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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산업재해 공화국④] 시행 7개월 앞둔 ‘중대재해처벌법’…노‧사 모두 불만

노동계 “5인 미만 사업장 사고도 예방해야”
재계 “모호한 규정, 과잉처벌로 사업 위축 우려”
시행령 명확하지 않으면 혼란 가중 불가피

 
 
2019년 1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전국 노동자대회에서 참석자들이 비정규직 철폐, 위험의 외주화 금지, 태안화력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고는 일어난 방식으로 또 일어난다. 일터와 환경은 달라도 대부분 사망사고의 원인은 떨어짐·끼임·부딪힘 등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가 수시·정기·특별감독을 통해 노동 환경을 점검하고 있지만, 이런 중대사고는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사고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1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한 인명 피해를 주는 산업 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사업주에 대한 처벌 강도를 높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지키지 않아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하면 인명 피해 정도에 따라 징역 1년에서 7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문제는 노동계와 재계 양쪽 모두 만족하지 못한다며 대립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계는 처벌 강화를 주장한다. 반면 재계에서는 수위가 너무 높다며 사업 활동을 제약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이달 확정해 입법예고 할 예정이어서 노동계와 재계 간의 줄다리기는 더욱 팽팽해질 전망이다. 노동자의 안전을 챙기면서 사업자의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지 않는 균형 잡기가 절실한 상황이다.  
 

노동계 “중대사고 80%, 영세사업장서 터져…사각지대 우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7일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의 근본 원인은 위험 작업의 외주화, 발주처의 공기 단축, 장시간 노동, 기업과 유착된 부실 감독,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것을 누차 제기했지만, 정부의 대책은 찾아볼 수 없다”며 처벌법 개정과 노·정 교섭을 촉구했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에서 요구하는 처벌법 개정 사안은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부분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 강화된 처벌 규정 잣대를 들이대지 않기로 했다. 또 50인 미만 사업장에 한해 법 적용을 3년 유예하기로 했다. 이 규정대로라면 지난 5월 인천 남동공단에서 일어난 사고가 되풀이되더라도 사업주를 강하게 처벌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당시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던 A씨는 300㎏짜리 철판 구조물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그가 속한 업체는 일용직만 고용하던 5인 미만 영세 사업장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대부분의 산재 사고는 50인 미만인 작은 사업장에서 주로 발생하는데, 정작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규정은 허술하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4월 공개한 통계자료를 보면 지난해 총 882명의 근로자가 산업 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이 중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사망률이 80% 수준이었다. 근로자 수가 5인 미만 영세한 사업장에서 숨진 사람이 312명(35.4%), 5~49인 사업장에서 사망한 사람은 402명(45.6%)이었다.  
 
민주노총은 기자회견을 통해 “대통령이 지시한 ‘현장성 있는 대책 수립 지시’가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중대재해 사업장의 원청 사용자 구속과 노동자·시민이 참여하는 조사·감독, 노동자에 대한 작업중지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6월 3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총리-경제단체장 간담회에서 ″처벌보다 예방 중심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연합뉴스]
 

재계 “근로자 부주의로 사고 나도 사업주 처벌 과도”  

 
재계에서는 사업주에 대한 무거운 처벌로 경영 활동을 위축하고 불안감을 키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지난 3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국무총리와 경제5단체장의 간담회에서 중대재해법과 관련해 “처벌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문 회장은 “중소기업의 경우 소유주 99%가 대표직을 수행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근로자 부주의로 발생한 재해사고조차 사업주를 1년 이상 처벌하도록 하는 하한 규정은 불안감만 증폭시킬 것”이라고 했다.  
 
같은 날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도 “최근 산업현장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계속돼 기업인의 한 사람으로 매우 송구한 심정”이라면서도 “지금은 처벌보다 예방 중심의 정책이 필요한 때”라고 의견을 밝혔다. 그는 이어 “기업에 사고 책임을 묻는다고 근본적인 원인이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과도한 처벌 조항에 대해서도 올해 재개정하거나 시행령으로 보완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도 우리나라 노동법제 처벌 규정이 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 등 주요 국가에 비해 과도하다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산업안전의무 위반으로 인한 사망사고 시 사업주에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 반면 영국은 2년 이하 징역, 미국과 일본은 6개월 이하 징역을 부과한다. 독일과 프랑스는 고의 또는 반복 위반할 경우에 한해 징역 1년을 부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경연은 영국에 한국 중대재해법과 유사한 특별법이 있는데, 사업주 처벌 없이 법인만 처벌한다고 밝혔다. 또 원청의 하청에 대한 책임도 사안별로 판단해 부과한다고 했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우리 기업들이 과도한 처벌로 위축되지 않도록 노동관계법 처벌규정을 국제 수준에 맞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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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모호한 태도가 문제, 명확한 시행령 필요 지적도

 
노사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이 어떻게 나올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정부가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지 않으면 오히려 혼란만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우려가 나오는 건 지금도 중대 재해에 대한 정의와 책임자의 범위, 원청과 하청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안경덕 노동부 장관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사 양쪽이) 구체적인 것을 (명확히 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지만 모두 시행령에 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태도를 모호하게 했다. “기본적인 것은 다 포함할 것”이라고 했지만, 시행령이 구체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보인 것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코노미스트]와의 통화에서 “중대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게 최선이지만, 만약 사고가 일어날 경우 책임 주체나 범위가 명확하지 않으면 ‘줄소송’이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 법대로라면 기업의 대표나 소유주가 언제든 징역형에 처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뜻”이라며 “정부가 이런 우려를 충분히 알고 있다면 명확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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