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카에다 수장 제거로 본 표적 암살 공작의 국제정치학 [채인택 글로벌 인사이트]
보복 악순환 부르는 전쟁 기술 발전에
주권 국가 침략과 인권 문제 논란 우려
미국이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아이만 알자와히리(71)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드론에서 발사한 미사일로 제거하면서 표적 암살 공작이 국제적으로 새롭게 주목받는다. 적의 우두머리나 주요 인사를 드론을 이용해 대놓고 제거하는 표적 암살 공작이 국제정치의 주요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시각으로 7월 31일 오전 6시 18분(미국 동부 서머타임 기준 30일 오후 9시 48분)에 카불 중심부 셰르푸르 지역의 저택 발코니에 나와 있던 알자와히리를 드론(무인기)에서 발사한 미사일로 제거했다.
이집트 안과의사 출신인 알자와히리는 2001년 9‧11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의 오른팔로 테러를 사실상 설계한 인물로 알려졌다. 빈 라덴이 2011년 5월 미군 특수부대 DEVBRU(해군 특수전 개발단)의 공격으로 숨진 뒤 그 뒤를 이어 알카에다의 수장을 맡아왔다. 미국은 빈 라덴의 두뇌 노릇을 한 최측근이자 후계자인 알자와히리를 드론으로 제거하면서 21년 만에 알카에다 최고 지도부에 대한 보복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집트 남성의 2020년 기대여명인 69.88세를 이미 지난 알자와히리를 9·11 21년 만인 이제야 뒤늦게 표적 암살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회의가 나올 수밖에 없다.
AP통신·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블룸버그통신·NBC 등 미국 매체와 타임오브이스라엘·독일의소리(DW)·프랑스24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이번 작전은 장기간의 공작으로 이뤄졌다. 알자와히리는 가족과 함께 파키스탄에 은신해 있었는데, 2021년 8월 30일 미군이 카불에서 완전히 철수한 뒤 가족이 먼저 카불로 옮겼다. 이들은 카불로 옮긴 뒤 탈레반 내 강경파 분파인 하카니 네트워크의 지도자인 시라주딘 하카니가 제공한 부촌의 저택에 머물러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한 주 전에 작전을 승인했으며, 2022년 초 알자와히리가 카불로 옮긴 뒤부터 정보당국이 그를 감시해왔다고 말했다. 미국이 알자와히리의 카불 이동을 2022년 초에야 인지했다는 이야기다.
의문은 최초 정보를 누가 제공했느냐로 향한다. 눈여겨볼 점은 이스라엘의 해외 정보‧공작 기관 모사드의 다비드 바르네아 국장이 지난해 12월 5일 미국을 방문했다는 사실이다. 예루살렘포스트와 타임오브이스라엘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그해 6월 취임한 바르네아가 맡은 가장 큰 임무는 이란핵합의(JCPOA) 복귀를 추진했던 바이든 행정부를 설득하는 것이었다.
미국이 알자와히리 가족의 카불 이주를 인지하고 감시를 시작했다는 올해 초가 바르네아가 워싱턴을 방문한 지 한 달쯤 뒤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스라엘로선 미국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카불에서 수집한 초특급 정보를 미국과 공유함으로써 미국의 JCPOA 복귀 포기나 연기를 설득하려고 시도했을 가능성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한 달 정도의 '시차'는 정보 소스를 감추기 위한 연막작전일 수 있고, 미국이 이스라엘이 제공한 정보를 확인하는 데 필요한 시간일 수도 있다.
바이든이 취임 뒤 처음으로 7월 14~15일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당시 많은 양보와 립서비스를 제공한 점도 이런 추측의 근거로 볼 수 있다. 물론 미국과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 밀접하지만, 바이든은 이번 방문에서 자신의 공약에서 상당히 후퇴해 이스라엘을 더욱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목할 점은 바이든이 15일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이란이 핵무기를 확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이 가진 모든 국가적 역량을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는 구절을 넣었다는 사실이다. 바이든은 양국 정상회담에선 "외교가 최선의 방안임을 믿는다“고 했지만, 이스라엘 채널12와의 인터뷰에선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막기 위해 최후수단으로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해 군사적 옵션의 가능성도 열어놓았다.
이스라엘의 무력 사용 용인하는 미국의 의도
대선 공약으로 이스라엘이 반대해온 이란핵합의(JCPOA) 복귀를 외쳤던 바이든으로선 의외다. 이스라엘로선 대미 외교의 개가라고 부를 만하다. 바이든의 기존의 입장을 선회해 이스라엘의 무력 사용 가능성에도 고개를 끄덕여준 것은 미국 내 유대인 세력의 정치적 영향력과 별도로 바이든이 이스라엘에 뭔가 신세를 진 게 있지 않으냐는 짐작을 낳게 한다.
아무튼, 미국 정보 당국은 알자와히리의 집을 6~7개월간 계속 추적한 결과 그가 가족과 함께 그 집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집은 2021년 8월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하면서 빈집으로 있다가 탈레반 정부의 국방부 소유로 넘어갔으며, 최종적으로 하카니가 소유하게 됐다. 탈레반은 2020년 2월 29일 카타르의 도하에서 탈레반 측과 만나 미군을 철수시키는 대신 탈레반이 알카에다 등 테러조직과 관계를 끊고 자신들의 지배지역에서 활동하지 못하게 한다는 ‘도하 합의’에 서명했다. 하지만 탈레반 내에서도 극단적인 주장을 펴온 하카니는 이를 무시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확인된 자와히리의 위치는 올해 4월 초 바이든의 국가안보 부보좌관인 조내선 파이너와 국토안보 보좌관인 엘리자베스 셔우드랜돌이 상부에 알렸으며, 그 직후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이 바이든에게 이를 보고했다.
미 정보 당국은 알자와히리가 집의 발코니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것을 즐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에 미국 당국은 집의 모형을 만들어 공격과 함께 다른 거주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법을 강구했다. 바이든은 이 모형을 7월 1일 직접 살펴봤다. 그는 미국 최고정보기관인 국가정보국(DNI)의 에이브릴 헤인즈 국장과 중앙정보국(CIA)의 윌리엄 번스 국장, 국가대테러센터(NCTC)의 크리스틴 아비자이드 등 정보‧공작 최고책임자들과 공격을 논의했다. 바이든은 7월 25일 최종 보고를 받고 작전을 승인했다.
공격에는 드론이 동원됐다. 알자와히리가 아침에 발코니에서 나와 선채로 밖을 내다보자 상공을 은밀하게 선회하던 드론이 AGM-114 헬파이어 미사일 두 발을 발사했다. 알자와히리는 현장에서 즉사했지만 같은 집에 살던 가족은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AGM-114의 변형인 AGM-114 R9X는 미사일에 폭발물 대신 동역학 탄두를 장착했다. 발사 뒤 날카로운 대형 칼날이 여러 개 튀어나와 강력한 힘으로 목표물을 난자한다. 인간 목표물을 대상으로 사용하면서 이른바 ‘부수적인 피해’를 최소화하는 특수 미사일로, ‘닌자 폭탄’ ‘나르는 긴수(미국의 유명 식칼 브랜드)’로 불려왔다. 미국 정보당국은 도·감청과 위성 사진 등으로 알자와히리의 사망이 확인된 뒤인 8월 1일에야 작전을 공개했다.
미국은 9‧11테러의 핵심 인물인 알자와히리를 제거함으로써 테러와의 전쟁을 마무리한 것은 물론 지난해 8월 카불 철수에서 보여준 혼란스럽고 실망스러운 모습에 대한 만회 효과도 어느 정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바이든이 11월 8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가안보 부문에서 어느 정도 점수를 얻었을 수 있다.
미국은 2020년 1월 4일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을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의 국제공항에서 드론 공격으로 암살했지만, 이라크는 미군과 정보기관이 주둔해 관련 정보 수집과 작전을 지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적진이나 다름없는 아프가니스탄이 카불에서 공작과 작전을 벌일 수 있는 능력을 보였다는 점에서 차별화한다.
물론 드론은 과거 아프가니스탄의 대테러 목표물 공격을 위해 출격 기지로 사용해온 이웃 파키스탄 서남부의 비행장에서 이륙했을 가능성이 크다. 파키스탄은 중국과 가까운 나라지만 과거 미국과 사이가 좋을 당시 확보하거나 제3국에서 조달한 미국산 F-16 전투기가 127대 이상이 있어 이를 계속 운용하려면 미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대표적인 친중 국가임에도 미국이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에선 드론 이착륙장을 제공하는 등 협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드론 조종은 미 본토의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조정실에서 위성 통신을 이용해 했을 것이다. 조종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무인-원격 공격 시스템이다.
보복 악순환 부르는 표적 암살과 전쟁 기술
눈여겨볼 점은 2020년 솔레이마니 공격 당시 이란은 보복을 외치며 이라크의 미군기지에 미사일 발사했지만 결국 찻잔 속의 태풍으로 마무리됐다는 사실이다. 미국과 정면 대결을 할 수 없었던 이란은 이라크에서 벌어진 자국 주요 인사의 암살에 더는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사실 미국 CIA의 대테러센터(CTC)는 2001년부터 아프가니스탄과 예멘 등에서 무인기를 이용한 표적 암살 작전을 수행해왔다. 미국은 CTC 등 다양한 기관의 대테러 조직을 연결해 국가 대테러센터(NCTC)를 구성했다. 하지만 CTC는 조직의 수장도 ‘로저’라는 암호명으로만 알려졌을 뿐 누구인지 비밀에 부치는 등 철저히 비밀리에 은밀한 작전을 수행해왔다.
이스라엘은 군과 해외 정보‧공작 기관인 모사드를 앞세워 무인기를 통한 표적 암살 작전을 수행해왔다. 2004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정치‧군사 조직인 하마스의 창시자 아메드 야신을 가자지구에서 표적 암살했다. 이스라엘군은 무인기로 위치를 확인한 뒤 F-16 전투기를 인근에 보내 굉음으로 주의를 분산한 뒤 아파치 공격용 헬기를 출동시켜 헬파이어 미사일을 발사해 야신을 암살했다.
2007년 이후에는 무인기로 가자지구의 로켓 발사대를 수색‧파괴하는 작전도 벌여왔다. 하지만 2021년 5월 6~21일 예루살렘 일부 지역 팔레스타인 주민의 강제 이주와 알아크사 사원에서의 충돌 이후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로 가한 로켓 공격을 막지는 못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로켓의 상당수를 아이언돔으로 불리는 방공 시스템으로 요격했지만, 완전히 봉쇄하진 못했다. 결국 하마스의 로켓 공격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보복 폭격 속에서 256명의 팔레스타인인과 13명의 이스라엘인이 목숨을 잃었다. 표적 암살이 대를 이어가는 적개심을 부추긴 셈이다.
모사드는 최근 들어 이란의 핵 과학자를 상대로 암살 공작을 벌여왔다. 핵 개발을 추구하는 이란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핵심 인력을 제거해 개발 속도를 줄이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 역시 국가 수준에서 벌이는 표적 암살 공작으로 분류할 수 있다. 여기에는 오토바이 폭탄, 원격 조종 기관총 등 다양한 무기가 동원됐다.
드론을 활용한 표적 암살 공작은 은밀성·기동성·신속성을 확보한 데다 지휘부나 두뇌에 해당하는 뱀무리 제거로 인한 심리적‧정치적 효과가 크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물론 러시아‧중국 등 다양한 나라가 은밀하게 활용해왔다. 드론이라는 가공할 무기를 더하고 여기에 무선통신기술, 원격제어기술 등 기술적 진보가 더해지면서 이는 더욱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적에게 우두머리를 잃는 상실감과 함께 언제, 어디에서 당할지 모른다는 압박감을 줄 수 있어 상대를 효과적으로 움츠러들게 할 수 있다. 게다가 탄두에 폭발물 대신 칼날을 장착해 부수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AGM-114 R9X의 활용으로 언론과 인권단체의 비난을 잠재울 수 있게 됐다는 점도 이 작전의 활용을 부추길 수 있다.
표적 암살은 어둠의 전쟁에서 효과가 큰 작전으로 평가된다. 다만 정확한 정보와 정밀한 작전계획의 확보가 난제다. 아무나 벌일 수 있는 작전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상대가 실력이 있는 경우라면 보복의 악순환도 우려할 수밖에 없다.
그런 우려에도 이젠 표적 암살이 국경을 넘어 글로벌 단위로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시대가 됐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 주권국가를 대놓고 침략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은 또 하나의 안보 충격이다. 뱀 머리가 아무리 제거돼도 지구촌은 편할 날이 없어 보인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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