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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정부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 “찬성표 받고 반대표 안받아”

국토부, 예정지구 지정 전 작성한 사업 찬성 동의서도 인정
사업 철회 요청은 예정지구 지정 6개월 뒤 가능, 차별 논란
국토부 “정부 인정 문서 아니어서 주민의 철회 요청서 무효”
찬성 의사 번복하려면 예정지구 지정 뒤 30일 안에 해야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 서울 금천구 후보지 주민이 금천구청 앞에서 사업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독자]
 
정부가 2·4 부동산대책 중 하나로 추진 중인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이 개발 후보지역 주민 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사업 추진 속도를 높이는 데만 몰두해 해당 지역 주민의 의견을 반영해야 하는 당연한 절차조차 무시하고 있는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행태에 주민들이 원성을 쏟아내고 있다.  
 
주민 동의가 차질 없이 모아지고 있다는 정부 측 설명과 달리, 사업 추진을 원하는 주민과 철회를 요청하는 주민 간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특히 찬성 동의서와 철회 요청서(반대 동의서)의 접수 기간과 효력 인정에 차이가 있어, 형평성 문제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지금 반대 의사는 무효…예정지구 지정 6개월 후에 내라”

정부는 표면적으로는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국토교통부(국토부)는 지난달 4일 보도자료를 통해 “후보지(56곳) 발표 후 2주 만에 (해당 지역 주민의) 10% 이상이 주민동의서를 제출하기 시작했으며, 40여일 만에 본 지구 지정 요건인 3분의 2 주민동의를 확보한 구역이 나타나는 등 주민 동의 속도가 전례 없이 빠른 상황”이라고 발표했다.  
 
국토부는 그러면서 “사업시행자가 본격적으로 주민 동의 확보에 나서는 시점이 예정지구 지정 이후인 점을 감안하면, 대다수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 후보지에서 주민들이 선제적으로 동의서를 모아 제출하는 등 높은 사업 의지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3월 ‘공공주도 3080 대도시권 주택공급 획기적 확대방안 브리핑에서 변창흠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등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하지만 사업 현장에선 다른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사업 철회를 주장하는 주민들은 “현재 정부가 찬성 동의서만 접수하고 있다”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정부는 2·4 부동산대책 발표 후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총 6차례에 걸쳐 56곳의 후보지를 발표하면서, 이와 동시에 사업에 찬성하는 동의서를 받기 시작했다.  
 
이에 반해 철회 요청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해진 바가 없다. 철회 의견을 담을 문서 양식 자체도 없다는 얘기다. 서울 영등포구 후보지에서 사업에 반대하는 의견을 모으고 있는 주민 A씨는 “후보지 주민 55%의 사업 철회 요청 의견서와 주민등록증사본 등을 국토부에 제출하러 갔더니 국토부 측 담당자가 ‘국토부가 인정하는 문서가 아니어서 무효’라며 받아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제는 동의서 접수 기간이다. 국토부는 이 사업의 법적 근거를 담아 개정한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라, 예정지구 지정 전부터 작성된 찬성 동의서를 인정할 계획이다. 예정지구 지정은 이달 법 시행(9월 21일 예정) 후 이뤄진다. 여기에 예정지구 지정이 되면, 1년 안에 본 지구 지정을 위한 토지 등 소유자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 즉 후보지에 따라 최장 1년 6개월 동안 동의서를 받을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철회 요청서의 경우는 다르다. 철회 요청서는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라 예정지구 지정(주민 공람) 후 6개월이 지난 뒤부터 효력이 인정된다고 한다. 예정지구 지정 후 반년이 지나서야 철회 요청서를 공식적으로 접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때 2분의 1을 초과하는 토지 등 소유자가 예정지구 해제를 요청하면, 사업 지정권자는 지구 지정이나 변경 제안을 반려할 수 있다.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 후보지의 한 주민이 사업에 반대하는 손팻말을 들고 서울 영등포구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정지원 인턴기자]
 
국토부는 공공주택특별법이 시행되면 가능한 한 빠르게 예정지구를 지정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렇다면 후보지 56곳 가운데 사업 반대 의견을 전달한 9곳의 주민들은 내년 봄이 돼서야 철회 요청서를 공식적으로 제출할 수 있다. 이때 토지 등 소유자 절반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즉, 사업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지금 모으고 있는 반대 동의서는 사업 철회를 요청하는 효력이 없다는 의미다.  
 
주민 A씨는 “지금까지 반대 의견 서류를 받는 것도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며 “예정지구 지정 뒤 다시 동의서를 받으려면 시간이 촉박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찬성은 쉽고, 반대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국토부의 사업 추진 방식에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예정지구 발표 30일 뒤엔 찬성 철회해도 반영 안 해

문제는 예정지구 지정 후 6개월 안에 3분의 2 이상 동의 요건이 먼저 채워지면, 철회 요청서를 제출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이 경우 사업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의견을 알리는 절차 자체가 생략된다.  
 
찬성 동의서를 취합하고 있는 LH 관계자는 [이코노미스트]와의 통화에서 “공공주택특별법의 내용은 시행자(예정)인 LH 입장에서 조정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6개월 이후라는 조건을 단 취지는 주민들에게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을 드리고자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도 철회 요청서가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주민들의 반대 의사는 탄원서와 민원서 형태로 받고 있다”고 말했다.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을 위한 지구 지정 동의서 안에 빨간색 네모로 표시한 부분을 보면 제출일로부터 30일 안에 반대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는 조항이 나와 있다. [이코노미스트]
 
후보지 주민들 사이에는 찬성 의사를 번복할 기간이 너무 짧다는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 ‘도심공공주택복합지구 지정 동의서’를 보면 ‘본 동의서를 제출한 경우에도 동의를 철회하고자 할 경우 제출일로부터 30일 내에 반대 의사를 표시함으로써 복합지구 지정에 동의를 철회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예정지구 지정일 전에 제출한 경우에는 예정지구 지정일로부터 30일 안에 반대 의사를 나타내야 한다. 
 
정부는 해당 사업 후보지를 선정하고 공공주택 복합사업을 소개하는 1차 주민설명회는 열었다고 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사업설명회는 지금까지 개최된 적이 없다는 게 주민들의 생각이다. 정부는 사업의 취지와 목적을 담은 청사진만 일방적으로 전달했을 뿐, 주민들에게 용적률·건폐율 등 개발 규제 완화나 현물 손실보상 기준 등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업에 대한 판단 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먼저 찬성 동의서를 제출한 주민들이 예정지구 지정 30일 이후 마음을 바꿔 반대 의사를 표시할 경우, 이를 반영하지 않고 최초 찬성 동의서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당장 눈 앞에서 터전을 빼앗겨야 하는 주민들은 이에 부당함을 느끼고 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사업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하고 동의서를 제출한 주민이 추후 이 조항을 문제 삼아 소송에 나설 수도 있다””며 “주민들의 반발이 이어진다면 정부의 주택 공급 정책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정지원 인턴기자 jung.jee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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