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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 향방은 유가에 달렸다 [조원경의 글로벌 인사이드]

우크라이나 전쟁, 수요 증가 등으로 유가 급등
미 소비자물가지수 41년 만에 최고치 기록
석유가 '좌초자산'이 되는 날이 올까

 
인플레이션 충격이 만만치 않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예상을 깨고 41년 만에 최고인 8.6%(전년 동월 대비)를 기록했다. 물가 정점 논란이 가속화되고 있다. 긴축과 함께 미국 연방준비위원회가 금리를 7월이나 9월에 0.75bp(1bp=0.01%포인트) 올릴 수 있을 가능성이 커졌다. 물가 상승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높은 물가 오름세를 주도하는 에너지·식료품 가격, 수요측 물가상승 압력, 공급 병목현상, 임금 상승 압력, 주거비와 유동성 등이 주요 원인이다. 이 중에서 인플레이션 정점 논란의 주된 요인은 유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국내 주유소의 휘발유·경유 판매가격이 L당 2070원 선을 돌파했다. 1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전날 오후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가격은 2073원을 기록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한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에너지 가격은 원유·천연가스 등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지속되면서 대다수 국가에서 소비자물가 오름세 확대를 주도하고 있다. 미국의 에너지 가격은 세금과 정부 정책의 영향이 작아 유가 민감도와 변동성이 크게 나타난다. 미국 CPI 중 에너지 품목의 비중은 6.2%에 달한다. 에너지물가 품목 바스켓에는 난방 같은 주거용 에너지와 가솔린·디젤 같은 석유제품을 포함하는 운송·장비용 에너지가 주를 이루며, 전기료 등 유틸리티 서비스 물가가 포함된다.
 
에너지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물가도 유가 영향을 받는다. 다양한 소비재와 서비스의 원자재로서 유가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유가 상승은 생산자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고,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전가 된다. 연초 배럴당 80달러를 밑에서 놀던 국제 유가는 러시아가 2월 말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100달러를 돌파했다. 3월 7일 미국과 영국의 러시아산 원유 금수 검토 소식에 브렌트유가 장중 139달러까지 뛰기도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가격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최고치로 쏜 유가가 정상적인 수준으로 돌아오는 길이 물가 안정의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몇 가지 이슈를 점검해 보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유가 최고치

첫째,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의 빠른 해결이다. 지난 3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한 미국과 유럽 등 동맹국들의 대(對)러시아 경제제재 속에 러시아 경제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다. 러시아 경제가 디폴트(채무 불이행) 사태에 빠져 100여 년 만에 ‘국가 부도’를 맞이할 가능성도 제기되었으나 스위스에 숨겨둔 비자금으로 그런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러시아 통화 루블화 가치가 미국 등 서방의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6월 13일 현재 1달러당 57.10루블을 기록했다. 지난 3월 135루블까지 급등했던 것에 견줘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루블의 가치는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의 전격적인 기준금리 인상과 외국인의 주식 매매 제한, 러시아산 석유·가스 판매대금의 루블 결제 등의 조처가 효력을 발휘했다.
 
러시아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 석유 생산국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석유 수출국이기도 하다. 지난 3월 미국이 러시아산 석유를 금지한 데 이어 올해 말까지 90%를 금지하기로 유럽연합(EU)이 합의했다. 이는 세계 물가에 대한 압력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분쟁의 해결은 단기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서방 강대국들이 우크라이나로 장거리 미사일을 보내는 가운데 시장은 전쟁의 교착 상태를 주시하고 있다.
 
급등한 WTI 가격.
둘째, 미국에서는 여름 휴가철을 맞아 휘발유 수요가 증가세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주택난방을 위한 석유 수요가 증가해 유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게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인들은 중국의 수요 증가에 비하면 미미할 수 있다. 중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0년 만에 가장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청정에너지 사용의 증가가 이러한 감소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주된 원인은 건설 분야의 성장 둔화와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지속적인 봉쇄로 석유 수요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인 중국은 대도시 봉쇄를 풀며 에너지 수요를 회복하고 있다.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중국은 러시아산 원유를 저렴하게 수입하고 있다.
 
셋째,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이 포함된 OPEC+가 7~8월 생산 규모를 하루 64만8000배럴로 기존보다 50% 늘리기로 했다. 시장은 이들의 21만 배럴 수준의 증산량이 러시아 원유 감산으로 인한 공급 부족을 해결하기엔 역부족으로 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러시아는 하루 약 100만 배럴씩 감산했고, 하반기에는 이 규모가 하루 300만 배럴로 확대될 수 있다. OPEC+가 증산량을 못 채울 수도 있다. 탄소중립을 위해 신재생에너지로 방향을 틀며 석유 투자를 줄인 산유국이 있어서다. 게다가 사우디가 7월 원유 판매 가격을 인상하기로 한 결정도 유가 인상에 한몫했다.
 
넷째, OPEC의 6개월 내 최대 증산 가능양은 520만 배럴인데 이 중 핵 협상 지연으로 수출에 제약이 있는 이란이 130만 배럴을 차지해 원유 공급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서구 시장에서 고립되었던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이 기회의 창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일부 기업에 대한 석유-채무 교환을 통해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가 해제될 수 있지 않을까? 미국에서 이란이 선적할 수 있는 원유 규모를 늘리도록 허락할 가능성은 없을까? 이런 가운데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러시아산 원유를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수입하는 것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두바이와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가능성이 기대 유가를 낮추는 데 효과가 있으면 좋겠다.
 
금융시장이 금리와 양적긴축에 집착하는 가운데 석유는 현재 가장 큰 이슈이다. 각국 중앙은행이 원유를 찍어낼 수 없기 때문에 공급이 아닌 수요로 영향력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 수소·재생에너지 같은 에너지원으로의 장기적인 이동이 여전히 유효한 궤도에 있다. 이런 관점에서 원유가 너무 오랫동안 상승세에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그래도 유효하지 않을까. 생각보다 오랜 동안 유가가 세계 경제를 괴롭히고 있지만 말이다. 누군가는 코로나19 당시 마이너스 유가가 있어 석유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고 했다. 유가의 고공행진 속에서도 석유가 미래의 언젠가는 좌초자산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필자는 국제경제 전문가로 현재 울산 경제부시장이다. 대한민국 OECD정책센터 조세본부장, 대외경제협력관, 국제금융심의관 등을 지냈다. 저서로 [앞으로 10년 빅테크 수업] [넥스트 그린 레볼루션] [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나를 사랑하는 시간들] 등이 있다. 

 
 
 
 
 

조원경 울산 경제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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