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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미아 중단 후폭풍 어디까지] 아슬아슬 한일 관계 ‘정냉경냉(政冷經冷)’ 덫에 빠지나

[지소미아 중단 후폭풍 어디까지] 아슬아슬 한일 관계 ‘정냉경냉(政冷經冷)’ 덫에 빠지나

역사문제, 징용공 판결에서 비롯된 양국 갈등… 무역·투자 이어 외교·교류에도 악영향
문재인 대통령이 8월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관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 내용을 보고받고 있다.
한국 정부가 8월 22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ESOMIA·지소미아) 종료(또는 파기)를 결정하면서 동북아시아 안보 지형에 격랑이 예상된다. 지소미아는 양측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자동 연장되는데, 한쪽이 종료를 결정하면 시한 90일 전에 통보해야 하다. 8월 22일은 종료를 결정했을 경우 통보해야 하는 시한을 이틀 앞둔 시점이었다. 한국 정부는 8월 2일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국가 리스트에서 배제한 점과 그 후에도 계속 협의에 응하지 않은 점을 이유로 들며 “협정을 지속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이로써 2016년 11월 시작된 지소미아는 3년 만에 종료에 이르게 됐다. 한·일 간 유일한 군사협정으로서 양국 간 안보 협력을 있는 끈으로 작용해왔던 지소미아의 종료는 한·일 관계에 결정적인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과 일본 정부가 서로 동맹 관계는커녕 우방도 아니며 심지어 적의마저 느낄 수 있는 사이로 관계가 악화하고 있는 셈이다.
 오랜 ‘정냉경온(政冷經溫)’ 관계에서 악화
8월 22일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중단 또는 파기 선언은 가뜩이나 지난해 10월 22일 대법원의 징용공 판결로 악화해온 양국 관계를 더욱 벼랑끝으로 몰고갈 전망이다. 양국 관계는 오랫동안 ‘정냉경온(政冷經溫)’으로 불려왔다. 정치적으로는 과거사 등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설전을 벌이며 양국 사이에 냉기가 돌아도 경제 관계는 좋았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재 양국 관계는 정치도 경제도 모두 싸늘한 ‘정냉경냉(政冷經冷)’의 위기에 빠져있다고 볼 수 있다.

역사문제, 징용공판결, 화이트국가 배제에 이어 지소미아 리스크까지 개입하면서 양국 경제 관계는 더욱 악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관계 악화는 이미 양국 간 무역과 투자, 교류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선 일본의 대한 직접투자가 줄고 있다. 일본의 대한 직접투자는 2012년 연간 500건 가까이 됐으나 그해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갑자기 독도를 방문하면서 격감하기 시작했다. 2015년 연간 200건까지 감소된 후로 계속 그 수준을 유지해왔으나 징용공 파결이 나온 2018년부터 다시 감소했다. 올해 1~6월 일본의 대한 직접투자 건수는 0에 수렴하고 있다. 양국 간 무역총액도 감소세이며, 관광객 교류도 마찬가지다. 양국 관계가 식어가는 것이 급기야 경제 분야까지 미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터진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중단은 동아시아 국제사회의 이해관계 전반에 걸쳐 깊은 파장을 부를 수밖에 없다. 북한 미사일과 핵 관련 정보를 포함한 양국 간 군사 정보교류와 협력은 물론 한일 관계, 심지어 한미 동맹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예상 못한 결론에 일본 반발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알려진 22일 오후 일본의 반응은 한마디로 ‘설마’였다. 설마 한국이 이렇게까지 나올 것이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일본의 고노 다로(河野太) 외상은 “한국이 완전히 오인했다” “매우 실망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22일 늦은 밤에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이런 상황으로 볼 때 지소미아 종료로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예상하지 못한 타격을 입힌 것은 사실로 보인다. 마치 일본 정부가 7월 4일 고순도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터,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반도체 소재의 대한 수출을 규제하고 8월 2일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 간소화 대상인 화이트국가에서 제외한 것이 반도체 생산 업체와 한국인에게 상처를 준 것과 흡사한 효과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중단이 어떤 실익을 가져올지는 불투명하다. 특히 미국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소미아 중단 소식을 접하자마자 “실망”이라는 반응을 내놓은 것은 이번 조치의 파장이 한일 관계에는 물론 한미 관계에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16년 지소미아의 탄생 자체가 미국이 한일 관계 악화를 막고 군사적 협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한국 정부를 설득하고 압박한 결과다.

지소미아는 타국에 군사정보를 주기 위해 체결해야 하는 협정이다. 제공 받은 정보를 어느 수준까지 공유할지, 타국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어떻게 보호할지를 규정해 준수함으로써 유효 기간 중에 정보를 지속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게 하는 장치다. 한국과 일본은 지소미아를 체결해 2급 이하의 군사비밀을 직접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이전에는 미국을 매개로 삼아 양국의 정보가 서로 전달됐다.

일본이 가장 관심 갖는 정보는 당연히 북한 핵·미사일 관련 사안이다. 이를 통해 한국은 북한이 동해 방향으로 발사해 수평선 넘어 일본 쪽으로 날아간 미사일의 종말 단계 행방을 일본을 통해 파악할 수 있었다. 한국은 북한 지역의 영상 정보를 파악하는 금강 정찰기와 통신 등 시긴트(SIGINT, 신호정보)를 탐지하는 백두 정찰기에서 얻은 정보가 강점이다. 항공기와 미사일을 탐지, 추적할 수 있는 이지스 전투시스템이 장착된 한국 해군의 군함도 북한 미사일 발사와 초기 비행 정보를 파악한다. 북한이나 북중 국경지역의 휴민트(HUMINT, 인간 정보원)도 강점이었으나 현재는 실태를 알 수 없다.

일본은 한반도 상공에서 정지궤도를 도는 7대의 광학 또는 레이더 위성에서 확보한 대북 정보가 강점이다. 미국도 한반도를 정찰하는 정지 위성은 운영하지 않고 전 세계를 도는 위성이 한반도를 지나는 동안 얻는 광학이나 레이더 등 정보에만 의지한다. 미국 위성은 성능이 뛰어나지만 시간적 제한이 있는 반면, 일본의 정지 위성은 성능은 몰라도 이런 제약 없이 즉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일본은 북한이 1998년 함경북도 무수단리에서 발사한 대포동 2호 미사일이 동해를 거쳐 일본 동북 지역 상공을 지나 북태평양으로 날아간 사건 이후 충격을 받아 정보수집위성을 개발해 2003년 첫 발사했다. 이름이 정보수집위성일뿐 사실상 정찰위성 또는 스파이위성이다. 위성뿐 아니라 동해에 배치된 일본 해상자위대의 이지스 시스템 탑재 군함도 동해로 발사된 북한 미사일의 비행 경로를 추적해 정보를 파악한다. 게다가 일본은 선양 영사관을 통한 휴민트 정보 수집 능력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동북 지역의 조선족 중국인과 탈북자, 중국을 왕래하는 북한인을 통한 휴민트 정보 수집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런 한·일 지소미아 중단은 동북아 안보 상황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지소미아 폐기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은 전문가를 인용해 “북한과 중국이 수혜자” “한국이 피해자” 등의 반응을 보였다. 아사히와 요미우리,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신문을 비롯한 일본 언론들은 ‘동아시아 안보에 그림자’ ‘일한(한일) 대립에 결정적’ ‘미한동맹(한미동맹)에도 타격’ 등의 제목으로 우려의 눈길을 보냈다.

이런 우려대로 지소미아 중단의 가장 큰 문제는 동북아 안보지형도의 변화다. 이는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전개해왔던 안보체제를 허무는 효과가 있다. 이를 위해 우선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후 전 세계에서 전개해왔던 글로벌 안보 시스템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된 1949년 북미와 서유럽 국가와 북대서양조약을 맺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창설해 집단안보 군사동맹 체제를 유지해왔다. 이는 대규모 원조를 통한 경제부흠 프로그램인 마샬 플랜과 함께 서방을 결집하는 바탕을 이뤘다. 회원국 일방에 대한 무력공격은 미국을 포함한 전체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나토가 개입한다는 나토 헌장 제5조는 나토 동맹의 근간을 이뤄왔다. 나토는 1992년 옛 소련이 무너진 이후 과거 소련이 주도했던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을 받아들이면서 영역을 동유럽으로 확대해왔다. 나토는 냉전 해체 후에도 존속해 집단 안보 체제를 앞세운 대테러 전쟁 등을 주도하고 있다. 미국은 중남미 국가들과는 나토 창설 전인 1947년 이미 미주상호원조조약을 맺고 결속을 다져왔다. 이 체제는 1961년 쿠바 미사일 위기 등에 공동 대응하며 협력 체제를 유지해왔다.
 인도·태평양 사령부에서 중국 팽창 저지 역할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가 8월 23일 오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담은 공문을 받기 위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눈여겨볼 점은 아시아 지역이다. 중요한 점은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유럽과 달리 집단안보체제가 아닌 개별 안보협약에 의지해왔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자신과 연결된 아시아 지역 여러 나라를 연결하는 아시아 안보협력 체제의 ‘허브’ 역할을 해왔다. 미국은 필리핀과는 1951년 미국·필리핀 상호방위 조약을 맺고 미군이 필리핀에 주둔했지만 1991년 필리핀 상원이 미군기지 조차 연장법안을 거부하면서 미군은 기지를 반환하고 철수했다. 하지만 미국은 필리핀과 23년 만인 2014년 방위협력확대협정(EDCA)을 맺고 10년간 필리핀 군사기지 접근과 이용을 허가받고 미군 배치 지역의 별도 시설물을 설치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했다. 명분은 미군이 대테러전 등을 위해 필리핀 내 기지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미군은 필리핀 중부의 바사, 남서부의 안토니오 바티스타, 남부의 막탄-베니토 에부텐, 룸비아 등 공군기지 4곳과 북부의 포트 막사이사이 육군기지 등 5군데를 사용하고 있다.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수교하고 대만과 국교를 단절하면서 대만관계법을 제정해 대만에 대한 미국의 무기 수출이 가능하도록 했다. 중국의 반발에도 미국 국무부가 지난 2월 대만에 M1A1 에이브람스 전차의 개량형인 M1A2 108대와 스팅어 미사일 등 22억 달러의 무기 수출을 승인한 데 이어 8월 21일에는 80억 달러 상당의 F-16V 66대의 판매도 결정한 법적 근거다. F-16V는 기존 F-16 전투기에 성능이 개량된 레이더를 장착하고, 작전 컴퓨터와 전자전 장비 및 추락방지 장치 등을 추가해 2012년 공개한 최신 버전의 무기체계다.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유일하게 방위를 위해 피를 흘린 나라가 한국이다. 미국은 6·25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주한미군 한반도 주둔의 권리를 보장받고 한미동맹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과 1960년 미일 안보조약을 체결하고 주일 미군을 앞세워 일본 영토의 공격에 대처하고 있다. 아울러 미군이 일본 시설을 사용하는 근거를 제공받고 있다.

미국은 호주·뉴질랜드와는 1951년 태평양 안보조약을 맺고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이 팽창하면서 미국은 한국·일본을 묶고 호주·뉴질랜드까지 결합하는 한·미·일·호·뉴질랜드 5개국 안보체제를 추구해왔다. 여기에 인도의 협력까지 더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군사적·외교적·지리적으로 중국을 포위해 팽창을 저지하고 영향력 확대를 억제하려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글로벌 전략의 축으로 삼아왔다. 미국의 사령부가 2018년 5월 30일 해리 해리스 사령관(현재 주한 미국대사)의 취임에 맞춰 명칭을 인도·태평양 사령부로 바꾼 것은 미국이 추구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상징과도 같은 사건이다. 이 사령부는 인도양과 태평양 및 그 연안을 담당한다. 미국은 자국을 포함한 전 세계를 북부사령부(북미), 남부사령부(멕시코를 제외한 중남미), 유럽사령부(유럽과 러시아), 아프리카 사령부(아프리카), 중부사령부(중동과 파키스탄, 중앙아시아), 그리고 인도·태평양 사령부 등 6개의 관구로 나누고 있다. 이 가운데 인도·태평양 사령부가 관할 구역이 가장 넓다.

이 인도·태평양 사령부 관할 지역에서 미국은 한·미·일·호·뉴질랜드 5개국 군사동맹으로 중국을 억제하고 싶어 한다. 여기에 인도가 포함될 수도 있다. 아시아판 또는 인도·태평양판 나토를 만들고 싶은 것이 미국의 오랜 의도였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이 역사 문제로 갈등하자 한국을 설득해 2016년 맺도록 한 것이 지소미아다. 바로 그 지소미아가 종료한 것은 단순히 한일 관계 악화를 넘어 미국의 아시아 또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결정적인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한국은 지소미아 폐기로 미국의 글로벌 전략 의도를 제대로 따르지 않은 것은 물론 그르치게 한 셈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한일 협력의 끈을 유지하려고 노력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도 미국에 매달려 한국이 지소미아 중단을 번복하게 하든지,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대한 수출금지와 화이트국가 배제 당시 한국이 미국에 중재를 요청하려고 했던 당시와는 역전된 상황이다.
 미국의 다음 대응 카드는…
현재도 미국은 주한미군 주둔 분담금 인상과 호르무즈 해협 파병 등으로 한국에 부담을 주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가 문제의 핵심이 되고 있다. 지소미아 중단 또는 파기는 한일 문제를 넘어 한미동맹의 문제로까지 떠오를 수밖에 없다.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어떤 외교력을 발휘할까.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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