정부의 ‘6·19 부동산 대책’의 영향으로 상승 열기가 한풀 꺾인 듯하지만 일부 지역은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오래 가기는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많다. 먼저 올해 말 초과이득환수제가 부활하면 재건축이나 재개발 대상 아파트들이 직격탄을 맞게 된다. 내년부터 80만 가구의 아파트가 공급될 예정이어서 수급문제도 불리하게 돌아갈 전망이다. 주택담보대출 급증으로 위험수위에 오른 가계부채는 금리가 인상될 경우 부동산 시장에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제적 변수 말고 인구구조학적으로도 부동산은 애물단지가 될 수 있다. 인구가 자꾸 줄기 때문에 그만큼 주택수요도 감소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후에도 내 집은 필요
다운사이징을 실행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집만 줄이면 생활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잘못이다. 대개 작은 집으로 갈아타려고 선택한 집은 원래 계획보다 작은 집이 아니라고 한다. 평생 모아 온 살림규모를 줄이 것이 쉽지 않고 너무 작은 집을 고르면 생활의 불편함 때문에 처음 계획했던 대로 작은 집을 고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작은 집을 찾는다면서 현재 소득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다운사이징이 힘들다고 분석한다. 지금의 경제력을 보지 말고 은퇴 후 소득 기준으로 작은 집을 골라야 한다는 이야기다. 거주 비용을 국민연금이나 다른 연금수입으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소형 주택의 인기가 급상승해 가격이 크게 오름에 따라 다운사이징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이 경우 지금 살고 있는 지역보다 더 작은 생활비로 살아갈 수 있는 지역으로 이주를 생각해 볼만 하다. 작은 집과 저비용 지역으로의 이주는 요즘 베이비부머 사이에 떠오르는 관심사다.
다운사이징으로 확보한 현금을 어떻게 활용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사실 저금리 기조로 돈 운용에 상당한 제약이 따르는 현실이다. 보통 목돈이 생기면 이상하게도 돈 쓸 데가 나와 흐지부지 없어지기도 한다. 한탕을 노리고 주식 등 위험자산에 손을 댔다가 후회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다운사이징의 목표가 노후자금 확보이니 만치 현금흐름이 나오는 즉시연금이나 월지급식 상품을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필자는 중앙일보 재산리모델링센터 기획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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