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좀 더 현실적이고 비판적인 관점 보여줘야 ‘미스터 로봇’은 보안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해킹을 가장 정확히 묘사했다. / 사진:USA NETWORK요즘은 어디를 가든 온통 정보기술(IT)의 시대다. 그러니 영화나 TV 드라마가 흔히 IT를 다루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대중문화가 IT를 정확히 묘사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전문가들이 보기에 특히 극중에서 곧잘 부정확하게 그려지는 분야가 컴퓨터 해킹이다.
나는 지난 20년 동안 리눅스(유닉스 기반 개인컴퓨터용 공개 운영체제) 시스템 관리자로 활동했다. 시스템 관리자는 이메일과 웹사이트, 뉴스 시스템 같은 모든 종류의 인터넷 서비스가 순조롭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을 책임진다. 해킹 예방은 기본이다. 지금은 IT의 윤리와 사회적 영향을 연구한다. 따라서 대중문화에서 IT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관심이 많다.
내가 보기에 영화에서만 존재하는 듯한 운영체제가 있다. 이를 ‘무비OS’라고 불러도 좋다. 이 운영체제는 매우 흥미롭다. 끊임없이 나는 ‘삐-’ 소리,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리 키를 누르는 손, 도무지 끊나지 않는 듯한 진행상태 표시줄, 적시에 뜨는 경고창, 디지털 이미지의 일부분을 확대하고 또 확대해도 해상도가 떨어지지 않는 기적 같은 일 등.
그러나 무엇보다 신경에 거슬리는 것은 해킹 장면이다. 내 눈엔 한번도 그럴싸하게 넘어간 적이 없다. 극중에서 해킹은 흔히 초를 다퉈 정신없이 서두르는 작업으로 그려진다. 화면에 박스 창들이 번쩍이고 템포 빠른 음악이 긴장을 고조시킨다. 그러나 미국 환타지 드라마 ‘애로우’의 한 에피소드에서 주인공들은 화면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해킹’을 계속할 수 있다. 이 터무니없는 해킹 전쟁은 결국 일종의 테니스 경기로 변해 양측 해커들이 서로 전력 과부하를 주고받다가 마침내 상대편의 컴퓨터가 폭파하고 만다.
그런 장면은 현실성이 다소 떨어지지만 사실 해킹을 파괴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허구가 아니다. IT를 주제로 한 드라마 ‘미스터 로봇’에선 그런 전술이 더욱 그럴 듯하게 묘사된다. 한 에피소드에서 주인공 엘리엇은 수상한 회사 이코프가 소유한 백업 에너지 저장 장치에 해킹 디바이스를 심어 그곳에 소프트웨어를 업로드한다. 이 소프트웨어는 에너지 저장 장치를 폭파하는데 사용된다. 그런 장치는 대개 과부하가 걸리면 폭발성 수소 가스를 방출할 수 있는 납 축전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무비OS’는 현실세계에서 사용되는 운영체제의 능력이나 용도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 현실과 다른 판타지는 영화에선 아주 유용하다. 그러나 컴퓨터에 대한 일반인의 기대와 해킹에 관한 이해를 다룰 때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일반인이 취약한 해킹인 경우가 그렇다.
스크린샷이나 애니메이션으로 상황에 맞게 고안되는 ‘무비OS’는 환타지 기술이다. 그러나 해킹과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 세트 설계자에게 가장 인기 있는 현실적 운영체제가 있다. 바로 리눅스다. 리눅스는 많은 타이핑 입력이 필요하고 그 소프트웨어로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결과물을 프린트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리눅스는 ‘실제’ 해커가 자주 사용하는 운영체제다.
그 외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해킹 장면을 보여줄 때 사용하는 좀 더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네트워크 매퍼(Nmap)다. 네트워크 보안을 위한 유틸리티로 IP 패킷을 사용해 네트워크에 어느 호스트가 살아 있고, 그들이 어떠한 포트를 제공하며, 운영체제 버전이 무엇이며, 방화벽의 패킷 타입이 무엇인지 등 네트워크의 특징을 검사할 수 있는 일종의 스캐너다. 네트워크 매퍼가 인기 있는 것은 복잡한 컴퓨터 묘기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수많은 텍스트 줄이 신속하게 스크롤돼 지나가는 효과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이 프로그램은 다양한 해킹 활동에 사용될 수 있다. 해킹에 이용할 수 있는 ‘열린’ 포트를 찾는 것 같은 일에 실제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전문가도 그런 장면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스터 로봇’은 보안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해킹을 가장 정확히 묘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메일 피싱 사기, 직원 사칭 등 사회적 규범과 기대를 이용하는 수법이 기술적인 노력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실제로 더 크다. 게다가 피싱 공격은 상당히 큰 피해를 줘 해커가 자주 사용한다.
사이버테러를 다룬 액션 스릴러 ‘블랙코드’(2015년)는 다른 사람의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데 이메일 피싱이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려고 했다.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서다. 물론 설득력이 떨어진다. 미국 국가보안국(NSA)에서 일하는 사람이 그런 피싱 사기에 걸려들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런 종류의 사회공학적 기법이 정확히 묘사되는 것은 좋은 측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점도 있다. 예를 들어 일반인도 그런 피싱 수법을 더 잘 판별할 수 있어 범죄자의 해킹 시도를 늦기 전에 차단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건 순기능이다.
그러나 정확한 묘사가 오히려 문제를 초래하기도 한다. 10대 해커가 인증되지 않은 다이얼업 모뎀으로 전 세계를 핵전쟁의 위험에 노출시킨다는 내용의 영화 ‘위험한 게임’이 1983년 개봉되자 미국은 그 다음해 ‘컴퓨터 사기와 남용에 관한 법’을 도입했다. 영화에서 나오는 공격법을 해커가 따라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2003년 네트워크 매퍼의 현실적인 사용을 다룬 ‘매트릭스 2 - 리로디드’가 개봉되자 영국 런던 경찰청 컴퓨터범죄 전담부는 해커가 그 영화를 흉내 내지 말도록 경고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악당’이나 도덕적 가치가 의심스러운 대기업을 상대로 싸우는 해커를 묘사하는 영화와 드라마는 해킹을 낭만적으로 그려낸다. 그러나 현실에서 해킹은 여전히 불법이며 일반적으로 말해 비윤리적이다. 미국 컴퓨터학회(ACM)가 컴퓨터 전문가를 위해 제정한 윤리 규정의 최신 수정본은 ‘인가를 받았거나 공공의 이익을 위해 어쩔 수 없을 때만 컴퓨팅과 통신 자원에 접근할 수 있다’고 선포했다. 특히 공공의 이익이 접근 이유로 정당화되려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사전 예방조치를 철처히 취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미스터 로봇’의 엘리엇 같은 해커는 대기업에 맞서 싸울 도덕적인 우위를 확보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그 드라마에서 보듯이 그의 해킹은 무고한 사람에게도 복구하기 힘든 피해를 줄 수 있다.
따라서 해킹을 실감나게 정확히 묘사하는 것이 좋긴 하지만 때로는 현실감 없고 설득력도 떨어지는 극중의 해킹을 보며 그냥 웃어넘기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대중문화가 실제 해킹이 어떤지 좀 더 정확히 보여주기를 원한다. 그 범죄로 어떤 결과가 초래되며 해커가 어떤 처벌을 받는지도 현실적으로 보여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선 ‘미스터 로봇’이 그중에서도 나은 편이지만 아직도 드라마와 영화는 IT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좀 더 현실적이고 비판적인 관점을 보여주는 측면에서 상당히 미진하다.
- 캐서린 플릭
※ [필자는 영국 드몽포르대학 컴퓨팅&사회적 책임 전문 교수다. 이 글은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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