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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폐허서 찾은 ‘사업 기회’…“인프라 구축 역할 할 것”① [이코노 인터뷰]

[우크라이나서 다시 쓰는 ‘한강의 기적’]② 나길주 다산네트웍스 유럽 총괄 대표
현지 걱정에 술로 지샌 밤…직원이 보낸 ‘불바다’ 사진에 방문 결심
환갑 넘은 몸 이끌고 고행길 택해…“일터서 죽는 게 났겠다 생각”

위기는 기회라고들 한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1년이 넘도록 진행되는 전쟁 속에서도 ‘도약’을 얘기한다. 전쟁의 참혹함을 겪고 있는 국민의 일상을 하루라도 빨리 되찾아 주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폐허가 된 영토를 탈바꿈해 경제적 성장을 이루겠단 목표도 세웠다. 이런 목표가 꿈에 그치지 않도록 팔을 걷어붙인 한국 기업인이 있다. 그는 전쟁이 진행 중인 국가를 직접 찾을 정도로 ‘우크라이나 재건’에 진심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그에게 무엇이 발걸음을 전쟁터로 향하게 했는지 물었다. 그와 나눈 대화를 두 편에 걸쳐 글로 옮긴다. [편집자 주]

나길주 다산네트웍스 유럽 총괄 대표가 우크라이나 키이우 성 미카엘 대성당 인근에 마련된 전사자 추모비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 다산네트웍스]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환갑을 넘긴 몸을 이끌고 전쟁터로 향했다.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 영토를 침공하기 이틀 전, 주요 문서를 한아름 안고 우크라이나에서 프랑스로 향하는 마지막 항공편에 몸을 실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 땅을 밟은 뒤, 1년이 넘도록 들려온 소식은 고통이었다. ‘프랑스로 함께 피난 가자’는 제안을 고사한 직원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남은 이들이 전황을 전해준 날엔 밤새 술을 마셨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약간의 구호자금을 보내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이 몸과 마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래서 4월 초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기차 편에 몸을 실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추진 중인 재건 사업에 참여할 기회가 보였기 때문이다. 재건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지독한 무력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첫 방문 후 한 달에 두 번꼴로 우크라이나를 찾고 있다”는 나길주 다산네트웍스 유럽 총괄 대표(62)의 얘기다. 그는 “다산네트웍스가 참여하는 재건 사업이 우크라이나 국민이 다시 일상을 찾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며 “단순히 경제적 목적만 갖고 있었다면, 목숨을 걸고 전쟁 중인 국가를 방문하는 위험을 감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가족들은 그의 우크라이나행을 반대했다. 나 대표는 그런데도 전쟁터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키이우(우크라이나 수도)에서 사무실을 운영하며 일군 모든 것 사라지고 있고, 더 늦어진다면 다시는 그곳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며 “키이우는 내 일터였고, 함께 일한 직원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었기에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어 “현지에 남아있는 한 직원이 집 앞 창문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는데, 완전히 불바다였다”며 “사진과 함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눈에 들어왔는데, 걱정과 스트레스에 머리카락이 다 빠진 모습이었다. ‘프랑스에서 폐인이 되기보다 차라리 내 일터에서 죽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우크라이나행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IEC’ 총회 후 우크라이나 정부 인사와 사업 구체화

나 대표의 방문은 곧장 성과로 이어졌다. 우크라이나는 전쟁이 진행 중이라 재건에 필요한 물자도, 일손도 턱없이 부족하다. 해외 기관·기업에 일정 부분 의존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전쟁터를 찾아 ‘재건에 참여하겠다’고 나서는 기업이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산네트웍스의 사업 참여 의지는 ‘가뭄의 단비’로 여겨질 터다. 더욱이 러시아 군이 1순위로 타격한 통신·전력망은 다산네트웍스가 오랜 시간 사업을 영위하며 경쟁력을 확보한 분야다. 2019년부터 우크라이나에서 사업을 추진해 온 만큼 현지 사정에 밝다는 점도 재건 참여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나 대표는 “우크라이나는 현재 산업의 기반이 되는 전력·통신망은 물론 발전소 등 다양한 인프라가 무너진 상태”라며 “다산그룹의 역량이 우크라이나 재건을 도울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고 했다.

나 대표의 ‘목숨을 건 방문’은 특히 6월 7일 키이우에서 열린 국제에너지클러스터(International Energy Cluster) 연례 총회에서 빛을 발했다. 나 대표는 총회 개최를 전후로 우크라이나 정부 인사들과 면담을 진행하며 사업을 구체화했다.
나길주 다산네트웍스 유럽 총괄 대표(오른쪽)가 6월 6일 비탈리 올렉산드로비치 킴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 주지사를 만나 전력망 현대화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다산네트웍스]

나 대표는 특히 비탈리 올렉산드로비치 킴(Vitaliy Oleksandrovich Kim) 미콜라이우 주지사와 직접 전쟁터를 둘러보고 필요한 현지에 인프라가 무엇인지도 살폈다. 비탈리 킴 주지사는 대외에 ‘태권도 수련으로 단련한 정신으로 전쟁을 극복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 국내에서도 이름을 알린 고려인 4세 정치인이다. 

나 대표는 또 안나 블라디미로브나 자마제예바(Hanna Volodimirivna Zamazєєva) 우크라이나 에너지효율성및에너지절약국가기관(SAEE) 국장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안나 국장은 다산네트웍스에 모듈형 열병합 소형발전기의 공급 협력을 요청했다고 한다. SAEE는 우크라이나의 실행부 기관으로, 에너지 효율성 및 에너지절약 분야에서 국가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은 ▲키이우 수도권 외곽지역 ▲하리키브 동부지역 ▲남부 미콜라이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다산네트웍스는 현재 전력망 재건 시범 사업에 참여를 결정지은 상태다. 특히 우크라이나 국영 전력 기관 ‘우크레네르고’(Ukrenergo)와 전쟁 피해가 심한 동·남부 국경 지역에 걸친 1000km 구간에 현대적 초고압 지중선 설비 구축을 논의하고 있다.

나 대표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 한국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하고 1983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파리세르지국립미술학교(ENSAPC)에서 공부하며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고 한다. 결혼과 동시에 현지 정착을 결심한 나 대표는 1992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다산네트웍스의 키이우 사업이 본격화된 2019년에는 우크라이나 영주권도 확보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나 대표에게 프랑스는 제2의, 우크라이나는 제3의 고향인 셈이다. 나 대표는 프랑스 공부를 마치고 삼성그룹 런던법인에서 근무하다, 다산네트웍스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은 다산네트웍스의 유럽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또 다산네트웍스가 알제리 기업 콘도르와 합작해 설립한 ‘콘도르다산’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도 겸직 중이다.

한국 정부는 현재 우크라이나를 여행경보 4단계(여행 금지) 국가로 분류한 상태다. 나 대표는 어쩌면 현재 한국인으로 우크라이나 현지 상황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가 우크라이나에 방문하며 보고, 듣고, 느낀 점은 무엇일까. 국내에선 미디어로만 접할 수 있는 전쟁의 참혹함을 나 대표는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 그가 월 2회 우크라이나에 오가며 든 생각들이 궁금했다. 이와 함께 다산네트웍스가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에서 찾고 있는 사업적 기회도 물었다. 나 대표와 나눈 대화는 일문일답 형식으로 두 번째 편에 담는다.

나길주 다산네트웍스 유럽 총괄 대표. [사진 다산네트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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