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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 킥보드 규제 완화’에 빠진 것] 이용자 안전은 뒷전, 보험은 모호… 스타트업만 반기네

[‘전동 킥보드 규제 완화’에 빠진 것] 이용자 안전은 뒷전, 보험은 모호… 스타트업만 반기네

독일선 ‘이용은 자전거처럼, 규제는 자동차급으로’
이동장치 관련 개정 법률에 따르면 오는 12월 10일부터 13세 이상 청소년도 전동킥보드를 탈 수 있다.
오토바이는 아닌데, 그렇다고 자전거라고 보기도 어렵다. 개인형 이동장치(Personal Mobility Device-PM) ‘전동 킥보드’ 이야기다. 최근 정부는 전동 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 장치를 ‘원동기장치자전거’로 정의하고, 오토바이가 아닌 자전거 수준으로 이용 규제를 완화했다. 하지만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스타트업 활성화에만 초점을 맞춰 규제를 완화하다 보니 이용자의 안전이나 사고에 따른 대처, 보험가입 등 대책이 허술하다는 지적이다.

전동 킥보드 대여시장은 2018년 9월 킥고잉이 국내 최초로 문을 연 이후 라임, 씽씽 등 현재 20여개 업체들이 경쟁하고 있다.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의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전동 킥보드 카테고리 앱 사용자(MAU기준)는 2020년 4월 기준 21만4451명을 기록했다. 2018년 4월 앱 사용자 수가 3만7000여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2년새 6배 가량 증가했다. 한국교통연구원은 국내 퍼스널 모빌리티 시장이 2022년에는 20만여 대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 추세라면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스타트업 활성화에 밀린 시민 안전
문제는 이용자에 대한 안전 대책이 뒷전으로 밀렸다는 것이다. 최근까지 전동 킥보드는 오토바이에 가깝게 분류됐다. 전동 킥보드를 타려면 원동기면허나 2종보통 이상의 운전면허가 있어야 했다. 6월 2일 법원은 전동 킥보드가 자동차관리법의 적용을 받는 자동차(이륜자동차)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그런데 일주일 뒤 행정안전부와 경찰청은 전동 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를 ‘최고속도 시속 25㎞ 미만, 총중량 30㎏ 미만인 원동기장치자전거’라고 정의하고 전동 킥보드와 관련해 개정 법률을 공포했다. 이에 따라 12월 10일부터 전동 킥보드로 자전거도로를 달릴 수 있게 됐다. 13세 이상 운전자라면 운전면허 없이도 운전할 수 있다. 중학생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한 것이다.

우선 전동 킥보드에 대한 보험가입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전동 킥보드가 오토바이로 분류될 경우 의무적으로 자동차보험에 가입해야 하지만, 자전거로 정의되면서 보험사들도 난감한 처지에 빠졌다. A보험사 관계자는 “보험을 만들려고 해도 전동 킥보드 사고와 관련한 충분한 데이터가 없는데다가, 보험 가입이 의무인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라 상품을 내놓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현재 개인형 이동장치 관련 보험을 출시한 보험사는 메리츠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DB손해보험 4곳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 보험사 모두 개인이 가입할 수 있는 보험은 없다. 대부분 전동 킥보드 대여업체 같은 회사가 가입할 수 있는 기업형 상품만 판매 중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용자 과실로 일어난 사고에 대해선 거의 보장해주는 상품이 없다. 스타트업도 대부분 기기 이상으로 사고가 난 경우에만 보장해주는 보험 상품에 가입했다”고 설명했다.

전동 킥보드 관련 사고는 점차 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개인형 이동장치 가해 차종으로 분류된 교통사고 건수는 2017년 117건에서 2018년 225건, 2019년 447건으로 증가했다. 2년 만에 4배 가까이 늘었다. 보험 사각지대에 빠질 우려가 있는 이용자가 증가한다는 뜻이다.

사고 위험도도 심각한 수준이다. 한 보험회사의 조사에 따르면 전동 킥보드 등을 이용한 사고의 경우 건당 지급한 보험금이 374만원으로, 자전거(244만원)보다 많았다. 사고 위험도가 그만큼 크다고 볼 수 있다. 자동차보험사고의 상해등급으로 분석한 결과 중상사고 비율은 10.8%로, 자동차 사고의 중상사고 비율인 2.46%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보험업계에선 대인 보상 보험 상품을 만드는 게 현재로는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B보험사 관계자는 “섣부르게 보험을 출시하면 보험료 산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자칫 이용자 사고가 늘어날 경우 보험사가 큰 손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스타트업 활성화에만 신경 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소비자의 안전, 보험사의 상품 개발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실상 전동킥보드 대여업체만 수혜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전동 킥보드 방치 문제에 대해서도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킥고잉, 라임, 씽씽 등 공유 전동 킥보드가 거리의 흉물처럼 방치되면서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길거리에 세워둔 전동 킥보드가 보행자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사고를 유발하는 일도 잦다. 한 보도에 따르면 지난 3월 지하철 2호선 잠실새내역 출구 계단에서 행인이 방치된 전동 킥보드를 밟고 넘어져 크게 다쳤지만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일이 가능한 건 불법주차 등 관련 규정이 없어서 이용자들이 전동 킥보드를 타다가 아무 곳에나 반납해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을 보면 자전거의 무단방치 금지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누구든지 공공장소에 자전거를 무단으로 방치해 통행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도지사나 시장, 군수, 구청장은 방치된 자전거에 대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이동, 보관, 매각 등의 처분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시가 ‘따릉이’처럼 전동 킥보드도 특정 장소에 주차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공유업체들의 반발로 무산된 바가 있다.

논란이 계속되자 서울시는 길거리에 무단 주차된 전동 킥보드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조례 개정 절차에 들어갔다. 전동 킥보드 업계 관계자는 “이용자 안전을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보험 문제를 비롯해 지자체와 협력해 주차 문제도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獨·日은 자동차 수준 보험상품 판매
해외에선 전동 킥보드를 어떻게 다룰까. 독일은 전동 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에 대해 특별 규정인 eKFV를 시행하고 있다. 전동 킥보드의 운행방법은 자전거와 유사하게 규제하면서 안전기준이나 보험은 자동차와 동일하게 규제한다. eKFV는 최고 속도 6㎞/h 이상 20㎞/h 이하인 전동 킥보드 등에 대해서 운전면허를 요구하지 않는다. 자전거도로 통행도 허용한다. 하지만 자동차보험(대인·대물 배상)을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하고 별도의 특별 규정이 없는 한 자동차에 관한 기존 규제를 동일하게 적용한다. eKFV에 따라 알리안츠 등 독일의 보험회사들도 기존 자동차보험에 준하는 수준의 전용 보험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법체계와 내용이 비슷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에서도 전동 킥보드는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상 자동차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전동 킥보드 보유자가 운행자 책임 및 보험가입의무를 부담하게 한다. 황현아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사고책임과 피해자 보호 문제를 적절히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조성되면 새로운 이동수단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져 모빌리티 산업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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