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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 킬러’…세계 최초 ‘먹는 치매약’ 개발한 아리바이오 [이코노 인터뷰]

[‘치매 정복’ 길이 보인다]⑤ 정재준 아리바이오 대표
명확한 원인 밝혀지지 않은 알츠하이머병
다중기전 표적해 경구용 치료제 최초 개발

정재준 아리바이오 대표 [사진 신인섭 기자]
[이코노미스트 선모은 기자] 알츠하이머병은 치매를 일으키는 퇴행성 뇌질환이다. 치매 환자의 절반 이상이 이 질환을 앓고 있다. 알츠하이머병은 마땅한 치료제가 없는 대표적인 질환이기도 하다. 발병의 원인으로 밝혀진 요인은 아직 없고, 뇌 속에 특정 단백질이 뭉치고 쌓이면 신경세포의 작용을 방해해 인지기능을 낮춘다고 알려졌을 뿐이다.

7월 31일 경기 성남 분당구에 있는 아리바이오 사옥에서 만난 정재준 대표는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을 둘러싼 ‘카더라’가 많은 점이 다중기전을 표적하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를 연구하게 된 계기”라고 설명했다. 다중기전은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킨다고 지목된 여러 원인을 한꺼번에 고려해 치료제를 개발하는 방식이다.

최근 미국에서 정식으로 허가받은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와 좋은 임상 3상 결과를 공개한 도나네맙은 모두 하나의 기전을 표적한다. 알츠하이머병은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이 뭉친 형태(플라크)로 뇌 속에 쌓이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레카네맙은 플라크가 쌓이지 않게 만들고 도나네맙은 뭉친 플라크를 제거한다.

하지만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이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다. 한때 타우 단백질이 알츠하이머병의 새로운 생체표지자(바이오마커)로 주목받았고, 최근에는 염증반응이나 산화 스트레스, 뇌의 혈류, 유전자와 알츠하이머병의 상관관계를 밝히려는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정 대표는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면 여러 패스웨이를 동시에 잡는 약물을 개발하면 된다고 판단했다”며 “결국 기업은 환자에게 좋은 치료제를 빠르게 전달해야 하는 만큼 레카네맙이나 도나네맙과 달리 다중기전 약물인 AR1001을 개발하게 됐다”고 했다

유럽·중국 임상 3상 준비…“연내 추진 목표”

아리바이오는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국내 기업이다. 영국 정부의 연구소와 케임브리지대 바이오연구소 등을 거친 정 대표가 2010년 설립했다. 정 대표는 아리바이오에서만 10년 이상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를 연구했다. 최근에는 경증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개발 중인 AR1001의 글로벌 임상 3상에 집중하고 있다. 약물을 개발한 지 10년 만에 신약 개발의 마지막 단계에 온 것이다.

AR1001은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 등을 줄이는 데 집중한 레카네맙, 도나네맙과 달리 여러 효과를 내는 약물이다. 신경세포의 신호전달경로(CREB)를 활성화해 신경세포가 사멸하는 것을 막고 자가포식을 일으켜 타우 단백질을 제거한다. 뇌로 향하는 혈류의 양을 늘리고 윈트(Wnt) 신호전달체계를 활성화해 시냅스의 가소성을 높이기도 한다. 

아리바이오는 AR1001을 먹는 약(경구용)으로 개발해 환자의 복용 편의성도 높일 계획이다. 정맥주사(IV) 제형은 환자가 병원에 가 약물을 주사해야 하지만 AR1001은 매일 약을 먹는 것만으로 인지기능의 저하 속도를 늦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 대표 또한 “AR1001은 경구용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는 최초의 약물”이라며 “케미컬 의약품으로 안전성이 높고 부작용도 적다”고 했다.

아리바이오는 현재 미국의 60여 개 임상기관에서 AR1001의 글로벌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다. 임상 참여자는 600여 명이며 2022년 첫 환자 투약을 시작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지난 6월 임상시험계획(IND)을 신청했고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유럽과 중국에도 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며, 연내 이를 허가받겠다는 계획이다.

정 대표는 “한국과 중국에선 150여 명, 유럽에선 400여 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유럽은 약물이 과학적인지, 환자들에게 정말 도움이 될지, 가격은 적당한지 등을 깐깐하게 따져본다”며 “아두헬름(성분명 아두카누맙)도 유럽에서 승인이 거절됐던 만큼 임상 진행에 문제가 없도록 자문 절차를 거치는 중”이라고 했다.

“세계 첫 경구용 치료제 개발할 것”

연구개발(R&D) 역량이 부족한 국내 기업은 임상 단계에서 다른 기업에 후보물질을 이전한다. 후기 임상으로 갈수록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어야 하는 만큼 신약 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아리바이오는 AR1001의 글로벌 임상 3상을 주도하고 있다. 다른 기업과 기술이전을 논의하고 있으나 특정 지역에서의 권리를 이전하거나 판매 협력 정도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정재준 아리바이오 대표 [사진 신인섭 기자]
정 대표는 “글로벌 제약사와 협력하면 이들의 임상, 허가 기준에 맞추기 위해 5~6년 정도의 시간이 더 소요된다”며 “환자에게 치료제를 빠르게 공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AR1001은 임상을 직접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AR1001의 임상 3상을 마친 뒤 중등증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도 진행할 것”이라며 “내년 중 임상 2·3상 형태의 추가 임상을 계획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을 없애는) 항체 의약품과 AR1001을 병용 투여하는 임상도 논의하고 있다”며 “여러 기전을 표적하는 기본적인 치료제를 개발하고, 혈관성 치매와 우울증을 동반한 치매 등으로 파이프라인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아리바이오가 신약 개발에 성공한다면 세계 첫 경구용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를 개발하게 된다. 회사는 임상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임상에서 풍부한 경험을 보유한 전문가들을 포섭했다.

아두카누맙과 레카네맙, 도나네맙 등 기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임상에 참여한 데이비드 그릴리 박사가 대표적이다. 미국 지사에는 에자이에서 9년 동안 일하며 레카네맙의 개발과 허가를 경험한 모니카 킴 박사가 메디컬 디렉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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