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단위 사업’ 이 손에…‘조합장 자리’ 두고 갈등 격화
[정비사업 천태만상] ① 조합 업무 온라인에 공개, 정보 홍수 속 비대위 활동 활발
두 차례 해임은 기본, 자리사수 노력도 만만치 않아
[이코노미스트 민보름 기자] 지난 5월 20일 한남2재정비촉진구역(한남뉴타운 2구역)에서 세 번째 조합장이 탄생했다. 2021년 말 해당 재개발사업의 첫 리더였던 김성조 조합장이 해임 총회를 통해 물러난 지 불과 1년 반 만이다. 김 전 조합장의 남은 임기를 보궐선거를 통해 채웠던 이명화 조합장 또한 연임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일부 조합원들은 두 조합장들의 불통과 독단적인 업무처리 방식에 문제를 제기해왔다. 지난달 3일엔 조합원 102명이 이사회 회의록 허위 게시 혐의 등으로 이 조합장을 형사고소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정기총회에서 조합장 선거를 예정대로 진행됐고, 결국 이 조합장은 세 명의 후보 중 2위를 차지해 상근이사로 재직 중인 홍경태 후보에게 자리를 내줬다.
2일 ‘이코노미스트’ 취재에 따르면 최근 이처럼 조합 집행부와 반대 조합원들 간 갈등으로 인해 조합장이 교체되는 사례가 일상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소유주들의 무관심이나 빠른 사업진행을 위한 의지로 어려웠던 일이 정보 공유,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해 빈번해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정비시장에서 ‘제왕적 조합장’이 득세했던 시대가 점차 저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설계·감정평가 둘러싼 갈등, 조합장 교체로
조합 내부 갈등과 이에 따른 조합장 교체 현상은 주로 설계문제와 감정평가 결과 등을 두고 발생한다. 설계는 새로 탄생하는 단지의 품질을 결정하고 공급 가구 수, 완공 후 시세 등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조합원들이 예민할 수밖에 없는 분야다.
특히 서울에선 사업시행계획 인가 뒤 시공사 선정 절차가 시작되면서 조합원 간 비상대책위원회가 설립되는 등 갈등이 표출되곤 한다. 통상 관리처분과 함께 정비사업의 ‘빅 이벤트’로 꼽히는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조합원들이 설계와 조합운영의 투명성에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조합장 등 집행부가 특정 시공사나 업체에 특혜를 제공한다는 의혹 역시 이때 확산되는 경우가 많다.
감정평가에 대해선 주로 재개발 조합원들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대지지분은 물론 다세대·연립이나 다가구·단독주택, 상가부터 건물, 도로지분까지 각자가 보유한 부동산 종류가 매우 다양해 종전자산평가 직후 공정성에 불만을 표출하는 조합원들이 다수 발생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남2구역 갈등 역시 2021년 사업시행계획 인가 이후 시공사 선정을 앞둔 상태에서 당시 설계가 논란이 되며 처음 불거졌다. 통풍, 채광에 불리한 동 배치부터 설계업체 선정 과정 역시 공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등 각종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례로는 성수전략정비구역 제4지구가 있다. 지난 2월 일부 조합원이 결성한 ‘고급화·정상화 추진위원회’는 설계업체 선정 및 기존 설계상 타입 구성 문제로 이흥수 조합장 해임총회를 열어 안건을 가결시킨 바 있다.
2021년 한남3구역에서도 조합원 분양신청에 앞선 종전자산평가 결과를 둘러싸고 구역 내 아파트, 연립, 다가구 소유 조합원들이 일제히 조합에 대한 항의를 이어가기도 했다. 2019년 1군 건설사 3곳의 치열한 수주전으로 유명세를 탔던 한남3구역은 공사비만 2조원, 총 사업비 7조원 규모 ‘메가 재개발 사업’으로 조합원 수가 3880명인 만큼 이해관계 역시 복잡해 현재까지 갈등이 빈번하게 불거지고 있다.
이미 세 번 연임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던 이수우 당시 조합장은 선거관리의 불공정성을 지적하며 선관위를 해산하는 등 강수를 두었으나 결국 11월 열린 조합장 선거에서 조창원 현 조합장에게 자리를 내줬다.
온라인 통한 집단행동, 여론 형성에 효과적
한 부동산 전문가는 “예전에는 정비사업 조합원들이 생활에 바쁘고 정보를 찾아보기가 어려워 조합 일에 관여를 못했지만, 요즘은 모든 정보가 온라인을 통해 공유돼 조합원들이 조합 업무에 불만을 갖고 행동에 나서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면서 “임원진이 옛날 방식으로 조합을 운영했다간 해임에 직면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현재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및 시도조례에 따라 각 지자체는 조합별 용역업체선정 결과, 총회 의사록, 회계감사보고서 등을 온라인을 비롯한 방식으로 공개토록하고 있다. 서울시 소재 각 조합과 추진위는 정비사업 관리 플랫폼인 ‘정비사업 정보몽땅(옛 클린업시스템)’에 예산, 회계 장부도 올려야 한다. 해당 자료들은 조합원이면 누구나 접속해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조합원 등 소유주들은 이 같은 자료를 바탕으로 조합과 추진위의 업무진행과정을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포털 카페 및 밴드, 오픈 카카오톡 등을 통해 의견을 나누고 결집하고 있다. 결국 조합 집행부를 교체하기 위해서는 ‘집단화’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 같은 모바일 채널의 역할이 크다.
동시에 자리를 지키려는 기존 조합장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조합장 자리에서 갖가지 공격을 받기 때문에 해임을 당하거나 연임에 실패하는 것 자체가 개인에게 불명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수4지구에선 해임된 조합장이 업무를 이어가며 물러나지 않아 조합원들이 법원에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기도 했다.
연봉과 성공보수 등 공식적 수입뿐 아니라 ‘비공식적 소득’과 권력도 조합장 자리를 얻기 위한 경쟁의 유인이 된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조합 설립은 물론 추진위도 생기지 않은 추진준비위 단계부터 위원장에게 다수 업체가 접근해온다”며 “한번 그 자리를 맛본 뒤 놓기가 쉽겠나”라고 말했다.
기존 조합 집행부는 통상 ‘속도론’을 내걸어 빠른 사업진행을 원하는 조합원들의 마음을 움직이려 한다. 그러나 최근 공사비가 3.3㎡당 700만원 선으로 급등한 한편, 부동산 경기가 꺾이며 분양시장이 침체에 들어서자 손도론도 힘을 못 쓰는 분위기다. 오히려 시장이 정상화할 때까지 속도 조절을 하자는 주장이 힘이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집행부 교체 시도가 잦은 서울에서 조합장 해임이 더욱 앞당겨질 분위기다. 서울시가 오는 7월부터 사업시행계획 인가가 아닌 조합설립 인가를 받은 정비사업에서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도록 조례를 변경했기 때문이다.
이에 각 조합은 시공사로부터 자금을 미리 수혈 받고 사업속도를 높일 수 있게 된 반면, 정비사업 초기단계부터 조합원들의 관심도가 높아지며 ‘조기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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