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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어 산, 위기의 두산] 계열사 지원하다 그룹 허리 ‘두산중공업’ 휘청

[산 넘어 산, 위기의 두산] 계열사 지원하다 그룹 허리 ‘두산중공업’ 휘청

두산건설에 10년간 2조원 지원… 수주 가뭄에, 발전시장 전환 대응도 늦어
사진:연합뉴스
“지금 이 상태로는 3개월 안에 그룹이 망할 수도 있습니다.” 1996년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두산그룹을 향해 “OB맥주를 팔아야 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1991년 두산전자의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으로 시작한 불매운동이 소비재 중심의 두산그룹을 강타한 데 따른 진단이었다. 당시 두산그룹의 주력 사업부문은 맥주(OB맥주), 콜라(두산음료), 의류(두산상사) 등 소비재였던 터라 불매운동 파고는 거대했다. 특히 두산그룹의 중심이었던 OB맥주의 타격이 컸다. 국내 시장 1위였던 OB맥주는 1995년 적자 규모 9000억원에 부채비율 625%를 기록했다.

두산그룹은 결국 1998년 OB맥주 지분 50%를 매각했다. OB맥주 지분 매각 이전엔 한국네슬레와 한국3M을 매각했고, 처음처럼·버거킹·KFC 등 소비재사업 전반을 매각·조정했다. 매각 대금으로는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인수해 불매운동 여파에서 비켜날 수 있는 중공업을 주력사업으로 편성했다.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와 미국 건설장비 회사 밥캣 등도 잇따라 사들였다. 2002년 두산그룹은 팔고 남은 OB맥주 보유 지분마저 매각키로 결정하면서 두산중공업을 지원했고, 두산중공업은 2011년 매출 기준 세계 5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자금줄 역할에 곪아버린 두산의 허리
20여년이 흐른 2020년, 두산그룹은 또다시 위기에 빠졌다. 불매운동은 피했지만 2011년 영광은 사라졌고, 되레 중후장대형 산업의 역풍을 맞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경기 침체로 시작한 두산건설 실적 부진이 두산중공업 재무 위기로 옮겨붙었고, 지주사인 ㈜두산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일각에선 두산그룹 중간지주사 역할을 하는 두산중공업이 두산건설을 지원하다 ‘금융비용 덫’에 갇힌 만큼 자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 손자회사인 두산밥캣으로 재무 위기가 전이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두산에 재차 구조조정 그림자가 깔린 셈이다.

두산건설 지원으로 불거진 두산중공업의 재무 위기가 그룹 전체를 흔들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공기업이었던 한국중공업으로부터 발전 및 산업설비 관련 기술을 이전 받아 정부의 발전 수주물량을 독점하며 성장했지만, 내부가 곪아버렸다. 두산중공업이 두산그룹 자금줄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두산그룹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두산그룹은 2000년대 사업 개편 이후 그룹 유동성 위기를 막을 캐시카우 사업 부문이 모두 사라졌다”면서 “매출인식과 채권회수 등에서 시차가 발생하는 중공업을 위기 속 돈줄로 사용하면서 재무 위기가 가중됐다”고 지적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1조769억원 영업이익(연결 기준)을 내고도 1044억원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금융권에서 빌린 차입금만 4조9000억원에 달하는 탓에 이자 부담 비용인 금융비용이 영업이익을 잠식했다. 2018년 역시 영업이익이 1조35억원이었으나 금융비용 1조802억원이 발생하며 당기순손실은 4217억원으로 추락했다.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밥캣 등을 제외한 개별 기준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 개별 실적 기준 두산중공업은 영업이익(877억)의 7배 수준인 5563억원을 금융비용으로 냈다. 지난해 당기순손실은 495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자금 경색의 시작은 두산건설의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 미분양 사태였다. 경기도 고양시 탄현동에 준공한 대규모 복합단지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초기 계약 세대 가운데 실제 입주자 비율은 25%에 불과했다. 또 당시 시행사가 부도 처리되면서 시공사인 두산건설은 공사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기도 했다. 두산건설은 입주 개시 이후 6년이 지난 시점인 2018년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의 미분양 물량을 할인해 분양했고, 계속된 적자에 더해 1600억원가량을 손실 처리했다.
 “두산중공업, 두산건설 지원에 1조9200억원 쏟아”
두산그룹은 두산중공업을 두산건설 위기의 자금줄로 썼다. 두산중공업은 2013년 두산건설 유상증자에 참여해 3000억원을 지원했다. 알짜였던 폐열회수보일러 사업도 5700억원 규모의 현물출자 방식으로 넘겼다. 두산건설의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 자금 조달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이뤄졌고, 대규모 미분양이 금융비용 상승으로 치달으며 위기가 심화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두산건설이 신분당선 등 토목사업 과정에서 일으킨 손실, 아파트 미착공사업 등으로 인해 발생한 손실에 금융비용을 합치면 총 손실 규모는 수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중공업 노동조합에 따르면 두산중공업은 두산건설을 살리기 위해 2010년부터 현재까지 1조9200억원 넘는 자금을 쏟아부었다. 이를 위해 두산중공업은 두산엔진과 두산밥캣의 지분도 팔았고, 자회사 두산인프라코어의 공작기계 사업부도 매각했다. 지난해 5월에는 두산건설과 동시에 유상증자를 단행해 9483억원을 조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산건설의 자본총액은 2019년 3분기 말 6000억원대에 그치고 있다. 두산중공업 노조 관계자는 “두산건설은 현물출자한 폐열회수보일러 사업 부문을 매각해버렸고, 투입 자금 대부분이 손실을 메우는 데 소진됐다”고 말했다.

소비재 사업부문을 모두 매각한 것이 두산그룹에 뼈아픈 일이 됐다는 분석이다. 과거 두산그룹이 매각한 소비재 기업들은 국내 독점판매 사업권을 가진 기업들이었다. 캐시카우 역할을 하며 산업 위기 국면에서 유동성 공급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실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건설경기가 침체기에 빠지면서 그룹 전체 위기가 발발할 당시 OB맥주는 급성장했다. OB맥주는 2007~2013년 7년간 연평균 14%의 매출 신장률을 보이며 고공행진했다. 재계 관계자는 “소비재사업부를 완전히 정리하지 않고 일부 남겨뒀더라면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계열사 퍼주기’는 두산그룹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10년간 두산건설 적자를 메워주느라 두산중공업 신용등급이 두 차례 하향 조정됐고,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19년 말 두산중공업의 부채총액은 18조6073억원으로 부채비율이 300%까지 치솟았다. 최근 5년간 평균 부채비율은 270%에 이른다. 그룹 내 계열사를 살리려다 부진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2007년 4조5000억원을 들인 밥캣 인수까지 재무 구조 악화에 영향을 미쳤고, 두산중공업은 오는 4월 말까지 2015년 발행한 외화공모사채 5800억원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국책은행 1조원, 유동성 위기 완전 해소 역부족
두산중공업이 개발 중인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 / 사진:두산중공업
그러나 두산중공업은 차입금 상환은커녕 매출과 영업이익마저 감소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계열사를 지원하느라 알짜 사업부문을 떼어주거나 매각해 기초체력이 약화했다. 두산중공업의 최근 3년(2017~2019년)간 개별 기준 매출은 4조3367억원에서 4조1016억원, 3조7086억원으로 대폭 줄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 역시 2263억원에서 1846억원, 877억으로 감소했다. 정연인 두산중공업 사장은 “매출이 떨어지고 영업이익이 줄면서 영업활동만으로는 금융비용을 감당할 수 없고 신용등급까지 하락하는 악순환으로 부채상환 압박이 더해졌다”라고 토로했다.

두산중공업은 당장 4월 갚아야 할 자금을 국책은행에서 재차 끌어오기로 정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 3월 27일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으로부터 1조원의 지원을 약속받았다. 두산중공업 주식 1억1356만주와 ㈜두산 주식 361만주, 부동산 신탁수익권 등 1조2000억원 상당의 담보를 제공했다. 오는 5월 2017년 5월 발행한 5000억원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조기상환 기일까지 겹쳐 1조원 규모 자금을 마련해야 하지만, 재무상황에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두산중공업의 지난해 말 개별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3458억원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에선 1조원 차입으로 두산중공업이 당장 급한 불을 끌 수 있겠지만 유동성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보고 있다. 두산중공업의 금융권 차입 규모는 4조9000억원으로 이 중 4조2800억원을 올해 상환해야 한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4월 말 외화공모사채는 지급보증을 섰던 수출입은행의 대출 전환으로, 5월 만기인 BW는 자체 보유 자산과 현금으로 상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은행권 대출은 만기 연장이 가능하고 이 외에 상반기 만기인 기업어음 등 5700억원은 국책은행 차입금 1조원으로 상환할 예정이다”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앞으로다. 두산중공업이 두산그룹을 흔드는 제2의 두산건설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두산중공업의 신규수주 및 수주잔고가 지속해서 줄면서 수익성 개선 가능성에 물음표가 붙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두산중공업 신규 수주는 2조1000억원으로 2018년 4조6000억원의 절반, 2016년 9조1000억원의 23%에 그쳤다. 수주 잔고는 2016년 17조2000억원에서 지난해 14조6000억원으로 감소했다. 발전업계 관계자는 “수주 물량이 줄었다는 것은 실적 개선 여지도 줄었다는 것”이라면서 “본업으로 돈을 벌지 못하면 차입금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발전 시장 전환 대응 늦어 수주마저 가뭄
두산중공업은 매출 기반인 발전 시장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에도 대응이 늦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두산중공업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석탄화력발전 글로벌 시장의 침체가 빨라지고 있다. 미국 에너지경제 재무분석연구소(IEEFA)의 멜리사 브라운 이사는 ‘두산중공업 부정적발감사가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보고서에서 “발전설비 제조업체인 두산중공업은 2015년 이후 4년여 동안 진행된 에너지 전환에도 전통적인 석탄화력발전 관련 기술에만 주력하는 등 시장 오판을 범했다”면서 “국내·외 발전 시장에서의 성장 잠재력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고 말했다.

석탄화력발전 수주 감소는 전 세계적인 추세다. 2015년 온실가스 감축을 결의한 파리기후변화협약 이후 세계 석탄화력 신규 발주는 큰 폭으로 줄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세계 석탄화력 투자결정은 2015년 88GW에서 2018년 23GW로 감소했다. 반면 전 세계 전력시장 투자비율은 신재생에너지가 전체의 40%를 차지, 가장 많은 비중을 기록했다. 한편 국내 탈원전 정책은 현재 두산그룹의 위기와 큰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탈원전 정책 이후 한국수력 원자력이 두산중공업에 지급한 돈은 5877억원에서 지난해 8922억원으로 증가했다.

두산그룹은 두산중공업의 가스터빈 개발 등 신사업에 기대를 걸고 있으나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에는 이른 상황이다. 특히 가스터빈은 GE나 지멘스 등 글로벌 기업이 빠르게 기술 개발에 나서 시장을 독점하고 있어 새로 진입하는 게 쉽지 않다. 이동헌 대신증권 연구원은 “원전이 빠진 부분을 다른 사업이 대체해야 하는데 신재생 에너지 본격화에 시간이 걸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연구원은 “정부가 힘을 실어준다면 원천 기술을 해외에 의존하는 가스터빈 시장에서 새 먹을거리를 찾을 수 있겠지만, 기술개발과 상용화까지 시간이 걸리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두산중공업은 2022년 가스터빈 상용화를 목표로 기술개발 중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두산중공업의 위기는 1990년대 낙동강 페롤 유출 사태와 같이 그룹 전체로 번지고 있다. 두산그룹은 지주사를 통해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했다. 하지만 지주사인 ㈜두산이 직접적으로 자금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두산은 이미 두산중공업에 2400억원 규모의 현물 출자를 하며 자구 노력에 나선 상태다. 두산중공업이 두산그룹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는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밥캣을 각각 자회사 손자회사로 두고 있는 중간지주사라는 점도 부담이다.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밥캣 이익이 두산그룹으로 직접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팔고 붙이고’ 두산그룹 또 다시 사업재편
두산그룹 전반의 신용등급도 떨어지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1월, ㈜두산의 신용 전망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로 실적과 재무상태가 악화된 두산중공업에 대한 지원 부담을 언급했다. 한국신용평가는 “계열사 신용리스크의 전이 가능성과 계열에 대한 지원부담 확대 여부는 두산의 신용도에 중요한 판단요소”라고 평가했다. 또 한국신용 평가는 지난 3월 24일 “두산중공업의 재무 리스크가 지주회사인 ㈜두산 뿐 아니라 자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나 두산밥캣으로 전이되는 경우, 이들 계열사의 신용도도 저하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2015년 A+였던 두산중공업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은 현재 BBB(한국신용평가)까지 떨어진 상태다.

두산그룹은 다시 그룹 구조를 재편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채권단은 지배구조의 대대적인 변화를 담은 고강도 자구안을 요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그룹은 일단 그룹 핵심 계열사인 두산솔루스를 사모펀드에 매각하기로 정했다. 유동성 위기가 그룹 전체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두산중공업에서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밥캣을 떼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두산그룹이 두산중공업을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분할해 ㈜두산이 투자회사를 합병하는 형태의 자구안 마련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리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두산중공업이 두산건설을 매각한다는 시나리오도 주목받았지만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구체적인 사업구조 개편은 자구안이 나와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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