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농심, ‘저가 라면’ 판치던 중국에 한국의 매운 맛 ‘강타’

[포스트 코로나] 유통기업 중국 재진출 전략⑤ 농심

 
 
지난 2019년 열린 21회 신라면배 바둑대회 북경라운드 당시 북경 대형마트 신라면 판촉 활동. [사진 농심]
중국의 소비시장이 되살아나고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상반기 주춤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내 회복해 지난해 연간 최종소비지출이 GDP 대비 54%에 달하는 55조 위안(약 9532조원)을 돌파했다. 올해 중국 정부의 주요 정책 중 하나는 ‘소비진작’이다. 특히 이커머스 등 온라인 유통채널을 기반으로 한 소비 시장이 크게 확대되는 추세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앞두고, 중국 시장을 새롭게 공략하는 유통기업의 ‘재진출 전략’을 살펴봤다. 다섯번째는 농심이다. [편집자]
 
전세계 라면 소비량 약 1064억개. 이 중 아시아 국가에서 소비되는 라면 양이 전체 80%에 달한다. 세계라면협회에 따르면 1인당 라면 소비량(연간 75개) 1위는 단연 한국. 절대적 소비량(414.5억개)에선 14억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이 압도적 1위다. 말 그대로 아시아, 그 중에서도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라면시장인 셈이다. 식품업계에선 ‘중국인 입맛을 먼저 잡아야 성공한다’는 공식이 글로벌 진출 전략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농심은 중국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알아채고 상해·심양·청도 등 생산 공장을 가동하며 대륙 전역에 ‘한국의 매운맛’을 전파 중이다. 성공 주역은 역시 신라면이다. 신라면은 중국 내에서 차별화된 매운맛으로 ‘한국 라면의 대명사’ ‘요리 수준의 고급 제품’ 등으로 인정받고 있다. 현지 진출이 오래된 된 덕에 중국 정부의 규제나 사드(고고도미시일 방어체계)와 같은 정치적 리스크에서도 상대적으로 빗겨나 있다는 게 농심 측 설명이다. 
 
농심 관계자는 “지금 신규로 진입하는 사업자들에 비해 농심은 현지 기업화가 많이 되어 있다”며 “제품도 메이드인 차이나로 유통되기 때문에 외국 기업에 대한 반감이 덜한 편”이라고 말했다.
 
 
농심은 중국에서 지난 20년 간 꾸준히 성장 중이다. 지난해 3억1400만 달러(3529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농심 해외사업의 핵심 시장이기도 하다. 물론 탄탄대로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식품은 자국 식문화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국내 기업이 외국에서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1996년, 농심이 중국에 처음 진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에서는 해외 기업이 현지에 진출하려면 중국 회사 합작 형태를 취해야 하고 외국 기업은 지분을 50% 이상 보유할 수 없도록 정해져 있었다.  
 

‘끓여 먹는 라면 문화’ 전파  

 
당시 농심도 대만의 한 회사와 합작형태로 중국에 진출해 있던 상황. 농심은 상하이에 생산공장을 지으면서 사업을 본격화했지만 주도적인 영업이 쉽지 않자 1998년 지분을 인수하고, 1999년부터 독자노선의 길을 걸었다. 중국 정부의 지분 확대 정책을 잘 활용한 셈이다. 동시에 청도공장(1998년), 심양공장(2000년) 등을 잇달아 가동하며 중국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중국 신라면 제품 이미지. [사진 농심]
 
농심 관계자는 “90년대 말 중국시장은 중국 저가 라면이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었고, 소비자들 또한 한국 식품에 대해 큰 관심이 없어 마트에 제품 입점조차 되지 않는 등 초창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며 “장기적인 사업을 위해서는 제품과 판매에 대한 확고한 전략이 필요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 비결은 ‘투트랙 전략’이다. 제품은 한국의 맛을 그대로 가져가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광고나 마케팅 등은 철저하게 현지 문화와 트렌드를 우선시했다.  
 
제품에 대한 차별화 전략은 농심의 역발상에서 비롯됐다. 다른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구사하는 것과 달리 얼큰한 맛은 물론 제품의 규격·디자인·브랜드까지 있는 그대로 중국 시장에 선보였다.  
 
‘한국의 매운맛과 농심 브랜드를 중국에 그대로 심는다’는 것이 농심이 삼은 전략이다. 중국 라면과 유사한 제품을 출시하면 단기적인 매출을 가져올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농심의 브랜드가 사라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한국식 ‘끓여 먹는 라면 문화’도 그대로 가져가 시식행사 등을 통한 홍보활동을 펼쳤다.  
 
결과는 성공적. 신라면은 고유의 맛으로 중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20년 이상 꾸준한 성장을 이어왔다. 중국 전역에 퍼진 1000여개 신라면 영업망을 통해 영토를 확장 중이다. 끓여 먹는 라면 문화도 널리 퍼져 현재 중국 현지 유명 라면 업체들도 끓여 먹는 라면 신제품을 지속해서 출시하고 있다.  
 

‘바둑 마케팅’으로 정서적 접근

 
농심은 제품에 대한 고집과는 달리 마케팅은 철저하게 중국의 정서를 그대로 따랐다. 대표적인 활동이 ‘신라면배 바둑대회’다. 농심은 중국 진출 당시 바둑에 대한 열기가 높기로 유명한 중국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농심의 인지도와 신라면 브랜드를 동시에 부각하고자 했다. 1999년 7월, (재)한국기원과 함께 국가대항전인 ‘농심 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을 창설했다. 
지난 2019년 열린 21회 신라면배 바둑대회 부산라운드전에서 중국 양딩신(사진 왼쪽)과 한국 이동훈이 대결을 펼치고 있다. [사진 농심]
기업의 제품명을 대회 타이틀로 내세우기는 세계기전 중 신라면배가 처음이다. 흥행이 성공하면서 중국 내 스포츠 마케팅도 강화했다. 백산수배 시니어 세계바둑최강전은 전 세계 바둑팬들의 이목을 또 한 번 사로잡았다.  
 
농심은 또 광활한 중국을 공략하기 위해 온라인 채널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2013년 말 업계 최초로 타오바오몰에 농심 공식몰을 구축하고, 본격적인 온라인 사업을 시작했다. 타오바오 등 중국 온라인 채널에서 지속해서 판촉 프로모션도 진행했다. 특히 중국 인기 ‘왕홍’(중국 온라인과 SNS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과 함께 신라면 조리 생방송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온라인 마케팅을 펼쳤다.  
 

대도시 중심으로 ‘서부 신시장 개척’ 주력  

 
영업망도 철저한 분석을 기반으로 관리하고 있다. 시장경제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동부 주요 대도시에서 상대적으로 한국 제품의 수요가 많고 경제 규모도 커지는 점을 고려해 동부 해안 도시부터 서부 내륙으로 순차적으로 영업망을 구축해 나갔다. 농심의 주요 법인과 생산시설이 청도·심양·상해 등에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농심은 동부 대도시를 중심으로 인근 중소형 도시로 영업망을 확대해 나가는 전략을 펼쳤다. 현재는 동부를 거점으로 서안·성도· 중경 등 서부내륙 지역의 신시장 개척에 주력하고 있다.  
 
농심 관계자는 “농심이 중국에서 쌓아온 고급 이미지는 현지 제품과 차별화되는 맛과 품질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됐다”면서 “개방정책에 따라 중국인들의 소득수준도 함께 올라가면서 한국의 신라면을 찾는 소비자들이 많이 늘어났고 내륙도시에서도 매년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설아 기자 kim.seolah@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코오롱 ‘인보사 사태’ 이웅열 명예회장 1심 무죄

2‘코인 과세유예·상속세 완화’ 물 건너가나…기재위 합의 불발

3최상목 “야당 일방적 감액예산…결국 국민 피해로”

4日유니클로 회장 솔직 발언에…中서 불매운동 조짐

5최태원은 ‘한국의 젠슨 황’…AI 물결 탄 SK하이닉스 “우연 아닌 선택”

6서울지하철 MZ노조도 내달 6일 파업 예고…“임금 인상·신규 채용해 달라”

7인천시 “태어나는 모든 아동에게 1억 준다”…출생아 증가율 1위 등극

8경기둔화 우려에 ‘금리 인하’ 효과 ‘반짝’…반도체 제재 우려↑

9얼어붙은 부동산 시장…기준금리 인하에도 한동안 ‘겨울바람’ 전망

실시간 뉴스

1코오롱 ‘인보사 사태’ 이웅열 명예회장 1심 무죄

2‘코인 과세유예·상속세 완화’ 물 건너가나…기재위 합의 불발

3최상목 “야당 일방적 감액예산…결국 국민 피해로”

4日유니클로 회장 솔직 발언에…中서 불매운동 조짐

5최태원은 ‘한국의 젠슨 황’…AI 물결 탄 SK하이닉스 “우연 아닌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