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포화로 재주목 받는 가상화폐
우크라이나, 군자금·피난자금으로 가상화폐 활용
러시아, 경제 제재에 맞서 가상화폐로 자산 지켜
가상화폐(암호화폐)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주목받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가상화폐를 각각 군자금, 지급수단 등으로 활용하고 있어서다.
“우크라이나 국방자금으로 써달라” 전세계서 가상화폐 기부
통상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가 자금을 마련하는 방법은 전쟁채권이다.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항전 중인 우크라이나 정부도 전쟁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우크라이나는 가상화폐를 군자금 마련 방안으로 선택했다. 앞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 2월 26일 트위터를 통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을 기부받을 수 있는 온라인 주소를 알리고 2억 달러를 목표로 가상화폐 기부를 호소했다.
계좌 공개 초기에는 해당 계좌의 진위를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으나, 우크라이나 디지털부 대변인이 정부 소유의 계좌라는 점을 직접 확인하자 전 세계에서 우크라이나를 향한 가상화폐 기부가 이어졌다.
AP 통신에 따르면 우크라니아가 가상화폐 기부를 호소한지 약 한 달이 지난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세계에서 가상화폐로 약 6700만 달러(약 821억원)의 기부금이 모였다.
알렉스 보르냐코프 우크라이나 디지털 전환 차관은 국가 기부 웹사이트에 이날까지 가상화폐로 6700만 달러의 기부금이 들어왔다며 “가상화폐는 오늘날 우크라이나 국방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3월 셋째주까지 기부받은 가상화폐 가운데 3400만 달러(약 417억원)를 사용했으며, 이 중 80%는 일반 화폐로 교환해 썼고 나머지는 가상화폐로 직접 거래할 수 있는 판매자를 통해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AP통신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기부받은 가상화폐를 우크라이나의 가상화폐 거래소 ‘쿠나’를 통해 환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금 인출 못하자 비트코인 담은 USB 갖고 국경 넘어
국내에서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상화폐 기부 행렬이 이어졌다.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에 따르면 지난달 20일까지 회원 902명이 우크라이나 정부에 비트코인(BTC)과 이더리움(ETH) 각 8000만원씩 총 1억6000만원을 기부했다. 업비트는 기부에 대한 출금 수수료 약 4800만원을 환급할 계획이다.
가상화폐는 군자금뿐 아니라 민간인의 피난 자금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현금소지와 활용이 어려운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이 가상화폐를 들고 폴란드 국경을 넘어 피난을 떠난 것이다. 한 예로 미국 경제매체 CNBC는 지난달 23일(현지시간) 현금인출이 불가능해지자 USB에 2000달러 상당의 비트코인 주소를 담아 국경을 넘은 우크라이나 난민의 사례를 보도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가 가상화폐로 기부금을 받는 것은 간단하고 빠르게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돈을 보내고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주권국가가 법정화폐가 아닌 가상화폐를 화폐로 인정하고 활용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가상화폐 관련 범죄를 조사하는 베넷 톰린은 AP에 “주권국가가 국방 자금을 가상화폐로 지원받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라며 “가상화폐에 대한 많은 논쟁을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부호들도 가상화폐로 해외 부동산 구입 나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도 가상화폐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유럽 등 서방이 러시아 중앙은행과 시중은행 7곳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배제하는 등 경제 제재에 나서자 자국 통화인 루블화 대신 가상화폐를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러시아의 부호들은 국제사회의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터키나 아랍에미리트(UAE) 부동산 매입에 나서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가상화폐를 활용하고 있다.
터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월 러시아인이 매입한 현지 주택이 509채로 지난해 전체 매입 건수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났다. 미국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이스탄불이 있는 부동산 업체인 골든 사인의 공동 창업자인 굴 굴은 러시아인들이 매일 7~8채 정도를 사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두바이 부동산업체인 모던 리빙의 티아고 칼다스 최고경영자(CEO)도 러시아인의 매입 문의가 최근 10배나 늘었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인들의 구매 문의에 대응하기 위해 러시아어를 할 수 있는 직원을 3명이나 채용했다고 언급했다.
칼다스는 대부분의 거래가 가상화폐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면서 러시아 부호들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재산을 러시아 밖으로 옮겨 놓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같은 움직임은 러시아 내 부호들이 자국 화폐인 루블화 폭락으로 인한 손해를 막기 위해 가상화폐를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전쟁을 마주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두 나라 모두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 같은 가상화폐를 저마다의 방법으로 법정통화를 대신해 활용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부정적인 의견도 나온다.
일례로 우크라이나의 가상화폐 관련 변호사인 아르템 아피안은 “가상화폐 기부의 또 다른 과제는 범죄나 사기를 통해 얻은 오염된 자산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그는 “지금 우크라이나가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우크라이나는 많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시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강필수 기자 kang.pil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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