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일자리는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일자리는 어디로 갔을까
자동화와 인공지능이 완벽할 필요도 없다. 고비용의 인간보다 약간만 잘하면 대다수 인간 근로자를 대체할 수 있다 미국의 9번 도로는 보스턴을 지나 매사추세츠주를 가로질러 인구 약 5만 명의 버크셔 카운티 최대 도시 피츠필드로 접어든다. 계속해 피츠필드 동쪽으로 한참 뻗어나간 뒤 우스터 로드로 이름이 바뀐다. 과거 미국 최대 철사 산지였던 도시에서 따온 이름이다. 가시철선·전선·전화선 그리고 한때 미국에서 여성 인력이 가장 많았던 로얄 우스터 콜셋사의 속옷 제조에 사용되던 철사다. 고령의 우스터 주민은 아직도 하루의 작업 개시와 종료를 알리는 공장의 종소리를 기억한다.
지금은 종소리가 끊겼으며 철사·콜셋 공장이 있던 자리에는 미국의 3대 고용업체 월마트·타겟·홈디포가 들어섰다. 요즘 귀에 익은 스토리 아닌가? 소매유통이 제조업을 제치고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업종으로 올라선 지 20년 가까이 됐다. 대략 미국 근로자 10명 중 1명이 이 업종에 종사한다. 헬스케어와 건설업을 합친 숫자보다 많다. 대단히 많은 일자리다.
물론 소매유통 일자리라고 전부가 흔히 말하는 좋은 일자리에 해당하는 건 아니다. 오늘날 소매유통 분야에서 관리감독직이 아닌 근로자의 평균 시급은 11.24달러다. 어떤 형태로든 수당을 받는 비율은 절반에 못 미친다. 하지만 미국은 국가적으로 이런 트렌드와 일종의 거북한 동거를 시작했다. 오늘날 미국의 제조업 종사자가 과거보다 크게 줄었음은 익히 알려졌다. 아이패드와 맥은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으며 많은 TV·전자제품·도구·완구·의류 또한 마찬가지다. 이런 전자제품·도구·완구·의류 쇼핑이 미국인의 전형적인 여가생활이라는 점도 누구나 안다. 미국인은 하루 평균 45분 가까이를 제품과 서비스 쇼핑에 소비한다(연간 279시간 이상). 소매유통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세계가 됐으며 많은 미국인이 그 세계를 삶의 터전으로 삼기를 기대한다.하지만 전통적인 소매유통업이 위협받고 있다. 미국 경제의 거의 모든 업종에 혁신적 와해를 몰고온 변화의 영향이다. 지난 10월에 발표된 역사적으로 낮은 실업률 통계는 환호뿐 아니라 혼란도 초래했다.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완전고용’에 이르렀음을 감안할 때 그런 혜택을 체감하지 못하는 미국인이 왜 그렇게 많을까? 어쨌든 과거 어느 때보다 미국인의 교육수준과 생산성은 높아졌다.
하지만 실상을 알고보니 손해 보는 듯한 사람들의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 자신의 학력과 생산성에 걸맞은 보상을 받지 못하는 미국인이 80%를 넘는다. 실업은 통계상 역사적인 저점 수준이지만 하향취업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24~55세 남성 중 풀타임직에 종사하지 않는 비율이 딱 20%이며 전체 신규 대졸자 중 학력에 맞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비율이 절반에 육박한다(일반 통념과 달리 대학생들의 전공 선택이 모두 비현실적이지는 않으며 어림잡아 40%는 경영·법학·행정학 같은 ‘직업’ 관련 분야의 학위를 취득한다. 1970년 이후 그 비율이 80% 증가했다).
그리고 승차공유 서비스 우버 기사와 애완견 산책 대행 프리랜서는 통계상 ‘고용’으로 간주되지만 통상적으로 생활임금을 제공하는 직업에 속하지 않는다. 요컨대 기술은 빛의 속도로 발전했지만 근로자가 이런 변화에 대처하도록 돕기 위한 정책은 한참 뒤졌다. 따라서 기술변화의 금전적 혜택은 대부분 극소수에게 돌아가며 대다수 미국인에게는 부스러기만 남게 된다. 그들의 능력이나 잠재력이 반영되지 않는 위태롭고 불안정한 고용이다.라이스대학의 컴퓨터 학자 모셰 발디 교수는 “우리는 인류 역사상 특이한 시점에 이르렀다”며 “거대한 변화의 문턱에 서 있다”고 말했다. 이는 소매유통 업종에 큰 과제를 안겨준다. 수익성에 관한 한 오프라인 상점은 아무리 효율적으로 운영되더라도 전자상거래 업체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전자상거래는 2014년 이후 단연 가장 빨리 성장하는 소매유통 분야가 됐다. 아시아의 시가총액 최고 업체인 중국 알리바바 그룹은 경쟁이 극히 치열한 분야에서 세계 최대 기업이다. 그러나 이제껏 미국에 발판을 마련하지 못했다. 미국에선 최고의 고용 증가율을 자랑하는 아마존이 제왕으로 군림한다.
2020년에는 수조 달러 규모 미국 소매유통 시장의 20%가 온라인으로 이동하고 그 파이 중 3분의 2를 아마존이 독차지하게 된다고 분석가들은 예측한다. 미국인이 온라인에서 2달러를 지출할 때 1달러는 아마존의 수중으로 떨어지며 아마존은 도서·음악·비디오게임·휴대전화·전자제품·소형가전·완구·잡지 정기구독과 기타 거의 모든 상품의 미국 내 최대 판매업체다. ‘만물상점(The Everything Store)’이라는 별명도 거기서 나왔다.
아마존은 자체 식품 라인을 포함해 거의 모든 소매유통 항목에서 상당한 비중의 시장을 점유한다. TV 프로그램과 영화를 제작하고, 배터리부터 이유식까지 수천 종의 제품을 생산하며, 재포스(신발 쇼핑몰)·샵밥(의류 쇼핑몰)·IMDB(영화 데이터베이스)·오더블(오디오북 서비스)·트위치(인터넷 게임 방송) 같은 유명 브랜드를 소유한다. ‘아마존 핸드메이드’가 수공예품 시장에서 엣시에 도전하며 아마존 비즈니스는 스테이플스를 비롯한 기타 독립 사무용품 공급업체를 위협한다. 그리고 우리가 클릭할 때마다 중요한 정보가 아마존으로 넘어간다(주소와 신용기록뿐 아니라 아마존 사이트에서 우리가 구매하거나 관심을 보였던 모든 제품). 그 데이터를 이용해 우리 개개인과 밀접한 관계를 구축해 더 많은 구매를 이끌어 내려는 목적이다.아마존은 자동화와 시장 판도를 바꾸는 킬러 비즈니스 모델 덕분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효율성을 발휘한다. 나름 상당한 규모의 온라인 사업을 펼치는 월마트에 비해 종업원 한 명 당 매출액이 그 2배에 근접할 정도다. 아마존은 세계 각지의 창고에 10만 대 이상의 로봇을 배치해 인간과 ‘완벽한 공생관계’에서 작업하도록 하며 앞으로 수만 대를 더 설치할 계획이다. 완벽한 공생관계의 구성요소가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아마존은 로봇 덕분에 창고 당 연간 2200만 달러를 절약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존이 그리는 자동화 미래의 마스터플랜에는 무인기와 자율주행 차량을 이용한 상품배달도 포함된다.
아마존이 세계 각지에 창고를 신설하면서 수많은 인력을 충원하지만 그들이 직원(풀타임이든 파트타임이든) 한 명을 고용할 때마다 전통적인 오프라인 사업장 인력 2명이 줄어든다고 추산된다. 그리고 그것은 예외가 아니라 주요 특장점이다. 베테랑 IT 분석가 팀 린드너가 업계 관계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털어놓았듯이 일자리의 소멸이 모든 온라인 소매유통업체의 명백한 목표다. 언젠가 그는 이렇게 썼다. “창고 사업에선 인건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아마존이 유통센터 내에서 고도의 자동화를 추진하고 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아마존은 고객주문 처리에 필요한 인원을 추가 삭감할 수 있는 별도의 기술을 보유한다. 프로그래머 사이의 오랜 속담에 ‘쓰레기를 입력하면 쓰레기가 나온다’는 말이 있다. 창고 상품 반입창구 인력의 독해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쓰레기 투입’ 문제를 해결하는 자동화된 솔루션을 찾는 것이 지상과제다. 아마존이 지금 그런 기술 특허를 냈을지도 모른다.”여기서 린드너 분석가가 말하는 쓰레기는 인간의 오류를 의미한다. 그 대안은 필시 로봇의 정확성인 듯하다. 그리고 로봇은 특히 반복 작업에 관한 한 매우 정확한 편이다. 과거 보스턴에 본사가 있던 리씽크 로보틱스가 개발한 산업 로봇 소이어(Sawyer)는 로봇팔이 얼마나 유용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소이어는 로봇 청소기 룸바와 팩봇(PackBot)의 개발자인 로드니 브룩스의 작품이다. 팩봇은 9·11 테러 후 월드트레이드센터에서 그리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벙커를 파괴하는 데 사용됐다. 소이어는 룸바·팩봇과 달리 사람과 거의 비슷하다. 평면 스크린의 동화상 얼굴과 다리를 대신하는 바퀴가 있다. 원숭이 형태의 팔을 잡고 조절하면서 일련의 동작을 가르치면 작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어떤 반복적인 절차든 ‘학습한다.’ 소이어는 거의 사람처럼 빠르고 매끄럽게 물체를 감지하고 조작할 수 있으며 대가를 거의 요구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산업 로봇은 코드를 작성하고 오류를 제거하는 데 고비용의 엔지니어와 프로그래머가 필요하지만 소이어는 고등학교 중퇴자도 5분 이내에 프로그램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브룩스 개발자는 과거 소이어(그리고 앞선 모델인 두 팔을 가진 백스터 로봇)는 통틀어 시간 당 4달러도 안 되는 ‘임금’으로 일할 것이라고 추산했다.일과 그 미래에 관한 토론에서 로봇의 역할이 크게 부각된다. 그런 대화는 쉬 그릇된 가정에 빠져들 수 있다. 최근까지 자동화가 대규모로 인간 근로자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는 이론을 반신반의하는 경제학자가 많았다. 예전부터 로봇이 더 뛰어난 작업 분야의 인간 종사자는 다른 분야로 전환 배치됐다. 그러나 ‘비교 우위’의 경제원칙은 인간이 많은 분야에서 우위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본다. 이런 논리에서는 신기술이 인간을 대체하기보다는 그런 일에서 해방시켜 덜 위험하고 더 도전할 가치 있는 일, 본질적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일을 떠맡게 해준다.
예컨대 미국고속도로교통안전국은 ‘소프트웨어’를 자율주행차의 운전자로 공식 인정해 미국의 직업 운전자(택시·트럭·버스·우버) 410만 명을 긴장시켰다. 이론상 그에 따라 이 기사들이 자유를 얻어 아마존의 창고 업무 같은 새 일자리를 채우게 된다. 그러나 이들 창고도 자동화되고 있으며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중급 기술 근로자(middle-skill workers)’ 대다수가 한때 채우고 있던 수많은 다른 일자리도 마찬가지다. 과거 미국 중산층을 이루고 떠받치던 사람들이다. 딸의 결혼식에 착용할 정장을 고를 때 치수를 재주던 백화점 판매원, 결혼 기념 만찬용 고기를 썰어주던 정육점 주인, 신혼여행 계획 수립을 도와준 여행사 직원 같은 근로자다.물론 인간 근로자는 번거롭다. 지치고 배 고프고 한눈 팔고 화내고 혼동한다. 실수할 뿐 아니라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한다. 기계는 인간 같은 약점과 편견이 없으며 선입견이나 그릇된 가정 없이 증거를 공정하게 저울질하기에 더 좋은 조건을 갖췄다. 어쩌면 결정적으로 인간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할 수 있으며 그런 데이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구글은 미국에서만 매일 1분마다 360만 건의 검색 결과를 제공한다. 스팸업자들이 발송하는 이메일은 1억 통, 모바일 메신저 스냅챗 이용자가 보내는 사진은 52만7000개, 웨더 채널이 방송하는 일기예보는 1800만 건에 달한다. 이를 포함해 더 많은 데이터를 적절히 수집·분류·분석한 뒤 그것을 적용해 어떤 고차원의 작업이든 거의 자동화할 수 있다. 인간의 경험과 직관을 대신해 데이터가 사용될 수도 있다. 온라인 쇼핑과 소셜미디어는 우리의 취향을 ‘숙지’해 그 정보를 토대로 가치관에 기반한 평가를 내려 우리 결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한때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지던 업무에서 갈수록 기계가 더 우수한 성과를 올린다.
발디 교수는 “컴퓨터는 보고 들을 수 있으며 사람보다 훨씬 우수한 얼굴인식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기계의 인간 세계 이해 수준이 불과 몇 년 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그리고 인간의 두뇌에서 모델화할 수 없는 특성은 하나도 없다.”
버트 셀먼은 코넬대학 컴퓨터학 교수이자 지식표현(knowledge representation) 전문가다. 지식표현은 기본적으로 현실세계를 컴퓨터가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는 용어로 번역하는 방식이다. 그는 컴퓨터가 아직은 인간의 능력을 완벽히 갖추지 못했다고 전제한다. 예컨대 ‘상식’ 그리고 언어의 깊은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인간의 의식 흐름처럼 ‘의미를 만들지’ 못해 때로는 샛길로 빠져버린다. 하지만 이런 단점은 일시적일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인공지능 커뮤니티에선 향후 15~20년 이내에 기계가 인간의 지능과 대등해지리라고 내다본다.”그리고 로봇이 완벽할 필요는 없다. 비싸고 복잡한 인간과 대등하거나 약간 나은 수준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과학기술자들이 로봇을 약간 우수하게 만들려 땀 흘리고 있다. 예컨대 소매유통의 경우 많은 사람이 셀프 계산대를 기피한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자신이 직접 하기보다는 계산원에게 쇼핑 정산을 맡기는 쪽을 선호하는 셈이다. 따라서 계산원의 일자리(대형 소매유통 고용 항목 중)가 당장 위험에 처하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셀프 계산대는 첫 단계에 불과하며 그리 스마트하지도 않다고 소매유통업을 전문으로 하는 매사추세츠공대 경영 전문가 제이넵 톤 교수는 말한다. “고객은 셀프 계산대가 단순히 그 작업을 자신들에게 떠넘기는 방법일 뿐 혁신은 아님을 알아채고는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셀프 계산대를 훨씬 더 쉽고 빠르게 만드는 신기술이 곧 등장하면 소매유통 고용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수년 전 이른바 소매유통의 종말에 관한 예측이 있었지만 아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실제로 한 기업이 기존 매장을 닫을 때마다 다른 2개 기업이 새로 매장을 열고 있다. 소매유통은 고도로 경쟁적인 산업이며 신기술이 우리의 쇼핑 방식뿐 아니라 브랜드와의 소통 방식을 바꿔놓고 있다. 예컨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마존이 실제 오프라인 소매점을 열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리고 전자상거래의 비중이 소매유통의 10%까지 확대됐지만 여전히 오프라인 매장이 90%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들 오프라인 매장도 급격한 변화를 거치면서 미국의 노동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딜로이트 컨설팅의 케이지 러바우 소매유통 최고혁신책임자(CIO)는 “전통적인 소매유통 업체의 시장점유율 하락은 단순히 전통적인 소매업체가 전자상거래 게임에서 밀려나는 ‘온라인 vs 오프라인’의 대결 구도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른바 ‘(발목을 무는) 앵클 바이터(ankle biters)’들도 전통적인 소매유통업체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신기술 덕분에) 큰돈 쓰지 않고도 소비자에게 접근할 수 있는 작고 민첩한 기업들이다.
예컨대 러바우 CIO는 푸드 트럭의 예를 들며 갈수록 많은 패스트푸드점을 위협한다고 설명한다. 한 지역에 고정된 음식점과 달리 푸드 트럭은 이동성이 뛰어나다. 어떤 특정한 시간 대에 고객이 가장 많이 모일 가능성이 큰 지역을 공략할 수 있다. 특정 지역 또는 나아가 동네에 따라 맞춤 메뉴를 마련할 뿐 아니라 페이스북이나 기타 미디어를 이용해 메뉴와 위치를 홍보할 수도 있다.
소규모 전문점도 대형 백화점보다 훨씬 더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러바우 CIO는 “신기술 덕분에 신시장 진입 비용이 낮아져 소매유통 업계에서 기존의 공룡 기업은 줄어드는 반면 소형 경쟁업체는 늘었다”고 말했다. “기업이 다각화를 통해 소비자의 특정 수요와 욕구에 부응하고 있다. 모두에게 돌아가는 몫이 줄고 있지만 그런 파이 조각이 더 많아진다.”
신기술은 소매유통 업계에 2단계 구도를 형성했다. 주로 고액 소득자에게 어필하는 고급 부티크 스타일 매장이 증가하고 가격에 민감한 고객에게 어필하는 할인점은 훨씬 많이 늘어났다. 러바우 CIO는 “올해에만 미국에서 1000개가 넘는 할인점이 문을 열었으며 이른바 ‘프리미어’ 고급 틈새 매장 수도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줄어드는 것은 마케터들이 말하는 이른바 ‘균형 지향’ 매장이다. 중급 시장 고객 대상으로 품질과 가격의 균형을 맞추는 백화점과 기타 소매유통업체를 가리킨다.어쩌면 ‘균형 지향’ 매장의 감소가 지난 10년 사이 미국 중산층의 쇠퇴와 연관됐음도 놀랍지 않다. 러바우 CIO는 “2007~2017년 소득 증가(평균 5만 달러의 가계소득 증가)가 대부분 상위 20% 소득자에게 집중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하위 40%의 소득이 줄었기 때문에 이들 그룹의 소득이 평균 증가분의 100% 이상 상승했다. 중류층 40%의 소득은 가구 당 1만 달러 증가했다. 그러나 식품·주택·교통 같은 지출도 커졌다. 헬스케어 비용 지출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거기에 휴대전화와 데이터 이용료 같은 필수 디지털 서비스도 더해졌다. 그에 따라 대부분 소매유통 시장에 지출할 돈이 거의 남지 않게 됐다. 이는 사람들이 가격에 대단히 민감해졌다는 의미다.”
러바우 CIO는 이 모든 트렌드가 “혁신적 변화를 몰고 온다”고 말할 뿐 그것이 소매유통 종사자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섣불리 추론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할인점의 경우 매장 단위 면적 당 고용인원뿐만 아니라 임금과 근로시간이 적은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지난 10년 사이 실제로 점원 당 근무시간이 줄었다. 시카고 기반의 글로벌 전직알선&경력전환 업체 챌린저·그레이&크리스마스의 존 챌린저 CEO는 앞으로 더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1980년 대와 1990년대 제조업이 겪은 변화의 도입단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매장 근로자는 신기술에 취약하며 밝혀지지 않은 숫자가 대체된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모든 소매유통 근로자가 어디로 갔느냐는 질문에 그는 상당수가 트럭운전·운송·물류 다시 말해 창고업에서 새 일자리를 찾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쨌든 지난 10월 아마존은 창고와 소매 매장의 최저임금을 시간 당 15달러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상당수 소매유통 종사자 입장에서는 큰 폭의 인상이다.
그러나 아마존은 올해 최고의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리라고 예측하면서도 채용한 계절적 근로자가 예년보다 훨씬 적었다. 앞선 2년 동안 12만 명이었지만 올해엔 10만 명이다. 아마존 대변인은 이런 인력감소가 자동화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는 듯하다. 모건 스탠리의 브라이언 노왁 분석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아마존의 임금인상을 걱정하는 주주들을 진정시켰다. 자동화의 영향으로 인력수요가 감소했고 앞으로도 계속 줄어 전체 원가가 낮아지리라는 지적이었다. 이에 관해 질문하자 러바우 CIO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소매유통 업종의 입지가 좁아지지는 않았지만 그 업종 종사자들은 또 다른 문제라고 말할 뿐 다시 교묘하게 답변을 피했다.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다”는 말뿐이었다.컬럼비아대학 기계공학과 호드 립슨 교수는 자신이 이끄는 ‘크리에이티브 머신 랩’에서 학생들과 함께 기계를 대상으로 사고·호기심·창의성 훈련을 시킨다. 인터뷰 당시 교수는 새 주방기기에 마지막 손질을 가하고 있었다.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반죽·젤·파우더·액체 재료를 혼합해 근사하게 요리된 별미 음식을 만들어내는 기기다. 보기에는 별 3개짜리 미슐랭 요리사를 위시한 전체 보조 스태프와 경쟁할 수 있을 법하다. 그런 인상을 말하자 립슨 교수는 신음을 토해냈다. 그는 자신과 같은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은 본능적으로 거의 모든 어려운 과업을 자동화하려는 충동을 느낀다고 말한다. 엔지니어링의 본질은 단순노동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것이 과거에는 거의 언제나 옳고 좋은 일이었지만 지금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그는 덧붙였다.
“자동화와 인공지능이 우리 일자리를 거의 대부분 빼앗아갈 것이다. 우리 일생 중 아니면 우리 손자 세대에는 벌어질 일이다. 인류 역사에 새로운 시대를 맞았는데 우리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 어쩌면 마음의 준비는 됐더라도 실제 대책은 없다.”
- 엘런 러펠 셸
※ [이 기사는 엘렌 러펠 셸의 저서 ‘급변하는 시대의 일과 그 미래(The Job: Work and Its Future in a Time of Radical Change)’를 발췌·축약한 내용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금은 종소리가 끊겼으며 철사·콜셋 공장이 있던 자리에는 미국의 3대 고용업체 월마트·타겟·홈디포가 들어섰다. 요즘 귀에 익은 스토리 아닌가? 소매유통이 제조업을 제치고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업종으로 올라선 지 20년 가까이 됐다. 대략 미국 근로자 10명 중 1명이 이 업종에 종사한다. 헬스케어와 건설업을 합친 숫자보다 많다. 대단히 많은 일자리다.
물론 소매유통 일자리라고 전부가 흔히 말하는 좋은 일자리에 해당하는 건 아니다. 오늘날 소매유통 분야에서 관리감독직이 아닌 근로자의 평균 시급은 11.24달러다. 어떤 형태로든 수당을 받는 비율은 절반에 못 미친다. 하지만 미국은 국가적으로 이런 트렌드와 일종의 거북한 동거를 시작했다. 오늘날 미국의 제조업 종사자가 과거보다 크게 줄었음은 익히 알려졌다. 아이패드와 맥은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으며 많은 TV·전자제품·도구·완구·의류 또한 마찬가지다. 이런 전자제품·도구·완구·의류 쇼핑이 미국인의 전형적인 여가생활이라는 점도 누구나 안다. 미국인은 하루 평균 45분 가까이를 제품과 서비스 쇼핑에 소비한다(연간 279시간 이상). 소매유통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세계가 됐으며 많은 미국인이 그 세계를 삶의 터전으로 삼기를 기대한다.하지만 전통적인 소매유통업이 위협받고 있다. 미국 경제의 거의 모든 업종에 혁신적 와해를 몰고온 변화의 영향이다. 지난 10월에 발표된 역사적으로 낮은 실업률 통계는 환호뿐 아니라 혼란도 초래했다.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완전고용’에 이르렀음을 감안할 때 그런 혜택을 체감하지 못하는 미국인이 왜 그렇게 많을까? 어쨌든 과거 어느 때보다 미국인의 교육수준과 생산성은 높아졌다.
하지만 실상을 알고보니 손해 보는 듯한 사람들의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 자신의 학력과 생산성에 걸맞은 보상을 받지 못하는 미국인이 80%를 넘는다. 실업은 통계상 역사적인 저점 수준이지만 하향취업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24~55세 남성 중 풀타임직에 종사하지 않는 비율이 딱 20%이며 전체 신규 대졸자 중 학력에 맞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비율이 절반에 육박한다(일반 통념과 달리 대학생들의 전공 선택이 모두 비현실적이지는 않으며 어림잡아 40%는 경영·법학·행정학 같은 ‘직업’ 관련 분야의 학위를 취득한다. 1970년 이후 그 비율이 80% 증가했다).
그리고 승차공유 서비스 우버 기사와 애완견 산책 대행 프리랜서는 통계상 ‘고용’으로 간주되지만 통상적으로 생활임금을 제공하는 직업에 속하지 않는다. 요컨대 기술은 빛의 속도로 발전했지만 근로자가 이런 변화에 대처하도록 돕기 위한 정책은 한참 뒤졌다. 따라서 기술변화의 금전적 혜택은 대부분 극소수에게 돌아가며 대다수 미국인에게는 부스러기만 남게 된다. 그들의 능력이나 잠재력이 반영되지 않는 위태롭고 불안정한 고용이다.라이스대학의 컴퓨터 학자 모셰 발디 교수는 “우리는 인류 역사상 특이한 시점에 이르렀다”며 “거대한 변화의 문턱에 서 있다”고 말했다. 이는 소매유통 업종에 큰 과제를 안겨준다. 수익성에 관한 한 오프라인 상점은 아무리 효율적으로 운영되더라도 전자상거래 업체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전자상거래는 2014년 이후 단연 가장 빨리 성장하는 소매유통 분야가 됐다. 아시아의 시가총액 최고 업체인 중국 알리바바 그룹은 경쟁이 극히 치열한 분야에서 세계 최대 기업이다. 그러나 이제껏 미국에 발판을 마련하지 못했다. 미국에선 최고의 고용 증가율을 자랑하는 아마존이 제왕으로 군림한다.
2020년에는 수조 달러 규모 미국 소매유통 시장의 20%가 온라인으로 이동하고 그 파이 중 3분의 2를 아마존이 독차지하게 된다고 분석가들은 예측한다. 미국인이 온라인에서 2달러를 지출할 때 1달러는 아마존의 수중으로 떨어지며 아마존은 도서·음악·비디오게임·휴대전화·전자제품·소형가전·완구·잡지 정기구독과 기타 거의 모든 상품의 미국 내 최대 판매업체다. ‘만물상점(The Everything Store)’이라는 별명도 거기서 나왔다.
아마존은 자체 식품 라인을 포함해 거의 모든 소매유통 항목에서 상당한 비중의 시장을 점유한다. TV 프로그램과 영화를 제작하고, 배터리부터 이유식까지 수천 종의 제품을 생산하며, 재포스(신발 쇼핑몰)·샵밥(의류 쇼핑몰)·IMDB(영화 데이터베이스)·오더블(오디오북 서비스)·트위치(인터넷 게임 방송) 같은 유명 브랜드를 소유한다. ‘아마존 핸드메이드’가 수공예품 시장에서 엣시에 도전하며 아마존 비즈니스는 스테이플스를 비롯한 기타 독립 사무용품 공급업체를 위협한다. 그리고 우리가 클릭할 때마다 중요한 정보가 아마존으로 넘어간다(주소와 신용기록뿐 아니라 아마존 사이트에서 우리가 구매하거나 관심을 보였던 모든 제품). 그 데이터를 이용해 우리 개개인과 밀접한 관계를 구축해 더 많은 구매를 이끌어 내려는 목적이다.아마존은 자동화와 시장 판도를 바꾸는 킬러 비즈니스 모델 덕분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효율성을 발휘한다. 나름 상당한 규모의 온라인 사업을 펼치는 월마트에 비해 종업원 한 명 당 매출액이 그 2배에 근접할 정도다. 아마존은 세계 각지의 창고에 10만 대 이상의 로봇을 배치해 인간과 ‘완벽한 공생관계’에서 작업하도록 하며 앞으로 수만 대를 더 설치할 계획이다. 완벽한 공생관계의 구성요소가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아마존은 로봇 덕분에 창고 당 연간 2200만 달러를 절약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존이 그리는 자동화 미래의 마스터플랜에는 무인기와 자율주행 차량을 이용한 상품배달도 포함된다.
아마존이 세계 각지에 창고를 신설하면서 수많은 인력을 충원하지만 그들이 직원(풀타임이든 파트타임이든) 한 명을 고용할 때마다 전통적인 오프라인 사업장 인력 2명이 줄어든다고 추산된다. 그리고 그것은 예외가 아니라 주요 특장점이다. 베테랑 IT 분석가 팀 린드너가 업계 관계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털어놓았듯이 일자리의 소멸이 모든 온라인 소매유통업체의 명백한 목표다. 언젠가 그는 이렇게 썼다. “창고 사업에선 인건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아마존이 유통센터 내에서 고도의 자동화를 추진하고 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아마존은 고객주문 처리에 필요한 인원을 추가 삭감할 수 있는 별도의 기술을 보유한다. 프로그래머 사이의 오랜 속담에 ‘쓰레기를 입력하면 쓰레기가 나온다’는 말이 있다. 창고 상품 반입창구 인력의 독해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쓰레기 투입’ 문제를 해결하는 자동화된 솔루션을 찾는 것이 지상과제다. 아마존이 지금 그런 기술 특허를 냈을지도 모른다.”여기서 린드너 분석가가 말하는 쓰레기는 인간의 오류를 의미한다. 그 대안은 필시 로봇의 정확성인 듯하다. 그리고 로봇은 특히 반복 작업에 관한 한 매우 정확한 편이다. 과거 보스턴에 본사가 있던 리씽크 로보틱스가 개발한 산업 로봇 소이어(Sawyer)는 로봇팔이 얼마나 유용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소이어는 로봇 청소기 룸바와 팩봇(PackBot)의 개발자인 로드니 브룩스의 작품이다. 팩봇은 9·11 테러 후 월드트레이드센터에서 그리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벙커를 파괴하는 데 사용됐다. 소이어는 룸바·팩봇과 달리 사람과 거의 비슷하다. 평면 스크린의 동화상 얼굴과 다리를 대신하는 바퀴가 있다. 원숭이 형태의 팔을 잡고 조절하면서 일련의 동작을 가르치면 작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어떤 반복적인 절차든 ‘학습한다.’ 소이어는 거의 사람처럼 빠르고 매끄럽게 물체를 감지하고 조작할 수 있으며 대가를 거의 요구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산업 로봇은 코드를 작성하고 오류를 제거하는 데 고비용의 엔지니어와 프로그래머가 필요하지만 소이어는 고등학교 중퇴자도 5분 이내에 프로그램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브룩스 개발자는 과거 소이어(그리고 앞선 모델인 두 팔을 가진 백스터 로봇)는 통틀어 시간 당 4달러도 안 되는 ‘임금’으로 일할 것이라고 추산했다.일과 그 미래에 관한 토론에서 로봇의 역할이 크게 부각된다. 그런 대화는 쉬 그릇된 가정에 빠져들 수 있다. 최근까지 자동화가 대규모로 인간 근로자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는 이론을 반신반의하는 경제학자가 많았다. 예전부터 로봇이 더 뛰어난 작업 분야의 인간 종사자는 다른 분야로 전환 배치됐다. 그러나 ‘비교 우위’의 경제원칙은 인간이 많은 분야에서 우위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본다. 이런 논리에서는 신기술이 인간을 대체하기보다는 그런 일에서 해방시켜 덜 위험하고 더 도전할 가치 있는 일, 본질적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일을 떠맡게 해준다.
예컨대 미국고속도로교통안전국은 ‘소프트웨어’를 자율주행차의 운전자로 공식 인정해 미국의 직업 운전자(택시·트럭·버스·우버) 410만 명을 긴장시켰다. 이론상 그에 따라 이 기사들이 자유를 얻어 아마존의 창고 업무 같은 새 일자리를 채우게 된다. 그러나 이들 창고도 자동화되고 있으며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중급 기술 근로자(middle-skill workers)’ 대다수가 한때 채우고 있던 수많은 다른 일자리도 마찬가지다. 과거 미국 중산층을 이루고 떠받치던 사람들이다. 딸의 결혼식에 착용할 정장을 고를 때 치수를 재주던 백화점 판매원, 결혼 기념 만찬용 고기를 썰어주던 정육점 주인, 신혼여행 계획 수립을 도와준 여행사 직원 같은 근로자다.물론 인간 근로자는 번거롭다. 지치고 배 고프고 한눈 팔고 화내고 혼동한다. 실수할 뿐 아니라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한다. 기계는 인간 같은 약점과 편견이 없으며 선입견이나 그릇된 가정 없이 증거를 공정하게 저울질하기에 더 좋은 조건을 갖췄다. 어쩌면 결정적으로 인간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할 수 있으며 그런 데이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구글은 미국에서만 매일 1분마다 360만 건의 검색 결과를 제공한다. 스팸업자들이 발송하는 이메일은 1억 통, 모바일 메신저 스냅챗 이용자가 보내는 사진은 52만7000개, 웨더 채널이 방송하는 일기예보는 1800만 건에 달한다. 이를 포함해 더 많은 데이터를 적절히 수집·분류·분석한 뒤 그것을 적용해 어떤 고차원의 작업이든 거의 자동화할 수 있다. 인간의 경험과 직관을 대신해 데이터가 사용될 수도 있다. 온라인 쇼핑과 소셜미디어는 우리의 취향을 ‘숙지’해 그 정보를 토대로 가치관에 기반한 평가를 내려 우리 결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한때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지던 업무에서 갈수록 기계가 더 우수한 성과를 올린다.
발디 교수는 “컴퓨터는 보고 들을 수 있으며 사람보다 훨씬 우수한 얼굴인식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기계의 인간 세계 이해 수준이 불과 몇 년 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그리고 인간의 두뇌에서 모델화할 수 없는 특성은 하나도 없다.”
버트 셀먼은 코넬대학 컴퓨터학 교수이자 지식표현(knowledge representation) 전문가다. 지식표현은 기본적으로 현실세계를 컴퓨터가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는 용어로 번역하는 방식이다. 그는 컴퓨터가 아직은 인간의 능력을 완벽히 갖추지 못했다고 전제한다. 예컨대 ‘상식’ 그리고 언어의 깊은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인간의 의식 흐름처럼 ‘의미를 만들지’ 못해 때로는 샛길로 빠져버린다. 하지만 이런 단점은 일시적일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인공지능 커뮤니티에선 향후 15~20년 이내에 기계가 인간의 지능과 대등해지리라고 내다본다.”그리고 로봇이 완벽할 필요는 없다. 비싸고 복잡한 인간과 대등하거나 약간 나은 수준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과학기술자들이 로봇을 약간 우수하게 만들려 땀 흘리고 있다. 예컨대 소매유통의 경우 많은 사람이 셀프 계산대를 기피한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자신이 직접 하기보다는 계산원에게 쇼핑 정산을 맡기는 쪽을 선호하는 셈이다. 따라서 계산원의 일자리(대형 소매유통 고용 항목 중)가 당장 위험에 처하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셀프 계산대는 첫 단계에 불과하며 그리 스마트하지도 않다고 소매유통업을 전문으로 하는 매사추세츠공대 경영 전문가 제이넵 톤 교수는 말한다. “고객은 셀프 계산대가 단순히 그 작업을 자신들에게 떠넘기는 방법일 뿐 혁신은 아님을 알아채고는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셀프 계산대를 훨씬 더 쉽고 빠르게 만드는 신기술이 곧 등장하면 소매유통 고용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수년 전 이른바 소매유통의 종말에 관한 예측이 있었지만 아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실제로 한 기업이 기존 매장을 닫을 때마다 다른 2개 기업이 새로 매장을 열고 있다. 소매유통은 고도로 경쟁적인 산업이며 신기술이 우리의 쇼핑 방식뿐 아니라 브랜드와의 소통 방식을 바꿔놓고 있다. 예컨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마존이 실제 오프라인 소매점을 열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리고 전자상거래의 비중이 소매유통의 10%까지 확대됐지만 여전히 오프라인 매장이 90%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들 오프라인 매장도 급격한 변화를 거치면서 미국의 노동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딜로이트 컨설팅의 케이지 러바우 소매유통 최고혁신책임자(CIO)는 “전통적인 소매유통 업체의 시장점유율 하락은 단순히 전통적인 소매업체가 전자상거래 게임에서 밀려나는 ‘온라인 vs 오프라인’의 대결 구도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른바 ‘(발목을 무는) 앵클 바이터(ankle biters)’들도 전통적인 소매유통업체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신기술 덕분에) 큰돈 쓰지 않고도 소비자에게 접근할 수 있는 작고 민첩한 기업들이다.
예컨대 러바우 CIO는 푸드 트럭의 예를 들며 갈수록 많은 패스트푸드점을 위협한다고 설명한다. 한 지역에 고정된 음식점과 달리 푸드 트럭은 이동성이 뛰어나다. 어떤 특정한 시간 대에 고객이 가장 많이 모일 가능성이 큰 지역을 공략할 수 있다. 특정 지역 또는 나아가 동네에 따라 맞춤 메뉴를 마련할 뿐 아니라 페이스북이나 기타 미디어를 이용해 메뉴와 위치를 홍보할 수도 있다.
소규모 전문점도 대형 백화점보다 훨씬 더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러바우 CIO는 “신기술 덕분에 신시장 진입 비용이 낮아져 소매유통 업계에서 기존의 공룡 기업은 줄어드는 반면 소형 경쟁업체는 늘었다”고 말했다. “기업이 다각화를 통해 소비자의 특정 수요와 욕구에 부응하고 있다. 모두에게 돌아가는 몫이 줄고 있지만 그런 파이 조각이 더 많아진다.”
신기술은 소매유통 업계에 2단계 구도를 형성했다. 주로 고액 소득자에게 어필하는 고급 부티크 스타일 매장이 증가하고 가격에 민감한 고객에게 어필하는 할인점은 훨씬 많이 늘어났다. 러바우 CIO는 “올해에만 미국에서 1000개가 넘는 할인점이 문을 열었으며 이른바 ‘프리미어’ 고급 틈새 매장 수도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줄어드는 것은 마케터들이 말하는 이른바 ‘균형 지향’ 매장이다. 중급 시장 고객 대상으로 품질과 가격의 균형을 맞추는 백화점과 기타 소매유통업체를 가리킨다.어쩌면 ‘균형 지향’ 매장의 감소가 지난 10년 사이 미국 중산층의 쇠퇴와 연관됐음도 놀랍지 않다. 러바우 CIO는 “2007~2017년 소득 증가(평균 5만 달러의 가계소득 증가)가 대부분 상위 20% 소득자에게 집중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하위 40%의 소득이 줄었기 때문에 이들 그룹의 소득이 평균 증가분의 100% 이상 상승했다. 중류층 40%의 소득은 가구 당 1만 달러 증가했다. 그러나 식품·주택·교통 같은 지출도 커졌다. 헬스케어 비용 지출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거기에 휴대전화와 데이터 이용료 같은 필수 디지털 서비스도 더해졌다. 그에 따라 대부분 소매유통 시장에 지출할 돈이 거의 남지 않게 됐다. 이는 사람들이 가격에 대단히 민감해졌다는 의미다.”
러바우 CIO는 이 모든 트렌드가 “혁신적 변화를 몰고 온다”고 말할 뿐 그것이 소매유통 종사자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섣불리 추론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할인점의 경우 매장 단위 면적 당 고용인원뿐만 아니라 임금과 근로시간이 적은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지난 10년 사이 실제로 점원 당 근무시간이 줄었다. 시카고 기반의 글로벌 전직알선&경력전환 업체 챌린저·그레이&크리스마스의 존 챌린저 CEO는 앞으로 더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1980년 대와 1990년대 제조업이 겪은 변화의 도입단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매장 근로자는 신기술에 취약하며 밝혀지지 않은 숫자가 대체된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모든 소매유통 근로자가 어디로 갔느냐는 질문에 그는 상당수가 트럭운전·운송·물류 다시 말해 창고업에서 새 일자리를 찾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쨌든 지난 10월 아마존은 창고와 소매 매장의 최저임금을 시간 당 15달러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상당수 소매유통 종사자 입장에서는 큰 폭의 인상이다.
그러나 아마존은 올해 최고의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리라고 예측하면서도 채용한 계절적 근로자가 예년보다 훨씬 적었다. 앞선 2년 동안 12만 명이었지만 올해엔 10만 명이다. 아마존 대변인은 이런 인력감소가 자동화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는 듯하다. 모건 스탠리의 브라이언 노왁 분석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아마존의 임금인상을 걱정하는 주주들을 진정시켰다. 자동화의 영향으로 인력수요가 감소했고 앞으로도 계속 줄어 전체 원가가 낮아지리라는 지적이었다. 이에 관해 질문하자 러바우 CIO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소매유통 업종의 입지가 좁아지지는 않았지만 그 업종 종사자들은 또 다른 문제라고 말할 뿐 다시 교묘하게 답변을 피했다.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다”는 말뿐이었다.컬럼비아대학 기계공학과 호드 립슨 교수는 자신이 이끄는 ‘크리에이티브 머신 랩’에서 학생들과 함께 기계를 대상으로 사고·호기심·창의성 훈련을 시킨다. 인터뷰 당시 교수는 새 주방기기에 마지막 손질을 가하고 있었다.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반죽·젤·파우더·액체 재료를 혼합해 근사하게 요리된 별미 음식을 만들어내는 기기다. 보기에는 별 3개짜리 미슐랭 요리사를 위시한 전체 보조 스태프와 경쟁할 수 있을 법하다. 그런 인상을 말하자 립슨 교수는 신음을 토해냈다. 그는 자신과 같은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은 본능적으로 거의 모든 어려운 과업을 자동화하려는 충동을 느낀다고 말한다. 엔지니어링의 본질은 단순노동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것이 과거에는 거의 언제나 옳고 좋은 일이었지만 지금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그는 덧붙였다.
“자동화와 인공지능이 우리 일자리를 거의 대부분 빼앗아갈 것이다. 우리 일생 중 아니면 우리 손자 세대에는 벌어질 일이다. 인류 역사에 새로운 시대를 맞았는데 우리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 어쩌면 마음의 준비는 됐더라도 실제 대책은 없다.”
- 엘런 러펠 셸
※ [이 기사는 엘렌 러펠 셸의 저서 ‘급변하는 시대의 일과 그 미래(The Job: Work and Its Future in a Time of Radical Change)’를 발췌·축약한 내용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28일 서울 지하철 9호선 일부구간 '경고 파업' 철회
2‘하늘길도 꽁꽁’ 대설에 항공기 150편 결항
3‘이재명 아파트’도 재건축된다…1기 선도지구 발표
4코스피로 이사준비…에코프로비엠, 이전상장 예비심사 신청
5‘3000억원대 횡령’ 경남은행 중징계….“기존 고객 피해 없어”
6수능 2개 틀려도 서울대 의대 어려워…만점자 10명 안팎 예상
7중부내륙철도 충주-문경 구간 개통..."문경서 수도권까지 90분 걸려"
8경북 서남권에 초대형 복합레저형 관광단지 들어서
9LIG넥스원, 경북 구미에 최첨단 소나 시험시설 준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