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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원달러 환율 하락에 초조해진 사람들

[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원달러 환율 하락에 초조해진 사람들

환율 하락에도 개인 달러화 예금 증가는 장기적 추세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금융시장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다. 대선이 한 달 남짓 남았던 9월 하순까지, 금융시장의 움직임은 특정 후보에 기울지 않았다. 코로나19 창궐 이후 여론 조사에서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줄곧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앞섰지만, 9월 무렵에는 격차를 더 벌리지 못하고 오히려 좁혀진 상황이었다. 4년 전 대선 당시 여론 및 시장참가자들의 예측과 어긋났던 결과에 아연실색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보니 금융시장이 섣불리 승자를 예단하지 못했다.

9월 말과 10월 초, 무게의 추를 움직이는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했다. 하나는 1차 대선 후보 토론이었고, 또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진의 당사자가 된 것이다. 9월 29일에 있었던 대선 후보 토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끼어들기 전략이 결국 토론을 파행으로 이끌어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는데, 이러한 방식이 대중에게 더는 어필하지 못했다. 이 첫 대선 토론을 계기로 여론 조사는 물론, 베팅 마켓(betting market)에서도 바이든의 우위가 뚜렷해졌다.

이틀 뒤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로써 여론의 관심을 코로나19 및 방역 실패 논란에서 돌리려던 트럼프의 대선 전략에 차질이 빚어졌다. 여기서 또한 번 여론 및 베팅 마켓이 바이든의 당선 기대감을 높였다.
 연저점 깨고 내려온 원달러 환율
이쯤 되자 금융시장도 본격적으로 바이든의 당선 가능성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단지 바이든의 승리 가능성만이 아니라 대선과 함께 실시될 상·하원 선거까지 민주당이 싹쓸이 하리라는 기대감을 반영했다. 대통령 직과 의회를 단일 정당이 점유하게 되면, 지난 몇 달간 재정부양책이 통과되지 못하고 계류되는 것과 같은 정치적 걸림돌이 사라져 미국 정부가 경제 부양에 더욱 전향적으로 나설 수 있다. 더구나,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공화당이 아니라, 큰 정부를 지향하는 민주당에 힘이 실린다는 것이 중요하다.

자가격리 중이었으나 서둘러 퇴원하며 조급함을 내비친 트럼프 대통령은 10월 6일에 자충수까지 뒀다. 당장 급한 재정부양책이 민주당과의 의견차로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대선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대선 전까지 민주당과 협상을 중단하라”며 그의 방식대로 협상의 판을 깨 버린 것이다. 하지만, 민심에 반하는 결정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불과 하루 뒤, 슬그머니 트위터를 통해 협상 의지를 다시 보인 것이다.

일련의 상황은 그간 금융시장이 우려했던 불확실성의 완화로 받아들여졌다. 대선 이후 우편 투표 인정 문제로 승자를 상당 기간 확정하지 못하거나 트럼프 대통령이 결과에 불복할 가능성을 낮추게 만들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격차가 클수록 트럼프 대통령이 불복한다면 더욱 궁색해진다.

미국 대선 이슈와 미중 관계에 시선이 팔린 동안, 원달러 환율은 기존 연저점을 깨고 내려와 버렸다. 10월 중순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월 중순의 기존 연저점을 경신한 것은 물론, 2019년 4월 이래 내려선 적 없던 1150원까지 하향 돌파했다. 3월 중에 1300원을 넘본 지 불과 7개월 만이다.

그러자, 달러화 가치가 하락할 때마다 제기되는 “금융 피난처로서의 달러화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주장이 어김없이 들려온다. 하지만 달러화 지위가 흔들린다고 하기에는 섣부른 감이 있다. 금융과 무역에서 달러화의 지배적인 지위는 여전히 견고하다. 외환시장에서 환율의 움직임은 큰 사이클과 작은 사이클이 공존하며, 최근 달러화 가치의 변동 역시 3월의 급등 이후에 찾아온 사이클상 하락으로 봐야 한다. 만약 가까운 시일 내에 코로나19급 충격이 발생하게 된다면 경제 주체들은 또 다시 달러화를 폭풍 매수할 것이다.

달러화 위상 문제와는 별도로, 달러화 매도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던 국내의 경제 주체들은 대처하기가 어려워졌다. 코로나19 창궐 이후, 기업들은 비상 경영 방침 속에 유동성 및 달러화를 최대한 확보한 상황인데, 환율이 부담스러운 수준까지 하락하면서 이제 환손실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일부 개인들도 마찬가지다. 해외 투자 열풍에 올라타서 미국 달러화로 주식이나 채권 등의 금융자산을 매입한 입장이라면 환율 하락에 민감하지 않다. 다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달러화를 매입한 사람들에게는 환율 하락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환율 하락폭이 이렇게 커지면 지금이라도 팔 것인지, 아니면 최대한 버틸 것인지를 두고 선택해야 되는 상황에 놓인다. 과거에도 이렇게 몇 달 만에 환율이 100원 넘게 하락한 적이 있었다. 2012년 하반기와 2017년이다. 가장 가까운 2017년에 경제 주체들의 대응은 최대한 버티기였다. 2017년 말을 전후로 거주자 외화예금이 당시로서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는데, 이는 당시 달러화 보유자들 근심의 높이를 대변하는 것이다. 그들은 당시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했으나, 머지않아 찾아온 2018년과 2019년의 환율 상승을 틈타 달러화 매도 욕구를 해소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버티면 언젠가는 달러화 보유자들이 기다림의 시간을 보상받게 될지 모른다. 그런데, 환율의 움직임과는 무관하게 경제 주체들이 보유한 외화예금의 증가는 장기적인 트렌드로 보인다. 환율이 상승하면 일부 물량은 해소되겠지만, 한국 자본의 해외 투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며 덩달아 증가하는 개인들의 달러화 예금이 장기적으로는 증가할 전망이다.
 외화예금의 증가는 장기적 트렌드
한국은행이 매월 공표하는 거주자 외화예금 통계를 보면 두 가지 특징이 발견되는데, 하나는 개인 외화예금의 비중이 늘어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달러화의 비중이 늘어나는 것이다. 2020년 8월 외화예금 중 기업의 비중이 80%에 달해 20%에 불과한 개인의 4배에 해당하지만, 늘어나는 속도를 보면 기업의 외화예금 증가에 비해 개인의 외화예금 증가 속도가 훨씬 빠르다. 2012년 6월 외화예금에서 개인의 비중은 기업의 11%에 불과했으나 2020년 8월에는 기업의 25%까지 상승했다.

특히, 달러화를 제외한 외화 예금 잔액이 지난 5년간 큰 변동 없이 사실상 제자리 걸음이었던 데 비해, 달러화 예금 잔액은 같은 기간 거의 2배가 되어 최근에는 전체 외화예금 잔액의 85%를 넘는다. 국제금융시장에서 달러화의 지배적인 지위와 금융자산으로서 미국 주식·채권의 매력,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려는 경제 주체들의 심리로 인해 달러화 예금의 증가는 장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 필자 백석현은 신한은행에서 환율 전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단순한 외환시장 분석과 전망에 그치지 않고 회계적 지식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환위험 관리 컨설팅도 다수 수행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 기업의 헤지회계 적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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