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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판박이 보리스 존슨 신임 영국 총리] “10월까지 브렉시트 완료” 거침없는 취임 일성

[트럼프 판박이 보리스 존슨 신임 영국 총리] “10월까지 브렉시트 완료” 거침없는 취임 일성

고립주의 성향으로 ‘브렉시트’ 부르짖어… 인종차별·막말에 복잡한 사생활로 눈총
사진 : 연합뉴스
영국 보수당의 보리스 존슨(55)이 7월 24일(현지시간) 총리에 취임했다. BBC방송에 따르면 존슨은 전체 16만여 명의 보수당원을 상대로 우편투표로 진행된 집권 보수당 당대표 경선에서 87.4%의 참여와 66.4%의 지지(9만2153표)를 얻어 상대인 제러미 헌트 외무장관을 누르고 당선했다. 의원내각제인 영국은 통상 집권당의 대표가 총리를 맡는다. 총리는 제1 대장경과 국가공무원담당 장관을 겸한다. 제1 대장경은 명예 호칭의 성격이 강하며, 제2 대장경 호칭을 받는 재무장관이 국가 재정을 담당한다.

데일리 텔레그래프를 비롯한 영국 언론에 따르면 존슨 총리는 취임 직후 총리 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 앞에서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고 “‘만일과 하지만이란 말 없이(no ifs and buts)’ 무조건 10월 31일까지 유럽연합(EU)를 떠나겠다”고 말했다. ‘만일과 하지만이란 말 없이’란 영어 표현은 ‘틀림없이’ ‘군소리 없이’ ‘예외 없이’라는 의미다. 이유를 달거나 변명하지 않고 무조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이루겠다는 이야기다. 존슨은 자신이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현재 영국의 최우선 국정과제이자 전임 테레사 메이 총리가 물러난 가장 큰 원인이 됐던 지지부진한 브렉시트 추진 과정을 자신이 책임지고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는 경찰을 2만 명 증원하고 노년층, 사회복지, 교육 예산을 늘리겠다고 강조했다. 총리이자 보수당 대표로서 국정의 방향을 분명히 제시했다.
 첫 내각 주요 보직에 브렉시트 지지자 임명
브렉시트 강경론자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 (55)
브렉시트를 마무리하겠다는 존슨의 의지를 더욱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첫 내각 구성이다. 공영 BBC 방송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으로부터 정식 임명을 받은 존슨 신임 총리는 이날 취임 직후 내각 주요 각료를 임명했다. BBC는 존슨이 메이 내각의 각료 중 17명을 내보냈다고 지적했다. 주목할 점은 존슨이 중용한 인물은 한결같이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강경파라는 사실이다. 예산과 재정을 담당해 영국 내각에서 총리에 이어 2인자인 재무장관은 사지드 자비드 내무장관에게 맡겼다. 파키스탄 이민자의 아들로 영국에서 태어난 자비드 장관은 보수당 대표 경선에 참여했다가 초반에 탈락하자 존슨을 지지했다.

외교장관은 대표적인 강경 브렉시트주의자인 도미니크 랍 전 브렉시트부 장관이 맡았다. 메이 내각에서 브렉시트 업무를 맡았지만 메이 총리가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자 이에 반발해 자리에서 물러났을 정도로 하드 브렉시트를 주장한다. 자비드가 맡았던 내무장관은 프리티 파텔 전 국제개발부 장관이 맡았다. 파텔 장관은 인도 출신으로 우간다를 거쳐 영국으로 이주한 부모 사이에서 런던에서 태어났다. 파텔은 브렉시트 운동에 열성적으로 참가했으며 영국인 노동자들이 나태하다는 발언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이민과 치안을 책임지는 내무장관을 맡은 그는 “영국을 더욱 안전하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유럽에서 안전한 나라로 명성이 높았던 영국은 최근 범죄 증가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방장관을 맡은 벤 월리스는 존슨의 오랜 측근이다. 보수당 대표 경선에서 존슨을 열성적으로 지지했던 리즈 트러스 재무부 수석 부장관은 국제통상부 장관으로 승진했다. 둘 다 정실 인사로 유명한 존슨다운 인사로 평가 받는다. 메이 총리 시절 중국 화웨이 문제와 관련한 국가안보회의(NSC) 논의 내용을 언론에 유출했다가 해임된 개빈 윌리엄슨 전 국방장관은 교육부 장관으로 돌아왔다. 물의를 일으켜 흠결이 있어도 자기편이면 기용하는 존슨의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존슨 총리의 정치 이력을 보면 그의 성격과 스타일이 잘 드러난다. 존슨은 2001년 잉글랜드 남중부 옥스퍼드셔의 헨리 지역구에서 하원의원에 첫 당선해 재선까지 했다. 이 선거구는 1885년 설치된 이래 1906년 당시 집권당인 자유당의 후보가 당선한 것을 제외하고는 보수당이 독주했다. 보수당 후보로서 보수당 텃밭에서 쉽게 첫 당선한 셈이다.

이 지역구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낸 작가 이언 플레밍의 부친 발렌틴 플레밍이 1910~1917년 하원의원을 지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옥스퍼드대를 졸업하고 은행에서 일하다 정치에 뛰어든 발렌틴 플레밍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대위로 참전했다가 1917년 5월 프랑스의 솜 전투에서 독일군 포격에 전사했다. 존슨이 이런 희생정신과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존슨은 2008년 하원의원을 사임하고 5월 런던 시장에 당선해 한 차례 연임하면서 2016년 5월까지 8년을 재임했다. 본격적인 거물 정치인으로 발돋움하는 순간이었다. 재임 중 시민 무료 자전거 대여제도인 ‘보리스 자전거’를 도입해 관심을 불러 모았다. 존슨은 2015년 5월 런던 서부의 ‘악스브리지 앤드사우스 루슬립’ 지역구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했다. 런던 시장 임기가 끝나자 보수당의 테레사 메이 정권에서 요직인 외무장관을 맡아 2016년 7월부터 2018년 7월까지 2년간 재직했다. 그 뒤 영국 하원과 보수당에서 브렉시트 강경파로 목소리를 높이다 총리까지 올랐다.
 ‘개인 용광로’로 불릴 만큼 다채로운 혈통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존슨은 ‘개인 용광로’로 불릴 만큼 혈통이 다채롭다. 우선 그의 증조부는 터키인이다.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언론인, 시인, 자유주의적 정치인인 알리 케말(1867~1922년)이다. 알리 케말은 오스만 제국 말기에 3개월간 내무장관을 지냈는데, 터키가 공화국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테러를 당했다. 이발소에서 반대파에 납치돼 폭행을 당한 끝에 목숨을 잃었다. 알리 케말은 영국과 스위스 핏줄의 아이린 윌리엄스와 결혼해 영국에서 살았는데 1909년 아들 오스만 윌프리드 케말이 태어나는 과정에서 부인을 잃자 장녀와 장남을 장모인 셀마 브룬에게 맡기고 터키로 돌아갔다.

브룬은 외손주들에게 자신의 결혼 전에 쓰던 ‘존슨’이란 성을 붙이고 자신이 길렀다. 오스만 윌프리드 케말은 윌프리드 존슨이 돼 영국인으로 성장했다. 윌프리드는 존슨 총리의 할아버지다. 윌프리드는 독일과 프랑스계 혈통의 마리 루이즈 드 페펠과 결혼해 스탠리 존슨이 태어났다. 스탠리 존슨(79)은 존슨 총리의 아버지다. 스탠리 존슨은 옥스퍼드대 엑스터 칼리지 출신의 작가이자 행정가, 정치인이다. 1979~84년 유럽의회의원(MEP)을 지냈으며 세계은행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서도 근무했다. 브렉시트에 반대하고 영국의 EU 잔류를 지지한다.

어머니 샤를로트 존슨 월(77)은 옥스퍼드대 레이디 매거릿홀 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화가로 활동했다. 1979년 스탠리 존슨과 이혼하고 1988년 미국인 역사학자 니컬러스월과 재혼했으나 1996년 사별했다. 샤를로트의 할아버지 엘리아스 레비는 유대계 러시아인으로 독일 뮌헨대에서 공부한 후 영국 옥스퍼드대와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고문서학 교수로 일했다. 보리스라는 러시아풍 이름은 외가 쪽 친척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졌다.

존슨 총리의 몸에는 터키 무슬림, 유대인, 러시아인, 독일인, 프랑스인, 영국인의 피가 모두 흐르는 셈이다. 어머니 샤를로트는 가톨릭이었으나 존슨 총리는 대학시절 영국 국교회 교회를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이보다 더 국제적이고 범유럽적인 혈통은 영국은 물론 유럽 정치인 중에서도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런 존슨이 이제 브렉시트를 이룰 임무를 맡아 영국 총리에 올랐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렇다면 존슨 총리는 임무를 완수할 능력은 있는 것일까? 존슨 총리는 1964년 6월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미국과 영국 국적을 동시에 얻었으나 2016년 미국 국적은 버렸다. 가족과 미국에서 귀국한 존슨 총리는 이튼 칼리지를 졸업하고 옥스퍼드대 베이올 칼리에서 고대문학과 고전철학을 전공해 B학점으로 졸업했다. 그는 A학점으로 졸업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한 것으로 전해진다. 재학 중 학생회장에 도전했다가 실패하자 재도전해 끝내 뜻은 이뤘지만 별다른 업적은 남기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 졸업 후 LEK 컨설팅에 들어갔지만 1주일 만에 그만두고 더타임스에 수습기자로 들어가 신문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존슨은 고고학 발굴 관련 기사를 쓰면서 자신의 대부이기도 한 역사학자 콜린 루카스의 말인 것처럼 코멘트를 과장해서 작성하다 발각돼 자리를 잃었다. 그는 보수 성향의 일간지인 데일리 텔레그래프에 새로 자리를 얻었다. 보수적 시각에 전통적 단어를 선호한 그의 기사는 이 신문의 주독자인 보수적 중산층과 중년층의 입맛에 맞았다.

1989년 벨기에의 브뤼셀 특파원으로 파견된 그는 유럽연합에 회의적인 기사를 쓰면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지금의 브렉시트주의자 존슨의 탄생이다. 영국 출신으로 당시 EU의 외교 담당 집행위원을 맡았던 크리스 패턴은 그를 두고 “가짜 저널리즘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존슨은 EU의 관료주의와 통합 가속화를 비판하는 기사를 줄줄이 썼으며 이를 통해 영국에서 유럽회의파(EU 통합 반대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떠올랐다. 영국 외무부에 그의 기사에 대응하는 특별팀이 조직될 정도로 그는 영향력은 강력했다. 유럽회의적인 그의 기사와 활동은 1990년대 영국에 유럽연합 탈퇴를 주장하는 영국 독립당이 출현하는 데 한몫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영국 보수당은 유럽회의파와 친EU파로 나뉘어 대립했다.

1994년 런던에 돌아온 존슨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보수층의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유색인종과 동성애자에게 대놓고 차별적인 언사를 쓰고 과거 식민 지배를 찬양해 비판을 받았다. 그의 이력을 보면 언론인에 머물지 않고 2001년 보수당 소속으로 하원의원에 출마한 것이 자연스럽다.

문제는 그가 그렇게 착실하거나 성실한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쉽게 싫증을 내고, 게으르며, 거짓말과 말바꾸기를 일삼고, 소수자에 대해 차별적이고 모욕적인 말을 서슴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는다. 사립학교와 옥스브리지 출신의 인물을 선호하며 정실 인사를 일삼는다는 평가도 있다.
 유럽연합에 회의적인 기사 쓰면서 주목 받아
사생활도 그리 보수적이 아니다. 데일리 텔레그래프 기자 시절인 1987년 알레그라 모스틴오웬과 결혼했지만 브뤼셀 특파원으로 일하던 1993년 이혼했다. 같은 해 영국 변호사, 작가, 칼럼니스트인 마리나 윌러와 재혼했지만 2018년 헤어졌으며 법적인 이혼 수속이 마무리 단계다. 현재 24세 연하의 캐리 시먼즈(31)와 함께 살고 있는데 총리 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에는 당장 입주하지 않고 시기를 살피는 것으로 알려졌다.

존슨 총리가 걸어온 길은 어쩌면 현재의 영국 사회처럼 혼란스럽고 복잡하다. 그가 영국을 어떻게 이끌지 수많은 사람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영국이 협상 없이 EU를 떠나는 ‘노딜 브렉시트’라는 끔찍한 시나리오가 벌써부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시장은 영국 통화인 파운드화 약세로 반응하고 있다. 그에게 이 위기를 헤쳐나갈 능력이 있을까. 영국은 차악의 선택이라도 제대로 한 것일까. 의문이 그치지 않는다.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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