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도심공공주택사업에 거짓정보 판치는데 정부는 ‘모르쇠’
근거 없는 미확인 정보 유포하며 사업동의서 모으고 다녀
투기 조장하는 내용으로 동의서 작성 유도하기도
국토부 “동의서 받는 방식 언급 부적절” 답변 피해
LH “민원에 사실 아니라고 설명, 적극 개입 어려워”
정부의 ‘공공주도 3080+ 대도시권 주택공급대책(이하 ‘2·4대책’)’의 핵심인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에서 잡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후보지로 선정된 지역의 주민들이 사업 반대를 주장하며 단체행동에 나서고 있는가 하면, 정부가 지금까지 발표한 사업지역 56곳 가운데 9곳은 아예 국토교통부(국토부)에 후보지 지정 철회를 요구하는 서류까지 제출한 상황이다. 게다가 예정지구 지정과 본지구 확정을 위한 동의서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허위 정보로 주민들을 현혹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예정지구 지정도 안됐는데 “로열층 입주 약속” 남발
하지만 [이코노미스트] 취재 결과,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후보지로 선정된 서울의 일부 지역에서 아직 확정되지 않은 정보를 전단으로 뿌리며 사업동의서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입수한 ‘3080+ 재개발 동의를 위한 안내문’이라는 전단을 보면 ‘귀하께서 소유하신 주택이 3080+ 공공주도재개발 예정지구로 확정되어 알려드립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동의서 작성을 요구하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정부는 2·4대책에서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을 발표하며 지금까지 6차례에 걸쳐 총 56곳의 후보지를 발표했다. 해당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공공주택특별법 시행(9월 21일) 전이기 때문에 예정지구로 지정된 곳은 아직 한 곳도 없다. 그런데도 마치 예정지구로 확정돼 사업이 추진되는 것으로 오인할 수 있는 전단이 뿌려지는 상황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업에 찬성하는 주민들을 중심으로 아직 정해지지 않은 입주 시기나 용적률 등을 언급하며 동의서 작성을 유도하고 있는 지역도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도해 5~6년 안에 입주시켜준다’, ‘용적률(최대 40층 이상)만큼 일반인에게 분양할 수 있는 물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분양수익이 높아지고 원주민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로열층으로 우선 입주시켜주겠다’ 등 근거 없는 풍문들이 마치 정부가 약속한 혜택인양 포장돼 단체문자방 등에서 유포되고 있다.
정부는 공공주택 특별법 하위법령으로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을 신설하면서 용적률·건폐율·건축 등에서 여러 혜택(인센티브)을 규정했다. 하지만 특정 지구에 대한 세부 내용은 발표하지 않았다. 후보지 주민에게 유포되고 있는 내용은 도시·건축 전문가들이 포함된 사전검토기구에서 검토하고 사업계획을 수립한 뒤에야 알 수 있는 내부 정보들이다.
“정부는 보이지도 않고 거짓 정보만 횡행, 속도전 혈안”
사업 취지와 다르게 투기를 조장하는 듯한 내용도 공공연히 나돈다.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은 공공이 지구 지정을 통해 부지를 확보하고, 양질의 주택과 함께 도시기능을 재구조화하기 위한 거점 조성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것이 본래 취지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32평의 경우 약 8억원 정도에 공급되는데, 주변 지역에서 현재 같은 평수로 거래되는 가격이 15억~17억원이다. 재산을 충분히 불릴 좋은 기회”라든가 “입주만 하면 6억원 이상 수익이 나고 수익금도 나중에 3배 이상 받아주겠다”면서 동의서 작성을 유도하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국토부 측은 [이코노미스트]와 통화에서 “(동의서를 주도적으로 받고 있는) 주민 대표들이 동의서를 받고 있는 방식에 대해 (우리가)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 관계자는 “국토부는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해당 사업에 대해 설명했고, 향후 사업설명회를 진행할 예정으로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국토부는 지난 8월 4일 보도자료를 통해 “대다수 도심복합사업 후보구역에서 주민들이 선제적으로 동의를 모아 제출하는 등 높은 사업 의지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일부 반대 의견이 있는 곳은 기본적으로 주민동의를 전제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인 만큼 구체적 사업효과와 인센티브 등을 제시하고 충분히 설명하되, 주민 의사를 존중해 예정지구 지정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후보지 지정 후 진행된 1차 주민설명회는 부실하게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서울 강북구 후보지 주민 B씨는 “설명회가 공공주택 복합사업이 무엇인지 정부의 취지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자리였다”며 “주민들이 정작 궁금해 하는 점들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게다가 많은 주민들이 설명회가 열렸는지조차 알지 못했으며, 나눠 준 설명 자료라곤 2.4대책을 설명하는 팸플릿이 전부”라고 덧붙였다.
“법 만들기도 전에 정책부터 발표…논란 갈수록 심해질 것”
하지만 그 이상의 대응은 어렵다는 것이 LH 측의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LH가 개입했을 경우 주민들이 한쪽 편만 든다고 느끼는 분위기가 있다”며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후보지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제대로 된 사전조사나 주민동의 없이 후보지를 선정하고 지구 지정만 한다고 사업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지금처럼 사업 철회를 요청하는 지역이 계속 늘어나면 공급계획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속전속결로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나오는 부작용”이라는 의견이다. 이 연구원은 “본래 정비사업은 필요에 의해 주민이 자생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맞다”라면서 “이 사업은 법도 만들어지기도 전에 국가가 나서서 정책 발표를 하고 그에 따른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밀어붙이면서 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 “지난 25일 정부 발표로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후보지에 사전청약도 가능하게 만들었다”며 “정부는 사업 추진 속도를 가능한 한 빠르게 진행하고 싶어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현 상황보다 더한 논란들이 계속 터져 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정지원 인턴기자 jung.jee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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