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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까지 파고든 ‘마약’…대한민국은 어쩌다 ‘마약 공화국’이 됐나 [김기동의 이슈&로]

‘마약 청정국’ 옛말…마약류 사범, 30년 이래 역대 최다
암수범죄 많아…마약범죄 암수율 10배→29배로 늘어
마약사범 수사체제 복원 없이는 마약사범 근절 어려워

마약관련 범죄가 늘어나면서 마약류 사범 연간 2만명 시대를 눈앞에 두게 됐다. [사진 연합뉴스] 

[김기동 법무법인 로백스(LawVax) 대표변호사] 최근 유명 연예인이나 재벌가 자녀 등 사회 지도층의 마약사범 적발이 언론에 자주 보도되다가 급기야 마약이 든 음료를 강남 학원가에 판매한 사건까지 발생해 국민들이 크게 우려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마약류 확산 추세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지난 10일 검찰, 경찰, 관세청 등 마약 수사 전담 인력 840명으로 구성된‘ 마약 범죄 특별수사본부’를 발족했다.

2022년 마약류 사범은 1만8395명으로, 통계가 파악된 30년 이래 역대 최다고, 전년도와 대비해서도 13.9%나 증가했으며 이런 추세라면 마약사범 연간 2만명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다. 특히 10∼20대 마약사범이 2017년에 비해 5배나 급증해 청소년 마약 문제가 더 심각한데, 이는 다크웹 등 인터넷 비대면 거래 증가로 온라인 접근성이 높은 것이 원인이다.

마약 범죄는 그 속성상 수사기관에 적발되지 않은 암수범죄(暗數犯罪)가 많다. 과거에는 마약범죄 암수율이 10배 정도로 추정됐지만, 지금은 28.57배나 된다고 하니 실제 마약사범은 통계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일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부모들도 자녀들의 마약 투약을 걱정하고, 점검해야 할 지경이 됐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에서 열린 강남 학원가 마약음료 사건 중간수사 브리핑에 압수된 마약음료와 설문지 등이 놓여 있다. [사진 연합뉴스] 

필자는 1990년 후반과 2000년 초반 평검사 시절 전국에서 마약사범이 가장 많이 발생하던 부산지검과 서울지검에서 마약 수사 검사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정부의 마약사범 단속이 성공하기를 소망하면서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몇 가지 의견을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과거 마약류 퇴치에 성공했던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마약류 퇴치에 성공한 국가’, ‘마약 청정국’이라는 국제적 평가를 받았다. 그런 평가는 거저 얻은 것이 아니라, 강력하고 효율적인 단속체제를 구축한 결과였다.

1970년대까지는 부산 일대를 중심으로 필로폰(메스암페타민)을 제조해 일본으로 수출하다가, 1980년대 들어 정부의 단속으로 수출길이 막히자 필로폰이 국내에서 급속도로 유통되면서 중독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는데 그 시절 부산에서는 오락실 같은 곳에서도 필로폰이 성행할 정도였다. 영화 ‘친구’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유오성이 필로폰에 중독되어 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거리를 걸어가는 모습은 80년대 시대상을 보여준다. 

정부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해 1989년 대검찰청에 마약과를 신설하고, 보건복지부 소속 특별사법경찰관리인‘마약 감시원’이나 경찰 수사관들을 대거 검찰로 전직시켜 검사가 중심이 된 마약사범 단속체제를 구축하고 필로폰 공급 사범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고, 불과 몇 년 만에 국내의 거의 모든 필로폰 조직을 와해시켰다. 영화 ‘마약왕’은 당시 대표적인 필로폰 제조책이었던 이황순을 모델로 한 것이었다.

그 이후에 필로폰, 대마초, 엑스터시, LSD, 코카인 등 다양한 외국산 마약류의 밀수입은 계속되었으나, 위와 같은 강력한 수사체제로 일반인이 마약을 쉽게 접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마약사범을 통제해왔다. 그것이 마약류 퇴치에 성공한 국가로 평가받은 이유다.

마약 범죄 급증세에 대응하기 위한 '범정부 마약 범죄 특별수사팀'이 출범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별관에 설치된 수사팀 현판. [사진 연합뉴스] 

왜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와 달리 검사가 마약사범 수사에 직접 나섰던 것일까? 마약 공급조직에 대한 수사는 기본적으로 상선(마약을 공급한 사람)을 뒤쫓아 따라잡으면서 공급조직을 궤멸시키는 것이다. 이는 하선(마약을 공급받은 사람)이나 조직 내부자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플리 바겐’(plea bargain)이라는 제도가 있어 검사의 승인을 받아 마약수사청(DEA)이나 경찰에서 공급조직을 수사하는 반면 플리 바겐 제도가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검사가 나서지 않고는 공급망을 추급하는 수사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지금의 비정상적인 검경 수사권에 관한 법령으로는 마약사범을 효과적으로 단속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 시절 마약사범 수사는 경찰이 전담하고, 검찰은 마약 수출입범죄만 수사할 수 있게 됐다. 지금 정부에서는 검찰이 수출입범죄뿐만 아니라 유통범죄도 수사할 수 있게 했지만, 법률의 제한 때문에 여전히 소지·투약 사범은 검찰이 수사할 수 없게 되어 있다.

현실을 모르는 탁상공론식 입법이다. 이론적으로 구분할 수 있을 뿐, 현실에서 소지·투약 사범과 공급 사범의 구분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무의미하다. 공급 사범의 대부분이 투약도 병행하고, 투약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마약을 판매하는데, 이를 구분해가면서 수사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현재는 경찰만이 마약사범에 대해 제한 없는 수사권을 가지고 있는데, 경찰이 하선이나 내부 제보자의 협조를 받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 이런 수사체제로는 단발성 단속은 가능할지언정 공급조직 전체를 도려내는 수사는 불가능하다. 

셋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이제 우리나라도 단순 투약 사범에 대해서는 형사처벌보다는 치료나 재활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정책의 대전환을 시도할 때가 되었다. 1990년부터 ‘마약중독자 치료보호제도’를 법률로 만들어두었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있다. 마약 투약자는 약물중독 ‘환자’라서 형사처벌 받는다고 마약을 쉽게 끊지 못한다. 국가가 나서 치료해줘야 한다. 

우선 본인이나 가족이 자수·신고한 경우, 전과가 많지 않은 경우, 다른 마약에 비해 유해성이 적은 대마초 흡연 등 일정한 유형부터 치료·재활을 받은 조건으로 형사처벌을 보류하는 정책을 추진해볼 만하다. 그래야만 수면 밑에 숨겨진 수많은 ‘마약 암수범죄자’를 수면 위로 드러나게 할 수 있고, 공급 사범 수사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마약 범죄 특별수사본부’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검찰, 경찰, 관세청 간 긴밀한 협업체계가 구축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으며, 이참에 효율적인 마약사범 단속에 장애가 되는 요인들을 분석해 법령개정 등 후속 작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제 우리나라의 마약사범 수준도 단기간 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이므로, 마약 공급조직을 장기간, 전문적으로 추적 수사하는 미국 마약수사청과 같은 조직을 신설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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