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시동 걸리면 다 밀어"…노조 리스크 시름하는 완성車
올해 상반기 완성차 5개사 실적 전년 대비 약 5%↓
노조, 전기차 공장·성과급·임금피크제 폐지 등 요구
매년 교섭으로 소모되는 시간 커…다년합의 필요성
차량용 반도체와 부품 수급난으로 울상인 국내 완성차 업계가 또 다른 악재로 시름하고 있다. 정상적인 기업 활동의 핵심인 노사관계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 요구안을 두고 노사의 견해차가 큰 상황에서 일부 노동조합은 파업권까지 확보해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쌍용자동차를 제외한 국내 완성차 4개사(현대자동차, 기아, 한국지엠, 르노코리아자동차)는 노사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등으로 최근 몇 년간 큰 이슈 없이 지나갔지만, 올해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며 "반도체, 부품 수급난으로 판매 실적은 오히려 더 줄어드는 등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노사갈등 심화는 기업뿐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국내 완성차 5개사의 올해 상반기 판매 실적은 전년 대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완성차 5개사의 상반기 국내외 판매 실적은 354만2431대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372만6315대와 비교해 약 5% 감소한 수치다.
현재 가장 위태로운 노사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곳은 현대차다. 현대차 노조는 오는 13일까지 진행될 본교섭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파업 진행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 이미 조합원 찬반투표, 중앙노동위원회 쟁의조정 신청 등을 통해 합법적 쟁의권을 확보한 상태다. 지난주 주말(9일) 특근까지 거부하며 사측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임단협 관련 현대차 노사의 입장차는 확연하다. 사측은 ▶기본급(호봉승급분 포함) 8만9000원 인상 ▶성과급 200%+350만원 ▶특별격려금 50% 등을 제시했다. 노조는 ▶기본급(호봉승급분 제외) 16만5200원 인상 ▶순이익의 30% 성과급 ▶임금피크제 폐지 ▶정년연장 ▶국내 미래차공장 신설 등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의 태도는 강경하다. 현대차 노조는 최근 공지를 통해 "(사측의) 통 큰 결단이 없다면 휴가 전 타결은 없다"며 "불도저는 한 번 시동 걸리면 모든 것을 밀어 버린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은 오래 걸린다는 것을 명심해라"라고 강조했다.
르노코리아자동차도 노사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노조는 7일 임단협 제5차 본교섭 이후 교섭 결렬을 선언한 상태다. 역시 제시안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사측은 ▶매년 기본급 6만원 인상(올해부터 3년간) ▶성과급 지급 ▶임단협 주기 다년으로 변경 등을 제시했다. 노조 측은 ▶다년합의 요구 철회 ▶기본급 월 9만7472원 인상 ▶임금피크제 폐지 등을 요구했다.
한국지엠 노사는 이제 막 교섭을 시작한 상태다. 노조는 ▶기본급 월 14만2300원 인상 ▶통상임금의 400% 성과급 지급 ▶전기차 배정 요구 등을 요구한 상태다.
반복되는 노사갈등... 다년제가 답?
카허 카젬 한국지엠 전 사장은 지난 4월 국내에서 진행된 한 포럼에서 "타국의 경쟁 사업장 대비 한국의 잦은 파행적 노사관계와 짧은 노사 교섭 주기 등의 불안요소로 시장 변동성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동걸 전 산업은행 회장 역시 "미국처럼 임단협 주기를 다년으로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법적으로는 다년합의가 충분히 가능한 상태다. 국내 노조법(제32조 제1항) 개정에 따라 단체협약 유효기간은 최장 2년에서 3년으로 연장된 상태다. 해외의 경우도 노사 교섭 주기가 한국보다 훨씬 길다. 자동차 선진 시장으로 불리는 미국의 통상적인 노사 교섭 주기는 4년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쌍용차만 다년합의를 이행하고 있다. 경영정상화에 사활을 걸고 있는 노사는 합의를 거쳐 지난해부터 3년 단위로 임단협 교섭을 진행하기로 했다. 공장 강제 점거 등 강성 노조 이미지가 강했던 쌍용차는 최근 13년 연속 무분규 기록을 달성하며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한국은 매년 임단협을 하고 합의하지 못할 경우 이듬해에 두 번을 해야 한다"며 "미국은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3~5년마다 교섭을 하고, 현장 파업도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동법 경직 등이 가장 큰 문제"라며 "이런 부분에서 우리의 고민이 많다고 할 수 있겠다"고 덧붙였다.
이지완 기자 anew@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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