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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경의 아세안 인사이트(1) 동남아 유니콘 ‘그랩’] 일상의 불편함 파고 들어 동남아 전역 장악

[고영경의 아세안 인사이트(1) 동남아 유니콘 ‘그랩’] 일상의 불편함 파고 들어 동남아 전역 장악

대중교통 부족, 신용카드 미비, 언어장벽 등 문제 정보통신기술 혁신으로 풀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대표적인 쇼핑몰 미드밸리 메가몰에 설치된 그랩과 우버의 승하차 장소 알림 간판.
지난 3월 말 그랩(Grab)은 우버(Uber)의 동남아 사업권을 인수했다. 성공한 스타트업의 상징인 우버가 동남아 유니콘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한국에서도 우버는 유명하지만 그랩은 생소한 기업이다. 그러나 동남아에서 그랩은 우버 못지 않게 유명한 기업이다. 방콕뿐만 아니라 자카르타나 하노이, 쿠알라룸푸르 등 동남아 어느 대도시 공항에서도 그랩의 커다란 광고판을 볼 수 있다. 이유가 있다. 그랩을 이용하면 바가지 요금을 신경 쓸 필요도, 행선지를 설명하기 위해 애를 쓸 필요도 없다. 그랩의 애플리케이션(앱)을 실행하고, 원하는 목적지를 입력한 후 차량을 기다리면 된다. 이용자를 위한 전용 대기장소가 있거나 게이트 넘버까지 고를 수 있다. 동남아 어디서나 그랩은 ‘필수 앱’으로 자리잡았다. 교통체증을 피해 전철을 타고 싶다면 전철역에서 차량 공유 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3월 말 우버의 동남아 사업권 인수
그랩은 현재 기업가치 6조원을 넘는 동남아 최대 유니콘(유니콘은 10억 달러 이상 기업가치를 지닌 스타트업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차량 공유 서비스는 우버가 미국에서 처음 선보였다. 에어비앤비와 함께 공유경제 시장을 창출한 우버의 기업 가치는 현재 70조원이 넘는다. 우버는 미국에서의 성공과 막강한 자금력, 앞선 기술력 등을 발판으로 동남아 시장에 진출했다. 그러나 그랩에 밀려서 결국 동남아 사업을 포기했다.

그랩은 어떻게 시장을 창출하고 글로벌 강자인 우버로부터 아시아 시장을 지켜냈을까? 우선 ‘혁신’이라는 화두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조지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 피터 드러커는 기존의 자원이 부(富)를 창출하도록 새로운 능력을 부여하는 활동이 ‘혁신’이라고 정의했다. 클레이 크리스텐슨은 한 발 더 나아가 파괴적 혁신을 주창했다. 우버가 가장 선진화된 시장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창조하는 혁신을 선보였다면, 그랩은 주목받지 못하는 지역에서 소비자가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을 개선하는 생활밀착형 혁신을 가져왔다. 그랩의 전신인 마이택시의 탄생이 바로 여기에서 시작됐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동창생인 앤쏘니 탄과 후이링 탄은 교내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택시 호출서비스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바탕으로 2012년 마이택시를 말레이시아에서 출시했다. 말레이시아의 택시는 노후 차량, 불친절한 서비스, 바가지 요금으로 세계 최악의 택시라는 오명을 안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런 불편함을 앱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스마트폰을 소유한 소비자가 늘면서 통화보다는 앱을 선호하기 시작했고 이용자가 늘기 시작했다. 이들은 서비스 론칭과 동시에 해외 진출에 나섰다. 2013년에 싱가포르와 필리핀, 태국에 진출했고, 2014년에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시장에 진입했다. 이용자나 운전자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하루에 150만건의 예약이 이뤄졌고, 94만건의 앱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2015년에는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으며 ‘그랩’으로 브랜드를 통합했다. 그랩택시, 그랩카, 그랩바이크, 그랩익스프레스와 그랩히치, 그랩풀링을 하나의 앱 안으로 담아 냈다. 2015년 중반부터 그랩카는 매달 평균 35%, 그랩바이크는 75%라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생활밀착형 혁신은 비단 말레이시아에서만 통한 것이 아니었다. 동남아 지역의 대도시들은 대체로 극심한 교통체증과 대중교통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차량공유 서비스의 수요가 컸다. 특히 6억5000만 명이 넘는 인구를 고려하면 수요가 어마어마한 것이다. 두 번째는 지불·결제방식이다. 동남아 인구의 60%가 신용카드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은행계좌가 없는 이들도 많다. 초기에는 은행들이 결제를 허용해주지 않았을 뿐더러 신용카드나 체크카드 보유자들도 앱에 등록해서 쓰는 점에 부담을 느끼기도 했다. 그랩은 현금결제와 카드결제를 모두 채택했다. 신용카드 결제를 고수하던 우버는 현금 결제는 도입했으나, 너무 늦은 대응이었다. 그랩은 2016년 그랩페이를 출시했다. 절대강자가 없는 동남아 지급결제 시장에 먼저 깃발을 꽂았다. 매일 수 백만 명의 인구가 그랩을 이용하고 있기에 당연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8개국 180개 도시에서 서비스
2017년 전체 호출예약 10억건이라는 기록을 달성했다. 미얀마와 캄보디아 시장에 진입하며, 8개국 180개 도시에서 운영하고 있다. 2018년 3월 기준으로 900만 이상 모바일 기기에 다운로드 됐고, 등록된 운전자가 270만 명을 넘어섰다. 동남아 시장의 77%를 점유하는 그랩은 명실상부 아시아의 대표적 플랫폼으로 자리를 굳혔다.

그랩의 밍 마 대표는 중국의 디디와 얀덱스가 각각 우버의 중국 사업과 러시아 사업 인수를 보며 하이퍼-로컬라이제이션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랩이 우버 동남아 사업을 인수하는 것으로 그의 신념과 전략적 가치를 충분히 입증했다. 최근 동남아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한국기업들은 그랩의 사례를 세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박스기사] 밍 마 그랩 대표 | 경영진도 고객센터에서 전화 받아


글로벌 강자인 우버를 누르고 시장을 이끈 성공 요인은?


“그랩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고객의 가치입니다. 우리 서비스는 고객의 가치향상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습니다. 하이퍼-로컬(Hyperlocal) 기업만이 고객들이 원하는 서비스 향상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저를 포함한 모든 경영진은 수시로 고객센터에서 직접 전화를 받고 고객의 소리를 직접 듣습니다.”



하이퍼-로컬라이제이션이 적용된 그랩만의 강점은?


“우리의 강점 가운데 하나는 인스턴트 메시지와 번역 서비스입니다. 동남아 일부 지역에서는 주소를 잘 찾을 수 없거나 주소가 불분명하기도 합니다. 여성 이용자들은 안전을 이유로 운전자와 직접 통화하기를 꺼리기도 합니다. 더구나 동남아 국가들이 제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의사소통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랩의 인스턴트 메시지와 번역 서비스가 이용자들의 불편과 두려움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고-젝(Go-jek)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다.


“인도네시아는 가장 크고 중요한 시장입니다. 고-젝은 강력한 경쟁자이지만 매출 규모에서 비교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오토바이 서비스가 많기 때문입니다. 오토바이 예약수수료는 기껏해야 1, 2달러로 차량 수수료보다 훨씬 낮습니다.



그랩은 동남아 전체를 아우르는 확고한 플랫폼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앞으로 성장전략은?


“먼저 차량공유 서비스를 동남아 70개 중소도시, 그리고 브루나이와 라오스까지 확장할 겁니다. 음식배달 서비스인 그랩푸드도 더 강화할 계획이고요. 그랩페이는 이미 사용 중이지만, 모바일 전자지갑 형태로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동남아에서도 현금은 점차 사라질 것입니다. 또 자율주행차 분야에 투자해왔고, 싱가포르부터 도입할 것입니다.”



최근 현대자동차·삼성전자와 파트너쉽을 맺었는데, 어떤 분야에 대한 협업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현대차와는 전기차 협업을 모색하고 있고, 삼성전자와는 모바일 기기, 미얀마의 키오스크 그리고 방대한 데이터를 이용한 다양한 접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 시장 진출 계획은?


“한국은 쉬운 시장은 아닙니다. 적합한 로컬 파트너가 있으면 그때 진출을 고려해볼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랩이 원하는 인재상이나 채용기준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겸손하고 성공에 대한 갈망이 있고, 그리고 문화적합성이 높은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 고영경 교수는 - 연세대 사회학과, 연세대 지역학협동과정 대학원과 고려대 경영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말레이시아 UNITAR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조교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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