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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의 사회경제학] KB국민은행 노조가 코너에 몰린 이유는

[파업의 사회경제학] KB국민은행 노조가 코너에 몰린 이유는

합리적 명분과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중요 … 설득력 잃은 파업은 자충수 될 수도



국내 대표 금융사 중 한 곳인 KB국민은행 노동조합이 19년 만에 총파업을 단행했다. 그러나 여론은 예상보다 훨씬 더 싸늘했다. 비슷한 기간 다른 이유로 파업에 나선 전국 택시 노조도 국민들의 외면을 받았다. 이들의 파업은 과거 비슷한 사례에서보다 경제적 파급력까지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달리 국민의 지지와 성원 속에 파업을 진행한 사례도 있다. 어떤 차이가 명암을 갈랐을까.
사진:© gettyimagesbank
통상 ‘파업’은 노동자들이 국가나 속한 기업을 향해 꺼내들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이면서도 강력한 패(牌) 중 하나다. 자신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해 생산활동이나 업무 수행을 일시 중단하는 집단행동이다. 바로 이 집단성에 무게가 있다. 경제적 파급 효과를 크게 미치는 대규모 집단, 또는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업무를 수행하는 집단일수록 이들의 파업은 온 국민의 삶에 중대하게 작용한다. 한 도시의 지하철 노동조합이 파업할 때마다 시민들이 일상에서 큰 불편을 겪는 것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때론 그 이상의 심각한 사회·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기도 한다. 앞서 프랑스는 2010년 연금제도 개혁에 반대한 노동자들의 집단 무기한 연장 파업으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당시 프랑스 재무부 장관(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은 “재무부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파업으로 매일 2억~4억 유로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이 국가 전체에 발생하고 있다”며 “추락한 국가 이미지에 따른 손실까지 더하면 숫자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고 호소했을 정도다.

파업을 곱게 보지 않는 입장일수록 “국민을 볼모로 잡지 말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물론 노동자들도 할 말은 있다. 오죽했으면 이런 초강수를 두겠느냐는 것이다. 지난해 파업 경험이 있는 국내 한 노조원은 기자와 만난 사석에서 “행동으로 국민 앞에서 호소하지 않으면 고용주는 부당행위를 반복할 것”이라며 정당성을 강조했다. 갑을 관계에서 을이 갑의 횡포에 대항하는 상황이라면, 현실적으로 파업만이 그나마 위협적인 선택지가 된다는 주장이다. 폭력 행사 등 불법적인 경우만 아니라면 모든 노동자에게 파업은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이기도 하다.
 “국민 볼모로 삼아선 곤란” vs “갑 횡포에 불가피”
문제는 파업의 명분이다. 좁게는 한 기업에서부터 지역사회와 지역경제, 넓게는 국민 모두가 일정 기간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그 파업을 용인할 수 있을 만큼 설득력 있는 이유가 존재하느냐다. 지난 1월 8일 국내 대표 금융사 중 하나인 KB국민은행 노조는 2000년 12월 이후 무려 19년 만에 총파업을 단행했다. 전국 1058개 지점과 약 3000만 명의 고객을 확보했을 정도로 손꼽히는 금융사 노조가 파업한 만큼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노조는 1월 말 2차 파업 등, 3월 말까지 총 다섯 차례의 파업과 준법 투쟁을 예고했다. 그런데 1차 파업이 끝난 직후 여론은 유독 싸늘했다.

1월 16일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에 게재된 한 관련 기사엔 2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그중 4000명 이상이 공감한 베스트 댓글은 아이디 ‘zipz****’의 누리꾼이 남긴 “파업자들을 전원 해고하라”는 내용이었다. ‘jil4****’ 누리꾼은 “이번 파업으로 오히려 (KB국민은행) 오프라인 서비스와 직원들의 무용성만 입증됐다. 파업하고 행원들 없어도 은행 업무가 차질 없이 진행되더라. 노조가 명분도 동력도 없다는 걸 스스로 증명한 꼴”이라는 댓글을 남겼다. ‘or7l****’ 누리꾼 역시 “진짜 양심도 없다. 일자리 없는 요즘 월급도 많이 받으면서 연봉도 9000(만원)씩 받으면서 왜 저럴까”라고 썼다. 각각 수백 명이 동의한다는 뜻의 엄지 이모티콘을 누르는 동안 반대한 누리꾼은 10여 명뿐이었다. KB국민은행 노조는 사측이 부당 노동 행위로 직원들을 겁박하고 있음을 이번 파업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럼에도 이처럼 냉소적인 반응이 쏟아진 이유는, 노조가 지난해 사측과 임금·단체협상 단계에서 틀어지면서 파업을 단행하게 됐다는 ‘과정’이 널리 알려지면서다. 결렬된 임단협에서 노조가 사측에 요구한 사항은 ▶기본급 300% 경영성과급 지급 ▶평균 2.8% 임금 인상(일반 직원 2.6%, 저임금 직군 5.2%) ▶전 직원 대상 ‘페이밴드(진급 누락 시 기본급 동결)’ 제도 도입 불가 및 신입 행원 대상 페이밴드 폐지 ▶미지급 시간외수당 150% 지급 ▶임금피크제 진입 시점 연장 ▶기간제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계약직 근무 경력 인정 ▶피복비 매년 100만원 지급 등이다. 이에 사측은 ▶기본급 200% 이상 경영성과급 지급 ▶페이밴드의 전 직급 확대 필요 ▶임금피크제 진입 시점 일원화 필요와 같은 입장으로 팽팽히 맞섰다. 그러다가 노조 제안을 일부 수용하기도 했다.

저임금 직군의 임금 대폭 인상과 계약직 근무 경력 인정 등, 노조의 제안 사항 중 사회적으로 공감할 만한 내용도 있었지만 대체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었다는 지적이다. 경기 불황으로 국민들이 고통 받는 상황에서 노조가 국민 불편을 담보로 300% 성과급 지급 요구 등을 굽히지 않는 것은 다소 지나친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은 것으로 풀이된다. 제조 등 수출 업종이 아니라는 점, 대표적인 고임금 지급 업종으로 인식되는 점도 노조 입장에선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 걸림돌로 작용 중이다. 지난해 기준 KB국민은행 임직원 1만7000여 명의 평균 급여액은 9100만원이었다.

금융권 특성상 “순이익의 대부분이 결국 국민 주머니에서 나왔다” “가뜩이나 고임금 노동자들인데 너무 많은 요구를 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파업하기 전에 이자율부터 낮추라”는 누리꾼들 댓글이 온라인에서 유독 많이 보이는 것도 그래서다. 이에 대해 박홍배 KB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은 “사측이 직원들을 돈만 밝히는 파렴치한으로 몰고 있다”며 “파업은 페이밴드 등 직원 간 지나친 경쟁을 유발하는 사측의 성과주의가 고객 피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또 “조직 내 뿌리 깊은 차별 관행을 없애고 청년과 여성 행원들에 대한 잘못된 제도를 고치자는 게 파업의 근본 이유”라고 덧붙였다. KB국민은행 노사는 결국 1월 23일 임단협에 잠정 합의했지만, 지난 파업으로 상처만 나눠 갖게 됐다.
 임단협 결렬에 파업했지만 싸늘한 여론
금융사만 시달리는 문제일까. 제조업에서도, 전혀 다른 제3의 업종에서도 합리적 명분과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 실패한 파업은 힘을 잃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강성 노조로 유명하며, 연례행사처럼 파업을 겪고 있지만 그때마다 오히려 노조 비판 여론이 뜨겁다. 이들에게는 노동자 흉내를 내는 귀족이라는 뜻의 ‘귀족노조’란 달갑잖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현대차 노동자의 평균 연봉은 2017년 기준 9200만원에 달했지만, 현대차 노조는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 연속 임단협 과정에서 불만족을 표하면서 파업을 강행했다. 현대차에 따르면 이 회사는 파업으로 2017년 차량 4만3000여 대(약 8900억원어치)의 생산 차질을 빚은 것으로 추산된다. 국가적으로 주된 수출 업종인 터라 자연스레 국민들 시선도 곱지 않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해 공식석상에서 “현대차 노조는 1987년 설립 후 지금껏 총 440차례 이상 파업을 했다”며 “국민들을 상대로 협박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비판론은 현대차에 대한 범국민적인 불매운동으로도 일부 이어지고 있다. “귀족노조만 배불리는 자동차를 살 순 없다”는 여론이 거세게 확산돼서다. 6년간 현대차 ‘아반떼’를 몰다가 다른 브랜드 차로 갈아탄 소비자 이덕용(43·가명)씨는 “구입할 때도 지나치게 가격대가 높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언론을 통해 노조 파업 소식을 들을 때마다 저 가격의 적잖은 부분이 노조를 달래는 데 들어갔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 없었다”며 “앞으로도 현대차를 구입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과거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로 무장하고 애국심에 호소해 내수 시장을 장악했던 현대차그룹은 내수 시장점유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최근 수입차 업체들의 매서운 공세에 직면하고 있다. 노조 입장에선 회사가 어려워질수록 향후 공멸(共滅)을 걱정하는 처지에 놓이게 될 수도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국은 양극화와 상대적 박탈감 해소에 민감한 사회”라고 설명했다. 고임금 노조가 임단협 결렬을 명분으로 파업에 나선다면 사회적 공감대 형성 가능성은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저임금자 파업에도 국민들 성난 이유는…
1월 8일 KB국민은행 한 지점에 붙은 사과문. 노조의 파업 사실과 고객들에 대한 사과 내용이 담겼다. / 사진:연합뉴스
그렇다면 단지 고임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들 노조의 파업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는 걸까. 그건 아님을 다른 사례가 보여준다. 전국민주택시노조연맹 등 전국 택시 노조는 지난해 12월 20일 총파업에 돌입했다.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카카오의 새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승차공유 서비스 ‘카카오 카풀’ 도입에 반대해서다. 택시 업계는 전후로 택시 기사 두 명이 잇따라 카카오 카풀 도입 반대를 외치며 분신자살할 만큼 상황이 심각했다. 특히 법인택시 기사들은 하루 14만원가량의 사납금을 내야 하는 구조에 묶여 있어 업계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됐다. 이들은 “한 달 200만원 안팎의 수입으로 법정 최저임금 수준에 시달리고 있고, 사납금 할당액을 매일 채우기 버거운데 카카오 카풀까지 도입되면 생계유지가 어렵다”며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례적인 것은 국민들의 반응이었다. 누리꾼들은 일부 안타까움을 표하면서도, 비판의 칼을 놓지 않았다. “택시 기사님 분신자살은 안타깝지만, 시대 흐름에 변해가고 살아남기 위해선 택시 업계도 발전을 해야 한다. 난폭 운전, 불친절, (탑승객) 골라 받기 등으로 소비자들은 지금까지 큰 불편을 겪었기에 카카오 카풀을 찬성할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 시민들은 우버(글로벌 차량 공유 서비스)로 편리함을 누리고 있는데 우리만 뒤처져 있다”는 댓글은 물론(본지 1464호 ‘카카오 카풀 서비스 논란 2라운드’ 기사 참조), “파업으로 떼를 쓴다고 해서 시대 흐름에 역행해선 안 된다. 자동차 등장에 마차를 끄는 마부들이 파업한 격”이라는 등의 성토 댓글까지 이어지면서 많은 호응을 얻었다. 세계적인 산업 발전을 주도 중인 ICT 기반 공유경제 모델의 국내 도입과 확산이라는 명분이, 국민 입장에선 택시 업계의 생존권 보장이라는 명분보다 무겁게 받아들여졌음을 유추할 수 있다.

더구나 난폭 운전과 승차 거부 등 택시 업계 일각에서 지금껏 자행됐던 일들도 비판론 확산에 ‘업보’처럼 작용했다. 표면상 택시 업계의 파업은 어찌됐든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국 카카오 측은 한걸음 물러나면서 1월 18일 오후부터 카카오 카풀 시범 서비스 운영을 잠정 중단했다. 향후 도입 전면 백지화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하지만 전국적인 택시 파업이라는 ‘초강수’의 사회·경제적 파급력이 과거 비슷한 경우에서보다 구조적으로 크게 떨어지게 된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택시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전체 교통수단 중 차지 비중을 뜻하는 ‘수송 분담률’ 집계에서 택시는 2009년 4.3%에서 2012년 3.3%, 2016년 2.9%로 해마다 급격히 쪼그라든 모습이다. 같은 기간 버스가 24.5%, 24.9%, 26.2%를 각각 기록한 것과 대조됐다.

파업 당일 많은 시민들 역시 “택시가 줄어 길이 덜 막히고 외려 좋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일 만큼 의연했다. 비례해서 택시 업계의 수익성도 계속 나빠지고 있다. “파업한 택시 기사들이 진짜 걱정해야 할 것은 카카오 카풀의 백지화 여부가 아닌, 등 돌린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KB국민은행의 이번 파업도 지난 2000년 극심한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손실을 야기했던 총파업 때와는 달리 그 파급력이 썩 크지 않았다. 스마트폰 전성시대에 과거보다 비대면 거래가 급속도로 활성화하면서 지점들의 인력 공백 여파도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6월 말 기준 KB국민은행의 전체 거래 채널 중 비대면 거래 비중은 약 86%나 됐다.

오히려 파업을 계기로 일각에선 “은행 지점들이 필요 이상으로 많다”며 축소해야 한다는 새 주장까지 제기됐다. 전체 행원의 3분의 1이 자리를 비웠는데도 우려했던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지 않았으며, 은행들이 지점과 인력을 과다 운용하면서 고객 돈만 낭비한다는 비판론이 나온 것이다. 이미 지난해 9월 기준 국내 17개 은행 지점 수는 5746개로 2015년 말(6185개) 대비 급감했다. 이에 따라 인력 감축도 계속되고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비대면 금융 강화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며 “노조의 무리한 요구가 계속될 경우 은행 측이 지점 정리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경우 파업은 꼼짝없이 자충수로 작용하게 된다.
 ICT 전성시대에 파업 파급력 과거보다 급감
이 때문에 같은 KB국민은행 노조 내부에서도 “좀 더 신중하게 파업 명분을 가다듬었어야 했다” “우리가 처한 열악한 노동 환경 개선이 사회적으로 시급한 이유 등 파업의 진의(眞意)를 알리는 데 보다 주력했어야 했다”는 일부 자성론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2000년 파업 때 국민은행 노조원들은 국민들의 지지와 성원 속에 파업을 진행하고, 한층 신뢰받는 사회 구성원으로 거듭났던 상반된 전례가 있다. 당시 노조 파업 명분은 외환위기 여파에 따른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간 강제 합병 저지였다.

좀 더 정확히는 합병을 통한 내부 인력 추가 구조조정 가능성을 우려해서였지만, 국민들은 파업으로 지금보다 훨씬 큰 불편이 야기됐음에도 이를 지지하는 분위기였다.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익명을 원한 금융권 한 임원은 “한겨울 추운 날씨에도 (노조원들이) 아랑곳없이 야외 천막 농성을 벌이고, 일부는 비장한 얼굴로 지나가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절박함을 호소하던 진정성 있는 파업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며 “외환위기로 국민 다수가 직장을 잃고 수년간 어려움을 겪었을 무렵이라 많은 분들이 ‘자신의 아픔’처럼 느껴 파업에 호응해줬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같은 ‘밥그릇 지키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땐 생존을 위해 꼭 지켜야 하는 밥그릇이라는 인상이었다면, 지금은 조금 다른 인상을 국민들에게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그때만큼 호소력 있는 2019년의 파업을 꿈꾸는 누군가에게 가혹한 이야기일까, 아니면 시사점을 주는 이야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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