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대미 투자 눈치 보였나…역대급 국내 투자 발표한 재계
삼성 450조, 현대차 63조, 롯데 37조, 한화 38조 투자
바이든 방한 당시 선물 보따리 푼 기업들, 국내로 눈길
이재용·신동빈 ‘사법리스크’ 족쇄 풀 발판 마련하나
미래 신사업을 중심으로 한 재계의 대규모 투자 계획이 지난 24일 연이어 발표됐다. 그 주인공은 삼성과 현대차, 롯데, 한화 등 4개 그룹이다. 이들이 발표한 투자 규모를 합치면 600조원에 가깝다. 대한민국 올해 예산(607조원)과 맞먹는 금액이다.
재계의 이번 투자 계획은 규모도 규모지만 발표 시점이 묘하다는 평가다. 대기업들은 지난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을 전후해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앞다퉈 내놓은 바 있다. 이에 재계에서는 국내 투자에 소홀하다는 비판에 벗어나고자 기업들이 역대급 투자 계획을 밝힌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아울러 삼성, 롯데 등 총수의 법적 문제가 걸려 있는 기업들은 정부에 보내는 일종의 ‘사면’ 요청이라는 해석도 있다.
향후 5년간 대한민국 1년 예산 맞먹는 투자 진행
이번 삼성의 투자 계획 발표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평택공장을 방문한 지 사흘 만에 나왔다. 일각에서는 한미 ‘반도체 동맹’과 윤석열 정부의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목표에 부응하기 위해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고 분석한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4년간 국내에 63조원을 투자키로 했다. 국내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그룹 미래 사업 허브’로 한국의 역할과 리더십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우선 미래 성장의 핵심인 전기차 사업을 고도화할 계획이다. 순수 전기차를 비롯해 수소연료전지차,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등 전동화 분야에서 기술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현대차·기아·모비스가 총 16조2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롯데그룹은 신성장 테마인 헬스 앤 웰니스, 모빌리티, 지속가능성 부문을 포함해 화학·식품·인프라 등 핵심 산업군에 5년간 총 37조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한다고 24일 밝혔다. 코로나19 이후 위축됐던 유통·관광 산업 역량 강화를 위한 시설 투자도 확대할 계획이다.
한화그룹도 투자 대열에 합류했다. 한화그룹은 올해부터 향후 5년간 미래 산업 분야인 에너지, 탄소중립, 방산·우주항공 등 국내 산업에 20조원 등 총 37조6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20조원의 국내 투자는 에너지, 탄소중립, 방산·우주항공 등의 3개 사업 분야에 집중된다.
수십조 美 투자한 기업들, 국내 산업 육성 의지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약 20조원)를 투자해 신규 파운드리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방한 당시 삼성전자 평택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삼성전자 추가 투자 가능성도 언급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바이든 대통령 방한에 맞춰 미국 조지아 전기차 공장에 55억 달러(약 7조원) 신규 투자를 비롯해 자율주행·인공지능(AI) 등 미래 사업 분야에 50억 달러(약 6조3600억원)를 추가 투자하겠다고 직접 영어로 발표했다.
롯데그룹 역시 미국 바이오 의약품 생산공장을 인수하고 향후 10년간 2조5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화는 최근 한화솔루션을 앞세워 공격적인 미국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2020년 미국 에너지 소프트웨어 업체 ‘젤리’ 인수를 시작으로 인수·합병(M&A)과 시설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것. 한화솔루션은 최근 미국 모듈 생산 라인에 2000억원을 투자해 1.4GW 규모의 태양광 모듈 공장도 짓기로 했다.
주목할 점은 이들 기업의 국내 투자 계획이다. 삼성의 지난해 5년간 330조원 투자를 제외하곤 다른 기업의 국내 투자 계획은 최근 몇 년간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19와 같은 외부 요인으로 투자 여력이 떨어졌다는 것이 대외적인 입장이지만 미국에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한 것과는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더욱이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에 맞춰 국내 기업들이 연이어 미국 투자 보따리를 푼 반면 미국 기업의 한국 투자가 거의 전무했다는 점에서 일부 여론은 미국만 실리를 챙겼다는 지적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재계가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을 떠난 지 사흘 만에 역대급 투자 계획을 밝힌 것은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국내 산업 육성과 경제 활성화에 소홀하지 않겠다는 기업의 의지표현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의 이번 투자 결정이 윤석열 대통령의 경제인 사면 결정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현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사법리스크로 경영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 씨 등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됐다가 지난해 8월 가석방돼 5년간 취업이 제한돼 있다. 신 회장도 국정농단 등에 연루돼 2019년 10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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