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 가고 ‘젤리 시대’ 왔다”…1년에 ‘3조’ 버는 ‘100살짜리 곰’ 정체는 [브랜도피아]
102년 된 독일 제과기업 ‘하리보(HARIBO)’
설탕 자루, 구리 솥으로 시작해 연매출 3조원까지
국내서 점유율 1위, 올해 시장 규모 3942억 추정
BRANDOPIA(브랜드+유토피아). 누구나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이상세계, ‘유토피아(Utopia)’를 꿈꾼다. 나만의 현실에서 꿈꾸는 삶을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 브랜드 역시 마찬가지다. 브랜드를 운영하는 이들도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꿈꾸며 업계의 최고가 되기 위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브랜드가 지향하는 유토피아, 브랜도피아 세계를 다뤄본다. [편집자주]
[이코노미스트 김채영 기자] ‘아인슈타인 최애 간식’, ‘국민 제과’, ‘연매출 3조원’.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구미 젤리의 원조 ‘하리보’의 이야기다. 하리보는 설탕 한 자루와 구리 솥으로 시작해 전쟁의 고비와 굴곡진 현대사까지 이겨내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 2020년 100번째 생일을 맞은 하리보는 ‘젤리 춘추전국시대’라 불리는 지금까지도 국내 젤리 시장에서 굳건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설탕 한 자루로 시작해 ‘연매출 3조’ 공룡기업으로
초창기 하리보 곰 젤리는 지금보다 더 ‘곰 같은’ 생김새를 띠고 있었다. 더 길고 마른 곰 모양에 이름은 ‘댄싱 베어(Dancing Bear)’였다. 댄싱베어는 두 조각에 1페니라는 저렴한 가격과 달콤한 맛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1923년부턴 배송 전용 차량을 쓸 정도로 인기가 많아졌다. ‘하리보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어른들도요!’라는 유명한 광고 슬로건도 이때 만들어졌다.
승승장구하던 하리보는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주춤하게 된다. 창립자 한스는 전쟁 도중에 포로로 잡혀 사망했고, 1945년 전쟁이 끝난 뒤 그의 장남 한스 리겔 2세가 독일 공장을 물려받아 운영하게 됐다. 리겔 2세는 1967년 아이들이 보는 잡지와 만화책, 서커스에 나온 곰 등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초기 댄싱 베어 모양을 더 통통하고 작게 만들어 ‘골드베렌(Goldbren)’을 탄생시켰다.
현재 모습과 똑같은 하리보 곰 젤리는 1989년이 되어서야 출시된다. 과일 농축물을 사용해 젤리 색상도 더 투명해졌고, 2007년 여섯 번째 맛인 사과 맛이 추가되면서 지금과 구성까지 똑같아졌다.
하리보는 현재 독일을 비롯한 유럽 10개국에 16개 공장을 두고 있다. 창립 당시 한스 리겔 1세의 아내 게르트루드가 유일한 직원이었지만 현재 하리보의 직원 수는 7000명까지 늘었고, 매출은 3조원을 훌쩍 넘는 공룡기업으로 성장했다. 하리보의 2019년 매출은 3조6000억원으로, 전 세계 제과 부문에서 매해 상위 10위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국내 젤리시장 점유율 1위 ‘하리보’…껌 시장은 ‘시들’
국내에서 하리보가 행사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하리보는 2016년 한국에 진출한 이후 3000억원이 넘는 국내 젤리 시장에서 매해 절반에 달하는 점유율을 차지하며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젤리 시장 내 브랜드별 매출 규모는 하리보, 마이쮸(크라운제과), 젤리셔스(롯데제과) 순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0년에는 하리보 100주년을 맞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전시회까지 개최됐다. 해당 전시회는 국내 전시기획사 ‘피플리’가 하리보의 디자인 역사와 색감이 전시 콘텐츠로써 볼거리가 풍부하다는 생각에 기획안을 만들어 직접 독일 본사로 찾아가 설득해 열리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젤리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세에 맞춰 하리보는 아시아 최초로 한국 법인을 세울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1년 205억원에 불과했던 젤리 시장 규모는 지난해 3700억원에 육박했고, 올해는 3942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젤리 시장의 성장과 동시에 껌 시장은 계속해서 쪼그라들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국내 껌 시장 규모는 코로나 직전인 2019년 2590억원 이후로 2020년 2540억원으로 감소했고, 향후 2025년에는 2500억원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식품업계에선 씹고 뱉어야 하는 번거로움과 코로나19가 껌 소비를 위축시켰다고 본다. 입 냄새 방지를 위해 껌을 소비하는 수요가 있는데, 대면 활동이 줄고 마스크 착용이 보편화하자 소비가 급감했다는 분석이다. 소비자들이 씹는 재미를 껌이 아닌 젤리에서 찾기 시작하면서 업계는 단무지 모양 젤리, 삼겹살 모양 젤리, 아이스크림 맛 젤리 등 이색 젤리를 속속 출시하고 있다.
하리보로 시작된 구미 젤리 인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제과업계 관계자는 “껌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계속 씹을 수 있어 가성비가 좋지만, 국민의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덜 팔리고 젤리는 더 많이 팔린다는 흥미로운 분석도 있다”며 “글로벌 젤리 기업들이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아시아를 잠재력 큰 시장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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