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창완 대표 “티끌만 모아도 건물주가 될 수 있습니다”
[김홍일의 혁신우혁신⑰] 예창완 카사코리아 대표
금융위 혁신금융서비스 인가 획득한 프롭테크 스타트업
빌딩 DABS 통해 소액으로 건물주 될 수 있는 플랫폼
투자 유치 위해 800회 IR “투자자와 탄탄한 신뢰 형성이 중요”
전 세계 자산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세상이 사업의 목표
“몇 년 만에 연매출 수백억 신화”, “고졸이 대박집 사장이 되기까지”, “유명 대기업에 수백억 투자받은 비결”, “스타트업, 나처럼 하면 성공한다”…. 창업 관련 기사를 수놓는 미디어의 헤드라인이다. 가시밭길을 밟아온 창업가의 역경 드라마를 소개하고,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지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는 식이다. 스타트업의 숱한 곡절을 생생하게 목격한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전 디캠프 센터장)는 창업 시장이 일률적으로만 묘사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창업가의 성공에 손뼉만 치고 끝낼 게 아니라, 그들의 혁신 비법을 우리 사회가 함께 공유하자.” [이코노미스트]가 ‘김홍일의 혁신우혁신’을 연재하는 이유다. 창업 요람의 리더 역할을 하던 VC 대표가 스타트업 CEO를 만나 진중한 질문부터 가볍고 짓궂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를 살릴 새 성장 동력을 찾을지도 모를 일이라서다. 열일곱 번째로 만난 창업가는 부동산 투자의 대중화를 꾀하고 있는 예창완 카사코리아 대표였다.[편집자]
건물주가 조물주보다 위상이 높은 한국에서 카사코리아(카사)는 건물주의 꿈을 대신 이뤄주는 흥미로운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는 부동산 간접투자 플랫폼 ‘카사’를 운영 중이다. 카사에선 수십억에서 수백억원에 이르는 큰돈을 ‘영끌’하지 않아도 누구나 건물주가 될 수 있다. 건물의 가치를 수십만개로 조각내 여러 투자자에게 팔기 때문이다.
건물의 가치를 마치 주식처럼 사고파는 게 가능한 비결은 디지털자산유동화증권(DABS)이다. DABS는 디지털 방식으로 거래가 가능한 상업용 부동산을 기초로 발행된 자산유동화증권이다. 건물주가 신탁회사에 건물 매각을 맡기면, 카사와 신탁사는 해당 부동산을 기반으로 한 DABS을 발행하고 공모 형태로 개인투자자를 모집한다. 1DABS는 5000원으로, 소액 투자가 가능하다.
투자자는 DABS 보유 비율에 따라 건물의 임대수익을 배당처럼 받을 수 있다. 주식처럼 자유롭게 거래해 매매차익을 올리거나 건물을 매각할 때까지 보유해 건물의 매각 수익을 배당받을 수도 있다.
카사는 2019년 5월 금융위원회로부터 혁신금융서비스(규제 샌드박스)로 지정받아 플랫폼 운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간 서초와 역삼, 여의도 지역에 있는 5채 빌딩을 두고 공모했고, 완판에 성공했다. 5채 중 하나는 빌딩을 매각해 그에 따른 시세차익을 투자자끼리 나눠 갖기도 했다. 누구나 건물주의 꿈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예창완 카사 대표를 [이코노미스트]와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가 만났다.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김홍일 대표) : 빌딩을 DABS로 조각내고, DABS를 보유하면 누구나 서울 빌딩 건물주가 될 수 있다. 참 재밌네요. 그래도 개념이 좀 어렵습니다. DABS를 주식과 비교해서 설명해주시겠어요.
예창완 카사 대표(예창완 대표) : 이윤추구가 가능한 수익성을 지닌 증권이란 점에선 비슷합니다. 주식이 주식회사의 자본을 구성하는 단위라면 DABS는 상장 부동산의 자본 가치를 구성하는 단위죠. DABS 소유자는 주식회사 주주처럼 DABS를 사고파는 데 따른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고, 임대 수익을 기반으로 한 배당 수익도 얻을 수 있어요.
김홍일 대표 : 다른 점은요.
예창완 대표 : 건물 자체를 매각할 때의 매각 차익 역시 수익으로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은 다릅니다. 주식회사 주주는 회사 경영권이 팔린다는 이유로 추가 이익을 얻을 순 없잖아요.
김홍일 대표 : 투자 과정은 어떻게 됩니까. 아무 건물이나 사고팔 수 있는 건 아닐 거 아니에요.
예창완 대표 : 먼저 건물 소유주가 상장을 신청하면 감정 평가 과정을 거쳐 부동산신탁회사가 DABS를 발행합니다. 이 DABS는 카사 플랫폼에서 공모 청약을 통해 분배되고, 이후 카사 플랫폼 상장 후에는 주식처럼 거래가 되는 거죠. 투자자 입장에선 새롭게 투자자를 모집하는 공모에 참여하거나, 카사 플랫폼에서 거래 중인 DABS를 취득하면 됩니다. 간단하죠. 그간 이런 방식으로 카사 플랫폼에 들어온 건물이 총 5채입니다. 카사에서 거래를 진행했던 투자자는 2만명가량 되고요.
처음 만나는 부동산 재테크 플랫폼 카사
김홍일 대표 : 하나의 건물의 가치를 두고 수천명이 권리를 나눠 갖는 구조군요. 뉴스에서 나오는 조물주 위 건물주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건 아니겠네요. 투자자가 기대할 수 있는 수익률은 어떻게 되죠.
예창완 대표 : 각각의 빌딩과 부동산 시장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그간 임대수익에 따른 분기별 배당수익률이 연 3~5% 수준이었습니다. 빌딩 매각에 따른 배당수익률은 두 자릿수를 넘겼고요.
김홍일 대표 : 매각에 따른 일확천금을 기대할 수 있는 게 아니네요. 예‧적금보단 쏠쏠하고 주식보단 안정적인 투자처처럼 보입니다.
예창완 대표 : 부동산 투기 욕망을 자극해 투자자를 유인해내려고 카사를 만든 게 아닙니다. 한국에선 부동산 투자가 그들만의 리그잖아요. 부동산으로 돈 버는 사람은 정해져 있는데, 카사는 이 장벽을 허물고 싶습니다. 대중도 손쉽게 경험하고 투자할 수 있게 말입니다.
부동산은 한국 사회의 골칫거리다. 최근 몇 년간 부동산 가격 오름세가 뚜렷해지면서 이를 가진 부자들의 자산은 불어나는 반면 나머지의 삶은 정반대였다. 소득 상승률이 부동산 가치 상승률에 크게 뒤처졌기 때문이다. 부동산은 사회·경제적 지위와 직결되면서 부동산 보유 여부가 곧 계급이 되는 사회가 됐다.
가만히 앉아서 누릴 수 있는 막대한 시세차익, 쏠쏠한 임대수익은 땀 흘려 일해서 받는 월급 몇 푼과 극적으로 대비됐다. 청소년과 청년 사이에선 건물주가 ‘꿈의 직업’으로 올라섰지만,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평생의 월급을 모아도 건물주가 될 수 없었다. 금수저로 타고나 ‘부모 찬스’를 통해야만 건물주가 될 수 있는 탓에 이들의 박탈감과 상실감만 키웠다.
청년 창업가 예창완 대표 역시 이런 간극을 생생하게 체험했다. “미국에서 공부했는데, 그 나라 역시 불평등이 극심하잖아요. 부동산 가격은 까무러치게 높고요. 그래도 미국엔 부동산 간접투자 채널이 다양하게 있더라고요. 한국에선 리츠 정도가 전부인데요. 그때부터 부동산 투자의 접근성을 높일 방법을 고민하게 됐죠.”
김홍일 대표 : 돈이 돈을 부르는 시대, 특히 부동산 불장(상승장)을 바라보는 요즘 청년 세대의 박탈감은 상당합니다. 이들에게 카사는 매력적인 투자처로 느껴지겠군요.
예창완 대표 : 이제 막 발을 디딘 스타트업의 낯선 플랫폼인데도 청년 투자자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소수의 자산가만 점유하던 시장을 일반 대중에게도 길을 터주는 건 그래서 의미가 큰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업용 부동산 거래량이 지난해 20만건을 넘었는데, 그에 따른 과실은 그분들만 누렸잖아요.
빌딩 지분을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다면…
김홍일 대표 : 한국에서 이런 방식의 사업 모델은 카사가 처음인 거죠.
예창완 대표 : 네 맞습니다. 모든 게 처음이다 보니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금융위로부터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받고 규제 샌드박스가 열리기 전까진 창업을 한 후에도 매출이 제로였으니까요. 부동산을 기반으로 수익증권을 발행하는 건 불법이거든요.
김홍일 대표 : ‘존버’하겠다는 굳은 각오로 여기까지 온 셈이네요. 진짜 힘들었을 때는 언제였는지 궁금합니다.
예창완 대표 : 많은 창업가가 공감하겠지만, 투자를 유치하는 게 정말 힘들었습니다.
투자 유치는 스타트업 경영의 수많은 난관 중에서도 창업가를 가장 곤란하게 하는 단계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기술을 보유해도 자금 없인 회사를 굴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투자 유치에 실패하면 성공은커녕 순식간에 생존 문제에 빠진다. 투자자를 설득하는 과정인 IR 피칭 준비에 창업가가 많은 시간을 쏟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김홍일 대표 : 스타벅스의 성공 신화를 이룩한 하워드 슐츠도 242회에 이르는 투자 설명회 끝에 자금 유치에 성공했다고 하죠. 그런데 예창완 대표는 그보다 더 많은 횟수의 IR을 했다고요.
예창완 대표 : 어림잡아 800회쯤요.
김홍일 대표 : 창업한 지 4년 만에 800회면…. 1년에 200회, 거의 매일 했다는 얘기네요. IR엔 도가 텄을 것 같네요. 예 대표가 생각하는 IR은 무엇입니까.
예창완 대표 : 저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게 결혼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면 IR은 소개팅 같은 게 아닐까요.
김홍일 대표 : 재밌는 비유네요.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예창완 대표 : 단순히 스타트업이 매력적이란 이유로 투자가 성사되는 게 아닙니다. 투자자와 회사의 교감이 정말 중요하더라고요. 피칭 자리에선 말투와 태도만으로도 투자 여부가 결정되기도 하잖아요. 저는 그 과정이 마치 데이트하는 것처럼 느껴져서요. 그리고 연애와 결혼이 사람을 성숙하게 하잖아요. 카사 역시 여러 IR을 통해 회사의 목적과 가치를 더 단단하게 굳힐 수 있었습니다.
김홍일 대표 : 왜 우리 회사에 투자해야 하느냐란 질문을 두고 다른 각도에서 끊임없이 얘길 하다 보면 확실히 성숙해지겠네요. 그런데 800회의 IR을 했다는 건, 그만큼 거절을 많이 당했다는 얘기잖아요.
예창완 대표 : 투자와 IR이 소개팅만큼 성사되기 어렵다는 점도 닮았네요.
김홍일 대표 : 숱하게 투자 거절을 당한 입장에서 설명해주시죠.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도 VC 대표지만, 궁금합니다. 투자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좋은 IR은 어떤 IR인가요.
예창완 대표 : 진솔하게 말하는 거요. 뻔한 얘기 같지만 그게 정답이에요. 사업 초반엔 저도 카사의 비전을 부풀려 말하기도 했어요. 그 부풀림이 어마어마한 사탕발림을 쏟아 낸 건 아니에요. 제가 가늠하고 있는 카사의 비전보다 더 크게 포장한 거죠. 그런데 그렇게 얘기할 땐 투자자들 반응이 시원찮았어요.
김홍일 대표 ; 간파하는 투자자가 있었군요.
예창완 대표 : 오히려 반응이 좋은 건 왜 사업을 시작하게 됐고, 또 어떤 임팩트를 남기고 싶은지 허심탄회하게 털어놨을 때였어요.
김홍일 대표 ; 어떤 얘길 털어놨길래 투자자들이 솔깃했을까요.
예창완 대표 : 창업 첫날, 카사팀이 세운 미션 스테이트먼트가 있어요. 전 세계 자산에 누구나 접근 가능하게 하자는 것이었죠.
김홍일 대표 : 부동산에 국한한 게 아니군요.
예창완 대표 : 닿을 수 없는 영역을 누구나 접근 가능하게 만드는 게 카사의 중요한 가치입니다. 세상엔 그들만의 리그가 너무 많아요. 예전엔 그 높은 문턱을 해소할 방법이 없었다면, 지금은 아니잖아요. 다양한 기술이 등장해 그 기득권을 허물려고 해요. 부동산만 해도 그렇죠. 누구나 선망하지만 대부분이 못 갖고 있잖아요.
김홍일 대표 : 상당히 파괴적인 임팩트네요.
예창완 대표 : 물론 카사 혼자서 이뤄낼 순 있는 일은 아닐 겁니다. 그럼에도 기여는 하고 싶어요.
김홍일 대표 : 해외 시장을 두드리고 있는 건 그런 이유겠네요.
예창완 대표 : 지난해 싱가포르통화청(MAS)로부터 수익증권공모 및 2차거래 라이선스를 획득했습니다.
김홍일 대표 : 싱가포르에 카사 플랫폼을 출시하겠군요.
예창완 대표 : 올해 9월 론칭을 목표로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싱가포르 거래소에는 국적 제한 없이 투자 참여가 가능하기 때문에 싱가포르뿐 아니라 글로벌 각지의 부동산을 기반으로 한 공모 상장이 가능합니다.
김홍일 대표 : 해외의 다른 투자 플랫폼과도 경쟁하게 되는 겁니까.
예창완 대표 : 해외에도 부동산 간접투자 플랫폼은 많지만, 카사와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는 곳은 못 봤습니다. 특히 소액 투자자를 끌어 모으려는 기업은 거의 없을 겁니다. 앞으로 카사는 다양한 국가, 다양한 종류의 부동산을 두고 더 크게 판을 벌여보려고 합니다. 그간은 빌딩 5채였지만, 이 숫자를 점차 늘리다 보면 ‘그들만의 리그’도 ‘우리 모두의 리그’가 되지 않을까요.
기자가 본 예창완 대표
요샌 뭐든 조각내서 투자한다. 미술품이나 음원 저작권, 한정판 신발, 럭셔리, 한우까지 종류가 각양각색이다. 월급만으론 목돈을 불리기 어려운 청년세대가 미래를 도모할 투자 수단이 늘어난 건 긍정적인 일이었지만, 한편으론 이런 투자 활동에 무슨 목적을 찾을 수 있는지 불분명했다.
남다른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각각의 플랫폼은 금융상품보다 월등히 높은 수익률을 내걸고 있었지만, 구매부터 판매까지의 보유기간을 따지면 실제 체감수익은 낮을 게 뻔해 보였다. 주변에서도 몇몇이 조각투자에 손을 댔지만, 흥미 위주의 접근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누구나 건물주’가 될 수 있다니, 사탕발림에 불과할 게 뻔해 보였다.
그런데 예창완 대표는 카사의 소셜 임팩트를 말할 때 더 힘을 줬다. “결국 부동산 시장이 돈이 되고 수익이 나니까 자산가들이 몰리는 거거든요. 이 접근성을 좀 넓혀보자는 게 카사의 임무예요. 임대수익이라는 걸 일반 국민도 받을 수 있게, 시세차익이 뭔지 경험해볼 수 있게요.”
수익률보다도 투자 안정성을 더 강조했다. “회사의 임팩트도 남다르지만, 기술적으로도 안전하다고 자부합니다. 투자자 보호 장치도 갖췄고요. 건물과 증권은 국내 최대 신탁사가 관리하고, 투자금은 국내 최고의 은행에서 관리합니다. 모든 DABS 거래 기록이 카사 및 금융기관, 부동산 신탁회사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분산원장에 저장되기 때문에 해킹으로 인한 위‧변조가 불가능해요.”
예창완 대표는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 컴퓨터사이언스를 전공했고,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의 창립멤버이기도 했다. 사회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가 실제로 건물주인지 궁금해졌다. 예 대표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그는 카사가 내세우는 ‘누구나 건물주가 될 수 있습니다’ 중에서 ‘누구나’를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도 강남의 높은 빌딩을 보면서 건물주를 선망했습니다. 물론 빌딩을 살 재력은 갖추지 못했고요. 그래서 카사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같이 건물주 돼보자고요.”
김다린 기자 kim.dar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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