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사기밀 유출과 법정공방 등으로 점철
K방산 경쟁력도 표류… 더 큰 글로벌 시장 노려야
[이코노미스트 김두용 기자]
군사기밀 유출을 시작으로 각종 소송전으로 얼룩진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공방이 마침내 끝났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탓에 고도의 기술 경쟁 구도가 아닌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소모전이 전개됐고, 결국 타임라인만 지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K-방산의 글로벌 경쟁력이 중요한 시점인데 개념설계부터 선도함 인도까지 무려 20년의 시간이 소요되는 다소 허무한 결말을 맞이했다.
개념설계부터 선도함까지 20년 ‘허송세월’
“결국 1.2점의 보안 감점으로 성패가 갈린 셈인데 양사의 소모전과 지체된 시간을 고려하며 허무한 결과가 아닌가.”
방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의 KDDX 입찰 결과를 두고 이렇게 평했다. 한화오션이 지난 7월 2일 HD현대중공업을 따돌리고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최종 선정됐다. 하지만 K-방산의 경쟁력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수주전이었다는 설명이다.
방위사업청의 KDDX 입찰 최종 평가에서 한화오션이 93.9542점, HD현대중공업은 93.3675점으로 0.5867점 차이로 당락이 갈렸다. 기술능력평가에서 HD현대중공업이 0.6425점 높았지만, 군사기밀 유출 관련 보안 감점 1.2점 적용으로 한화오션이 최종 승자가 됐다.
결국 총사업비 7조8000억원 규모의 KDDX 입찰의 결과는 보안 감점에서 갈린 결과를 낳았다. KDDX는 차세대 기술을 망라한 7000톤급 구축함 6척을 국내 기술로 건조하는 첫 국산 이지스함 사업이라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기술 경쟁력이 아닌 보안 이슈로 입찰 승패가 갈리며 찝찝함을 남겼다.
KDDX 사업은 2011년 첫발을 뗀 뒤 이듬해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개념설계를 수주하면서 본격 궤도에 올랐다. 일반적인 국내외 이지스함의 경우 개념설계부터 선도함 인도까지 10~15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규 함정일수록 최첨단 기술과 장비 등이 반영되면서 시간이 더 걸리기도 한다.
KDDX는 한화오션이 개념설계를 2012년 수주 이후 2032년이 돼서야 선도함이 인도되는 타임라인으로 정해졌다. 개념설계부터 선도함 인도까지 무려 20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1996년 당시 신규 이지스 구축함이었던 세종대왕급(KDX-III)는 개념설계 단계부터 2008년 선도함 인도까지 12년이 걸렸다. 한국은 조선소가 노후화된 미국 등과 비교해 군함 설계 및 건조 속도가 가장 빠른 국가로 꼽힌다. 하지만 첫 단추부터 꼬인 KDDX의 경우는 예외였다.
지난 2013년 한화오션은 KDDX의 기초 뼈대가 되는 개념설계 보고서를 성공적으로 끝냈다. 하지만 이때 군사기밀 유출 사건이 터지며 KDDX 사업도 꼬이기 시작했다. 그해 HD현대중공업의 KDDX 개념설계 관련 군사기밀 유출 사건이 터지며 기소됐다. 재무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이 추진되던 시기였고 HD현대중공업이 당사자였다.
법정 공방 끝에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이 KDDX 개념설계도를 불법 취득한 혐의로 모두 유죄를 받았다. 이에 HD현대중공업은 방산 사업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에서 2025년까지 감점 1.8점을 받았다. 이후에도 입찰과 관련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고, 방사청은 2026년까지 감점 1.2점을 적용하기에 이르렀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2012년 개념설계 당시 기술평가 점수 21점 차로 현대중공업에 앞섰다. 소수점 차로 당락이 갈리는 군함 설계 입찰에서 대우조선해양의 함정 기술력은 압도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보안 감점으로 선도함 건조 경쟁에서 밀려난 HD현대중공업은 억울한 입장이다. 관행상 기본설계를 맡았던 업체가 수의계약 방식으로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맡아왔는데, 이번 KDDX에서는 경쟁입찰로 바뀌면서 수주를 놓쳤기 때문이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기술 점수가 아닌 보안 점수로 승패가 갈렸기에 다소 억울하고 허무한 상황이다. 한화오션이 개념설계에서 큰 점수 차로 앞섰다곤 하나 최종 평가를 들여다보면 오랜 시간 동안 기술력을 올리지 못했다는 의미가 되지 않나”고 반문했다.
국내 시장 중요하지만 글로벌 경쟁력이 핵심
이번 KDDX 사업은 전투체계와 핵심 장비의 국산화 비중을 높인 스마트 한국형 이지스함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센서·통신·전투체계·무인체계 등을 결합한 국내 최초의 중앙 컨트롤 스마트 함정이라는 점에서 거는 기대도 크다.
선도함을 건조하는 한화오션의 KDDX 기술과 경험은 좋은 레퍼런스가 될 전망이다. KDDX 이후 호위암 사업에서도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고, 구축함·수상함의 해외 수출 경쟁력 측면에서도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KDDX의 상세설계 업체는 무기체계 배치 등 세부적으로 함정을 구현하는 최종 설계 작업이라 후속함 건조에서도 더 많은 물량을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 후속함은 선도함 설계도를 바탕으로 건조한다.
한화오션은 한화그룹의 방산 계열사와 시너지를 낼 수도 있다. 한화시스템은 전투체계 및 다기능 레이더 개발 사업을 하고 있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무기 발사체계를 비롯한 함정용 가스터빈 엔진 등의 부품 공급을 하고 있어서다.
현대의 이지스함의 경우 선체를 만드는 것보다 미사일·레이더·전투체계 등의 첨단 장비의 비중이 전체 50% 이상을 차지한다. 이에 방산 사업의 수직계열화를 이룬 한화그룹이 패키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렇지만 방사청이 발주하는 국내 시장은 이윤이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국가 차원의 사업이라서 공개 입찰과 적정 이윤율 등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한화오션 측은 “방사청 사업은 모두 입찰 경쟁을 통해서 결정되고 적정 이윤이 책정된 최종 납품 가격으로 발주되기 때문에 마진이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K-방산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글로벌 시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필리핀·호주·중동 등의 해외 함정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해외 수출 함정은 방산원가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수익성 증대가 가능한 구조다.
K-방산은 2024년 호주, 2026년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대형 수주를 겨냥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경쟁국과 비교했을 때 ‘원팀’ 경쟁력이 다소 부족했다는 평가다. 이에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함정 수출사업의 원팀 구성’에 합의했고, 공동개발 프로젝트 등 지속적인 협력을 도모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KDDX와 같은 사례가 재발되지 않아야 하고, K-방산을 위한 원팀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캐나다 잠수함 수주의 결과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를 토대로 열릴 1000조원대 미국 함정 시장을 겨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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