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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희의 테크&라이프] 애플은 친환경 기업인가, 친환경 이미지를 파는 기업인가?

[한세희의 테크&라이프] 애플은 친환경 기업인가, 친환경 이미지를 파는 기업인가?

아이폰12 패키지에서 충전기·이어폰 제외… ‘원가 절감을 친환경으로 포장’ 비판 나와
10월 13일(현지시간) 팀 쿡 애플 CEO가 아이폰12 시리즈의 5G 통신기술 적용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애플 홈페이지
2018년 애플은 세계 43개 국가에 있는 자사 사무실과 유통 매장, 데이터센터 등을 100% 신재생 에너지로 가동한다고 밝힌 바 있다. 상당수의 애플 협력 업체는 신재생에너지로만 생산 시설을 운영한다. 우리나라에선 SK하이닉스가 얼마 전 애플과 ‘협력업체 청정에너지 프로그램’ 협약을 맺고, 100% 신재생 에너지로 생산한 반도체를 납품하기로 했다.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사옥도 100% 신재생 에너지로 운영된다. UFO 모양의 사옥 옥상에는 17MW 규모의 태양열 설비가 설치되어 있다. 지난 10월 13일 (현지 시각) 열린 아이폰12 온라인 공개 영상에서 리사 잭슨 애플 환경 담당 부사장은 줄지어 선 태양열 설비를 배경으로 한 무대 위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고 소중한 자원의 채굴과 사용을 줄이기 위해” 충전기와 유선 이어폰을 신제품 박스에서 빼겠다고 밝혔다.

잠깐, 뭐라고? 그렇다. 신제품 아이폰을 살 때 줬던 충전기와 이어폰을 주지 않겠다는 말이다. USB-C 타입 충전 케이블만 아이폰12에 따라온다. 새 휴대폰 박스를 여는데 충전기와 이어폰이 없다는 건 현대인에게 너무나 생소한 일이다. 마치 요즘 배달 음식점이 배달비를 받기 시작한 것만큼이나 충격적인 변화다.
 ‘환경 보호 위해’ 충전기 기본 제공 중단
애플의 명분은 환경이다. 안 쓰는 충전기와 이어폰은 처치 곤란한 전자 폐기물이 되어 쏟아져 나온다. 유럽연합(EU)은 2016년 기준, EU 주민 1인당 전자 폐기물이 16.6kg에 이른다고 밝혔다. 충전기와 이어폰을 박스에서 빼면 이 흐름을 조금은 늦출 수 있다. 박스 포장 크기도 줄어 그만큼 환경부담을 던다.

박스 크기가 줄어듦에 따라 배송 운반대에 제품을 70% 더 많이 실을 수 있고, 그래서 물류 과정의 이동이 줄어드니 탄소 배출도 줄어든다. 아이폰12의 다른 친환경적 시도와 합쳐져 매년 자동차 45만대가 사라지는 것과 맞먹는 효과를 낸다는 것이 애플의 설명이다. 이미 20억개가 넘는 애플 충전기가 우리의 책상 위와 서랍 속에 굴러다니고 있다. 애플의 유선 이어폰인 이어팟을 가진 사람도 7억명이 넘는다고 한다.

맞다. 필자 역시 3년 전 산 아이폰 박스에 들어있던 충전기를 아직 꺼내 쓰지 않고 모셔 두고 있다. 지금 휴대폰을 사기 3년 전 구매한 이전 모델 아이폰에 따라온 충전기를 계속 쓰고 있다. 게다가 애플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부품에 재생 희토류 소재만 쓰고, 2030년에는 탄소 중립도 이룰 계획이라고 한다. 이 아름다운 목표에 소비자도 이 정도는 협력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려 한다.

하지만 소비자로서 왠지 모를 불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결국, 원가 절감과 재무 개선을 위해 소비자에게 주던 것을 없애 버렸으면서 친환경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행태에 얄미움을 느끼는 것이다.

아이폰12 제품군의 가격대는 전작과 엇비슷하다. 충전기와 이어팟이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실질적으로 약간 오른 정도라 할 수 있다. 5G 통신 기능에 필요한 값비싼 부품을 넣느라 제조 원가가 올라갔고, 이를 조금이라도 상쇄하기 위해 충전기와 이어폰을 뺐다는 분석도 나온다. 별로 비싸지도 않은 충전기와 이어폰을 빼서 얼마나 절약하겠나 싶지만, 한 해에 2억대 팔리는 제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기에 아이폰 구매자 중 일부라도 충전기를 새로 사고, 유선 이어폰 대신 무선 에어팟을 산다면 수익성이 좋은 애플의 액세서리 매출은 더 늘어난다. 미국 IT 매체 더버지는 아이폰12가 2018년 모델과 비슷한 2억1700만대 판매를 기록하고, 이 중 5%만 에어팟을 산다 해도 애플은 7억 달러는 더 수익을 낼 것이라고 보도했다. 실제로 아이폰12는 지난주 사전예약에서 전작 아이폰11을 뛰어넘는 성과를 보이며, 교체 수요가 대거 일어나는 ‘슈퍼사이클’을 예고했다. 물론 충전기와 이어폰이 빠진 것을 불평하는 것과, 충전기와 이어폰을 받는 대신 가격이 올라간 5G 아이폰을 보며 놀라는 것 중 어느 편이 나을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더 궁금한 점은 충전기와 이어폰을 박스에서 빼서 탄소 배출과 환경 오염을 실질적으로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는 점이다. 사람들이 충전기를 따로 산다면 결국 그만큼의 박스 포장이 나오고, 이들을 운송하기 위해 화석연료를 태운다. 그리고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만큼의 폐기물이 나온다.
 차라리 충전기 단일 표준을 만들면?
더구나 세상에 나와 있는 20억개의 애플 충전기 중 새로 나온 아이폰12 충전 케이블과 호환되는 건 얼마 안 된다. 아이폰12 충전 케이블은 한쪽에 애플 고유의 라이트닝 단자, 다른 쪽에 USB-C 단자가 달려있다. USB-C 충전기는 아이폰12 직전 모델인 아이폰11부터 쓰였다. 이전 아이폰 충전기는 예전 방식의 USB 단자를 사용했다. 아이폰11에서 갈아타는 경우가 아니라면 USB-C 방식 충전기를 새로 사야 한다. 이러니 환경을 명분으로 수익을 최대화하려 한다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어 보인다.

충전기 공해를 해결하는 한 가지 방법은 업계 공통의 충전기 표준을 정하는 것이다. 사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비롯해 대부분의 모바일 기기는 USB-C 방식이 실질적 표준이 되어가고 있다. 애플이 진정 충전기로 인한 환경 오염을 걱정한다면 자기들만 쓰는 라이트닝 기술을 포기하고 USB-C 방식 충전을 채택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충전기 표준화는 EU가 주요 휴대폰 제조사들에 지속해서 요구하는 사안이다. 지난 1월에도 유럽 의회가 이 같은 내용의 결의안을 냈다. 다른 기업들이 대부분 USB-C를 쓰기 때문에, 압박의 대상은 주로 애플이다. 애플은 충전기 표준화에 회의적이다. 라이트닝 단자를 포기하면 이 기술을 쓴 충전기 쓰레기가 단기간에 쏟아져 나오고, 혁신도 저해한다는 것이 반대 이유다.

애플 같은 대기업들이 환경 문제 해결에 노력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충전기와 이어폰 같은 구성품을 빼서 탄소 배출을 줄이며 수익성도 개선하고, 무선 에어팟이나 무선 충전 같은 새로운 사용 환경으로 자연스럽게 소비자를 끌고 간다면 일석이조다.

하지만 친환경 명분에 소비자들이 들러리 서도록 은근히 유도한다면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박스 포장은 작아지고, 친환경 마케팅 포장만 커지면 곤란하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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