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를 만드는 토론 문화, 킬러 본능에서 나온다 [유웅환 반도체 열전]
리더십과 팔로워의 팽팽한 기싸움이
조직을 유연하고 창의적으로 만들어
리더는 그가 속한 집단의 거울이자 얼굴이다. 조직의 형태가 다양한 만큼 리더의 유형도 각양각색이다. 필자는 국내외 유수 기업을 지나오는 동안 다양한 리더십을 만나 왔지만, 더러는 팔로우십(followship)을 강요하는 이들도 보았다. 하지만 참된 리더는 팔로우십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부터 끌어내는 사람에 가까울 것이다. 이들은 조직을 유연하게 하고 더 큰 창조를 이끌어 낸다.
한 가지 상황을 상상해보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사원이 팀 프로젝트에서 임무를 하나 부여 받았다. 그런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 신입사원은 이 일이 자신의 전문성과 맞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는 용기를 내어서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님, 저는 제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이때 선배의 대답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나 때는 그냥 시키는 대로 다 했어” 정도라면 그 조직은 의사소통의 부재를 겪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선배의 입장에서는 후배가 적응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후배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그는 업무에 스스로를 맞추고 그 분야에서 최상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 나름대로 고심한 끝에 질문을 한 것이다.
이 두 사람의 관계에서 일차적으로 필요한 것은 설득이다. 선배나 상사는 후배에게 일을 시킬 때, 이 일이 전체 프로젝트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그리고 그 일을 맡은 후배의 전문성과 능력이 그 일과 부합하는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일을 하는 그 누구든 다른 모두로부터 고립되어 홀로 숯불을 굽는 심정으로 일을 하게 된다면, 그 조직 전체는 유기적으로 하나가 되지 못할 것이다.
특히 이런 경우에서 가장 큰 문제는 리더는 팔로우십만을 원하는 데 반해 팔로워는 리더십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즉 같은 자리에 누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한쪽에서는 끌어주기를 바라고 다른 쪽에서는 따라오기만을 바라고 있다.
서로 바라기만 해서는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리더십과 팔로우십을 각자 오해함으로써 빚어지는 이 촌극은 코드가 달라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회사에 잘 적응하지 못한 채 퇴사를 선택하는 MZ세대들이 많다는 걸 보면 이런 일들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
의사소통 구조와 시스템을 들여다보라
혹자는 의사소통의 문제를 단순히 세대 차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한국의 많은 회사에서는 세대 차이가 사내 조직 문화의 갈등의 불씨가 된다고 보고 있다. 의사소통의 능력, 더 나아가 업무 수행 방식을 나이라는 변수에만 종속시켜선 안 된다. 나이를 중심에 둔 이분법적인 사고에 따른다면 기성 세대는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문화에 젖어 있는 반면, 젊은 세대는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이는 문제의 원인을 추상적으로 파악할 뿐 문제 해결을 위한 성찰과는 무관한 사고이다. 또 젊은 세대가 머지않아 기성세대가 될 것이라는 시간성에 대한 고찰도 빠져 있다. 다시 말해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라고 물었던 신입사원도 선배의 위치에 오르게 되면 후배에게 똑같이 말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간과한 진단인 것이다.
조직 내 의사소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구조와 시스템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업무 관리가 투명하지 않고 불합리한 회사일수록 상하간의 커뮤니케이션 자체도 일방향적이고 강제적일 가능성이 크다.
반면 업무가 투명하고 합리적인 조직일수록 커뮤니케이션 구조는 상호 간의 대화에 기초하는 경우가 많다. 조직의 특성에 대한 진단과 그에 따른 올바른 커뮤니케이션 모델의 성립은 조직의 의사소통 성격을 결정짓는 토대로 작용한다. 혈관이 막히면 심장이 멎 듯, 원활하지 않은 사내 대화는 회사 운영의 흐름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인 것이다.
긍정적인 의미의 킬러 본능을 일깨워야
한편 직장 생활에서 토론은 상대를 제압하는 아주 적극적인 의사소통의 형태를 보일 때도 있다.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 특히 누군가의 주장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토론이 두려워하거나 말하기가 쑥스러워 방관한다면, 그 침묵에 대한 책임마저도 지우는 곳이 실리콘밸리이다. 성장하는 회사일수록 수많은 인재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고민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몇 해 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총장을 역임했던 세계적 물리학자 로버트 러플린은 “한국 학생들의 문제점은 ‘잔혹할 정도로 공격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과학의 세계에서는 거칠게 뒹구는 근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곧 소통의 문제로 읽히기도 한다. 의사소통 과정은 평등하고 민주적이며 합리적이어야 하겠지만, 그 단서들이 책임 회피의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곤란하다. 러플린 박사가 한국 청년들에게 아쉽다고 말한 ‘타고난 공격성(killer instinct)’ 즉 ‘킬러 본능’은 세계적 인재가 되기 위한 중요한 자질이다.
※ 필자는 27년 경력의 반도체 열사(烈士)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박사를 취득한 후 인텔에서 수석매니저를 지냈고,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 스카웃돼 최연소 상무로 재직했다. 현대자동차 연구소 이사, SKT 부사장(ESG그룹장) 등을 거쳐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으로 활동하며 반도체 정책 보고서 등을 작성했다. 반도체 분야 90여 편의 국제 논문과 Prentice Hall과 고속반도체 설계에 관한 저서를 출간했다.
유웅환 전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