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심 잃고 좌·우파 정치 협공까지…흔들리는 마크롱 정권 [채인택 글로벌 인사이트]
멜랑숑 공세에 마크롱 정책들 표류
팬데믹 이후 성난 노동계 저항 고조
극우 르펜 가세, 프랑스 정치 혼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개혁에 힘을 실어줄 범여권 연합인 ‘앙상블(다함께)’이 6월 19일 치른 총선 결선투표에서 하원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해왔던 경제‧사회 분야 개혁 정책이 속도 조절의 길을 걸을 것인지, 오히려 더욱 강력한 추진으로 마크롱의 정치적 브랜드를 확고히 할 것인지에 관심이 모인다.
6월 12일의 총선 1차 투표에 이어 1주일 만인 19일에 열린 결선 투표에서 앙상블은 38.57%를 득표해 577석의 하원 의석 중 245석을 얻는 데 그쳤다. 289석 이상인 과반에서 45석이 부족한 것은 물론 2017년 총선에서 마크롱이 확보했던 의석보다 무려 105석이나 줄었다.
반면 1997년 이후 처음으로 4개 정당이 힘을 합쳐 선거를 치른 좌파연합 뉘프(NUPES‧신민중연합환경‧사회)는 31.60%를 득표해 131석을 얻었다. 연합세력으로선 2위의 의석이다.
뉘프에 참가한 극좌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와 녹색당‧사회당‧프랑스공산당 등 4개 정당은 지난 총선에서 획득했던 의석보다 79석을 더 얻었다. 이번 좌파연합은 장 뤽 멜랑숑이 이끌었다.
프랑수아 미테랑과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을 배출했던 전통의 중도좌파인 사회당이 초라한 모습으로 극좌 정당과 손잡고 좌파 연합에 참여한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프랑스 공산당도 마찬가지다. 사회당은 지난 대선 1차 투표에서 불과 1.7%의 득표율로 당 자체가 존폐 위기에 처했다. 프랑스 공산당의 2.3%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런 위기가 이들 정당이 1997년 이후 처음으로 좌파 연합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주목할 점은 극우 국민연합(RN)이 17.30%를 득표해 89석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난 총선 때 얻은 8석보다 무려 81석이 증가한 비약적인 발전이다. 프랑스 하원에선 15석 이상을 차지해야 원내교섭단체의 지위를 얻는데, 극우정당이 ‘마의 15석 고지’를 넘어 이를 얻은 것은 프랑스에서 처음이다. 극우 정당의 개가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극좌를 포함한 좌파연합과 극우 진영이 약진한 것에 비교해 전통의 중도우파는 이번 총선에서 그야말로 몰락했다. 7.29%를 득표해 64석 확보에 그쳤다. 지난 총선에 비해 66석이 줄었다.
이런 결과를 낸 이번 총선에서 가장 주목받은 인물은 멜랑숑이다. 지난 대선에서 21.95%의 지지율로 3위를 차지했던 극좌, 또는 급진좌파로 분류되는 정치인이다. 당시 멜랑숑은 2위를 차지했던 극우 마린 르펜과의 득표율 차이가 40만 표 정도로 1%포인트도 채 되지 않았다. 840만 표 이상을 득표해 1958년 제5 공화국 헌법 아래에서 극좌파로서 최다 득표를 기록했다. 특히 18~34세 유권자의 3분의 1이 그를 지지해 청년층 득표율 1위를 기록했다.
이를 통해 멜랑숑은 프랑스 정치 지형에서 좌파가 재기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그 여세를 몰아 멜량숑은 사분오열된 좌파를 모아 연합을 이루고 총선에서 승리했다.
멜랑숑 “부 재분배, 정년 연장 반대”로 마크롱에 대립
멜랑숑은 급진적인 정책으로 마크롱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정치적인 도전자로 평가된다. 그는 프랑스가 불평등과 기후위기에 더해 전염병 위기에 처해있다고 진단한다. 이는 다른 정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 해법으로 급진적인 정책을 제시해 극좌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정부가 금융을 통제하고 부를 재분배하며, 복지를 대대적으로 확대하고 에너지를 공공주도로 전환할 것을 주장해왔다. 그의 생각과 정책적 의지가 가장 잘 드러난 것이 지난 대선과 이번 총선에서 마크롱이 주장해온 정년 연장(62세에서 65세로)에 정면으로 반대한 것이다.
한국에선 정년 연장을 은퇴자나 장년층에 대한 취업 기회의 연장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상시 고용 노동자의 평균소득을 기준으로 한 연금의 평균 소득대체율이 31.2%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42.2%보다 11%포인트가 작으며, 그 60% 수준이다. 이에 따라 노후 대비를 순전히 개인이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정년 연장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고 볼 수 있다. 자녀 교육비와 결혼 경비를 비롯한 생계 외적인 부담도 상당하다.
하지만 일찍이 연금제도가 발달한 선진국에선 2017년 기준으로 미국 71.3%, 프랑스 60.5%, 일본 57.7%, 영국 52.2%, 독일 50.9%로 소득 대체율이 높은 편이다. 일찍이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시절에 연금 개혁을 이룬 독일에서 연금의 소득 대체율이 낮은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외에는 비교적 넉넉한 은퇴 생활을 보장하고 있다. 퇴직하고 연금생활을 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프랑스에선 마크롱이 추진하는 정년 연장이 연금 지급 시기를 늦추고 더 길게 일해야 연금을 주겠다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마크롱이 법정 은퇴 시기를 늦추는 것은 여기에 드는 연금 재정의 안전화를 기하기 위해서다. 연금 고갈을 늦추려는 연금 ‘개혁’의 일환이다.
정치적으로는 멜랑숑이 여기에 반대의 기치를 들었지만, 포퓰리스트인 극우 르펜도 같은 입장이라는 점은 눈여겨볼 사안이다. 이념적으로 극과 극인 극좌와 극우가 정년 연장 반대를 들고 나선 것은 그것이 득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정책이 이해가 걸린 사람이 생각 외로 많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멜랑숑의 가장 큰 정치적 지지 세력은 노동조합과 함께 ‘노란조끼’ 시위대에 참가하는 성난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마크롱 집권 초인 2018년 10월 유류세 인상에 따른 석유 제품 가격 인상에 항의하며 노동자의 상징인 녹색 안전복을 입고 처음 시위에 나섰다. 하지만 노란조끼의 요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동차세 인하와 고유가에 대한 대책 마련 요구로 확대됐다. 여기까지는 노동 계층 생활고의 개선을 요구하는 수준이었다. 마크롱 정부는 휘발유와 디젤유 인상을 6개월 연기하는 등 이들의 요구를 수용했다.
멜랑숑 지지세력 노동계, 마크롱 개혁 정책에 반기
하지만 여러 차례의 시위로 세력을 확인한 노란조끼 시위대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의 요구는 본격적으로 마크롱의 개혁에 대한 저항으로 번졌다. 부유세 인하와 재정 긴축 등 마크롱이 2017년부터 추진해온 개혁정책 전반에 반대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해고를 쉽게 하는 노동정책 등 마크롱의 개혁 정책 전반에 반기를 들었다. 마크롱의 개혁 정책이 중산 계급과 노동 계급에게만 일방적으로 부담을 준다는 것이 이유였다.
마크롱의 개혁정책은 좌우파 모두의 이념적 도그마에 사로 잡혔던 프랑스 경제 체질을 바꾼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를 위해 2017년 대선부터 600억 유로의 공공 지출 축소와 공공부문 일자리 12만 개 축소를 공약했다. 이렇게 절약한 돈으로 500억 유로 규모의 공공투자로 프랑스의 미래를 새롭게 만들겠다는 약속이었다. 150억 달러를 청년과 구직자를 위한 직업교육에 투입하고, 도 다른 150억 유로를 환경과 에너지 분야에 투자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공양이었다. 아울러 낙후한 공공행정의 디지털화와 농업과 지역 교통, 보건 부문의 현대화를 당면 과제로 설정해 프랑스를 능률적인 나라로 바꾸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프랑스는 1960년 이래 ‘지도주의(Dirigisme)’라는 정책 이념에 따라 자본주의 체제의 틀 안에서 정부가 강력한 정책적 수단을 통원해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왔다. 이를 통해 경제성장의 정책적 비원과 동력을 제공하고, 노동 계층을 보호한다는 게 정부가 경제를 자유방임하지 않고 개입한 명문이었다. 실제 프랑스는 이를 통해 1960~80년대 고속 성장을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2007~2012년 우파의 니콜라 사르코지와 2012~2017년 좌파인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집권기에 프랑스는 심각한 성장 동력 하락을 경험했다. 사르코지 집권기에 프랑스의 경제성장률은 2007년 2.4%, 2008년 0.3%, 2009년 –2.9%, 2010년 1.2%, 2011년 2.2%의 낮은 경제성장률에 머물렀다. 사르코지에 실망한 유권자들은 좌파인 올랑드를 대통령으로 밀었지만, 올랑드 집권기에 프랑스 경제는 2012년 0.3%, 2013년 0.6%, 2014년 1.0%, 2015년 1.1%, 2016년 1.1%의 성장률을 보여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줬다.
올랑드의 사회당 정부에 장관으로 몸담았지만 좌우파 모두를 비판하며 이념에 경도되지 않고 실용을 추구하는 새로운 중도를 표방한 신예 마크롱이 2017년에 대통령에 오른 원동력은 경제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희망이었다. 전통의 지도주의에서 탈피한 자유방임적‧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으로 프랑스 경제에 성장 동력을 새롭게 마련하라는 유권자의 기대가 마크롱의 어깨에 얹힌 셈이다.
마크롱은 더 일하고 더 성장하는 프랑스 경제를 만들기 위해 대대적인 개혁에 나섰지만 그의 경제 성적표도 썩 좋지 않은 상황이다. 2017년 2.3%로 반짝 좋아졌지만 2018년 1.8%, 2019년 1.5% 정도에 머물렀다. 코로나19가 강타하면서 전국적으로 봉쇄를 할 수밖에 없었던 2020년 성장률은 –8.1%로 떨어졌다. 물론 2020년의 마이너스 성장은 팬데믹 때문이라는 변명이 가능하긴 하지만 개혁의 화려한 기치에 비해선 초라하다는 평가를 면하기는 힘들다.
“부유층 입김 강한 대통령제 폐지, 대중 참여제” 주장도
기본적인 경제 통계로 국세를 살펴보면 마크롱의 프랑스가 차지하는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2021년 1월 통계기준 인구 6800만 명에 국내총생산은 국제통화기금(IMF) 2022년 전망치가 명목금액 기준 3조610억 달러로 세계 7위다. 미국(25조3468달러), 중국(19조9115억 달러), 일본(4조9121억 달러), 독일(4조2565억 달러), 인도(3조5347억 달러), 영국(3조3760억 달러) 다음이다.
유럽연합(EU) 내에선 전통의 경쟁국이자 협력국인 독일 다음으로 GDP가 많다. 2016년 6월 23일 국민투표를 거쳐 2020년 1월 31일을 기해 EU에서 완전 탈퇴한 영국보다도 떨어진다. 독일은 인구가 8324만 명으로 프랑스보다 많지만, 영국은 6722만 명으로 프랑스와 거의 같다.. 그런데도 프랑스 GDP가 영국보다 떨어진 것은 여러모로 프랑스 경제의 상황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프랑스가 어려움을 겪는 동안에 정부의 방역 통제 등에 불만을 품은 노란조끼 시위가 계속됐다. 이는 프랑스 정치‧경제‧사회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을 욕하는 극좌파와 포퓰리즘 정책을 들고나온 극우파가 지난 대선에 이어 이번 총선에서 세력을 얻은 원인으로 분석할 수 있다. 마크롱은 개혁을 하지만 이를 계급적으로 불리하다고 판단한 노동 계층과 좌파 세력에 다양한 이유를 들며 이에 지속해서 저항한 것이다. 이는 지난 4월 연임에 성공한 마크롱의 집권 2기 내내 따라다닐 ‘잎 속의 검은 잎’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마크롱에게 가장 큰 부담을 주는 야당 인물은 극좌 멜랑숑일 수밖에 없다. 멜랑숑은 연금 개혁에 반대한 것은 물론, 유가 등 생필품 가격 인상에 정부가 더욱 개입할 것을 요구해왔다. 당장 오르는 물가에 시달리는 국민이 이에 호응한 것이 이번 총선의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말랑숑은 여기에 더해 정치 개혁까지도 부르짖는다. 1958년 샤를 드골이 만든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의 제5공화국의 헌법과 정치 체제를 근본적으로 수술하자고 주장한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드문 대통령 중심제, 그것도 대통령의 권력이 집중된 독특한 권력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밀랑숑은 이런 체제 때문에 계급적으로 부유층의 입김이 강해지고, 노동 계층의 목소리가 제대로 정치에 전달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대통령 중심제를 폐지하고 대중의 참여와 토론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정치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프랑스의 모순과 문제점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나온다며 이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을 주장한다. 반마크롱과 반신자유주의를 넘어 반자본주의, 반세계화로 이어지는 반체제적인 성격까지 보이는 셈이다.
이런 멜랑숑과 마크롱의 대립과 경쟁은 앞으로 프랑스 정치와 경제를 강타할 가장 큰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극우 포퓰리스트인 르펜까지 가세하면서 프랑스 정치는 혼미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프랑스 정치는 앞으로 마크롱의 임기와 이번에 선출된 제5공화국 제16대 국회의 임기 5년 내내 어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좌·우파 모두를 공격하며 새로운 중도 정치세력을 형성한 마크롱이 좌우로부터 동시 협공을 당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21세기 프랑스에서 정부가 경제를 지배했던 지도주의를 넘어 정치가 경제에 본격적으로 부담을 주는 묘한 상황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1147회 로또 1등 ‘7, 11, 24, 26, 27, 37’…보너스 ‘32’
2러 루블, 달러 대비 가치 2년여 만에 최저…은행 제재 여파
3“또 올랐다고?”…주유소 기름값 6주 연속 상승
4 정부,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키로…日대표 야스쿠니 참배이력 문제
5알렉스 웡 美안보부좌관 지명자, 알고 보니 ‘쿠팡 임원’이었다
61조4000억원짜리 에메랄드, ‘저주받은’ 꼬리표 떼고 23년 만에 고향으로
7“초저가 온라인 쇼핑 관리 태만”…中 정부에 쓴소리 뱉은 생수업체 회장
8美공화당 첫 성소수자 장관 탄생?…트럼프 2기 재무 베센트는 누구
9자본시장연구원 신임 원장에 김세완 이화여대 교수 내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