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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하다고 섣불리 내다팔지 말아야 [이종우 증시 맥짚기]

코스피 8월 고점에서 35% 하락, 주가반응 과해
개인 달러 매수세 잦아들고 조만간 강세 정점 지날 듯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지지선인 1400원대를 넘어섰다. [연합뉴스]
리즈 트러스 영국총리가 대규모 재정정책을 내놓자 파운드화가 급락했다. 정책의 내용이 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감세 중심이어서 시장이 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영국의 정책을 빗대 ‘낙수 효과 경제는 작동한 바 없다’라고 폄하했다.
 
영국 정부의 경기 부양책이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의 통화정책 방향과 상충된다는 점도 파운드화의 약세 요인이었다. BOE는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지금까지 7회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등 수요 억제에 주력했는데, 정부가 이와 반대되는 정책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에 발표된 에너지 대책도 영국 재정 건전성 우려를 자극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정부 부채가 급격히 늘어난 상황에서 천연가스 가격 급등에 대응한 에너지 대책이 재정 부담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도이체방크는 영국의 에너지 대책과 감세 계획에 따른 재정부담이 1790억 파운드(290조283억원)를 넘을 거로 추산했다. 영국의 팬데믹 관련 공적 지출의 절반에 해당하는 액수다. 이 밖에 팬데믹으로 가려져 있던 브렉시트 후유증이 영국 경제에 현실화되고 있는 점도 파운드화 가치 하락에 일조했다.
 
그 영향으로 달러/파운드화가 1.1달러 밑으로 떨어져 1985년 3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올 들어 주요국 통화 중에서 엔, 원화에 이어 파운드화의 가치 하락이 특히 크다. 영국의 경제 펀더멘탈이 상당히 취약한 상태여서 추가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영국에서 재정이나 외환위기가 발생할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당분간 파운화 가치 불안은 피하기 힘들 것이다. 천연가스 등 에너지 불안을 무사히 넘긴다 하더라도, 높은 물가와 취약한 재정 상황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파운드화 불안이 달러화 강세를 촉발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파운드화 절하는 영국만의 리스크는 아니고, 글로벌 리스크로 봐야 한다.
 

달러 강세가 급변할 수도 있어

 
전 세계가 환율 위험에 노출돼 있다. 작게는 한나라 통화가 달러보다 얼마나 절하됐느냐의 문제에 국한되지만 크게는 외환위기가 발생하느냐 아니냐와 직결된 문제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었음에도, 상승 속도가 좀처럼 약해지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망치가 계속 올라가 1500을 넘을 거란 얘기가 나오고, 일각에서는 외환위기를 걱정하고 있다.  
 
그럴수록 달러 강세 전망이 더 세지고 있다. 높은 물가와 금리 인상, 예상되는 경기 둔화까지 세상이 위기 상황에 있기 때문에 달러가 강해지는 게 당연하다. 유로나 엔과 같이 달러를 견줄 수 있는 다른 안전통화라도 있으면 달러 강세가 좀 완화될 텐데 모두 제 코가 석 자여서 믿을 수 없다.  
 
현재까지 상황은 그렇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달러 강세 요인은 이미 가격에 충분히 반영됐다. 유럽이 빠르게 금리를 올리고 있어 미국만 일방적으로 금리를 올리던 상반기와 상황이 달라졌다. 일본이 외환보유고를 통해 엔화 방어에 나선 데에서 보듯 자국 통화 약세를 막기 위한 시도도 진행되고 있다. 가장 큰 변화 가능성은 달러 강세 기대로 국제 통화시장에서 일방적인 달러 매수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살 사람이 이미 다 산만큼 조금의 변화에도 달러가 흔들릴 수 있다.  
 
1998년에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아시아 외환위기에서 시작된 달러 강세가 8월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지불 유예) 선언을 계기로 절정에 도달했다. 주요 6개국 통화대비 달러의 위상을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가 수십 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그 영향으로 엔·달러 환율이 147엔까지 상승했다. 세상이 불안할수록 달러가 강해진다는 경험칙이 작동한 것이다.  
 
달러가 강해지자 온갖 전망이 난무했다. 연이은 외환위기로 세상에서 믿을 곳이 미국밖에 없으니 이제 달러 강세는 돌이킬 수 없는 대세라는 얘기부터 1998년 말에 엔화가 200엔까지 올라갈 거란 전망까지 다양했다.  
 
러시아 모라토리엄 이후 달러가 이후 조금씩 약해지더니 그해 10월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달러당 136엔이었던 엔화가 6일 만에 118엔으로 13%나 하락한 것이다. 그만큼 달러가 약해진 건데, 모두가 좋아하던 달러가 며칠 사이에 세계에서 달러를 가장 선호하는 일본의 종합상사조차 내다 파는 통화로 바뀌었다. 상황이 급반전한 것이다.  
 
지금 달러를 강하게 만드는 요인이 많다고 하지만 1998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미국경제가 가지고 있는 힘이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하고, 금리도 1998년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있다고 얘기할 수 있지만, 당시는 아시아 외환위기에 이어 러시아까지 국가 부도가 났던 때다. 조만간 달러 강세가 정점을 지날 거로 보인다.  
 

현재 코스피는 실력보다 크게 낮은 상태

 
모두가 위기 상황에 몰입하다 보니 놓치고 있는 점이 있다. 먼저 국내외 금리가 고점을 지나 조금씩 내려오고 있다. 한때 4%를 넘었던 미국의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최근에 3.7%까지 내려왔다. 우리 국채 10년물도 4.4%에서 4.1%가 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9월 공개시장위원회(FOMC)를 통해 연말 금리를 4.4%로 제시한 후 발생한 일이어서 금리의 추세 변화를 기대하게 하고 있다. 달러인덱스도 114.7에서 112로 후퇴했다. 아직 방향이 바뀌었다고 단언할 정도가 아니지만, 일방적으로 진행되던 달러 강세가 막혔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그 사이 코스피는 크게 하락해 2100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내려왔다. 지난해 8월에 기록했던 고점에서 35% 정도 내려온 건데, 과거 여러 조정국면의 하락 폭을 감안하면 하락도 어지간히 진행됐음을 알 수 있다. 주가가 최근처럼 심리적 쇼크에 의해 급락할 때에는 저점을 정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주가가 시장이 가지고 있는 실력보다 더 크게 내려간 후 제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을 거치는 게 일반적이다. 현재 코스피는 자기 실력보다 더 크게 내려가는 과정을 겪고 있다.    
 
코스피 2000은 2011년 이후 강하게 유지되어온 지수대다. 10년 이상 주가가 머물던 곳이기 때문에 우리 경제 수준에 부합한 주가지수로 볼 수 있다. 코스피가 2000선에 묶여 있던 2011~2015년에 우리 상장사의 연간 영업이익은 100조원을 넘지 못했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242조원이었다. 실적만 보면 현재 우리 주가는 향후 몇 년간 이익이 60% 가까이 줄어든다는 가정하에서 움직이고 있는 셈이 된다. 
 
지금의 주가 반응은 너무 과하다. 좋을 때는 최고의 상황을, 나쁠 때에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움직이는 시장의 속성이 반영된 결과인데 섣불리 주식을 내다 팔 게 아닌 것 같다. 주가가 자기 실력과 동떨어진 상태일 때에는 약간의 변화만으로도 반대 움직임이 강하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경제 및 주식시장 전문 칼럼니스트로, 오랜 기간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해당 분석 업무를 담당했다. 자본시장이 모두에게 유익한 곳이 될 수 있도록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기본에 충실한 주식투자의 원칙] 등 주식분석 기본서를 썼다.

이종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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