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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이솝투자학] 돈 벌면 쫄고 잃으면 용감해지는 투자자들

[서명수의 이솝투자학] 돈 벌면 쫄고 잃으면 용감해지는 투자자들

위험회피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 포트폴리오 전체로 손익 판단해야



어느 날 헛간에서 쥐들의 회의가 열렸다. 고양이한테 당하는 피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이젠 더 이상 안 되겠어. 고양이 때문에 마음 놓고 살 수가 있어야지.” “그래 맞아. 어제 내 친구가 뒤뜰에서 놀다가 고양이한테 또 당했어. 이대로 가다간 우리 모두 고양이의 밥이 되고 말거야. 빨리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해. 좋은 방법이 없을까?” 무슨 일이든 나서기 좋아하는 쥐가 먼저 입을 열었다. “고양이가 나타나면 날쌔게 도망칠 수 있도록 매일 달리기 연습을 하는 건 어떻까?”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우리가 아무리 빨리 달려 봤자 고양이는 한걸음에 따라잡을걸?” 쥐들은 저마다 고양이를 물리칠 방법을 얘기했지만 그다지 좋은 의견이 나오지 않았다. 한참 후 꾀가 많은 쥐가 자신있게 말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거야. 그럼 고양이가 나타날 때마다 방울이 딸랑딸랑 울리겠지. 그 소리를 듣고 미리 도망치면 고양이한테 잡아먹히는 일은 없지 않겠지?” 쥐들은 무릎을 쳤다. “야. 그거 멋진 생각이야.” 그때 한 쪽 구석에서 조용히 듣고만 있던 늙은 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말 훌륭한 생각이구나. 그런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환호성을 지르던 쥐들은 입을 다문 채 서로 눈치만 살폈다. 목숨을 걸고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다는 쥐는 한 마리도 없기 때문이다.
사진:© gettyimagesbank
꼭 필요한 일이라도 위험이 따른다면 포기하려는 마음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때 자기합리화를 하며 그 상황을 빠져나가려는 사람이 많다. 이 우화의 쥐들처럼 무임승차 심리가 발동, 누군가 그 일을 해놓으면 공짜로 이용하려 하기도 한다.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건 불확실성이다. 아무리 혹하는 재료가 나와도 경제 등 주변 상황이 불확실하면 잘 움직이지 않는다. 반대로 불확실성의 안개가 걷히면 재료에 대해 빠르게 반응한다. 이는 투자자들은 위험회피적 성향이라는 걸 보여준다. 퇴직연금 가입자 90% 이상이 안정성 위주인 은행 예금을 선호한다는 사실에서도 위험회피적 성향을 읽을 수 있다. 여기서 위험이라는 것은 시장 변동성, 경제적 사건 등으로 돈을 잃을 가능성을 말한다. 이런 위험회피적 성향은 매매행태에서도 잘 드러난다. 주가가 떨어져 본의 아니게 주식을 오래 보유하다가 원본이 회복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매도에 나서는 것이 대표적이다. 주가가 매도 후에도 오른다 하더라도 섣불리 재매입을 하지 못한다. 상승장에서 주가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데도 돈 벌 기회를 발로 차 버리고 한숨 짓는 개인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돈 벌수록 위험회피 성향 강해져
위험회피 성향은 한계효용이 체감하는 돈의 성질로도 설명할 수 있다. 사람의 행복은 돈이 많아질수록 증가하지만 그 증가율은 감소한다. 부가 늘어나면서 추가된 부의 증가분의 영향력은 떨어진다는 말이다. 예컨대 가난한 사람에게 1억원은 횡재지만 재벌 오너에겐 큰 의미가 없다. 돈이 많을수록 더 벌려고 모험을 감행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보자. 재산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 확실히 얻을 수 있는 100만원과 50%의 확률로 얻을 수 있는 200만원 중 선택을 할 경우 확실한 쪽인 전자를 택할 가능성이 크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따라 200만원 중 추가적인 100만원의 가치는 첫 번째 100만원의 가치보다 낮아진다. 50%의 확률에 불과한 200만원을 얻기 위해 확률 100%인 첫 번째 100만원을 날려버릴 위험을 감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돈의 효용과 액수의 관계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초기엔 가파르게 오르다 나중엔 완만해진다. 주식 투자자들이 이익 구간에선 돈 벌려는 욕심이 줄어 ‘이 정도면 배부르다’며 위험을 피하려는 심리가 작용한다는 의미다. 우리가 왜 상승장에서 수익이 난 주식을 재빨리 매도해 수익을 더 키울 기회를 발로 차버리는지 그 이유가 여기서 밝혀졌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언제나 위험회피적인 건 아니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가정해보자. A회사 주식과 B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두 주식 모두 100만원에 샀다. 현재 A회사는 50만원이고 B회사는 150만원이다. 이번 달 아파트 관리비 50만원을 내야 하는 데 현금이 없다. 그래서 둘 중 하나를 팔아야 한다. 개인들은 이 상황에서 십중팔구 이익을 보고 있는 B주식을 팔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이익을 내고 있는 주식을 팔고 손실을 내고 있는 주식을 보유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투자자들은 이익 구간에선 위험회피적이지만 손실 구간에선 위험선호적이란 가정이 어느 정도 성립되는 건 아닐까.

이스라엘 출신 심리학자로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캐너먼은 이런 관점에서 위험에 대한 선택의 문제를 다뤘다. ‘전망이론’라는 것인데 현대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전망이론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인간이 손실을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것이다. 이를 ‘손실회피’ 성향이라고 한다. 손실 회피는 한마디로 이익이 가져다주는 기쁨보다 손실이 가져다주는 고통이 더 큰 현상을 말한다. 부의 효용곡선을 이익 구간과 손실 구간으로 나눠 그래프를 그려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는다. 효용곡선은 전체적으로 S자 형태를 취하는데, 이익 구간보다 손실 구간에서 훨씬 더 가파르게 하강한다. 이익 구간에서 굳이 위험을 안으려 하지 않는 성향이 손실 구간으로 넘어오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려는 성향으로 바뀐다. 손실을 끔찍하게 싫어하기 하기 때문에 위험 앞에서 용감해진다는 말이다. 즉 사람들은 이익 구간에선 ‘위험회피적’이지만 손실 구간에선 ‘위험 선호적’이 된다는 것이다.
 포트폴리오 종목 5~6개로 압축해야
위험선호 성향은 본전을 만회할 가능성이 어느정도 있을 때 강하게 나타난다. 본전 만회 가능성이 적을 때엔 손실 상황은 그다지 위험선호 성향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보유 주식이 손실이 날 경우 주식을 추가 매수해 매입 단가를 낮추는 ‘물타기’는 손실 구간에서 위험선호 성향을 잘 보여준다. 물타기는 자칫 손실 폭을 더 키워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 가망이 없는 주식이라면 물타기가 아니라 손절매를 하는 것이 슬기로운 투자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또 종목별로 손익을 따질 것이 아니라 포트폴리오 전체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손실회피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을 낮추는 결과가 된다.

그렇다면 포트폴리오 투자를 할 때 종목 수를 얼마로 해야 적정한 것일까. 이와 관련, 워런 버핏은 투자하는 기업의 수를 아내에 비유했다. 아내의 수가 많으면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했다. 같이 사는 아내를 자세하게 알아야 하는 것처럼, 투자하는 기업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파악해야 놓아야 한다며 이런 비유를 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투자하는 대상이 많아선 안 된다는 말이다. 분산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집중투자라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개인으로선 포트폴리오 종목을 5~6개로 압축해 놓으면 투자 위험도 줄고 관리도 편해진다고 말한다.



※ 필자는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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