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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우스트’로 한걸음 내디딘 마이크로바이옴 시장, 미개척 시장 선점 누가 하나

[마이크로바이옴의 시간이 온다]①
美 FDA, 마이크로바이옴 CDI 치료제 ‘보우스트’ 승인
경구용 제제 첫 허가…“CDI 환자 치료 접근성 높일 것”
대사질환부터 뇌질환까지…무궁무진한 개발 가능성
경기 악화에 자금난 호소 기업도…자산 매각 등 진행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세레스 테라퓨틱스의 시설 내 구강 미생물 치료 캡슐 제조 장비 [사진 AP/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선모은 기자] 질병 정복은 사람들의 오랜 꿈이다. 글로벌 제약사와 신약 개발 기업이 메신저 리보핵산(mRNA)과 항체-약물 중합체(ADC) 등 새로운 치료 접근 방법(모달리티)을 연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에는 장내 미생물(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신약 개발 분야에 큰 진전이 있었다.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에서 ‘먹는 약’으로는 첫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가 개발 10여 년 만에 승인 문턱을 넘으면서다.

세레스 테라퓨틱스는 4월 26일(현지시각)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인 ‘보우스트’를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승인받았다.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치료제 중에서 경구용 제제(먹는 약)가 미국에서 정식으로 사용 허가를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기존에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페링 파마슈티컬스의 ‘레비요타’가 지난해 말 FDA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치료제는 환자의 몸속에 직접 주입해야 해 ‘약’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세레스 테라퓨틱스는 레비요타의 단점을 개선해, 보우스트를 경구용 제제로 내놨다. 보우스트는 레비요타와 달리 환자가 며칠 동안 약을 복용하는 것으로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 보우스트가 사실상 세계 첫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로 꼽히는 이유다.

대사 질환부터 뇌 질환까지…무궁무진한 마이크로바이옴의 세계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은 장내 미생물과 미생물의 유전자를 말한다. 미생물 군집을 뜻하는 마이크로바이오타(Microbiota)와 특정 개체의 모든 유전 정보를 의미하는 유전체(Genome)의 합성어이기도 하다.

몸무게가 70㎏인 성인은 통상 38조개의 마이크로바이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0조개 수준인 우리 몸의 세포 수보다 마이크로바이옴의 개체 수가 월등히 많다.

기존에는 마이크로바이옴이 우리 몸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한 결과가 드물었다. 그러나 차세대 유전체 분석 기술이 발달하면서, 장내 미생물의 유전자인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보우스트도 건강한 성인의 대변에서 얻은 미생물을 정제한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다. 18세 이상인 재발성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감염증(CDI) 환자가 대상이다.

CDI는 항생제 등으로 인해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균이 증식해 장에 염증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항생제는 우리 몸에 좋은 균과 나쁜 균을 모두 없애는데, 장내 미생물 균형이 깨지면 설사나 발열, 복통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일부 환자에게선 장천공이나 독성 거대결장, 골수염 등 합병증도 나타난다.

CDI 환자는 국내에 많지 않다. 그러나 레비요타와 보우스트가 승인을 받은 미국에서는 이 질환으로 고통받다 사망에 이르는 환자들이 매년 최대 3만명에 달한다.

CDI는 재발이 쉽고, 재발 횟수가 늘어날수록 치료 효과를 보기 어려운 질환이기도 하다. 미국 질병관리통제센터(CDC)는 CDI를 긴급 공중보건 위협으로도 지정한 바 있다.

앞서 세레스 테라퓨틱스는 보우스트의 임상시험에서 CDI에 대해 우수한 증상 억제 효과를 보여줬다. 보우스트를 투여한 임상 참여자 상당수는 질환이 재발하지 않거나, 가짜약(위약)보다 재발률이 낮았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달 세레스 테라퓨틱스의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감염증(CDI) 치료제  ‘보우스트’를 승인했다. [사진 AP/연합뉴스]
세레스 테라퓨틱스는 FDA가 요구한 추가 임상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었다. 이번 허가와 관련해 FDA 생물의약품평가연구센터의 피터 마크스 박사는 “경구용 제제의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는 CDI 환자들이 더 쉽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했다.

마이크로바이옴 ‘약’ 될 수 있나…보우스트가 방향 제시

북미와 유럽 등 제약·바이오 선진 국가에서는 일찍부터 마이크로바이옴 분야를 개발하기 위해 체계적인 연구개발(R&D)을 진행해 왔다. 대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마이크로바이옴이 면역 발달과 대사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놨고, 이후 수만건의 논문도 쏟아졌다.

대표적인 연구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2007년 시작한 ‘인체 마이크로바이옴 프로젝트’다. NIH는 이 프로젝트에 10년 동안 수십억 달러를 투입해 마이크로바이옴과 여러 질환의 관계를 밝혔다. 네덜란드와 독일, 영국 등에선 ‘인체 장내 메타게놈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선 우리 몸 전체 유전자의 150배에 달하는 330만여 개의 유전자가 대장에 있다는 점이 밝혀졌다.

마이크로바이옴이 몇 년간의 연구를 통해 이 분야를 향한 모든 의문에 명쾌한 답을 준 건 아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오랜 기간 질환의 발병 원인인지 결과인지를 두고 논란이 있었고, 현재까지도 가장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분야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마이크로바이옴은 비만을 비롯한 대사질환은 물론 뇌질환과 심혈관질환 등 다양한 질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기업이 마이크로바이옴이 치료제가 될 것이란 기대를 품고 신약 개발에 매진하는 이유다. 보우스트의 허가도 “마이크로바이옴이 진짜 약이 될 수 있을까”란 질문에 답을 제시한 셈이다.

자금난에 울고 웃는 기업들…엇갈린 해외 시장 

해외의 경우 많은 기업이 후기 임상에 진입해 있다. 글로벌 제약사와 신약 개발 기업이 손을 잡고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를 공동 개발하는 모습이다. 특히 식음료 분야의 글로벌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마이크로바이옴 분야를 개발하고 있다.

세레스 테라퓨티스도 스위스의 글로벌 기업인 네슬레와 오랜 기간 협력해 보우스트를 개발했다. 네슬레는 2016년 세레스 테라퓨틱스로부터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파이프라인 여러 건의 상업화 권리를 사들였고, 이번 허가에 따라 세레스 테라퓨틱스에 기술료도 지급할 예정이다.

네슬레는 일찍이 마이크로바이옴 분야를 연구하기 위해 네슬레건강과학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유망한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기업들과 협력하며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 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모습이다.

마이크로바이옴 신약 개발 기업 엔터롬도 네슬레와 공동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네슬레와 함께 개발 중인 파이프라인은 염증성 장질환(IBD) 치료제 후보물질인 ‘EB1010’다.

엔터롬은 자체적인 분석 기술로 마이크로바이옴과 면역체계의 상호작용을 연구해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다양한 마이크로바이옴 파이프라인을 연구하고 있으며 주요 파이프라인인 ‘EO2401’과 ‘EO2463’ 등은 임상 2상 단계이기도 하다. EB1010은 올해 안으로 임상시험에 진입한다는 계획이다.

프랑스의 마트 파마는 후기 임상 단계의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후보물질을 개발 중인 기업이다. 급성 이식편대숙주병 치료제 후보물질인 ‘MaaT013’은 최근 FDA로부터 임상 3상을 승인받아 본격적으로 R&D에 속도를 내게 됐다. MaaT013은 환자의 몸속에 치료제를 직접 주입하는 대변미생물이식(FMT) 치료제다.

마트 파마는 임상 3상을 통해 급성 이식편대숙주병 환자를 대상으로 MaaT013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할 계획이다. 마트 파마는 백혈병 환자의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 결과 개선을 위한 ‘MaaT033’도 개발 중이다.

다만 자금난과 임상 실패 등으로 고전하고 있는 기업들도 있다. 마이크로바이옴 신약 개발 기업인 핀치 테라퓨틱스는 CDI 치료제 후보물질인 ‘CP101’의 임상 3상을 올해 초 중단했다. 회사는 치료제 개발과 관련한 자산을 모두 팔 계획이다. 이번 임상 3상 중단으로 인력의 95%도 내보내기로 했다.

핀치 테라퓨틱스는 일본의 제약사 다케다와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를 공동 개발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다케다와 협력 관계를 종료하면서 자금난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다케다는 핀치 테라퓨틱스에 IBD 치료제 후보물질 2건의 권리를 모두 반환하기도 했다. 핀치 테라퓨틱스는 당시에도 인력의 절반가량을 해고했다.

이벨로 바이오사이언스는 올해 초 임상 실패의 아픔을 겪었다. 아토피성 피부염 치료제로 개발 중인 ‘EDP1815’의 임상 2상에서 1차 유효성 평가지표를 만족하지 못하면서다. 이벨로 바이오사이언스는 곧바로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인력을 줄여 기업을 유지할 자금을 마련하고, 다른 파이프라인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이 밖에도 4D 파마와 칼레이도 바이오사이언시스 등 주목받던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개발 기업들이 경영 악화로 인해 나스닥 시장에서 상장 폐지되거나 회사 운영을 중단했다.

미개척 분야 ‘마이크로바이옴’…정부도 기업 지원 박차

업계 상황이 만만찮은 가운데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개발 기업들도 허리띠를 조르고 있다. 지놈앤컴퍼니는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면역항암제 후보물질인 ‘GEN-001’을 글로벌 제약사와 공동 개발하고 있다. GEN-001은 현재 임상 2상 단계다. 지놈앤컴퍼니는 최근 경기 침체 및 시장 악화로 파이프라인을 축소한 뒤 주요 파이프라인에 기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고바이오랩은 건선 치료제 파이프라인인 ‘KBLP-001’을 개발하고 있다. 회사는 2~3년 전 이 파이프라인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려 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는 동안 환자를 모집하는 데 다소 어려움을 겪었다. 현재는 임상 개발에 속도를 내며 공격적으로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를 연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놈앤컴퍼니와 고바이오랩 등이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개발에서 앞서고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기업 규모가 큰 곳은 상황이 낫다. 셀트리온은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신약 개발 기업인 리스큐어 바이오사이언시스와 손잡고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최근 바이오시밀러 기업을 넘어 신약 개발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는데, 차세대 모달리티인 마이크로바이옴에도 주목하는 모습이다.

리스큐어 바이오사이언시스는 셀트리온과 파킨슨병 치료제를 개발할 계획이다. 리스큐어 바이오사이언시스가 초기 개발을 마치면, 셀트리온이 임상과 허가를 도맡는 방식이다. 셀트리온은 리스큐어 바이오사이언시스가 경구용 제제의 파킨슨병 치료제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리스큐어 바이오사이언시스와의 협력을 통해선 퇴행성 신경질환으로 R&D 파이프라인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CJ바이오사이언스도 올해 초 4D 파마의 마이크로바이옴 파이프라인을 대거 인수하며 R&D 방향을 구체화하는 모습이다. 새롭게 인수한 신약 후보물질은 9건이며, 고형암과 소화기질환, 뇌질환, 면역질환이 대상이다.

CJ바이오사이언스는 4D 파마의 신약 후보물질 발굴 플랫폼 기술도 함께 사들였다. 이 회사는 앞서 2025년까지 10건의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겠다고 공언했는데, 4D 파마의 파이프라인을 그대로 사들여 이를 달성한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경기 악화로 몸값이 낮아진 매물이 많은데, CJ바이오사이언스가 해외 마이크로바이옴 기업의 인수합병(M&A)에 주요 플레이어로 참여했다는 점이 의미가 크다”면서도 “이번에 인수한 파이프라인과 기술에 대한 설명과 이들을 통해 어떤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는지 설명은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 추진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건복지부 등은 마이크로바이옴 기술 개발 사업을 통해 8년 동안 4000억원을 해당 분야에 쏟는다는 지원 방안을 구상 중이다.

당초 마이크로바이옴 R&D 분야에 1조원 규모의 지원 사업을 추진할 게획이었다. 그러나 지원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예비타당성조사에서 좌초된 바 있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관계자는 “사업 내용을 진단과 치료 등으로 한정한 지원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며 “특히 제품 생산이 어려운 중소형 바이오 기업들의 상황을 고려해 해당 분야에 지원을 강화할 수 있도록 구상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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