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건 투자 마인드 리셋] 성장주냐 가치주냐, 그것이 문제로다!
지난 5여년의 시간은 전통적인 가치투자자들에겐 어둠의 시간이었다. 저PER, 저PBR, 고배당으로 표현되는 전통적인 가치주들은 성장주에 밀려 오랫동안 지지부진했다. 상황이 변한 건 연초부터 가치주의 반란이 시작되면서다. 전혀 힘을 쓰지 못하던 전통적 가치주들이 시세를 분출하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도 그렇고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실제 필자 주변의 골수(?) 가치투자자들의 수익률도 최근 들어 크게 개선되고 있다. 성장주들은 이미 오를 만큼 올랐고 금리 인상이 시작되니 이들 성장주에 대한 밸류에이션 재조정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성장주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높다. 지금은 성장주니 가치주니 하는 논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이기 때문에 이런 이분법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가치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이런 구분법이 쓸모없다는 주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대표적인 가치투자자인 워런 버핏은 “가치가 성장하는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면서 가치주냐 성장주냐의 논란을 일축한 바 있다. 그리고 미국 일류 가치투자자라고 평가받는 세스 클라먼과 같은 이들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4차산업 혁명을 이끌고 있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과 같은 기업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생명공학 관련 주식들에 투자하는 가치투자자들도 적지 않다.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 찾아야
과거를 돌아보면 성장주, 가치주 논쟁은 반복적으로 있어 왔던 일이다. 1960대에도, 2000년대 초에도 그리고 지금 현재도 말이다. 사실 투자자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이런 논쟁이 아니다. 본질은 성장주든 가치주든 최종적으로 돈을 벌면 되는 것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성장주든, 저평가된 자산주든 수익을 내면 된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오늘의 성장주가 내일의 가치주로 분류되거나 그 반대의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아는 한 고수는 오랜 동안 삼성전자 주식을 사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난해에 생각을 바꿔 삼성전자는 이제 가치주로 분류해야 한다며 삼성전자에 대한 투자를 단행했다. 어제의 삼성전자와 오늘의 삼성전자는 같은 회사지만 이 회사를 바라보는 투자자의 시각이 바뀌었을 뿐이다.
가치주였던 기업이 성장주로 바뀌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는 한 동안 배당을 꾸준히 늘리는 가치주 성격의 IT기업으로 평가받아 왔다. 클라우드 비즈니스가 크게 성공하면서 지금은 4차산업 혁명을 이끌고 있는 기업으로 여겨지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과거에는 이런 구분법이 분명했지만 오늘날에는 그 쓸모가 적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증권분석의 아버지 벤자민 그레이엄이 현대적 의미의 증권분석 기법을 세상에 소개했을 때는 기업 자산 대부분이 유형자산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플랫폼 회사나 게임회사를 부동산과 같은 유형자산을 중심으로 분석하면 그 가치가 시장 평가 보다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보이는 자산에서 보이지 않는 자산으로 그 기업 가치의 중심이 바뀌는 시대에 전통적인 분석법으로 가치주와 성장주를 분류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개인투자자 입장에서 또 고려해야 할 것은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 무엇인가이다. 투자에서 만병통치약이란 없다. 전설적인 투자자들인 워런 버핏, 월터 슐로스, 톰 냅 등은 벤자민 그레이엄이란 같은 스승 밑에서 투자를 배웠지만 그들의 보유 종목은 매우 달랐다고 한다. 버핏은 이들 두고 “우리는 단지 가치와 가격에 집중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이들의 기업 가치에 대한 판단은 서로 달랐다. 질적 분석 없이 오로지 계량 분석에 기반한 전통 가치투자 기법을 고수했던 월터 슐로스 같은 이들은 버핏과 깊은 인간관계를 유지했음에도 보유 종목의 공통점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성장주 투자에 맞는 사람인지, 아니면 자산주를 좋아하는 성향인지 등을 스스로 잘 알아야 한다. 최악은 자신의 성향을 모르고 시장 흐름을 쫓아다니는 경우이다. 시장은 언젠가 순환하기 때문에 이 순환주기와 거꾸로 투자 스타일을 바꾸다 보면 복구하기 어려운 수준의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다양한 스타일에 분산하고 재조정해야
간접투자와 자산배분에 치중하는 필자와 같은 사람은 스타일에 대한 분산을 더 선호한다. 전체 투자금액을 성장주 펀드와 가치주 펀드에 나눠 투자한다. 필요하면 대형주와 소형주로도 나눈다. 여기에는 투자 지역도 고려한다. 성장주에 좀 더 비중을 두어서 펀드나 ETF를 선택할 때도 있고, 가치주에 비중을 더 두기도 한다. 비중은 그때그때 마다 다르지만 몇 가지 스타일에 골고루 투자한다.
비중 조절은 하지만 포트폴리오에 가치주, 성장주, 대형주, 중소형주가 골고루 포진되도록 한다. 수익률을 보면서 이들 펀드의 비중을 재조정한다. 수익이 많이 난 펀드에서 일부 환매를 해서 덜 오른 스타일의 펀드나 ETF에 대한 비중을 늘린다. 최근에는 개인적으로 중소형주 ETF, 철강과 중공업 관련 ETF 등에 대한 비중을 높였다. 싸게 거래됐고, 더 이상 업황이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핵심은 성장주 펀드나 ETF의 수익률이 오른다고 가치주 스타일을 전부 다 정리해서 갈아타지 않는 것이다.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최근처럼 일부 성장주 펀드들의 수익률이 떨어지고 가치주 펀드의 수익률이 상승했다 하더라도 성장주를 떠나 가치주 펀드로 옮겨가진 않는다. 예를 들어 대형주 중심의 장이라고 해도 중소형 펀드에 적립식으로 투자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는다. 마이너스라고 해도 계속 버틴다. 실제 몇 년간 죽을 쑤었던 미국 중소형주 펀드와 국내 중소형주 펀드는 대박까지는 아니지만 지난 해 연말부터 최근까지 몇 년간 벌지 못했던 돈을 한 번에 다 벌어주었다.
필자가 이런 방식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성장주가 오를지 가치주가 오를지, 대형주가 펼쳐지는 시장이 될지, 중소형 개별주가 분출되는 시장인지를 판단할 능력이 필자에겐 없기 때문이다. 그냥 여러 길목에 그물을 펼쳐 놓고 그때그때 잡히는 고기를 잡겠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하면 큰 수익은 못 내더라도 망하는 일은 없다. 시장은 순환하면서 움직이기 때문에 패닉이 와서 시장이 다 무너지지 않는 한 어느 한 그물에 반드시 물고기 한마디라도 잡히기 마련이다.
또 다른 계기는 전설적인 펀드매니저 피터 린치의 조언 때문이다. 린치는 자신의 저서에서 성장주, 가치주, 배당주 등 스타일에 확고한 펀드에 나눠 투자하고, 주기적으로 수익률이 나쁜 스타일의 펀드에 추가 투자하는 방법을 추천한 바 있다. 스타일이 확고하다는 전제 아래 수익률이 좋지 않은 펀드에 투자하는 것은 주식을 싸게 사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린치의 조언은 현실적으로도 유용했다.
※ 필자는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전무로, 경제 전문 칼럼니스트 겸 투자 콘텐트 전문가다. 서민들의 행복한 노후에 도움 되는 다양한 은퇴 콘텐트를 개발하고 강연·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부자들의 개인 도서관] [돈 버는 사람 분명 따로 있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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