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이 올해 생산 능력 기준으로 국내 1위 동박 생산업체인 일진머티리얼즈를 2조7000억원에 인수한다. 이번 인수를 통해 전기자동차 배터리 핵심 소재 관련 가치사슬을 완성한다는 포부다. 시장에선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해도 비싼 인수 가격”이란 지적도 있으나, “주력 사업인 석유화학 사업 불황과 친환경 사업 확대 등을 감안하면, 신성장 동력 확보 차원에서 긍정적”이란 진단이다.  
 
롯데케미칼은 롯데 배터리 머티리얼즈 USA가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를 위한 2조7000억원의 주식 매매 계약(지분 53.3%)을 체결했다고 11일 밝혔다. 향후 국내외 기업 결합 신고 등을 거쳐 인수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롯데 배터리 머티리얼즈 USA는 롯데케미칼이 지분 100%을 보유한 미국 내 배터리 소재 지주사로, 미국, 유럽 등 전기자동차 배터리 소재 해외시장 확대 시너지를 위해 인수 주체로 나섰다.  
 
한국과 말레이시아에 생산기지를 운영하고 있는 일진머티리얼즈는 연산 6만t의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범용 동박 제품부터 실리콘 음극재의 부피 팽창을 견디는 고강도 제품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2027년까지 말레이시아, 스페인, 미국 거점 등에서 연산 23만t 규모의 공장 건설 계획을 갖고 있다. 말레이시아 공장은 대규모 수력발전을 이용한 값싼 전기료와 인건비 등을 토대로 안정적인 원가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며, 스페인 공장은 태양광과 풍력을 에너지로 활용해 고객사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부합하는 생산 시설로 건설될 예정이다.  
 
김교현 롯데그룹 화학군 총괄대표는 “일진머티리얼즈는 세계 최초로 초고강도(90kgf/㎟) 동박 개발에 성공할 만큼 우수한 기술력을 갖고 있다”며 “롯데그룹 화학군은 적기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전지 소재 사업의 사업 역량을 높이는데 최선을 다하고, 계열사 간 유기적인 협업으로 회사와 고객, 주주의 가치 향상을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증권업계 일부에선 2조7000억원에 달하는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가격에 대해 “비싸다”는 지적도 있지만 “주력 사업인 석유화학이 불황인 데다, 전 세계적인 탄소 감축 요구 등으로 친환경 사업도 확대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과감한 인수는 긍정적”이란 진단이 많다. 한국투자증권은 이달 7일 보고서에서 “석유화학 업황은 어디까지가 바닥일지 예단하기 어렵다”며 “그렇기 때문에 높은 인수 가격 우려에도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는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또한 “배터리 소재 시장 진입이 늦은 만큼 비싼 대가를 지불할 수밖에 없지만, 최근 화학 시황을 보면 아무런 변화를 준비하지 않는 기회비용이 더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의 3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는 -423억원이다.  
 
석유화학업계에선 “롯데케미칼의 재무 구조 건전성은 업계 최고 수준인 만큼,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여력은 충분할 것”이란 얘기가 많다. 올해 2분기 연결기준으로 롯데케미칼의 부채비율은 50% 수준이다. 다만 인수 이후에도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재무 부담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롯데케미칼 측은 “일진머티리얼즈는 국내외 유수의 배터리 회사와의 장기 공급 계약 등으로 안정적인 현금 흐름이 예상된다”며 “이 같은 자체 자금을 바탕으로 해외 생산기지 건설 등의 추가 투자가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으로 매출액 3885억원, 영업이익 468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롯데그룹은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로 화학군 내 배터리 핵심 소재 사업을 대폭 강화하게 됐다. 롯데그룹은 롯데케미칼, 롯데정밀화학, 롯데알미늄과 함께 배터리 4대 소재(양극재, 음극재, 전해액, 분리막)에 직간접적으로 투자‧생산을 진행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분리막(PE) 생산 및 배터리 전해액 유기용매(EC, DMC) 공장을 건설 중이며, 롯데알미늄과 롯데정밀화학은 각각 양극박, 동박(솔루스첨단소재 지분 투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기술 확보 및 계열사 간 협력 관계 구축을 통해 다양한 시너지 방안을 도출하고 미래 배터리 소재 사업을 주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재계 관계자는 “그간 석유화학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친환경 사업 투자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롯데케미칼이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를 통해 배터리 소재 사업이라는 방향성을 명확히 선언한 것”이라며 “이번 인수를 발판삼아 배터리 소재 시장에서 강자로 도약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 배터리, 태양광 등 국내 주요 그룹이 특정 친환경 사업을 집중 육성해온 것과 달리, 그간 롯데그룹은 친환경 사업에 관한 방향성이 다소 불명확했다”며 “이번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로 배터리 소재 사업 중심의 친환경 사업으로의 전환 의지가 확인된 것”이라고 했다. 

이창훈 기자 hun88@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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