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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조 '꿀꺽'하고 떠나는 美시그나…라이나생명 임직원들 '허탈감 넘어 분노'

4년 연속 3000억원대 순익 낸 라이나생명, 본사 매각 결정에 '당혹'
2018년 배당율만 95%... 10년간 1.2조원 챙겼다
임직원들 본사 통수에 당혹... "노조 설립 준비 중"

 
 
[사진 라이나생명]
시그나그룹이 한국법인 라이나생명 매각을 결정하자 임직원들이 강한 허탈감을 느끼고 있다. 라이나생명이 매년 거액의 배당금을 안겨주며 시그나그룹 성장에 일조했지만 본사가 한국시장 철수를 일방적으로 통보했기 때문이다. 
 
매각과정에서 한국법인 임직원들은 철저히 배제됐고 일부 직원들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며 상실감마저 토로한다. 하지만 임직원들의 분노와 별개로 시그나그룹은 배당금, 라이나생명 매각가 등으로 약 7조원을 챙겨 한국시장을 떠나게 됐다. 
 

시그나-처브 회장단, 美서 논의 후 '스피드 매각'

보험업권에 따르면 시그나그룹은 한국을 비롯 대만, 뉴질랜드, 태국, 인도네시아, 홍콩 등 아시아태평양지역 사업부와 터키합작 회사를 처브그룹에 매각한다. 거래 가격은 총 57억5000만달러(약 6조9000억원)로 내년에 협상이 완료될 전망이다.  
 
협상은 매각 주관사 선정조차 없을 정도로 속전속결로 결정됐다. 미국에서 시그나그룹과 처브그룹의 회장이 만나 논의를 진행했고 인수 실사도 빠르게 진행됐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보험사업부 전체 매각이지만 핵심은 한국법인인 라이나생명이다. 투자업계에서는 매각가 6조9000억원 중 라이나생명의 가치만 6조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라이나생명은 지난해 357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고 올 상반기에도 1651억원의 순익을 냈다. 지난해 순익만 보면 생명보험업계 3위다. 텔레마케팅(TM)채널의 강점을 바탕으로 지난 4년간 매년 3000억원대 순익을 내며 '알짜 회사'로 자리매김했다.  
 
[자료 라이나생명]
 
알짜 순익을 내는 만큼 본사인 시그나그룹은 라이나생명으로부터 매년 거액의 배당금을 챙겨갔다. 외국계 보험사는 국내 보험사보다 비교적 높은 배당율로 배당을 실시하는 편이다. 특히 라이나생명은 외국계 회사 중에서도 고배당 회사로 알려져있다. 지난 5년간 배당율만 37~95%에 이른다.  
 
지난 10년간 라이나생명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시그나 체스너트 홀딩스에 1조1650억원을 배당했다. 10년간 라이나생명의 순익은 총 2조3596억원이다. 시그나 그룹이 전체 순익의 절반가량을 배당으로 가져간 셈이다. 2018년에는 순익 3701억원 중 배당액만 3500억원에 달했다.  
 
시그나그룹 입장에서 매년 3000억원대 순익과 거액의 배당을 챙길 수 있는 라이나생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다름 없었다. 이처럼 라이나생명이 알짜로 성장했음에도 시그나그룹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매각을 타진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2023년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이 도입되면 보험사들은 자본 확충 부담이 커진다. 또 성장이 정체된 한국시장, 금융당국의 높은 규제문턱 등은 시그나그룹으로 하여금 매각시기를 저울질하게 했다. 결국 인수자가 나타나자 미련없이 라이나생명을 매각했다.
 

허탈감 느끼는 임직원..."집단 대응 준비"

데이비드 코다니 시그나그룹 회장. 코다니 회장은 미국에서 쳐브그룹 회장과 만나 라이나생명 및 아태지역 보험사업 부문 매각을 결정했다.[연합뉴스]
 
라이나생명 임직원들은 허탈감을 넘어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본사가 한국법인인 라이나생명과 아무런 교감도 없이 회사를 일방적으로 매각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본사는 경제논리에 따라 언제든 회사의 매각을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갑작스러운 매각 결정은 한국진출 후 30년 이상 안정적인 영업을 진행하며 회사를 알짜 보험사로 성장시킨 한국법인 직원들에 대한 신의를 완전히 저버린 행태라는 지적이다.  
 
라이나생명은 현재 노동조합이 미설립돼있고 직원들로 구성된 직원협의회가 존재한다. 현재 직원협의회는 설문조사를 통해 이번 매각과 관련 임직원들의 의견을 취합하고 있다. 임직원 여론에 따라 집단대응에도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라이나생명을 인수하는 처브그룹은 한국에 처브라이프생명을 운영 중이다. 향후 인수가 완료되면 양사 합병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에 라이나생명 임직원들은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이 클 수밖에 없다. 이에 직원협의회는 직원들 의견에 따라 노조설립도 검토 중으로 알려졌다.  
 
라이나생명의 한 임직원은 "시그나그룹의 일방적 매각 통보에 대부분의 임직원이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대응방안 마련을 위해 직원협의회에서 여러 의견을 취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매각으로 라이나생명의 향후 사업 추진에도 제동이 걸리게 됐다. 라이나생명은 조지은 대표를 중심으로 헬스케어 서비스 사업과 디지털 보험사 출범 등을 추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인수자 처브그룹의 의지가 더욱 중요해진 상황이다. 관련 사업을 추진하던 라이나생명 임직원들의 허탈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지난 몇년간 외국계 보험사를 인수한 국내 업체들은 한국시장 정서를 고려해 피인수기업 임직원들의 목소리를 그래도 어느 정도 반영하며 인수를 진행한 편"이라며 "이번에는 미국기업이 미국기업으로 회사를 팔았고 이 과정에서 라이나생명 임직원들은 철저히 배제됐다. 임직원들이 느낄 상실감과 허탈감이 더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정훈 기자 kim.junghoo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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