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나누는가] 미혼모에 100억, 어린이에 1000만 달러… 애터미의 나눔 DNA
박한길 애터미 회장, 10월 15일 한국컴패션에 1000만 달러 기부
컴패션 역사상 최대액…아이들이 자립할 때까지 돕는 양육 지원
애터미 사회공헌 기부액 500억 넘어…"CSR은 기업의 의무이자 권리"
애터미 기부금 비중, 유통·생활용품 업종 평균의 10배 넘어
#1952년 참전 군인들에게 설교를 하기 위해 방한한 미국인 목사 에버렛 스완슨. 그는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수많은 전쟁고아들과 마주치게 된다. 어느날 새벽 그는 길을 가다가 인부들이 트럭에 무언가를 싣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밤새 굶주림과 추위에 얼어 죽은 아이들의 시체를 거두는 모습이었다. “너는 이것을 보았는데 이제 무엇을 하겠느냐”. 전쟁고아들의 참상을 눈으로 목격한 스완스 목사는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이 질문과 마주했다. 그는 미국에 도착한 뒤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위한 기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전 세계 25개국에서 약 200만명의 어린이를 양육하고 있는 국제어린이양육기구 ‘컴패션’의 시작이다.
1000만 달러(약 120억원). 창업 12년차를 맞은 한국의 한 기업이 세계 어린이 양육에 동참하겠다며 ‘한국컴패션’에 내놓은 금액이다. 대기업이 아닌 중견기업이 쾌척한 기부금액으로도 ‘통 큰 액수’지만 컴패션 70년 역사상 최대 기부금액이기도 하다. 이 한국 기업의 사회공헌 누적 기부액은 2009년 설립 후 지금까지 500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주인공은 바로 글로벌 유통기업으로 성장한 직접판매기업 애터미, 그리고 박한길 회장이다.
수혜국에서 후원국으로…’기적의 시작’
이곳에서 열린 오프라인 기부행사는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온라인으로 동시접속한 세계 각국의 회원들의 모습이 무대 뒤 초대형 LED전광판에 비춰지자, 마치 이 자리에 함께 와있는 듯한 현장감이 더해졌다.
작곡가 겸 가수 주영훈씨의 사회로 시작된 행사는 박 회장과 서정인 한국컴패션 대표, 가수 션(한국컴패션 홍보대사)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기부금 전달식에서 주씨는 “박 회장이 결연을 통해 전 세계 25개 빈곤 국가 어린이들을 양육하는 컴패션에 한화 약 120억원을 기부했다”면서 “이는 컴패션 70년 역사상 최대 기부금액”이라고 소개했다.
박 회장이 손을 잡은 컴패션은 한국 전쟁 후 꿈을 잃었던 한국 아이들의 희망이었다. 1993년까지 10만명 이상의 한국 어린이들을 키워냈고, 받았던 사랑을 다시 베풀기 위해 2003년 한국에 뿌리를 내렸다. 이후 컴패션은 수많은 빈곤 국가를 방문하며 전 세계 아이들과의 연결고리를 찾아나갔다.
하루 종일 돌을 깨야 비로소 한 끼의 죽을 먹을 수 있던 12살의 우간다 소녀 마리암. 공개된 우간다 트립 영상 속에서 배우 차인표씨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마리암과 결연을 맺으며 “우리는 삶에 대해 감사할 게 많은 데 감사를 놓치고 산다”는 소회를 전했다. 그는 기부의 참의미에 대해 “이들이 작은 후원을 받고 삶이 변해가는 걸 보면서 오히려 내 삶을 돌아보고 작은 감사를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마이크를 잡은 가수 션은 이 영상을 소개하면서 기부의 가치가 ‘더 행복해지는 삶’에 있다고 설명했다. 션은 “아이 4명의 부모이자 결연을 통해 맺어진 1000명의 아이들, 총 1004명의 부모가 됐다”며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시작한 기부지만 그들을 통해 기적을 보고, 오히려 얻어진 게 많다”고 기적의 시작을 독려했다.
자립 가능한 성인되도록 돕는 ‘축복의 통로’
박 회장은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사태에 자연재해까지 겹쳐서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가장 어려움을 많이 겪는 층이 어린이”라며 “진흙죽을 먹고 살아가는 마다가스카르 아이들을 보면서 코로나 팬데믹과 자연재해 상황에서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생각을 하는 차에 컴패션과 연결됐다”고 설명했다.
컴패션이 단순히 물질적 지원을 하는 곳이 아니라 ‘어린이 양육 기구’로, 이들이 가난과 재해, 질병에서 벗어나 자립 가능한 성인이 될 때까지 돕는 전인적 지원 창구라는 점도 박 회장의 마음을 동하게 한 부분이다.
박 회장은 “당장의 배고픔을 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어쩌면 더욱 중요한 것이 가난을 극복하고 일어나 자립 가능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라며 “그 일을 컴패션이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과 한국컴패션은 이번 기부금을 ▲아이티 지진피해를 돕는 긴급양육 보완 사업 ▲코로나19 긴급양육 보완 사업 ▲아시아 지역 청소년 양육 개발 프로그램 ▲미결연 어린이 후원금 ▲Growing252 사역 후원금’ 등에 사용할 예정이다. 한국컴패션은 이번 기부로 1만2000여명의 후원 어린이 가정과 34개 컴패션어린이센터가 지원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3년 동안 400억원 이상…영업이익 10% CSR로
박 회장이 이끄는 애터미는 토종 네트워크마케팅 기업이자 글로벌 유통기업이다.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23개 나라에 진출해 있으며 1600만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지난해 통합 매출로 1조9000억원을 달성했다. 실적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이 회사의 CSR비용이다. 애터미는 2019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영업이익의 10%에 해당하는 400억원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박 회장의 남다른 ‘나눔 철학’이 반영된 부분이다. 박 회장은 애터미 창립 초기 생존 기로에 놓일 만큼 어려운 순간에도 첫 월급 200만원의 10%를 떼 주변 학교에 급식비가 없는 아이들을 돕는 등 기부에 앞장서 왔다.
그때부터 나눔을 생활화 하면서 3가지 철학도 생겨났다고 한다. ‘큰 게 아니라 작은 것부터, 멀 리가 아닌 가까운 곳부터, 나중이 아닌 지금부터 나누자’라는 것이다. “어려울 때 더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게 그가 지켜온 소신이다.
회사가 기반을 잡아가면서 사랑의 열매 5000만원, 실로암안과 학술연구원 건립 및 개안수술 20억원 등 점점 기부 액수도 커졌다. 2년 전인 2019년엔 미혼모를 위한 ‘생소맘 기금’에 중견기업 최대금액인 100억원을 쾌척하며 주목받기도 했다.
불우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지속적인 후원 활동도 이어왔다. 지난해 보호종료아동 및 성범죄 피해아동 지원을 위해 세이브더칠드런에 4억원을 전달하는가 하면, 장애를 안고 있는 어린이들의 재활에 보탬이 되고자 전주예수병원의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에 27억원을 지원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인 올해 들어 기부 횟수는 더 늘어났다. 캄보디아 진료버스 운영비로 50억원을 기탁했고, 공주시 지방재정과 일자리 창출에 20억원을 쾌척했다. 여기에 한국컴패션 기부 약 120억원을 더하면 총 200억원 이상을 올해 나눔 비용으로 쓴 셈이다.
업계에선 올해 기부액 역시 이미 애터미의 영업이익 10%를 초과했다 보고 있다. 전경련 가입 220개사의 연평균 기부금이 영업이익 대비 4%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다.
올해뿐 아니라 애터미는 기부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CEO스코어가 지난해 3년 동안 매출 상위 500대 기업의 업종별 기부금 증감액과 기부금 비중 변화를 조사한 결과 애터미가 속한 유통·생활용품 업종 중 애터미의 매출 대비 기부금 비중은 2018년 0.46%, 2019년 1.72%, 2020년 0.84%에 달했다. 이는 관련 업종 평균의 10배가 넘는 수치다.
기업은 사회가 성장하는 밑거름…ESG는 그 약속
이는 최근 재계에 불고 있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애터미는 돈을 버는 시스템뿐 아니라 돈을 쓰는 시스템도 만들어 가겠다는 포부다. 박 회장은 “번 돈은 쌓아 두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야 한다”면서 “기업은 우리 사회가 성장하는 밑거름이 돼야 하고, ESG는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 가겠다는 기업의 약속”이라고 말했다.
애터미가 픽한 컴패션
컴패션은 TV광고, 길거리 등 공개적인 모금 활동을 하지 않는다. 1993년 수혜국을 졸업한 뒤 2003년 지원국으로 한국에 뿌리내리게 된 ‘특별한 이력’ 탓에 NGO(비정부기구)로서의 역사도 짧은 편이다. 인지도가 높지 않지만 한국컴패션은 기독교를 중심으로 알음알음 나눔과 사랑을 전파해왔다. 전 세계적으로 컴패션은 200만명 이상의 어린아이들을 후원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12만여명은 한국컴패션에서 후원하고 있다.
서정인 대표는 2003년 컴패션이 한국에 다시 설립될 때부터 대표를 맡아오고 있다. 박한길 애터미 회장과 인연은 ‘컴패션을 주제로 한 CBS 방송 출연’이 맺어줬다. 방송을 처음 접한 건 박 회장의 아내인 도경희 애터미 부회장이다. 도 부회장 소개로 컴패션을 알게된 뒤 박 회장은 컴패션을 찾아 종사자들을 만났고, 서 대표와 오랜 시간 기부와 신앙에 대한 뜻을 나눴다.
박 회장 부부의 마음을 더욱 강하게 끌어당긴 건 컴패션이 ‘양육기구’라는 점이다. 재해가 발생하거나 급박한 위급 상황에 나누는 구호의 손길이나 지원도 중요하지만, 이는 단기적 지원에서 그친다는 데 아쉬움이 따랐다. 반면 컴패션에는 가난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고 어른이 될 때까지 지속적인 지원을 주는 양육 커리큘럼이 존재했다.
서 대표는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에서 “어린이들을 돕는 기관이 여럿 있다. 다들 후원금을 받는 방법은 똑같지만 쓰는 방법은 모두 다르다. 이들 중 컴패션만 유일하게 양육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며 “뱃속에 있는 한 생명이 성인으로 자립해 설 수 있을 때까지 함께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후원이라는 개념이 컴패션에 녹아있다”고 말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양육 성과는 결과물로 나타나고 있다. 컴패션이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학교 경제학과 브루스 위딕 교수와 함께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컴패션을 통해 전인적 양육을 받은 어린이가 그렇지 않은 어린이에 비해서 선생님이 되는 비율이 63% 높으며, 대학 교육을 마친 비율은 50~80%, 사회 리더가 되는 비율은 30~75% 더 높았다.
컴패션은 후원금 운영원칙도 8대 2로 준수하고 있다. 전체 후원금의 80% 이상을 수혜국 현지 어린이 양육비로 사용한다는 원칙을 설립 이후부터 지켜오고 있다. 운영비 사용에 효율성과 정직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서 대표의 철학이다. 한국컴패션은 지난해에도 약 747억원의 사업비 중 85.2%를 어린이 양육 프로그램 비용으로 사용했다.
서 대표는 “무조건적인 기부가 다 옳은 것이 아니라 기부도 가치를 보고 결정돼야 한다”면서 “결과물이 분명하고, 투자한 것에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비즈니스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도 컴패션이 다른 일들을 벌리지 않고 ‘양육에만 집중’하면서 운영시스템이 투명하다는 점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컴패션은 또 2003년 설립 이후부터 재정 투명성을 위해 회계법인 외부감사를 받고 있으며 각 수혜국 역시 내·외부 감사를 실시하고 있다.
박 회장은 “애터미 기부를 통해서 컴패션이 지속적으로 대중에게 각인되는 길이 열렸으면 좋겠다”면서 “액수가 크든 작든 돈을 잘 써줄 믿음직한 기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최소한 그들에게라도 컴패션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설아 기자 kim.seola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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