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파수 할당 취소로 소비자 피해 없다”는 과기정통부의 ‘황당한’ 해명 [이코노 EYE]
과기정통부 인사가 전한 납득 어려운 ‘공식 입장’
흔들렸던 통신 정책도 유감…과장 광고 인정해야
본지가 12월 8일에 보도한 ‘물 건너간 5G 혁신, 애꿎은 소비자만 피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간 후 이해하기 어려운 전화를 받았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사의 전화였습니다. 이 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스스로 ‘우리 부의 입장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기사 내용의 일부가 과기정통부 공식 입장과 맞지 않는다는 게 요지였죠.
해당 기사는 ‘28㎓ 주파수 할당 취소와 이용 기간 축소 처분으로 사실상 롱텀에볼루션(LTE·4G) 대비 20배 빠른 속도를 소비자가 이용할 수 없게 됐다. 이 때문에 해당 서비스를 기대하고 5G 요금제로 갈아탄 소비자만 피해를 보게 됐다’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는 소비자 단체 등에서 이미 문제로 여러 차례 지적했던 내용입니다.
과기정통부는 이 지점이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이 인사는 “이번 28㎓ 주파수 할당 취소 처분이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정책’이고, 28㎓ 사업자의 진출도 열어뒀다“고 했습니다.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28㎓ 할당 취소 처분이 최종적으로 결정돼 KT·LG유플러스가 이를 이용하지 못하더라도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란 점입니다. 근거로는 28㎓를 통한 소비자 서비스(B2C)가 현재 하나도 없는 상황을 들었죠.
‘진짜 5G’란 단어의 시작
대한민국은 2019년 4월 3일 밤 11시, 기습적으로 5G 서비스를 상용화했습니다. 미국 이동통신사 버라이즌이 5G 도입 시기를 앞당긴다는 ‘첩보’ 때문입니다. 정부는 이통3사(SK텔레콤·KT·LG유플러스)와 긴밀한 협의 끝에 당초 설정했던 상용화 시점을 이틀 앞당겨 ‘세계 최초’의 타이틀을 지켜냈습니다.
세계 첫 5G 도입 후 불과 5일 만에 이런 발표도 나옵니다. “기존 4G보다 속도는 20배, 연결할 수 있는 기기는 10배 늘어나고 지연 속도는 10분의 1로 줄어든 넓고 체증 없는 ‘통신 고속도로’가 바로 5G입니다. 5G 시대의 혜택을 모든 국민이 고루 누릴 수 있도록 하는데 정책의 중점을 두겠습니다.”
지금도 검색하면 전문을 볼 수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 연설문 중 일부입니다. ‘4G 대비 20배 빠른 속도’가 공식 석상에도 등장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이통3사는 기름을 붓습니다. 5G 통신의 특성이 초고속·초연결·초저지연이라 일상이 바뀔 서비스가 이뤄진다고 홍보했죠. 4G 대비 20배 빠른 속도는 여기서도 근거로 사용됩니다. 가상현실(VR)·증강현실(AR)·클라우드를 비롯해 게임·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등의 매우 다양한 영역의 고품질 서비스가 초고속·초저지연 통신인 5G를 타고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초연결 시대’가 펼쳐진다고 공언했죠.
정부·기업의 말을 믿은 소비자는 5G 가입을 선택합니다. 심지어 이 같은 홍보에 ‘5G에 가입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처지는 느낌을 받는다’는 식의 글도 숱하게 올라왔습니다.
이제 시간을 현재로 되돌려 주파수 할당 취소 사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5G 주파수 대역은 크게 3.5㎓와 28㎓로 나뉘는데요. 전국망으로 사용 중인 3.5㎓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반면 28㎓ 도입 3년 차에 달성해야 할 기지국 수는 목표 대비 10%대에 불과합니다. KT·LG유플러스가 할당 취소 처분을, SK텔레콤은 사용 기간 6개월(10%) 단축된 이유죠. 정부는 현재 각 사를 대상으로 한 청문 절차를 마치고 최종 처분 결과 발표를 준비 중입니다.
3.5㎓ 주파수 대역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5G 전국망 서비스는 속도 한계가 명확합니다. 해당 주파수 대역 속도는 4G 대비 약 5배(과기정통부 지난해 하반기 조사 5G 평균속도는 801.48Mbps로, 4G 속도인 150.3Mbps와 비교해 계산)에 그치죠. 고품질 VR 콘텐츠는 물론 ‘1초에 영화 한 편 다운로드’도 원활하게 이뤄질 수 없는 속도입니다.
5G 첫 서비스가 시작된 지 3년 8개월. 이런 상황에도 소비자는 그간 지갑을 열어왔습니다. 과기정통부가 발표한 ‘무선통신서비스 가입자 통계’에 따르면, 국내 5G 가입자는 지난 10월 기준 2698만4458명입니다. ▶SK텔레콤 1284만9799명 ▶KT 815만8599명 ▶LG유플러스 584만3518명으로 각각 집계됐죠.
이 중에는 중간 요금제가 없던 시절부터 꾸준히 5G를 택한 소비자도 상당합니다. ‘5G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요금제 비용을 사용할 것’이란 이통3사의 논리를 지지한 소비자도 분명 존재합니다. ‘5G 요금제를 유지하면 언젠간 정부·이통사의 말처럼 혁신 서비스가 이뤄질 것’이란 바람으로 고가의 비용을 납부하던 소비자가 있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그런데도 5G 가입자 2698만4458명에게 ‘당신이 가입한 요금제로는 진짜 5G 서비스를 누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처분으로 이통3사의 전국망 구축 불가를 사실상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박순장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처장은 “5G 도입 초기, 5G 요금제만 가입하면 다양한 혁신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고 홍보했다”며 “주파수 할당 취소는 이통사를 통해 ‘진짜 5G’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을 공식화한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진짜 5G 서비스를 기대하면서 요금을 부담해온 소비자가 피해를 보지 않았다는 과기정통부 입장은 이해가 안 된다”면서 “5G 도입 초기 과장 광고가 분명히 이뤄졌음에도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일관성 유지 못한 정책 비판 받아야
주파수 할당 취소란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 전, 정부가 이를 바로 잡을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책의 성공을 위해 과도한 홍보를 진행했다’는 한마디의 인정과 사과를 선행했다면, 28㎓는 논란이 대상이 아닌 정말 ‘혁신의 수단’으로 사용됐을지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러나 과기정통부의 정책은 상당 부분 흔들렸습니다. 2018년 28㎓ 주파수 할당 당시 SK텔레콤·KT·LG유플러스 각각 1만5000개의 기지국을 조건으로 걸었습니다. 2021년 4월 당시 과기정통부를 이끌던 최기영 전 장관은 “28㎓ 5G 의무구축에 공동구축 포함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통3사를 합쳐 1만5000개로 그 기준을 낮춰주겠단 취지였죠. 또 2020년 10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최 전 장관은 “28㎓ 대역은 전국민 서비스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기업 간 거래(B2B)나 특정 서비스를 위해 하는 것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최 전 장관의 후임으로 임명된 임혜숙 전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 같은 논의를 엎고 최종적으로 ‘각 사 1만5000개 설립’으로 정책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과기정통부 수장에 따라 기조가 흔들리면서 기업들의 혼란은 가중됐단 지적이 나온 바 있습니다.
정부는 이후 공동 집계 기지국을 28㎓ 기반 지하철 와이파이로 한정해 적용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KT·LG유플러스 주파수 할당 취소로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죠. 또 이들 기업이 스포츠 경기장 등에 일부 도입한 서비스들도 취소 처분 확정과 동시에 종료되는 구조입니다.
28㎓ 활성화 정책이 이처럼 오락가락하는 이유는 사업성과 연관이 있습니다. 28㎓ 주파수와 같은 초고주파수 대역은 속도가 빠르지만 직진성이 강한데요. 회절성이 담보되는 3.5㎓와 같은 넓이를 서비스하려면 최대 6배 이상의 기지국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입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도 28㎓ 할당을 정부가 강요한 측면이 있는데, 이를 초기부터 B2B 사업에 초점을 맞췄다면 문제가 더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음5G 등 일부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범위가 한정적이고, 시기도 늦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지금이라도 정부의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와 기업의 말을 믿었던 소비자 입장에선 이번 주파수 할당 취소는 신뢰도 문제와 직결된다”며 “향후 6G 도입에서도 이같이 할당 취소가 이뤄질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기면 전환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정부가 거시적 관점에서 정책을 꾸려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용희 동국대 영상대학원 교수는 “이번 정부의 주파수 할당 취소로 소비자가 누릴 수 있는 초고속 5G 도입 시점이 느려진다는 점은 우려되지만, 현재까지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은 논리적으론 맞다”며 “진짜 문제는 사업성 부족에 있다. 고객과의 약속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 초고파수 대역을 이용할 수 있는 기기를 개발할 시간을 줘야 활성화가 가능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이어 “28㎓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가 나오더라도 3.5㎓를 대체할 정도인지는 검증이 필요하고, 기업이 이를 검증할 수 있도록 테스트베드 형식의 제도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정두용 기자 jdy2230@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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