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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손해사정사 직접 선임하세요'…현실은 수십여건에 그쳐

빅3 생보사 '손해사정사 직접 선임 요청' 건 24건 그쳐
대부분 가입자 직접 선임권 자체를 몰라, 보험사 안내 부족
"공정한 손해사정 문화 조성 시급" 지적

 
 
지난해 보험사들이 보험금 청구자로부터 요청받은 손해사정사 직접 선임건이 수십여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중앙포토]
금융당국이 유명무실해진 '손해사정사 직접 선임권'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지난해 보험사를 통해 '손해사정사 직접 선임권'을 활용한 가입자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은 보험사 설명의무를 강화해 보험소비자 권익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험업계에서는 공정한 손해사정 문화가 조성되지 않는 한, 손해사정사 직접 선임도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손해사정사 직접 선임, 소비자는 모른다

 
25일 각 보험사 공시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생명보험업계 빅3인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교보생명에 접수된 손해사정사 직접 선임 요청은 모두 24건에 그쳤다. 삼성생명이 5건, 한화생명은 10건, 교보생명이 9건의 손해사정 선임 요청을 받았다. 한화생명은 손해사정 선임 요청건 중 1건을, 교보생명은 2건을 거부했다
 
빅3 생보사는 100% 지분을 보유한 손해사정 자회사를 1곳씩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빅3 생보사가 손해사정 자회사에 손해사정을 위탁한 건수를 보면 삼성생명이 약 370만건, 한화생명은 158만건, 교보생명이 82만건으로 약 600만건에 달한다.  
 
자회사에 600만건의 손해사정이 위탁되는 동안 보험소비자가 직접 손해사정사 선임을 요청한 건은 24건에 그쳤다는 얘기다. 사실상 보험소비자들이 손해사정사 직접 선임권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다른 생보사들에 접수된 손해사정사 직접 선임 요청건수도 미미했다. 각사에 따르면 손해사정사 직접 선임 요청건은 농협생명이 3건, 미래에셋생명 1건, 동양생명 3건, 신한생명 2건, 오렌지라이프생명 0건 등을 기록했다.  
 
보험금 청구 후 진행되는 손해사정 과정.[자료 금융위원회]
 
빅4 손해보험사인 삼성화재(0건), 현대해상(10건), DB손해보험(6건), KB손해보험(25건)도 가입자로부터 손해사정사 직접 선임 요청이 들어온 건수가 수십여건에 그쳤다.  
 
손해사정은 보험사고가 발생했을 때 객관적이고 공정한 손해사실 확인과 손해액 산정으로 적정한 보험금이 지급되도록 하기 위한 제도다. 대체로 보험금 지급 결정은 서류 심사만으로 이뤄지지만 손해액에 대한 전문적 판단이 필요한 경우 손해사정을 한다.
 
이때 보험소비자들은 보험사가 진행하는 손해사정을 거부하고 자신이 직접 손해사정사를 선임할 수 있다. 비용은 보험사가 부담한다. 하지만 보험사의 설명 부족으로 소비자들은 손해사정사 직접 선임권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대형사들은 자회사로 손해사정법인을 두고 있어 보험금 지급 심사에 공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빅3 생보사의 경우 자회사 손해사정 위탁비율이 99~100%로 사실상 자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있다. 빅4 손보사들도 1~2곳의 자회사 손해사정 법인을 두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 입장에서는 자회사 손해사정사를 쓰는 것이 보험금 책정에 있어서 훨씬 유리할 수밖에 없다"며 "보험사별로 손해사정사 직접 선임 요청이 수십여건밖에 접수가 안됐다는 건 사실상 안내를 안했거나 했어도 형식적으로만 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공정한 손해사정 문화" 우선 조성돼야 

 
금융당국도 대책을 내놨다. 지난 24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손해사정제도 개선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소비자가 보험금 청구시 보험사가 소비자에게 '독립 손해사정사를 선임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도록 감독 규정을 개정하는 것이 주 골자다. 또 보험사는 소비자가 손해사정사를 직접 선임할 경우 발생 비용도 보험사가 부담한다는 점을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보험업계에서는 설명 의무 강화보다 손해사정사들이 보험금을 삭감하고 보험사에 유리한 손해사정을 하는 행위 자체를 '성과'로 인정받는 부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은 보험사가 보험금 삭감을 유도하는 항목을 위탁 손해사정사의 성과 지표로 사용하거나 보험사에 유리한 손해사정을 강요하는 행위 역시 금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보험금 삭감 행위인지, 보험사에 유리한 손해사정 강요 행위인지에 대한 기준 등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한 위탁 손해사정 법인 관계자는 "손해사정사는 보험사에 고용돼 일하는 상-하관계"라며 "그들의 요구를 상당부분 수용해서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손해사정업체가 입맛에 맞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교체하면 그만"이라고 밝혔다.  
 
이어 "공정한 손해사정 문화가 조성되지 않는 상황에서 보험소비자가 다른 손해사정사를 고용한다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정훈 기자 kim.junghoo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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